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실증사학이란게 뭔지 모르겠네요? 실증주의의 아류인가요?
수단적 의의를 갖는 과학적 방법론을 접목하여 사실을 규명하여야 한다는 실증주의 연장선인가요?
실증주의의 아류의 제반 학문들은 과학이 현대만큼 발전하지 못한 근대(19세기)에 정립된 하나의 학술적 관점에 불과한 것 같은데...왜 이게 역사학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모르겠네요...이 말은 어떻게 실증이란 것이 사료나 유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얘기하는게 되는지 모르겠다는...
실증사관은 역사학에 적용된 실증주의의 아류일 뿐입니다...실증주의를 대표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논리실증주의인데...여기서의 핵심은 사료나 유물이 아니라 논리이지요.
실증사관이 실증주의를 구속하는 상위 개념이 아닙니다. 실증주의의 아류에 불과한 실증사관으로 무장한 역사학이 다른 학문적 방법론에 비해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증주의는 방법론의 의미를 과다하게 부여한 하나의 사관에 불과하지요...그리고 이 방법론에 의해 접근하지 않는 역사해석은 실증적이지 못하여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은 그냥 독선일 뿐이지요.
과학에 있어 핵심은 가설과 대립가설 간의 관계(rivalry competitive hypothesis)이지요...이에 대한 논증과 반증을 사실에 입각할 수도 있고 논리에 의할 수도 있지요. 논리에 의해 접근한다고 유사과학은 아닙니다. 천문학이나 물리학도 그러면 다 판타지가 됩니다. 그만큼 팩트 이상의 논리도 중요한 것입니다.
이는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물보다 더 중요한게 철학적인 의미의 시대정신이나 논리이지요. 그런 점에서 목적론적 논리를 배제하여 수단적인 방법론으로 학문을 얘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과학적 방법론은 어떻게 적용되느냐에 따라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 자체가 맞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틀린 것도 아니지요.
실증사관 내지 실증주의에 입각한 접근의 가장 큰 문제는 소위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경우(wag the dog) 현상입니다. 수단은 언제나 목적에 구속될 수밖에 없는데...왜곡된 목적을 객관적으로 옹호시키는 듯한 방법론이 문제가 되는 것이고...이게 현재 현재 우리나라 사학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지요.
어쨌든 실증주의적 접근이 목적의 정당성을 설명해주지는 못하지요. 더욱이 왜인들이 적극 옹호하여 하나의 학문적 파벌(school)을 만들어 버린 실증사학과 이에 대해 교육받은 사람들이 새로운 역사적 해석이나 논리를 배제하려는 목적에서 주장하는 실증은 그 의도에 따라 옹호할 수도 반박할 수도 있는 그런 것이지요.
우리 나라에 도입된 실증사관은 왜인들이 적극 옹호하여 왔던 사관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사관으로 교육받은 경성제대 출신의 한국인들이 공고하게 학문적 영역을 구축한게 우리나라 강단사학이라고도 하고요(잘은 모르겠지만^^)
삼국사기가 실증사관에 입각하여 쓰여진 것이라도 볼 수 있다고 하시는 분도 있지만...그건 비약이지요. 삼국사기는 김부식의 관점에서 쓰여진 유교적사관의 역사서이지 실증사관에 입각해 쓰여진게 아닙니다. 또 금석문을 연구하는 훈고학...그런 것도 실증사학이다? 그건 아니지요.
어쨌든 가생이에서 보는 글들 중 역사학에 적용되는 실증주의나 실증사관이 도그마(dogma)되어 적용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잘은 모르겠지만...식민사관이라고 하는 것들의 문제는 일본서기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검증된 사서로 억지를 피거나... 삼국지위지동이전 등도 검증된 사서라고 전제한 후 우리의 삼국사기를 평가하는 것은 분명 잘못되었지요.
우리나라 사서에만 적용하는 실증사관을 일본서기나 중국의 정사에는 왜 적용하지 않는지...실증사관이 그렇게 선택적으로 적용가능한 사관이라면 이는 과학적이지도 않지요.
물론 저는 역사학이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에 동의하지 않지요. 차라리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역사는 인문학이라는 쪽에 한 표를 던지겠다는 그런 쪽이라서....
