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보도연맹' 언급도 민족통신이 이미 "20만 학살"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지하조직으로 드러난 ‘RO(Revolutionary Organization)’의 회합
녹취록이 공개된 30일 오후 7시30분 이 의원이 돌연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나섰다.
이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녹취록으로 공개된 지난 5월 통진당
인사들이 포함된 회합을 인정하면서도 “당시 경기도당 위원장의 요청으로
강연했다. 전쟁이 벌어진다면 민족의 공멸을 맞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평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북한이 3차 핵실험을 단행한 이후 국제사회의 제재 조치에 반발해 한반도
긴장을 최고조로 높일 때였다.
기자회견에서 이 의원은 “양쪽의 군사행동이 본격화되면 앉아서 구경만 할 것인가를 물은 것이다. 그래서 좀 더 적극적인 평화 실현의 기회로 바꿔내고자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알고보면
그의 주장은 당시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던 북한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북한은 올해 초 핵실험을 단행한 이후 남한을 향해 ‘
전시상황 돌입’이라거나 ‘서울 불바다·핵타격’ 등 발언으로 위협하면서 기존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시킬 것을 꾸준히 주장했다.
이는 한반도에서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도 자신들은 평화애호 세력인 양
호도하는 것이다.
이는 이 의원이 기자회견에서 “전쟁을 준비하자고 말한 적이 없고 평화체제를 위한 적극적인 행동과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민족의 공멸을 맞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평화를 실현하자는 뜻이었다”거나 “60년간의 정전 체제를 끝내는 기회로 바꿔내는, 좀 더 적극적이고 주동적인 항구적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로 바꿔내자는 것”이라는 말로 변명했다.
이런 이 의원의 말은 지난 3월31일 노동신문 보도를 통해 북한이 주장한 것과도 매우 유사하다.
당시 노동신문은 ‘내외 호전광들의 분별없는 망동으로 조선반도에서 핵전쟁은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과 남조선 괴뢰들이 우리 민족과 온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을 들씌우려고
발광하고 있는 지금 그 근원을 하루빨리 제거하는 것은 민족의 최고 존엄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우리
군대와 인민 앞에 나서는 성스러운 과업이다’라고 했다.
또 ‘우리의 전면 대결전은 조선반도에서 침략과 전쟁의 화근을 송두리째 들어내고 조선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정의의 성전이다’라는 어이없는 주장도 펼쳤다.
이에 앞서 북한은 3월24일 조선중앙통신사 보도를 통해 ‘정전협정 백지화 결단은 랭전의 유물을
청산하고 조선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이룩함으로써 인류의 평화위업에
이바지하기 위한 과감한 조치이다’라고 했다.
또 4월30일 노동신문에선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조선반도에서 침략과 전쟁의 화근을 뿌리채 뽑아버리고 조국통일과 공고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전면대결전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
이 의원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이승만 보도연맹 사건도
북한이 전쟁위협을 가하던 당시 언급했던 내용 그대로였다.
이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이승만 보도연맹 사건을 보라. 20만
무고한 사람이 학살됐다. 그 정도의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호소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만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예고돼 있다면
그에 걸맞는 준비가 필요했다”는 식의 다소 횡설수설하는 발언을 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지난 6월22일 민족통신이 ‘조선전쟁때 처형된 보도련맹 성원의 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알 길은 없지만 최소 20만명이 처형되였으리라는 추산이 나오고 있다’는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북한은 2006년9월23일 조선중앙통신에서도 조국
전선 중앙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최근 남조선에서는 지난 조선전쟁시기 남조선군과
경찰이 재판도 없이 보도련맹 회원들을 비롯한 무고한 인민들을 1만7700여 명이나 학살한 사건의 진상이 폭로되여 겨레의 커다란 격분을 자아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평화 실현’을 강조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종북주의자로서의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런 저의 정세 인식이 다르다고 해서 비판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이 내란음모죄라는 어마어마한 혐의는 납득할 수 없다”면서 “(국정원과 검찰의 주장은 날조 모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의원은 혜화동 전화국과 평택 유류저장고 파괴 등 구체적인 행동방침이 언급된 권역별 토론에 대해선 “아는 바 없다. 분반에 참가한 적이 없다”면서 이런 토의가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저는 강연만 했다. 강연만 하고 바로 떠났다”는 말로
사실상 녹취록의 허구성을 피력하지 못했다.[데일리안 = 김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