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441
그래도 나름 전문가 조언을 받아 쓴 글일텐데 수준 봐라.. 구차하기 이를 데가 없네.
미국, 친미관료, 기업가 3자가 함께 정책을 짰다면 당연히 미국 입김이 절대적이지,
기업인이 경제정책을 그렇게 잘 짜면 전문경제관료가 뭐하러 필요하냐?
기업인은 수출 과정에서 애로사항과 필요한 지원을 말하라고 부른거야..
2부에선 박정희의 경제교사 조엘 번스타인이 등장한다던데 그땐 또 뭐라고 쉴드칠 지 궁금하네
내가 훨씬 설득력 있게 설명해 보겠다.
수출지향의 기본 계획이 선 것은 미국의 강력한 개입 아래 등장한 친미관료들이
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수정하는 1962년 하반기 부터이고
수출입국을 본격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64년 후반기, 본격화한 것은 65년 한일회담 타결 전후다.
제3세계에 널리 퍼진 종속이론과 한국 내 강렬한 민족주의 분위기 속에서
당시에는 4.19 혁명정신도, 군사정부도 모두 내포적공업화와 자립민족경제를 말하고 있었다.
수출중심의 개방형 경제는 경제주권을 포기한 반민족, 매국행위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두 해 수출실적이 반짝 늘었다고 박정희가 수출중심을 생각했다는 건 무리한 주장이다.
환율개정 등 사전정지작업이 미국 강요로 이뤄진 것만 봐도 누가 수출정책을 기획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대만도 50년대까진 내수중심을 고집하다가 케네디가 등장하는 60년대 초반부터 수출중심으로 전환됨)
개발자금은 베트남전 참전과 한일국교정상화로 인한 배상금으로 마련했으며
이를 위해 박정희는 미국에 수차례 베트남 파병을 간청했고, 미국의 요구인 한일국교정상화도 받아들였다.
국민의 피를 팔고 일본에 면죄부까지 줘가며 힘들게 자금을 마련한 것인데
미국의 강권이 없었다면 박정희가 전국민이 반대하는 굴욕협상을 그리 서두르진 않았을 것이다.
무역구조도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아 일본에 농산물 수출하던 구조에서
일본으로부터 받은 배상금으로 기업을 세우고
그 기업들이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지원받고 부품을 수입해 미국에 가공해 파는 3각 구도로 재편되었는데
이 역시 미국이 신속히 수출길을 열어주고 일본을 배후 조종하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이후로 한국과 대만은 만성적인 대일무역적자에 시달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역사학 해석 법칙에 따라
한국인들의 독자성과 능동성을 강조하며 박정희 역할까지 함께 강조해 왔으나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를 깨끗이 무시했다.
아마도 뉴라이트 세력이 박정희 경제신화를 지나치게 부풀리면서
근현대사 곳곳에서 역사왜곡으로 마찰을 빚는 것에 대한 대응 성격인 듯 하다.
이렇게 되면 박정희 신화는 끝났다고 본다.
솔직히 한국 경제정책을 한국 정부와 협의하는건 미국 입장에서 봐도 당연한 일일 뿐이고 (이게 능력?)
수출중심경제에서 요구될 수 밖에 없는 고속도로나 제철소 건설을 업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너무나 구차하다.
알려진 것과 달리 고속도로 건설에 대해 여론은 매우 우호적이었고 (월간 '세대' 1968년 1월호 조사)
IBRD나 야당 정치인도 우선순위에서 이견을 보였을 뿐, 건설 자체를 반대하진 않았다.
포항제철소 건립도 전후 복구로 철강재 수요가 급증하자 (한정석씨 말대로) 이승만 때부터 줄기차게 시도되다가
시기와 자금의 문제로 미뤄진 것을 65년에 밀어붙였던 것이다.
암만 어쩌고 저쩌고 해봐야 '박정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혜안'은 찾기 어렵지 않은가?
한국의 폭발적인 경제성장 기조를 봤을 때 중화학 공업으로의 전환은 어차피 정해진 수순이었다.
수꼴들이 유일하게 강점을 보이는 경제사 분야에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굴지 말았으면 좋겠다.
한국 경제의 눈부신 성공이 가능했던 건 로스토우가 말한대로 한국이 이미 '도약' 단계에 돌입해 있었고
미국의 강력한 개입과 원조 하에 세계 경제 여건, 한미일 3각 무역구도가 기가 막히게 맞아 돌아갔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높은 교육열과 인적 자원, 정부의 강력한 지원도 빼놓을 수 없으나
이 중 가장 우선순위가 낮고, 대체 가능한 요소를 꼽자면 역시 박정희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정리하자면, 민족문제연구소는 역사학의 기본 문법(독자성 강조)을 무시했다.
하지만 먼저 역사학의 기본을 깡그리 무시한 것은 뉴라이트다.
이승만과 박정희 정부를 포장하면서 '경제적 성과'만으로 근현대사를 멋대로 재구성 하겠다면
역사학계에선 이승만과 박정희 신화가 거짓이란 걸 밝힐 수 밖에 없지 않나?
다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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