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동 할머니(90)와 함께 유럽을 방문했던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는 당시 임성남 주영국 대사와 이병화 주노르웨이 대사의 환대를 잊을 수 없다. 환대라고 해야 대사관저로 불러 밥 한끼 대접하고, 대사관 직원이 공항에 나와준 것이었다. 당시는 한국과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로 국장급 회담을 이어가는 한편 세계 곳곳에서 외교전을 벌이던 때였다.
지난해 12월28일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발표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89)와 함께 미국을 방문한 윤 대표는 그 합의 이후 외교부는 합의에 반대하는 할머니들에게 모든 연락을 끊었다고 밝혔다. 주미대사관도 이들 할머니의 방문에 관심이 없다. 그러다보니 마이크 혼다, 제리 코널리 등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보여온 미국 정치인들과의 면담도 성사되지 않았다.
정대협이 지난 몇 년간 정부와 ‘어색한 동거관계’를 이어오다 이번 한·일 합의로 결별하게 된 이후 활동 방향에 대해 물었다. 그는 “우리는 그동안 한국 정부와 때로는 협력관계였고, 때로는 비판하는 관계였다. 12월28일 한·일 합의 이후 완전히 결별했다. 그럼에도 어제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이번 합의가 잘못됐다는 강력한 문서를 내놓았기 때문에 이번 합의를 계기로 오히려 다른 지역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 문제 해결에 좋은 기준을 남겨놓았다고 본다”고 답했다. 그동안 한·일 역사갈등과 민족주의의 좁은 테두리에 갇혀 있던 것처럼 보였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좀 더 보편적인 운동으로 승화시켜 나가겠다는 것이다.
기자회견을 함께한 길 할머니는 한·일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저희들한테는 한마디 묻지도 않고 합의했다고 한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