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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15 16:49
19. 정의란 무엇인가? (2)
 글쓴이 : 공무도하
조회 : 394  



정의란 무엇인가?




이것이 옳은가?

이것이 옳다.

이것이 정말 옳은가?

이것이 정말 옳다.


그렇다면

어떠한 이유로 이것이 옳은 것인가?



정의란 무엇인가를 추궁하면서 글쓴이가 우선 찾고자 했던 것은 "어떠한 이유"  이것 이다.


극단적인 사례들을 통하여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명백한 사례들을 통하여 그것이 옳다면 어떠한 이유로 그것이 옳은 것인가를 먼저 찾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하여 그 어떠한 이유가 명백히 밝혀진다면 그 어떠한 이유가 도출되는 과정을 살피고 그 원리를 인간에게 적용시켜보고자 한다.


그 어떠한 이유가 도출되는 원리. 그 인과관계를 먼저 찾아서 그 원리를 인간에게 적용시켜 보고자 하는 것이다.




경찰에게 있어서 옳은 것이란 도둑을 잡는 것이다.


이것이 옳은가?

옳다.


그렇다면

어떠한 이유로 경찰에게 있어서 정의가 도둑을 잡는 것이 되는 것인가?


경찰이라는 신분을 만든 이들의 요구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경찰이라는 직업을 만들었다면

국민들이 경찰이라는 직업을 만든 이유는 치안활동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만들어진 경찰이란 신분을 가진 이에게 있어서 옳은 것이란 경찰이라는 신분을 만든 국민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이 된다.


만든 존재는 어떠한 필요에 의해 무언가를 만든 것이고

만들어진 존재는 그 필요에 쓰여지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므로

만들어진 것에 있어서 옳은 것이란 만든 존재의 요구에 부합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다른 예를 한번 더 살펴보자.


도끼는 왜 만드는 것인가?

도끼는 나무를 베기 위하여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도끼에게 있어서 옳은 것이란 무엇인가?

도끼에게 있어서 옳은 것이란 나무를 베기 위함에 쓰여지는 것에 있다.


도끼를 밭을 가는데 쓰는 것은 옳지 않다.

도끼에 있어서 가장 옳은 것은 나무를 베는데 쓰여지는 것이다.



글쓴이는 이러한 과정들을 통하여 그 어떠한 이유가 도출되는 원리를 찾을 수 있었고 수 많은 사례를 통하여 이 원리에 보편성을 부여할 수 있었다.



그 원리란

창조물과 창조주의 관계에 있어서

창조물이 옳음을 행하기 위해서는

창조주가 창조물을 창조한 이유에 부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문제점이 있다.


인조물의 경우에는

만든이와 만들어 진것의 관계를 명확하게 밝힐 수 있다.


즉 만든이가 어떠한 이유에서 그것을 만들었는 지를 명확하게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물이나 자연의 요구와 인간의 요구가 혼합하여 만들어 진 혼합물 같은 경우에는 창조주의 요구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주제의 핵심인 인간은 자연물로 볼 수도 있고 어떠한 경우에는 혼합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우리가 어떠한 물건등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모른다면 그 물건등을 만든 이에게 왜 이 물건등을 만들었는가를 물어봄으로써 그 물건등의 올바른 쓰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찮가지로

인간이라는 자연물이 스스로가 어떻게 쓰여지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모른다면 인간을 만든 존재에게 왜 인간을 만들었는가를 물어봄으로서 인간에게 있어서의 옳음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포유류란 신분을 가진 생명체 또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신분을 가진 인간에게 있어서 옳은 것이란 무엇일까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창조의 이유를 살펴야 한다.




그러므로 끝까지 이 문제를 추궁해 보고 싶은 이가 있다면 글쓴이가 쓴 존재의 이유와 창조의 이유를 살펴보길 권한다.

그에 대한 이해가 전제 되어야만 다음 과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글쓴이는

창조의 이유에 부합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라고 하였다.


또한 글쓴이는

창조의 이유에 부합하는 것이 옳음이라 하였다.


따라서

인간에게 있어서 정의란

존재의 이유를 달성하는 것이 된다.


정의란

존재의 이유를 달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글쓴이는 존재의 이유를

전제적 존재의 이유와 궁극적 존재의 이유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그리고

전제적 존재의 이유는 존재하는 것이라 하였고

궁극적 존재의 이유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라 하였다.

