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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1-04 23:46
[한국사] 솔직히 조선의 국력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글쓴이 : 덜덜덜
조회 : 4,502  


사실 왜란때만 봐도 당시 일본과 조선의 전력차를 보자면 쉽게 먹을만 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웃긴게 임진왜란은 히데요시의 과대 판단으로 인한 전쟁였습니다.

히데요시는 조선의 임금만 잡으면 조선을 쉽게 먹을수 있을줄 알았던거지요.

하지만 일본인은 왕이 도망갈줄은 꿈에도 몰랐던 겁니다.^^;;

그때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선조와 이순신이라는 변수가 그걸 지연시켰고 명의 참전이 결정적이었죠. 

현재 우리나라 역사서에서 이상하게 명의 역할을 깎아내리는게 넌센스입니다. 

솔직히 조선의 운명은 명의 참전이였고 일본에게는 치명적인 일격이었죠.

물론 이후 우리나라는 메이지 이후 치욕적인 강점기를 보냈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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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학번 17-01-04 23:52
   
해상보급로가 끊긴 상태에서 전쟁은 이미 일본이 진거나 다름없는데 님이 오히려 명을 과대평가하네요. 물론 명나라의 원군으로 평양성을 탈환한건 전쟁 종식을 크게 앞당기긴 했지만 그 전에 이미 일본은 끝난거나 다름없고 오히려 명나라 심유경이랑 고니시 유키나가가 밀실 협상으로 혼란을 야기시키는 등 명나라 개입이 조선에게 피해를 끼친 부분도 있습니다.
     
덜덜덜 17-01-05 00:04
   
글쎄요.

왜군이 영남의 부산포를 먹고 파죽지세로 호서,호남 곡창지대를 먹고

한양과 평양을 장악했고 명의 머리 밑까지 갔으나

이후 명의 참전으로 하루아침 무너진거죠.

물론 수군의 활약, 의병의 활약도 켰지만

명의 참전은 왜에게 뒷통수 크게 맞고 본국으로 돌아서게 만든거죠.
          
11학번 17-01-05 00:10
   
호남 곡창지대 먹힌건 정유재란인데요? 그리고 정유재란 원인은 심유경과 고니시의 밀실외교 때문이고요. 임진왜란 때는 호남은 먹지도 못하고 해상보급로는 끊겨서 왜군은 자멸하던 상황이었는데 심유경이 쓸데없는 짓 하는 바람에 임진왜란 때 끝났어야 할 전쟁이 정유재란까지 이어졌고 이 때 생긴 피해가 조선에 엄청난 타격이었죠.
               
덜덜덜 17-01-05 00:17
   
네 그래서 본문에 왜란으로 표기한겁니다.
                    
11학번 17-01-05 00:51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그래서 명나라가 전쟁에 큰 활약을 했다고 보기 어렵고 과소평가 되지도 않았다는거죠.
뷩글이 17-01-04 23:55
   
임진왜란 전체를 봐도 이순신장군님 한분이 모든걸 바꿨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님.
아비요 17-01-05 00:10
   
쉽게 먹는다니... 그정도 차이는 안났어요. 그냥 일본으로선 자기들이 좀 더 세다는 판단을 했고.. 굳이 이기지 않더라도 동원된 군사들이 소모만 되어도 이득이었죠.
상식3 17-01-05 00:12
   
흠~
당시 일본이야
오랜 내전으로 경험 많은 정예병이 넘치는 상황이었고,
조선의 경우 오랜 평화를 지속했고, 너무 안이해서 대처를 못 한 거지
딱히 조선이 당시 일본을 못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보는데요.
뭘 과대평가 했다는지 모르겠지만
조선이 최상의 시나리오로 갔다면 왜군은 육지에 오르기도 전에 수군에 작살 났을 겁니다.
이순신을 평가절하하는 건 아니지만 함포사격이 고려 때 세계 최초로 시작되었고 전술의 역사도 깊죠.
물론 당시 포라는 게 오늘날 같이 맞으면 폭발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성인남자 주먹 두개 정도 뚫리는 거라
그것도 전술적으로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이순신이 압도적인 숫적 열세에도 이긴 건 그만큼 하드웨어와 전술이 받쳐준거죠.
당시 조선은 대비도 첩보도 제대로 돌리지도 않고 그냥 조금 큰 규모의 왜구 대비하는 수준으로 했죠.
만약 큰 전쟁을 예상하고 첩보도 돌리고 대비를 했다면 왜군은 육지에 오르기도 전에 괴멸했겠죠.
그리고 서구덕후들의 사무라이 판타지에 비해 그렇게 대단한 전력으로 보이진 않네요. 베테랑 정예군이란 걸 반영하면 말이죠.
조선이 전반적으로 전쟁경험은 커녕 제대로 훈련도 안 된 사람들을 급조 동원해 손발도 안 맞춰본 사령관을 내려보낸 오합지졸군으로 대처해서 그 사단이 난 거죠.
일뽕들이 사무라이 판타지 지리던데... 임란에서 조선이 심하게 약군이었다는 걸 반영하고 조총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걸 감안하면 당시 일본군이 그리 세계적 군대로 평가해줄 수준은 못 됩니다.
     
