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7-08-15 02:43
[보도자료] [우먼스플레인] 소녀시대의 발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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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다시 만난 세계’였다. 청순한 이미지를 내세우는 걸그룹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레퍼런스로 삼아본 이 맑고 힘찬 노래는, 그러나 실은 양 어깨에 꽤나 무거운 짐을 지고 태어난 곡이었다. 3년에서 7년까지 각자 혹독한 연습생 시절을 거친 소녀시대 멤버들의 땀에 신비, 밀크, 천상지희 등 S.E.S 이후 야심차게 준비했던 걸그룹들 프로젝트 모두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낸 SM 엔터테인먼트의 미래까지 얹혀졌다. 걸그룹 데뷔곡이라기엔 다소 비장한 도입부, 곡의 중심을 잡는 디스토션 잔뜩 걸린 기타 연주와 그를 떠받치는 격렬한 안무. 이것은 오로지 데뷔 무대를 위해 1년을 준비한 멤버들의 정념이자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걸그룹 지형도를 그려보겠다는 소속사의 강력한 의지 표명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가장 주목한 건 다름 아닌 ‘발차기 안무’였다. 뮤직비디오는 댄서, 발레리나, 바리스타, 파일럿, 그래피티 아티스트 등 소녀들의 다채로운 내일을 그렸고, 가사는 설레지만 두려움 가득한 미래 앞에 선 소녀들의 외침을 담았음에도, 결론은 깔때기처럼 하나로 통했다. 짧은 스커트를 입은 소녀들이 화면을 향해 단체로 발차기를 하는 시각적 이미지는 초 단위로 잘려 한 장의 정지 화면으로, 때로는 ‘움짤’로 웹상을 오랫동안 떠돌았다. 최초의 노래가 전달하고자 한 이야기의 맥락과 에너지는 사라지고도 남을 시간이었다.소녀시대가 걸어온 10년은 어쩌면 그 ‘발차기’가 세상에 의도대로 받아들여지게 하기 위한 설득과 회유의 역사였을지도 모른다. 여성, 특히 젊은 여성이 하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성적인 코드를 부여하거나 때로는 태생적으로 자기결정권을 박탈당한 사람처럼 취급하는 세상의 편견이 주요 타깃이었다. 여리고 사랑스러운 소녀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차용했던 ‘Baby Baby’와 ‘Kissing You’로 시작해 대상화의 정점을 찍은 ‘Oh!’로 전반을 마무리한 뒤 주체적 여성상을 전면에 내세운 ‘Mr. Mr.’나 강렬한 퍼포먼스가 돋보이는 ‘I Got A Boy’, ‘Catch Me If You Can’으로 후반을 장식한 소녀시대의 커리어는 그래서 인상적이다. 마치 스스로의 주체성에 눈뜬 소녀의 좌충우돌 성장담처럼 보이는 이 흐름은 ‘‘오빠’의 짓궂은 웃음만 봐도 울어버릴 것 같던’(‘Oh!’) 내가 ‘나에게 선택받은 것만으로 빛나는 너’(‘Mr. Mr.’)를 인식하기까지의 성공과 실패를 고스란히 전시한다.그런 이들이 1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여섯 번째 앨범 ‘Holiday Night’의 주인공을 자신들로 정한 건 무척이나 당연한 귀결이다. 이제 누구의 윤허도 필요 없는 ‘영 앤 리치’의 삶을 있는 그대로 즐기기 시작한 이들 앞에 놓인 키워드는 다름 아닌 ‘파티’와 ‘동료’다. 앨범과 관련한 인터뷰들을 통해 오랜 시간 변치 않고 서로를 배려해준 동료에 대한 감사 인사를 가장 먼저 전하는 것은 물론 ‘(소녀시대는) 인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명예이고 운명이다’(티파니, ‘W’ 8월호 인터뷰)라고 고백하는 이들의 목소리에선 한 치의 의심도 느껴지지 않는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렇게 쟁취한 성공이 가져다 준 부와 명예를 치열하게 누리는 젊은 여성의 모습이 이토록 생경하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놀랄 뿐이다.그래서 다시, ‘다시 만난 세계’다. 이 노래가 발표된 지 9년 만에 소녀시대는 물론 시대와 연대를 대표하는 노래로 재조명된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혼자는 두렵고 어렵지만 곁에 있는 이의 손을 잡으면 어쩐지 강해지는 기분이 드는 드문 신비 사이로, 한국 걸그룹 최초로 10주년을 맞이한 이들의 실재하는 성장과 연대의 서사가 비집고 들어온다. ‘다시 만난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사는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지만, 개인적으로 아끼는 구절은 따로 있다.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 마.’ 무언가를 기약 없이 기다리고 애태우는 게 전부였던 소녀들은 이제 없다. ‘나이 서른에도 소녀시대냐’는 별로 웃기지도 않는 질문에 ‘지금은 소녀시대, 앞으로도 소녀시대, 영원히 소녀시대’라는 시원한 발차기가 날아간다. 이것은 ‘다시 만난 세계’가 이화여대에 가져왔던 연대처럼, 10년 차 프로 아이돌 소녀시대가 선물한 생의 경쾌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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