 

이 전제적 존재의 이유와 궁극적 존재의 이유는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다.

전제적 존재의 이유 끝에 궁극적 존재의 이유가 있는 것이고 궁극적 존재의 이유 끝에 궁극적인 것이 있는 것이므로 이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전제적 존재의 이유는 존재하라는 것이라 하였는데 이를 간단히 말하자면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에 수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수 많은 형태로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인류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은 이 살아가고 있는 것 이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살아가는 형태가 양호한가 양호하지 않은가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 어떤 형태의 삶이든 단순화시켜 살펴보면 모든 이들은 단지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살아감으로써 전제적 존재의 이유를 달성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글의 주제이기도 한 어떻게 살아가야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이 의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궁극적 존재의 이유를 살펴보아야 한다.


존재의 이유는 궁극적 존재의 이유를 달성하기 위함에 있는 것이지 전제적 존재의 이유를 달성하기 위함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제적 존재의 이유는 궁극적 존재의 이유를 달성하기 위한 전제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궁극적 존재의 이유는 깨달음을 얻는 것에 있고 이에 인간은 궁극적 존재의 이유인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인지하고 있던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도(道)는 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그렇다면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살아간다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인간의 마음은 존재을 전제하기 위하여 또는 살아가기 위하여 악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부분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글쓴이가 쓴 대학지도편을 살펴보기 바란다.)


그런데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우리가 지향하여야 할 곳이 악(惡)은 아니다.


또한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곳이 선(善)인 것도 아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곳은 선과 악의 균형점인 중(中)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악에서 출발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행하여 우리의 마음에서 음과 양이 균형을 이루게 하여야한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에서 음과 양 또는 선과 악이 균형을 이루게 되면 이러한 상태를 덕(德)이라 하고 이치요소상으로는 황극이라 한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옳은 것인가?

인간은 선하게 살아가야 옳은 것이다.


왜 인간은 선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위와 같은 이유로 인간은 선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저 불교에서 또는 기독교에서 선하게 살라고 하였기 때문에 또는 막연히 선하게 사는 것이 옳은 것 같기 때문에 또는 천국에 가기위해서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선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구체적이고 절대적인 이유가 있기때문에 선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옳바른 삶에 있어서 그 첫 걸음은 지어지선, 즉 지극한 선에 머무름에 있다 하겠다.




위에서 말한 황극은 순리로서의 삶에 있어서 정점이다.


이 황극을 지나면 역리로서의 삶이 펼쳐진다.

황극 너머에는 무극의 경지가 있고 무극 너머에는 허극의 경지가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부분적인 정의는 개별적인 상황마다 모두 달라질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바탕이 되는 정의는


도(道)를 알고 리(理)를 알고 그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가는 것.

이에따라 존재의 이유를 달성하는 것 그것이 정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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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 17-09-15 22:48
 
성악설을 개인적으로 지지하기는 합니다만...
성악설을 기반으로한 모든 사상이나 이념은 아무리 포장해도 결국 필요악일뿐입니다.

왜냐면 성악설 기반의 사상 및 이념들은 개개인들에게 이런 저런 행동들이 혹은 이런 저런 방식들이 개개인에게 이익이라고 설득하여 개개인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하게끔 부추길뿐입니다.
목적이 있는 선행이 선행인가?
천국 갈려고 착하게 사는건 결국 이기적인 행동일뿐이지요.단지 인간 사회는 이런종류의 이기적인 행동을 필요로 하고 권장하지요

개인적으론 저는 이걸 성악설의 한계라고 부릅니다.


제가 성선설 기반의 사상이나 이념은 세상 물정 모르네 라고 비아냥 거립니다만
그것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존중합니다.

착한바보가 꿈꾸는 세상 같은것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합니다만 그 세상이 굉장히 이상적인 세상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무릇 종교적 가르침이라 하면 착한 바보들이 꿈꾸는 세상에 부합하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세상에 부합하지 못하는 가르침은 결국 필요에 의한 가르침이고 필요악일뿐이지요.


불쌍한 사람 보면 도와줘야해.
왜냐면 불쌍하니까...
     