덜덜덜 17-01-05 00:16
   
제가 일본을 고평가 하는게 아니라

그 당시 상황을 보면 현재 조선의 국력이 강력해서 결국 전쟁에서 이긴거고.

명의 참전을 그닥 크게 반영 안한다는 겁니다.

솔직히 백성을 버린 선조는 욕 뒤지게 먹어도 쌉니다.

침략국 타국 입장에서도 아주 황당한거죠.
국산아몬드 17-01-05 00:16
   
명은 7년동안 평양성 전투 하나 밖에 한게 없는데 명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아닌가요?
전쟁 기록을 훓어봐도 명군이 그다지 큰 영향을 준 전투가 거의 없는데 왜 하나같이 명의 참전이 결정적이라고 말하는지
아비요 17-01-05 00:17
   
현대도 우리처럼 군전역하고 예비군으로 있는 체제 안갖춘 곳들에서 전쟁나서 민간인 바로 징집해서 총들려 전장에 내몰아보세요. 어떻게 되나... 거기에 윗대가리들도 전부 수도에서 그제야 파견나오고 있거나 갓 도착해서 어리버리하고.. 장교나 하사관은 거의 없거나 전쟁경험외에도 훈련도 거의 안한 사람들이면.. 이게 전쟁이 되나..
그런데 적은 전쟁에 이골이난 애들만 모아서 전격전을 진행하고..
아비요 17-01-05 00:20
   
유럽 애들하고 비교할 수 없는게 거기는 항상 유럽 어딘가에선 전쟁이 터지고 있던 지역이에요. 그에 반해서 조선은 차라리 내외로 소란해도 만주로라도 치고 들어가서 매번 투닥거렸다면 그정도는 아니였을텐데..
꼬마러브 17-01-05 00:23
   
일본은 전국시대..그리고 통일.. 에도시대 등
무력이 천하를 다스리는 국가였어요

즉 그 아래있는 백성들이 삶은 처참하기 그지없었습니디. 차라리 죽는 게 낫다 할 정도로요.. 그냥 지옥이죠

당시 조선은 무력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붓이 천하를 다스리는 국가였습니다.

백성들이 삶은 비교적 평화로웠어요.
1인당 쌀생산량만 봐도 조선이 일본의 5배인데요

그런 상황에서 님이 말하는 국력의 기준을 무력으로 맞춘다면야...

그리고 무력의 차이도
일본이 조선을 쉽게 먹을만한? 그건 너무 지나친 과장이네요
     
덜덜덜 17-01-05 00:27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5배??

왜란 이후 1870년 당시 일본의 인구는 3,600만 명 반면 조선은 1,600만 명 수준입니다.

배 이상 많은데요??
          
꼬마러브 17-01-05 00:28
   
1인당이요 님아
전쳐 생산량을 인구로 나누고 세금을 뺀 값입니다.

일본식석기준으로 1인당
일본은 0.22석이고 조선은 1석이라 나오네요
그리고 가생이를 보다보니 이런 흥미로운 글이 있더군요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0881&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B4%90%EB%9D%BC%EB%A1%B1%EC%BD%98&sop=or&page=2

또한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할 때 당시 일본정부에서
당시 일본 한 해 쌀수확량의 12퍼센트를 접대비로 썼다는데~
이것이 국력의 차이 아닐까요
               
덜덜덜 17-01-05 00:39
   
그 당시 율곡이이 글을 보면 님과 상반된 의견이군요^^




오늘의 나라 형세는 마치 오랫동안 고치지 않고 방치해둔 만간대하萬間大廈(여러 간의 큰 집)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크게는 대들보에서 작게는 서까래에 이르기까지 썩지 않은 것이 없어, 근근이 날만 넘기며 지탱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동쪽을 수리하면 서쪽이 따라 기울고, 남쪽을 뜯어 고치면 북쪽이 휘어 넘어져서 어떤 장인도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오직 날로 더 썩어 붕괴할 날만 기다리는 그 집과 오늘의 나라 꼴이 무엇이 다르다 하겠습니까.

