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가 남로당에 가입했던 전력 때문에 박정희는 빨갱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과연 박정희는 정말로 공산주의 이념을 신봉한 빨갱이였을까?
박정희가 남로당에 가입한 정확한 경로는 명백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형이었던 박상희 (김종필의 장인)가 남로당 출신으로 1946년 대구 폭동시에 사망했고
그 영향과 주변의 권유로 남로당에 가입한 것으로 이야기된다.
박정희가 남로당에 가입한 것은 1947년 1월 경으로 보인다.
박명림은 박정희가 조선경비사관학교에 들어가기 전인 1946년 7월에 좌파조직에 가입한 공산주의자라고 말하고 있으나 (한국현대사와 박정희, 박정희 시대;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박명림 저) 조선공산당의 어느 조직에 가입했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박헌영의 '재건파 조선공산당'인지, 장안파 공산당인지, 아니면 어느 다른 공산당 산하 조직, 예를 들자면 공산청년회나 전평에 가입한 것인지 여부가 불명확하다.
그러나,박정희가 공산주의 조직에 가입한 것은 1946년 12월 12일 조선경비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대위로 임관하여 1947년 1월 쯤 춘천 부근의 제 8연대로 배속되어 가던 중, 형 박상희의 친구인 이재복 (남조선노동당 중앙위 특수부장)을 만나, 이야기 끝에 남조선노동당에 가입한 것으로 보인다. (5월18일, 광주민중항쟁, 그원인과 전개과정, 김영택 저)
그런데 박정희는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신념이 있어서 남로당에 가입한 것일까?
박정희는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어서 남로당에 가입한 것이 아니라
남로당의 공산주의가 자신이 출세의 기회를 잡는데 도움이 될것이라 여기고 가입한 것으라고 생각된다.
당시 미 군정청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자본주의 지향 세력이 17 %, 공산주의 지향 세력이 13 %, 사회주의 지향 세력이 70 %로
국민의 83 % 가량이 좌익 지향 세력이 압도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박정희는 좌익에 가담하면 자신이 출세하고 영달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남로당에 가입한 것으로 보인다.
출세를 위하여 만주신경군관학교로 가고, 일본육균사관학교에 갔고
후에 만주 관돌군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했던 것처럼.
후에 5.16 군사반란을 일으킨 것도
명분은 국가과 민족을 위한 것이라고 내세웠지만
실상은 권력을 지향한 것일 뿐.
박정희는 미 대사관에서 평가한 것처럼
뱀을 닮아 교활하고 냉혹한 기회주의자일 뿐이다.
공산주의 이념을 추종한,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이 가득한 진성 빨갱이가 아니라
공산주의를 이용하여 출세하고 권력을 쥐고자 했던 기회주의 빨갱이였을 뿐이다.
(첨언)
1946년 9월, 박정희는 이한림과 함께 남산에 올라
미 점령군사령관 하지 중장의 거처였던 전 총독관저 (현 청와대)를 바라보며
"여기서 포격을 하면, 나도 나폴레옹처럼 (영웅이) 된다"고 말하며
그때부터 무력에 의한 군사반란 또는 정권 장악의 그림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었음을 내비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