공무도하 17-09-16 08:18
 
글쓴이가 쓴 글중에 대학지도란 글을 읽어 보시면 그곳에 성악설과 성선설에 대한 저의 주장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목적이 있는 선행이 선행인가?
이부분을 설명하고 싶은데 설명이 너무 길어질것 같네요.
간단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욕(欲)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이를 상욕(常欲)과 궁극지욕이라 나누어봅시다.

상욕이란 순리로서 삶을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모든 욕을 상욕이라 합니다.
궁극지욕이란 역리로서 삶에서 발생하는 절대적인 욕입니다.

상욕을 위하여 선을 행한다는 것은 위선이겠지요.

그런데
궁극지욕을 위하여 선을 행하는 것을 위선이라 할 수 있겠는가?

설명하자면 길지만 그럴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도와줘야해.
왜? 그것이 옳은 것이니까
그것이 옳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옳은 것을 위하여 선을 행하는 것
이것이 위선일까요?

정의를 실현하는 것 아닐까요?
태지 17-09-17 11:51
 
읽다가 말았는데요...

님 말의 내용...
"이에 수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수 많은 형태로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인류가 하고 있는 모든 것은 이 살아가고 있는 것 이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살아가는 형태가 양호한가 양호하지 않은가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 어떤 형태의 삶이든 단순화시켜 살펴보면 모든 이들은 단지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살아감으로써 전제적 존재의 이유를 달성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글의 주제이기도 한 어떻게 살아가야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 쾌락에 악의가 있고 그 것을 즐기고자 하는 이상한 사람이나... 강압과 압박을 통해 돈을 벌려하는 성직자들도 있습니다. 도가 도이면 도가 도인데... 도 어떻다 하면서 그렇지 아니한 점이 문제인 것이지요.어떻게 밝혀져서 지금의 생각에 이른 것일까요? 신이 인간들을 만들어서? 인간들이 인간들을 습득하면서?

어떤 글에 댓글을 다신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바름이란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이미 잘났었던 인간이 죽었는데 압도하는 면이 많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정직할 때 위선이 아닐 일일 것인데.... 위선을 위한다면서 정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공무도하 17-09-17 13:52
 
좋은 댓글 이네요. 감사합니다.

우선
글쓴이 너는 정직한가?
그렇지 않습니다.
가식적이지요.
여전히 가식적입니다.
그것을 인지하고 있고 어떨때는 인지조차 못하죠.. 한심해하고 있고 가끔 자책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나는 고고한데 세상속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한심해 보인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제가 스스로 보기에 더 한심해 보입니다.
순리로서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 것인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경쟁속에서 살아왔고 아직도 경쟁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것은 저러한 길도 있다 라는 것입니다.

저것을 행하라 행하지 말라 그러한 것이 아니라 단지 저러한 길이 있더라 라는 것입니다.

머리속으로 이리저리 생각해 보니까 저러한 길도 있더라 그 뿐입니다.


"위선을 위한다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

위선은 악이나 선을 위하여 선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식적인 것이지요.
궁극적인 것을 위하여 선을 행하는 것과 선을 위하여 선을 행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어떻게 밝혀져서 지금의 생각에 이르렀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저는 절(絶)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저러한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에 대하여서도 글을 쓸 예정입니다.
          
태지 17-09-17 19:52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것은 저러한 길도 있다 라는 것입니다.
저것을 행하라 행하지 말라 그러한 것이 아니라 단지 저러한 길이 있더라 라는 것입니다. "

=> 어떠할 것 같습니까? 정직 하려 함에 무서움이 없을 것 같습니까? 과거와 사실을 말함인데요. 사실 파악 하려 함에는 있는 사실이 필수 일 것입니다. 잘난 사람들에 의해 세상이 싸~악 다 막혀 버린 것이 아닌 것 같은데 님이 잘났다 하는 것을 계속 말 하려 할 것 같은데... 뭐라고 앞으로 사람들에게 말 할 것인가요?
               
공무도하 17-09-17 21:43
 
정직하려함에 무서움이 없겟는가?
두렵군요.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과거에 잘못한 일들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갑니다.

님의 글을 보건데 마치 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분처럼 느껴지는군요.
님은 누구일까요?
님의 글에서 저에대한 매우 안좋은 감정이 느껴집니다.
님이 저를 매우 잘 아는 사람이라면 님이 본 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제가 님에게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면 들어보고 사과할게 있으면 사과하고 싶습니다.