– 1574년 <만언봉사萬言封事> 중에서

 

예로부터 나라를 세운 지 오래되면 점점 법제의 폐단이 생기고 인심이 해이해지는 것인데, 반드시 어진 임금이 나타나 퇴폐하고 타락한 것을 말끔히 없애고 정치를 고쳐야만 국세가 떨치고 운명이 새로워지는 법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물쭈물하다가 퇴락하여 구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니 그 형상을 보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건국된 지 200년이 지나 중쇠(中衰)의 시기에 해당하는데, 권간(權姦)이 어지럽혀 화를 많이 겪었고 오늘에 이르러는 노인이 원기가 소진되어 다시 떨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다행히 성상께서 나셨으니, 이것은 장차 다스려질 수도 있는 때입니다. 만일 분발하고 진작하시면 억만년 동안 동방의 복이 될 것이나, 그렇지 못하면 장차 무너지고 잦아들어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 1581년 <경연일기經筵日記>

 

200년 역사의 나라가 지금 2년 먹을 양식이 없습니다. 그러니 나라가 나라가 아닙니다.

– 1582년 <진시폐소陳時弊疏> 중에서

 

지금 국가의 저축은 1년을 지탱하지 못합니다. 이야말로 진실로 나라가 나라가 아닙니다.

– 1583년 <육조계六條啓> 중에서
                    
꼬마러브 17-01-05 00:48
   
원하는 자료만 취사선택해여 근거로 쓰면 뭐가 달라지나요.. 통계가 그런 걸 어떡합니까...ㅠㅠ
                         
덜덜덜 17-01-05 00:49
   
그 당시 통계가 과학적인가요??ㅎㄷㄷ
                    
꼬마러브 17-01-05 00:55
   
일본에서 밥그릇을 들고 먹는 문화가 왜 생기지는 알고나 계세요???
밥상이 없어서 그런 전통이 생긴건데....

솜이불같은 면이불도 메이지유신 이후에나 지급됐다는 사실은? 그 이전까지 백성들은 잘 때 지푸라기로 만든 이불이랄까.. 신문지같은 걸 덮고 잤죠
이러한 백성들의 현실을 무력과 전쟁으로 억압하고
세금은 어마무시한데 귀족들의 삶만 윤택..
현재 일본의 노예근성도 이런 전통 중 하나로 이어져 오는 것이지요..

얼마전에 도쿄인근에서 에도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골 1000구가 발견되었는데
평균키가 조몬인들보다도 작았다죠?
세상에.. 얼마나 못먹었으면
인신매매, 해적, 도적 천국에..
얼마나 지옥이었을까

'百姓は死なぬように、生きぬやうに、合点致し収納申付'
(백성들이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세금을 걷으라 - 도쿠가와 이에야스)
                         
덜덜덜 17-01-05 01:00
   
빈부격차와 이불이 왜나오는지요..

그럼 그 당시 염색된 옷을 못 사 입는 조선인은 일본인보다 못 살아서였나요??

조선시대때 색동옷은 양반자제분들만 입었죠..
                    
꼬마러브 17-01-05 01:04
   
염색기술 부족이 아니라
당시 조선이 추구하던 미가 순박한 흰색이였는데요..
염색보다 어려운 게 표백이에요 님아
색동옷은 어린이랑 천민들이나 입었던 거죠
                         
덜덜덜 17-01-05 01:05
   
표백 이야기 하는게 아닌데요??

색동옷 자체가 비쌌습니다.

원단값 시세를 보면요..
                    
꼬마러브 17-01-05 01:07
   
우와 조선시대 그 당시에 원단값 시세가 적힌 자료를 가지고 있나요? 보고싶네요.

아랍인들이 입는 하얀옷도
염색기술이 부족해서인가요?

또한 조선이 흰색옷만을 입은 건 또 아닌데;
                         
덜덜덜 17-01-05 01:20
   
우리나라는 '오채'로  양반과 백성을 나눴습니다.

가격으로 보면

적색>황색>벼슬에 오르면 청색옷>일반 백성은 백색 순서입니다.


http://jksct.or.kr/xml/03205/03205.pdf
                    
꼬마러브 17-01-05 01:30
   
삼국시대도 아니고 '조선시대'에 오채로 신분을 나눴다고요? 처음 듣는데요;

그리고 흰옷을 즐겨 입는건 부여에서부터 내려오는 전통인데..;
님이 올린 논문에 나오잖아요. 천연염료 엄청 다양한데요?
어떻게 그게 염색기술 부족으로 이어지죠?

