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칠 정도로 난잡", 도가 지나쳤던 박정희의 여자관계
프레시안 : 남녀 문제와 관련해 박지만에 관한 얘기도 돌았지만, 여성 편력 문제는 박정희 대통령이 훨씬 심각하지 않았나.
서중석 : 박정희 대통령의 여자관계도 10·26 거사에 약간은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 채홍사 역할을 주로 했던 건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였다. 박선호는 의전과장 활동의 90퍼센트가 주로 그런 일이었다고 법정에서 얘기했다. 박선호가 법정에서 박정희의 여자 얘기를 하면 김재규는 그걸 제지하고 그랬다. 그렇지만 합동수사본부의 한 관계자는 "김재규는 박 대통령의 여자관계가 지나칠 정도로 난잡하다고 여러 차례 불평했다"고 얘기했다.
10·26 그날에도 있었던 대행사는 한 달에 2~3회, 여성 1명과 함께 벌이는 소행사는 한 달에 7~8회 있었다고 돼 있다. 궁정동 안가를 다녀간 연예인만 해도 100명이나 됐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가 살아 있을 때에도 여자관계가 많았다. 윤필용이 방첩부대장으로 있을 때 육 여사는 윤필용에게 "윤 장군님, 각하께 여자를 소개하면 소개했지 왜 꼭 말썽 날 만한 탤런트들을 소개합니까", 이렇게 항의 비슷한 얘기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위장 번호를 단 승용차로 밤 나들이를 하곤 했는데, 야행 시간과 장소는 경호실장 박종규만이 아는 천기에 속했다고 강준만 교수가 쓴 책에 나온다. 그래서 육 여사는 별도의 정보망으로 야행을 감시했고, 꼬투리가 잡히면 박종규 경호실장한테 심하게 따졌다고 한다. 나도 1970년대에 여러 번 들었지만, 그래서 박 대통령은 육 여사하고 부부 싸움도 많이 했고 그러면서 육 여사가 얼굴에 멍이 들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그랬다.
프레시안 : '육박전'이라는 얘기까지 세상에 나돌지 않았나.
서중석 : 당시 나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박정희는 경호원 1명만 대동하고 나가는 심야 단독 행사도 자주 즐겼다. 나중에는 중앙정보부가 여자관계에 깊이 개입했는데, 여자들을 조달할 수 있는 채널을 가진 마담들을 활용했다고 한다. 당시 마담이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있지 않았나. 1970년대에 안가에서 근무했던 중앙정보부 직원이 이 부분에 대해 2005년 <한겨레21>에 증언한 게 있는데, 그걸 한 번 보자.
증언에 따르면, 손이 컸던 마담 2명 정도가 주거래처였는데 이 사람들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성을 100여 명씩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마담들이 추천하면 중앙정보부 직원이 면접을 봤는데, 여러 가지를 따진 다음에 대통령 수발을 들게 했다. 그런데 대통령을 접대한 여성은 한 차례 이상 넣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임신하거나 대통령이 그 여성에게 빠지는 걸 차단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궁정동 안가와 같은 대통령 전용 요정은 5~6군데 더 있었다고 하는데, 경호실장 차지철도 채홍사 역할을 맡았다. 박선호가 구해온 여자들을 차지철이 먼저 심사한 것이다. 그리고 박 대통령 자신이 영화나 TV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왔을 때 "한 번 보고 싶다", 이러면 즉시 그 사람이 불려오기도 했다고 그런다. 지방 순시를 갈 때에도 여자관계가 있었다. 심지어 서울의 요정 아가씨들이 단체로 출장을 가기도 했다고 한다. 모심기 행사를 시골에서 하는데 박 대통령 가까이에 젊은 여자들이 어른거리는 일도 있었다고 한 책에는 나온다.
또한 '대통령이 압구정동에 있는 H아파트에 자주 출입한다'는 얘기가 1970년대 후반에 돌았는데, 그것과 관련해 특이한 민사 소송도 들어왔다고 한다.
프레시안 : 어떤 소송이었나.
서중석 : 1981년경 희한한 민사 소송이 들어왔는데, 뭐냐 하면 압구정동 H아파트에 사는 한 주부가 경찰관을 상대로 '갈취한 돈을 돌려달라'면서 반환 청구 소송을 낸 것이다. 그 주부는 아파트 승강기에서 대통령을 목격했는데, 경호원들로부터 즉각 '절대로 발설하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참지 못하고 동네의 다른 주부들한테 자기가 본 걸 귀엣말로 전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얘기를 연상시키는데, 문제는 이 주부가 발설했다는 게 한 경찰관 귀에 들어간 것이다. 이 경관은 그 주부한테 눈감아주겠다고 하면서 돈을 갈취했는데, 그 액수가 무려 1000만 원이 넘었다고 한다.
그런데 10·26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세상이 바뀌지 않았나. 그러자 이 주부가 분한 마음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 자기가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닌데 괴롭힘을 당했으니까. 여기서 잠깐 박정희 일기 얘기를 해두는 것도 필요하겠다.
출처 :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39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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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석 "최순실 국정농단 본질은 돈, 특별법 제정 필요"
안 의원은 "최태민 때부터 내려오는 국정농단의 이유는 결국 돈 때문"이라면서 "최순실 돈은 정말 상상도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다. 일부 언론은 수조 원에 이른다는 보도를 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최순실 재산 몰수는 미래를 위한 것"이라며 "악의 뿌리를 그대로 두면 아이들 세대에는 역사를 흔드는 또 다른 국정농단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돈이 있으니 다시 국민을 향해 보복할 것"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안 의원은 "최순실 돈은 아버지 최태민 돈이고, 최태민 돈은 박근혜에게 받은 것이고, 박근혜 돈은 박정희 통지자금"이라면서 "그러나 이 돈은 베트남 파병 가서 죽어간 우리 아버지 형제, 파독 광부나 간호사로 간 형님 누나, 일본과 굴욕 외교로 받은 차관 커미션으로 챙긴 비자금이기에 우리 국민의 피와 땀이나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안 의원은 '코리아 게이트', '박동선 게이트' 등 여파로 지난 1976년 미국 의회와 CIA가 박정희 통치자금 규모를 조사한 <프레이저 보고서>를 인용하기도 했다.
안 의원은 "이 보고서 내용을 보면 1978년 당시 박정희 통치자금이 8조 4150억 원으로 돼 있다.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300조로 추정된다"면서 "이 돈 일부가 최태민에게 가고, 또 일부가 전두환 비자금으로 갔다. 이렇게 형성된 최순실 돈을 찾아야 하는데 현행법으로는 공소시효(5년)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한탄했다.
출처 : http://www.idomin.com/?mod=news&act=articleView&idxno=541387&sc_code=1395288609&page=&to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