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인 1862년 한 해에만 전국 71곳에서 농민들이 난을 일으켰다. 민란은 경남 진주에서 시작해 전라도, 충청도로 삽시간에 번졌다
수 차례 조정에 고통을 호소했으나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무력봉기에 나섰다
탐관오리의 학정이 유독 진주에만 있었을 리 없다. 봉기는 들불처럼 전국으로 번졌다.
진주농민항쟁은 부패한 조선 사회에 경종을 울렸지만 주모자들은 역적이 됐고, 그 후손들은 역적의 후예라는 굴레를 쓰고 살아야 했다
그리고
동학
동학의 창시는 지배층의 착취로 농촌 경제가 파탄에 이르고 자본주의 열강의 침략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되었던 19세기 후반의 사회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이루어졌다.
일본군의 후원을 받던
일진회(一進會)의 압박으로
대한제국 정부는 김연국을 비롯한 동학교도들을 모두 석방하였다. 이로써 동학은 포교의 자유를 얻었으며, 1904년 12월에는 진보회를 일진회에 통합시켰다.
법치라는게 존재하는 사회가 아니죠
쉽게 갑시다..
이런 피지배계층한테 민족이라는 말이 사치일뿐입니다.
그냥 다른 뷴류에 계층일뿐입니다.. 약탈하는자 약탈당하는자
일제 시대때 국민 민족을 통치에 이용해 먹을려고 쓴 말로 압니다
이런 통치 수단도 유럽에도 일본이 도입한걸루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