-자고올게요 ^--------^
상식3 17-01-05 00:24
   
당시 위정자들의 심각한 판단 미스가 부른 참화지
딱히 그걸 가지고 무슨 조선을 과대평가한다느니 하는 말하는 의도를 모르겠군요.
그리고 조선의 정부가 가난한 건 당대 서구나 일본 같은 곳 보다 세금을 확연하게 적게 수탈한 거 때문이고
전쟁준비 태세가 되면 당연히 평시와 달랐겠죠. 얼마나 안이했으면 선전포고해도 넉놓고 있다가 기습을 당한 건지 참.
정도전이 혁명한 조선은 당시로선 가장 근대에 가까운 국가였습니다만...
그게 오히려 당시 수뇌부의 판단미스로 더욱 화가 된 거지.
세종대왕이 여진족 휩쓸어버린 예도 있듯... 조선이 제대로 전쟁준비를 했으면 못 막을 수준의 국력으론 보이지 않는데... 흠
전쟁망치 17-01-05 00:58
   
명군이 전쟁에서 어떤 효과는 줬을지 몰라도 전투에서는 공적이 그닥 없던거 같던데.

적군.아군 안가리고 수급 챙기기 바뻤지
푹찍 17-01-05 01:51
   
국력의 과대 평가라니 ㅋㅋㅋ

그 이순신 장군 자체가 조선 국력의 상징이었습니다. ㅋ

제독 이순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교육, 문화, 정치 시스템
그리고 판옥선과 거북선.(판옥선=중종 삼포왜란에서의 교훈을 바탕으로 거함거포주의로 탄생)
그 판옥선과 거북선에 실리는 천지황자포를 비롯한 각종 화약 무기들을 탄생시킨 과학 기술력

거기에
영주 지배체제의 중세국가인 왜와 다르게
국민국가 테크트리 바로 직전의 완벽한 중앙집권체제로 전 국민의 저항태세인 의병활동
그렇기 때문에 선조가 수도를 버리고 튀어도
국가가 무너지지 않았고
또 그렇게 될 것을 알았기에 수도를 버리고 튈 수 있는 일종의 전략구사도 가능한 국가.
국가 시스템으로서도 당시 세계 기준으로 가장 최첨단을 찍고 있었던 국가였습니다. ㅋㅋㅋㅋ

중앙집권 국가 운영 시스템이 매우 굳건했기에
왜에서 주로 하던데로
주요지역만 점거하고 전격전을 벌여 영주의 목만 따는 식의 전술을 취한 왜는
선조가 튀고 이순신 장군님이 해로를 틀어막는 순간 게임은 끝난거였습니다.
실제로도 평양까지가서 보급품 개털리고 그 때부터 왜는 뒤로 가는것 밖에 못했습니다.
거기에 의병활동=전국민 저항이라는 미개한 왜에서는 결코 이해못할
으로 막타친거나 다름 없는는 상황이 된 것이죠 ㅋ
Marauder 17-01-05 01:54
   
누군가에게 4만명과 기천의 병력이 싸우면 누가이기냐고 물어봤을때 미친놈 빼고 제정신인 놈은 4만명이 이긴다고 할 것임. 하지만 조선은 패했음. 군사를 많이동원할수있는걸 국력으로 칠것이냐 혹은 그렇게 동원한 군사라도 수백에 털렸으니까 과소평가할것이냐(다만 이경우 굉장히 결과주의론적)
보통은 당연하지만 전자임
반대로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일본의 총 인구수가 과대평가되면 과대평과되었지 지금만큼 일본의 인구가 축소되어 생각된적은 없었음. 이 관점에대해 굉장히궁금해서 일본의 인구수에대해서 찾아봤는데 과거엔 2200만으로 한국의 2배로 생각되었지만 이것은 추정이었고 1800 1300만 이렇게 적게생각하는게 요즘 추세임.
Banff 17-01-05 02:42
   
조선 500년을 하나라 묶어서 얘기하면 곤란하고,

왜란호란전 14~16세기 조선 전기와 양란후 17, 18세기 정중동의 조선 중기와, 서양제국주의시대 19세기 조선후기를 따로 얘기해야 오해가 덜 가겠죠.
그노스 17-01-05 06:02
   
