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줄에 나타나 있죠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우리 사회는 일제 때에 외세에 빌붙어 민족과 조국을 배반한 무리와 그 후예들은 잘 살고, 독립운동을 하면서 헐벗고 굶주렸던 민족운동가들과 그 후예들은 독립된 나라에서도 찬밥 신세로 되었다.
이로써 해방 후 민족의 자존을 회복하여 자주독립을 완성하고 민족정기를 확립하려는 원대한 국가재건 계획은 성공할 수 없었다."
해방 후 두 차례에 걸친 친일파 청산 작업의 과제는 4·19로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자 새로운 서광이 보이는 듯 했으나 장면정권 때에는 오히려 친일파의 등장이 더욱 두드러졌다. 4·19가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를 회복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친일파 청산의 부담을 안고 있었지만,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우리나라에서 친일파 문제는 더 이상 과제로 제기될 수 없었다. 일본육사와 만주군관학교 출신의 박정희는 자신의 처지도 그러하려니와 그밖에 한일회담을 성사시켜 일본의 자본을 끌어들이려 했기 때문에 친일파 문제를 더 이상 등장시킬 수 없었다.
해방 이후 친일파를 응징하여 민족정기를 세우려는 과업은 이로써 막을 내리고 말았다.
독재정치로 국민을 괴롭힌 김돼지와 마사오 추종자들은
자신들이 역사의 죄인임을 자각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