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용공 조작’의 광풍이 상륙한 것인가. 요즈음 ‘종북세력’ 얘기가 부쩍 요란해졌다.
군이 민주화 세력을 ‘종북세력’으로 몰아 매도하는 교육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고 한다. 의무적으로 ‘종북시험’을 치르게 한 뒤 시험 성적을 진급과 휴가에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북 웅변대회’를 열어 진급 가점이나 휴가를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2011년 이후 국방부의 안보 강연 예산을 2009년보다 10배 이상 늘렸다. 안보 강연이라고 하지만, ‘종북강연’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과거 유신과 독재에 항거하며 민주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목숨을 잃고 수난과 고통을 겪었던가. 이 과정에서 독재 정권은 일반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확대재생산하고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숱한 간첩단 사건들을 조작했다.
1974년 4월 유신 반대 학생운동을 주도하던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과 그 배후로 지목된 인혁당재건위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인혁당 사건에서는 사형이 확정된 8명의 형 집행을 재판 뒤 18시간만에 서둘러 끝내버려 국제 사법계의 규탄을 받기도 했다.
이 사건들은 재심 청구에서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고 보상까지 받았다. 이처럼 ‘수지 김’, ‘이수근’ 등 대부분의 수많은 간첩 사건들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박정희, 전두환 군부 독재는 독재 권력을 유지, 강화하려고, 보수 성향의 표를 결집할 대북 적대감과 불안감을 일부러 만들기 위해 무고한 학생과 시민들을 엮어 ‘간첩단 사건’으로 조작한 야만의 권력이었다. 군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과거 야만의 독재 권력을 본 따 용공 조작에 앞장선 것인가.
군은 종북교육에서 “종북세력이 전국단위 조직만 80여개 단체에 이르고 핵심세력이 3만여명, 종북 동조세력이 30만-50만여명, 부동세력이 300여만명으로 추산된다”고 했다. 군이 주장하는 종북세력의 개념과 추산 기준 및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가.
북한과의 교류나 협력, 평화를 주장하면 종북세력인가.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도 싸잡아서 말하는 것인가. 지난 2009년 전형적인 보수 성향의 김문수 경기도 지사와 이완구 충청도 지사가 서로 상대에게 ‘빨갱이’를 거론하며 ‘색깔론’ 비난을 한 적이 있어 하는 얘기다.
만약 군이 일부 극우 성향의 언론이나 탈북인사, 우익단체 활동가들의 주장을 ‘종북교육’의 근거로 삼았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사태다. 군은 모든 국민의 군대이어야지 극단적인 특정 정파의 앞잡이 노릇이나 하는 군대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군이 개념과 실체도 분명치 않은 ‘종북교육’ 따위나 하라고 국민이 세금을 내고 병역의 의무를 하는 게 결코 아니다. 더구나 민주세력을 ‘종북세력’으로 매도하며 용공 조작까지 하고 나서야 되겠는가. 이는 민주세력에 대한 모독이며 국민에 대한 배임행위다.
군이 어찌 정파의 논리에 따라 국론 분열의 앞잡이 역할을 할 수가 있는가. 이는 국가 안보의 기반을 훼손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군은 국가의 영토와 국민의 생명 및 재산을 지켜야 할 국가 안보의 중심 기관이다. 따라서 군의 주장이나 행위는 국민이 믿고 납득할 수 있게 국민적 공감과 사회적 합의에 바탕을 두어 그 명분과 이유,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
또한 군의 기조가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된다. 군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신뢰야말로 국가 안보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오는 7일부터 시작되는 독도방어 합동훈련에서 해병대의 독도 상륙훈련이 취소됐다고 한다. 매년 독도방어훈련 때마다 실시되는 해병대 상륙훈련이 취소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훈련 취소는 외교통상부장관 주재로 열린 외교안보조정회의에서 최종 결정됐다고 한다. 일본 정부가 지난 달 31일부터 독도방어 훈련계획에 항의한 때문인가. 일본과 미국 눈치를 본 것인가.
“우리 군은 일본의 반응과는 무관하게 앞으로도 독도 방어 훈련은 흔들림 없이 계속된다”는 군의 다짐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지난 달 10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때 “독도는 목숨 바쳐 지켜야 할 곳”이라던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어떻든 군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신뢰는 깊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이런 일련의 사태에 대해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동북아시아에서는 ‘영토민족주의 전쟁중’이라고 할 만큼 영토 분쟁이 최근 심각하게 악화돼 왔다. 일본의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불퇴전의 각오’라며 독도 침탈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도 전에 없던 일이다.
우리 영토에 대한 일본의 침탈 야욕이 전쟁 직전 단계라고 할 정도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정부 여당과 군이 보이는 행태는 무엇인가. 선거 때만 되면 휘두르는 ‘색깔론’ 전략에 따라 ‘종북세력’ 광풍이나 벌이겠다는 게 고작 그들의 진면목인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지난 19대 총선 때에도 “잘못된 이념세력이 국회를 장악한다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되겠는가”라며 ‘색깔론’의 불을 질렀다. “5.16과 유신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존재했겠나”라는 그의 역사 인식은 여전히 노골적이다.
군이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고 군사쿠테타를 일으키거나 독재 체제를 선언하고 나선다면 어찌할텐가. 그의 인식은 헌법에서 명시한 군의 정치적 중립성과 국가 안보의 기반을 위태롭게 하는 위험천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남한 국력의 몇십분의 일밖에 안되는 북한의 현실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런 북한을 두고 정부 여당과 군이 ‘종북세력’ 따위의 해묵은 ‘색깔론’ 이념 공세를 대선전략이랍시고 벌인다면 이야말로 개탄할 노릇이다.
실체도 모호한 이념의 프레임에 갇혀 남북, 남남 갈등만을 되풀이한다면, 우리 민족의 미래는 캄캄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침탈 야욕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에서 7.4 남북공동선언의 대원칙인 ‘민족대단결’을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생존과 번영의 비전을 세우고 서둘러 실천해야 할 때다.
이번 대선이야말로 국가와 민족의 전략과 비전을 내놓고 국민의 지지와 평가를 받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군부터 정파의 논리를 초월해 정치적 중립성을 엄정하게 지키고 외부의 침탈 야욕으로부터 주권을 수호할 본연의 안보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박근혜 후보는 7.4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에 따라 남북 간 화해와 협력을 통한 민족대단결에 앞장설 용의가 있는가. 용의가 있다면 박 후보는 먼저 5.16 군사쿠데타와 유신의 역사적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박 후보의 통합행보는 진정성이 없는 정치적 쇼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