저도 임란때 명군의 역할이 기존에 인식되어 왔던 것에 비해 컸다고 생각하지만, 조선의 실제 국력은 님 말씀과는 다르게 오히려 과소평가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시기 유럽의 강국들은 국가 지출이 소득을 넘어서서 파산하는 경우가 속출했는데(당대 최강이라는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무려 4번이나), 반면에 조선은 국고 수입을 대부분 소비하지 않고 많이 비축하는 것을 추구했고 그 목적은 미래를 대비하자는 개념도 있었지만 국민 복지의 의미도 있었습니다.
후대에는 이것을 오해해서 조선이 가난한 나라였다고 단정을 해버리지만, 평시에도 해마다 농민들에게 농사지을 종자와 식량을 국가에서(!) 지급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세종때에는 양주군에서 종자를 준비한 농민을 조사하였는데 단 두 사람의 30가마에 불과했다고 하니, 이 시대 농민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국가의 복지 정책에 얼마나 의존했는지 생각해 본다면...시대를 뛰어넘은 포퓰리즘 정책?

성균관대 박이택 교수님에 의하면 18세기에 3억 인구를 가졌던 중국의 경우에 국가가 저장한 곡물이 쌀로 환산해서 2300만석이었다는데, 인구가 1600만에 불과했던 조선의 저장량은 1인당으로 계산하면 중국의 5배에 달해 국가가 저장한 곡물량으로는 당대에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한 국가의 전체 국력을 논하신다면, 자국 백성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탈탈 털어 거두어 군사력에 투자했던 병영체제 국가인 일본과 다르게 조선의 진정한 가치는 시대를 뛰어 넘는 복지사회 국가에 있었다는 것이고, 텐메이 대기근 같은 재앙 속에 사실상 손을 놔버린 봉건국가의 국력과, 국민 미래를 대비해 저축에 주력한 중앙집권국가의 그것을 논한다면 어느 쪽에게 더 가치를 두어야 할지는 자명하다고 봅니다.
도령님 17-01-05 09:02
   
이 발제자분 때문에 로긴하게 만드네요 이분은 일본인이거나 최소 일빠인거 같네요 계속 우리나라 비하 글들만 올리니 이런글은 선동세뇌글이니니 여러분들 먹이댓글 달지 마시고 무시하세요 어그로꾼에게 현혹되지 마시길
뚜리뚜바 17-01-05 12:15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5998&sca=&sfl=wr_subject&stx=%EC%9E%84%EC%A7%84%EC%99%9C%EB%9E%80+%EC%A0%84%ED%88%AC&sop=and

링크 주소에 임진왜란 전적 글을 가져 왔는데;; 명은 왜란 후반을 제하면 별로 보이지도 않아요. 일본군도 왜란 초기를 제하면 조선군이 비등비등하게 싸웁니다. 대체 뭣때매 글이 일본쪽이 손에 칼을든 듯이 쓰신지 모르겠습니다.
바람따라0 17-01-05 16:31
   
임진왜란 전 일본의 경지면적은 159만 헥타아르로 400만 헥타아르의 조선에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도쿠가와 막부에서 뻘과 늪이던 간토지역을 개간하고,
메이지 유신이후 홋카이도를 개발하면서,

겨우 한반도와 일본의 경지면적이 비슷하게 된것이지요.

일부 덜떨어진 부류들이, 일본의 국력이 고려시대에 한반도를 넘었다고 하는데,
무식한 주장입니다.

비료를 비롯해 농업기술이 발달하기전,
국력의 잣대로 가장 중요한 것이 농업 생산력입니다.

일본이 조선의 생산력을 따라잡은 것은, 1811년
간토 평야 개발에서 부터 홋카이도를 대부분 개발하는 시기,
중간쯤으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바람따라0 17-01-05 16:58
   
메이지 유신 초기에도 일본의 생산력은 조선을 따라 잡지 못했습니다.

홋카이도를 상당 부분 개간하고,  화학비료의 합성이 가능해진, 시기에 일본의 생산력이 조선의 생산력에 도달했다고 봅니다.

화학비료는 1890년에 코크스 부산물로 황산암모늄이 대량 생산되고, 1905년 대기에서 석회질소를 얻는 방법이 개발 되면서, 농업 생산에 지대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모작으로 지력이 부족하고, 척박한 산지가 많은 일본에게 극적인 생산량 증가를 가져온 주역이라 생각합니다.

일부 일뽕들이,

늪과 뻘인 간토 평야 개발 + 홋카이도 개발 + 화학비료의 효과를
마치 일본이 가진 고대부터의 힘이라고 여기는 것은,
완전히 헛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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