님이 본 저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제가 님한테 어떤 큰 죄를 지었나요?
누구라고 밝히시고 말씀해 주시죠?

정말 궁금합니다.
태지 17-09-19 20:43
 
.......!
막걸리 먹으면서 글을 씁니다.

님의 글을 보건데 마치 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분처럼 느껴지는군요.
님은 누구일까요?
님의 글에서 저에대한 매우 안좋은 감정이 느껴집니다.
=> 일종의 알고니즘이나, 각 항목이 기둥과 가지 뿌리가 될 수 있는 연관성...
자기 보호에 급급하고 그 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저와, 경험 했었던 다른 사람들... 그런 얘기를 써 본 것입니다.

아울러 알고자 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 같고, 님처럼 써보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다른 사람들처럼 잘난 척도 하고 싶어 해야, 하고자 함에서 알고자 하는 마음도 일부 생기는 것이기도 하나... 
어느 사람에 대한 평가 항목에서 그릇이란 단어를 쓰기도 하는데....
옹졸하다, 졸렬하다 하는 것도 있고 그러한 것까지는 아닌 사람도 있으며, 자질이 우수한 크고 깊게 이미 이해하는 법기(法器)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ㅠㅠ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이해 하려 함...  저같이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은 아주 간절하여야, 알고자 하는 의욕이 아주 강해야 그나마 기회가 있는 일인 것 같은데.... 별로 그런 일이 안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책에서 왕왕 등장하는 일이 제게도 일어날 줄은 몰랐었는데... 그 것도 2~3번 일어날 줄은 진짜 몰랐었습니다.
그 내용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는데... 감당 안되는 것을 이해를 하게 된 것입니다.
감동 받아서 3일 동안 눈물 흘리고, 과거와 너무 자신이 바뀌어서 어색하다든지 뭐 그런 것을 넘어 선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이상 증상이 발생하는데... 7일 동안 귀가 안 들린다든지... 저처럼 사랑했던 어느 여자에 대한 모든 감정이 5초 이내에 사라진다 하든지... 등등등 하는 것인데..... 미처 버릴 수도 있는 일 같고, 공부 되는 일이 아닌 것 같으며, 지금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합니다.

하고자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있는 것을 대함과 행동함에서 옹졸해 지거나 떨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앎을 얻기란 넘 힘든 것 같습니다.
     
공무도하 17-09-19 22:36
 
어떻게 답글을 달아야 할지 모르겠군요.

겸손이나 예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겸손이나 예가 실질을 훼손한다면 저는 실(實)을 택할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이 댓글을 보고 느낀 느낌을 있는 그대로 써보겠습니다.

우선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못할 짓이 없는 사람들 그렇게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들 그런사람들 보다는 님의 삶이 훨씬 높은 단계일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사람들은 긍정의 힘만을 말하고 부정의 힘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자아성찰은 부정의 힘입니다.
긍정의 끝에는 오만이 있고 오만의 끝에는 추락이 있습니다.
부정의 끝에는 성찰이 있고 성찰의 끝에는 새로운 시작이 있습니다.

님이 겪었다는 현상에 대해서도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님이 진정 궁극적인 존재와 통하였다면 님은 아무 의심없이 그것이 궁극적인 존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고 확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님이 진정 궁극적인 존재와 통하였다면 앞으로 님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확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긴가민가 하다면 또는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면 그것을 잠시 제껴두시기 바랍니다.

깨달음을 얻는데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을 아닐 것입니다.
예수가 교회다녀서 깨달음을 얻은것도 아니요 서양철학이나 과학 또는 동양철학등에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서 깨달음을 얻은 것도 아닐 것입니다.
석가모니 역시 마찮가지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지식은 필요합니다.
이치에 대하여 스스로 고민해본 사람과 아무런 생각도 없던 사람이 이치를 접하였을 때 그 이해의 정도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도가 이치를 깨닫는 방향으로 흐를 것이므로 과거의 예수나 석가모니가 행했던 것 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깨달음을 얻는게 마냥 쉬울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어려울 것이지만 과거만큼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잘 판단하시고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제 앞감당 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주제입니다만 주제넘게 한 말씀 드렸습니다.

엮하게 느껴지신다면 그냥 웃어 넘기시길 바람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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