어쨌든간에 우리의 사서나 주장이 일본서기나 중국사서랑 안 맞는 부분이 있으면 신뢰할 수 없고, 이를 위해서는 기존에 정립된 이론을 반증할 만한 증거내지 사실, 사료를 대라...뭐 이런 식이라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학술적으로도 미숙한 19세기 전후 왜인들에 의해 정립된 사관을 21세기에 사는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옹호하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랑케인지 뭔지 그 사람이 그렇게 대단한가요? 도대체 랑케라는 사람이 칸트나 아인슈타인 정도 되는 그런 석학인가???
실증주의의 연장선에서 논리를 폈던 토마스쿤(Thomas Samuel Kuhn)의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를 준용해서 얘기하면...
귀납주의 내지 반증주의가 역사적 증거와 부합하지 않는 다는 것을 전제로 접근하지요. 물론 쿤의 정치를 중심으로 하는 역사 쪽에서 접근한 것은 아니지만 과학적이라는 것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지요. 각설하고 그게 패러다임인데...실증사관이 어떤 패러다임에 근거하느냐가 문제이지 방법론이 중요한게 아니지요.
현재 실증사관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방법론을 맹신하는 어설픈 과학도 내지 잘못된 패러다임 내지 최소한 우리 민족의 역사적 공동체적 가치보다는 대체 가능한 학술적 방법론을 우선 시 하는 사람들인 듯...
실증사관을 옹호하는 사람의 문제는 팩트인지 뭔지 과학적 사실을 전제하여 역사에 접근하고자 한다는 문제가 있지요.그래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관점이라는거지요...도대체 역사가 어떻게 사학도들만의 영역? 자기들만이 옹호하는 방법론을 좀 안다고 석학?
한사군이 한반도에 존재했느냐 여부...그건 한마디로 Nobody knows!입니다. 사서에 한이 위만의 조선을 멸하고 거기에 사군을 설치했다는 것 외에 사료가 얘기하는 것은 없지요. 그 어디에도 한의 사군이 설치된 곳이 한반도라는 기록은 없어요.한반도로 비정한 논리는 있고, 부분적으로 이를 입증할 수 있는거라는 일부 유물 정도...예를 들어 평양에서 발견되었다는 봉니같은거?
도대체 한의 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서나 유물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지만...논증하는 노력만큼 반증에 대한 반증의 노력도 있어야 하는데...강단사학인지 뭔지 반증에 대한 반증의 노력이 제대로 있었는지...설사 관련된 유물의 한 나라 시대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걸 가지고 평양이 왕검성이라는 주장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데...그래도 이를 논리적으로 연결하여 이론화시켜 놓았으니 과학적이라 주장하는 것이 참 우습지요.
한의 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것도 가설,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는 것도 가설...두 가설이 대립하는데
전자는 왜냐 지나 아이들이 인정한 사료를 기준으로 실증적이라 하고, 후자는 실증적인 팩트가 없다고 뭐라 하고...자기가 세운 가설에 대해서는 실증적이지 못하면서 상대방에게 기존에 정립된 이론을 반박하려 실증적인 근거를 대라고 하는게 좀 웃기지 않나 합니다.
더욱이 춘추필법이라는 자기중심적인 관점으로 쓰여진 중국의 정사나 신라 등에 대해 피해의식에 쩔어 백제서기를 표절,왜곡한 일본서기(이것도 가설이지만?^^)...이런게 과연 우리 역사의 해석기준이 되는지...그래서 소위 실증사관 주장의 원초적 배경이 될 수 있는지..
실증사관이란 것에 말하는 팩트...참 어설픈 과학이지요
팩트가 진리가 되려면 논리적으로 공리(axiom)에 기반하여야 하는데...사람 살아가는 세상에 적용되는 논리 중 스스로 자명한 그런 이치가 과연 있느냐도 생각해 봐야지요.
플라톤의 암굴의 비유...그건 선의 이데아...즉 진리의 이데아를 전제로 하는데...진리는 그러한 대응설도 있지만...소위 모자이크설이란 것도 있습니다...현대적인 진리론은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이 이나고 여러 사실들이 모순없이 맞아 떨어져 하나의 그림이 될 수 있는 것이 진리라는거지요.
그건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에요...팩트에 대응하여 역사적 사실이 진리가 되는게 아니고 유물, 사료, 논리 등이 모순없이 설명될 때 진리가 되지요...유물이나 사료와 같은 것에 대한 과학적 검증만으로 진리가 되지는 않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