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쟁이들은 이 글 읽지 마시오.......악용할까 두렵소)
(이게 참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라 많은 사전 설명이 좀 필요한데, 게시판에 그렇게 써봤자 길면 읽지도 않을 것이고, 읽어도 이해못하는 사람들의 딴지 때문에 피곤할 것 같아 그냥 간략하게 서술하겠음...
그리고 사실 한 30년 가까이 전에 열심히 파고 나서 다 덮은 지식들이라 이미 내 머리속에는 세세한 지식쪼가리는 남아 있지 아니해서 구체적인 학자이름이나 사조는 좀 틀릴 수도 있음..)
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신은 증명불가능하다고 함......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함......
저런 말을 하는 이유는 현대의 교육을 받은 사람은 그 누구도 예외없이 과학이라는 경험주의적 교육을 받았고, 때문에 경험주의적(귀납법적) 사고를 하기 때문임...
저 경험주의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베이컨으로 이어지는데, 사실 지금의 사람들이 합리주의, 합리적이라는 말을 쓰지만 사실은 경험주의, 경험적이라는 의미일 뿐, 플라톤적 합리주의와 데카르트로 이어지는 합리주의적(연역적) 사고는 아님....(오히려 반대로 동양의 불교나 유교가 철저한 합리주의, 인식론의 입장임)
철학에서 신은 이런 것임...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인데.
세계가 1에서 10까지 있다고 가정하면(물론 1에서 10까지는 얼핏 유한 같지만 불연속적인 점으로 이루어진 무수한 소수점이하의 점집합이 있어서 유한의 세계가 아니고, 무한의 세계임)
1 -> 2 -> 3 -> 4 5 6 7 8 9 ->10으로, 즉, 특수자 1에서 보편자(일반자) 10으로 나가는게 경험주의적 사고이고, 귀납법임이고 동양의 주기론적 입장임..
아리스토텔레스는 더 이상의 일반성을 가질 수 없는 궁극의 보편, 최고의 보편인 10을 신이라고 했고 이것이 동양의 주리론에서 말하는 理임...
이 말은 바로 상대성이라는 특수성이나 주관이 아닌, 궁극의 보편이라는 절대성과 객관성, 보편성임..절대 객관..개개의 특수자 그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궁극의 보편..절대진리라는 것임....
반면
보편자 10의 입장에서 특수자 1~9를 관통하는 것이 플라톤, 데카르트의 합리주의이고, 연역법이고, 동양의 주리론적 입장임.(주기론은 1->10으로..)
이와 같이 세상을 보는 두개의 눈이 있음.....이 두개의 눈은 전혀 상반되고, 마치 바둑판이라는 우주에서 흰돌과 검은돌 처럼 완전히 다른 입장임.....
이중 경험주의를 설명하면, 경험주의적 사고는 이런 것임
예컨대...세상을 살면서 절라게 깨져보고 치어보고, 뒷통수도 맞아보고 나서 내린 결론이 '아 세상은 이런 것이구나...하는 결론에 도달했는데, 저 결론이 과연 세상의 본래의 모습이겠음?
즉 저 결론..세상이 참 뭣같다는 것은 경험적 법칙의 결과물일 수는 있어도 필연적이고 절대적 보편성을 가진것은 아님....그 이유는 또 다른 누구에게는 그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고 따뜻하고 진실된 곳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을수도 있으므로....
때문에 칸트는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얻어진 명제는 엄밀한 의미의 어떠한 일반성도 부여될 수 없다'고 했고,
어떤 명제가 절대적인 필연성이나 가장 엄밀한 의미의 일반성을 띄고 있는 경우라면 그것은 반드시 (경험적인 근거를 지닌 것이 아니고) 선천적인 근거(선험적인 근거)를 지닌 것임에 틀림없다'라고 했음
결국 일반자 10을 경험하지 않는 이상 또는 10을 통해서 1~9를 보지 않는 이상 진리의 보편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말임..
경험적으로 천만번 실험을 해서 동일한 해답을 얻어도, 그것이 그저 (속칭) 일반적이라 불릴 수는 있는 경험적 법칙일 수는 있어도, 엄밀한 의미의 일반, 궁극의 일반, 궁극의 보편의 필연적인 법칙은 아닌 것임....천만번 실험을 해서 동일한 결과가 나와도 천만 한번째에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으므로....결국 경험적으로 1->10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그냥 무수한 개별적 사실의 규명일 뿐 인간의 경험적 인식으로는 결코 10에 도달할 수 없다고 봤음..
즉 1 -> 10이라는 무한의 세계에서 인간은 특수자 1에서부터, 즉 ,개별적인 사실로서의 1에서 부터 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9........................무한.......9999..까지의 무한한 개별사실의 경험과 규명을 할 수 있을 뿐 궁극의 보편인 10에는 도달 할 수 없다는 것임..
우리가 파도를 봐도 우리가 관념적으로 인식하는 관념적 파도는 영원하지만, 개별적인 파도는 그냥 순식간에 나타났다 소멸하는 것임..때문에 경험주의적 입장에서 개별적인 존재인(1~9) 개별적 파도만을 백년을 들여다보는 귀납적 방법으로는 파도는 영원하다는 연역적 진리..즉 궁극의 일반성, 보편성에는 도달할 수가 없는 것임........
그래서 공자가 조문도면 석사가의라(朝聞道 夕死可矣)......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한 것이고,
노장이 도를 도라 하면 도가 아니고...이런 소리를 한 것임...왜? 인간의 상대적이고 개별적인 인식, 경험적 인식으로는 절대로 궁극의 일반자인 10을 포착할 수가 없기 때문임....
그러면 신을 절대로 증명하거나 보고 듣고 느낄 수 없느냐? 여기서 철학적 상대주의가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임
(서양의 철학사...특히 서양학자들마다 지 스스로의 용어를 개념정의하고, 중구난방이어서 도저히 번짓수 정리도 쉽지 않는 서양철학사나, 일찍부터 저 상대주의의 입장에서 절대객관을 추구했던 동양의 철학도 딱 결론 내리면 존재론(경험론, 주기론), 인식론(합리론, 주리론)으로 구별되는데,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철학으로 수천년 그냥 해먹은 것이고, 동양은 태극과 무극으로 수천년전에 이미 다 설명한 것이고, 바로 이것이 세상을 보는 두개의 전혀 다른 방향의 시각인 것임...)
진리를 탐구하는 두 개의 시각중에서 위에서 경험론(귀납법, 1->10)에 대해 썼는데, 이쯤되면, 왜 경험적인 방법으로는 결코 신 혹은 궁극의 보편, 궁극의 절대 객관, 절대 진리를 포착하기가 어려운지 아셨을 것임...
그러면 위헤서 말한 경험적인 일반성(보편성) 획득이 아니고, 합리적이고 연역적, 인식론적으로 10을 포착해서 1~9를 관통하는 눈에 대해서는.....
급 피곤해져서 이건 다음에 기회 있을 때 쓰겠음..ㅋ....길게 써봐야 읽지도 않는데....
추신 : 위에 글이 이해가 안가고 나의 말은 헛소리 같아서 못믿겠다 싶은 분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찾아보길...
불확정성의 원리, 인간의 관찰은 전자의 상태를 변화시켜 영원히 객관적 관찰을 할 수 없다........이 말은 결국 인간은 경험적 방법으로는 절대객관(10)을 만날 수 없다는 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