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설] 경상남도 창녕 출생. 1956년 고려대학교 정외과를 졸업하였다. 시작품 <비 碑>(文學藝術, 1956.11.)와 <자화상 自畵像>(思想界, 1960.1.) 등이 추천되어 시작 활동을 하였다. 이한직(李漢稷)의 추천으로 ..
*고 임종국 선생님 약력*
1929 경남 창녕 출생
1952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입학
1959 《문학예술》誌에 시 <비(碑)>발표로 등단, 60년대 '사화집(詞華集)' 동인으로 詩作 활동
1965 굴욕적 한일회담을 계기로 일제침략사와 친일파에 대한 연구 시작
1966 《친일문학론》 《이상전집》 출간
1968 고려대학교 4학년 재입학
1969 고려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1970 《발가벗고 온 총독》 출간(선문출판사)
1974 《한국문학의 사회사》 출간(정음사)
1978 《醉漢들의 배》 출간(평화출판사)
1980 《韓國社會風俗野史》 출간(서문당)
1981 《정신대 실록》 출간(일월서각)
1982 《일제침략과 親日派》 출간(청사)
1984 《밤의 일제침략사》 출간(한빛출판사)
1985 《일제하의 사상탄압》 출간(평화출판사)
1986 《한국문학의 민중사》 출간(실천문학사)
1987 《친일논설 選集》 출간(실천문학사)
1988 《日本軍의 朝鮮侵略史 1》 출간(일월서각)
1989 《日本軍의 朝鮮侵略史 2》 출간(일월서각)
1989 '친일파총사' (전10권) 발간을 계획하고 저술 중 폐기종으로 타계
1992 故 임종국 선생 제6회 심산상 수상 (수상저서 : ≪친일문학론≫≪일제침략과 친일파≫)
2003 KBS1TV 인물현대사 '임종국'편 방영(연출 김정중)
2005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 출범(회장 장병화)
2005 보관문화훈장 추서
직간접 40년간 일본에게 식민지 침략을 당하고
처벌된 친일매국노는 단 0명
이승만이 반민특위 해체하고 울산에 노덕술이를 반공투사로 둔갑시킨 순간부터
반민특위 위원을 빨갱이로 몰고 친일파를 등용한 순간부터
박정희가 만주의 친일 선후배, 일본의 군국주의자들과 한일굴욕협접 한 순간부터
친일매국노들에게 부와명예를 준 순간부터
지금까지 처벌은 커녕 친일을 경제, 문화 ,문학, 교육, 정치, 군사 분야에 부와명예의 자격증입니다.
임종국 선생님은 아버지부터 친일의 잦대를 대신분입니다.일본 학자들도 이분을 존경하는분 많죠
말단에 친일도 불분명한 연설하나때문에 자기아버지부터 친일파로 넣으신분이죠.
아버지 직책도 면장수준의 말단....박정희처럼 중위도 아니고...
친일에는 지역도 혈연도 인맥도 필요없고 있는그대로 해야죠.
임종국 선생님도 경상도분
●일본장학금으로 공부한 뉴라이트 공주대교수 이명희(경북문경)
●한국인은 열등하고 아들은 미국국적으로 돌려놓고 병역면제받고 유영익(진주)이 국사편찬위원장●김진홍(경북청송)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박근혜(대구)-뉴라이트와 한나라당의 길 다르지 않다.●박정희(구미)-친일혈서 충성맹서 왜구장교●뉴라이트,전 국사편찬위원장-이태진(경북성●안병직(경남함안)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일본보다 독도가 우리땅이란 증거 많다고 주장못한다.~위안부 강제동원 증거는 없다.~김구,안중근은 테러리스트
친일파문제에 고향본적은 필요 없습니니다.
친일은 경상도뿐아니라...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서울경기도 있습니다.
내고장 친일은 어쩔수 없는 애국이고 남의고향 친일은 처죽일일은 아니죠
정치적으로 애향심으로 판단할 필요는 없죠
어떤분이 그러더군요....부산사람인데
내고향사람 친일파 문제 제기해서 기분나쁘다고...
친일은 어디에는 있죠..다만 주력이 어디이고...어느정당이고...지역주민들이
그들을 지지여부가 다를뿐...
수백수천만명이 어떻게 하나의 주장으로 귀결이 될까요?
자기고장에 친일파가 있으면 부끄러워하는게 당연하지...옹호하는게 상식이 아닙니다.
그렇게 자기고향 친일파 옹호하다가 해방후 70년이 다되가는데 친일이 훈장이 되는 세상이 된겁니다.
자기고장 친일파에게 더 엄한 잦대를 대는게 임종국 선생님의 가르침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해방후 친일파처벌 0명....부귀영화의 자격증 친일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