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중국과 북한은 사실 마냥 친한 사이는 아닙니다.
1994년 김일성이가 지미 카터의 핵사찰수용의 권유를 받아 들이고,
같은 해 7월 김영삼과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을 보름 앞두고 사망했습니다.
당시 김일성의 행보는 핵문제나 남북 문제에 있어 미국과 손잡고 상당히 잰 걸음을 보였고,
이 때문에 중국과 잦은 갈등이 있었을 때입니다.
또한 중국은 김일성 사망 후 김일성의 개혁을 뒤따라가는 김정일의 세습을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김정일은 중국의 승인없이 언제 자라날지 모르는 정적을 두려워 하면서 강력한 지도력을 갖긴 힘들다고 보고, 수차례 중국에게 조아려 승인 받으려했습니다만,
중국은 김정일에게 통미를 빗대어 오랑캐와 손을 잡는다며 그가 사망할 때까지 그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김정일은 통미봉남이라며 미국과의 끝없는 독대를 신청할 정도였으니까요.
뭐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 것이 햇볕 정책이고 클린턴 역시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북한에 방문하여 김정일과 평화협상까지 마무리하려 했었던 거지만..
하여간에, 그랬던 중국이 김정일 사망 후 돌연 입장을 180도 바꿉니다.
살아생전에 인정하지 않던 김정일을 죽은 후에 공식인정한다는 후진타오의 성명이 있었죠 ㅋ
당시 북한에 보낸 조문단도 어마어마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은 실제 북한이 발표한 김정일의 사망 장소와 경위가 위성사진으로 보면 틀리다는 것.
그리고 김일성과 김정일 둘 다 통미로 인해 개혁 개방을 추진하려하며, 중국과 극단의 마찰을 빗고 있었을 때 죽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보이고 있는 김정은 역시 중국과의 관계가 좋다고만 볼 순 없습니다.
중국통이라는 친인척과 수뇌부까지 숙청해가면서, 중국과 거리를 두려했고,
북핵 문제에 있어서는 지난 G20 전에 중국의 고위급 관계자가 북한을 방문하여 도발을 자제해줄 것을 권유했으나,
보란듯이 G20이 끝난 다음날 핵실험을 해서 찬물을 뿌렸습니다.
이 거지같은 두 나라는... 아니 정확히 말하면 두 권력 집단은...
우리의 통일에 아무런 도움이 되진 않지만,
이 두 집단의 거지같은 상황을 철저히 이용하고 기회를 노려야만 통일이 가능하리라 생각됩니다.
역사는 되풀이 됩니다.
우리는 중국과 북한의 틈을 다시 벌릴 필요가 있고,
현재 냉냉한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화해의 가교 역활을 해야할 때입니다.
그리고는 뒤에서 북한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거지같지만 중국에게 미소를 보내고 북한에게는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