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7-06-03 16:07
[한국사] 개인적으로 민족사학쪽에 자주 손을 들어주는 이유는
 글쓴이 : Marauder
조회 : 1,440  

일반적으로 민족사학쪽에서 주장을 할떄는 반드시 증거를 내놓습니다. 그르던 맞던간에요.
그런데 주류쪽은 공부를 해라 이렇게 말하지 그 증거가 뭔지 대중의 입장에서 설득해주질 않아요.
'공부해라' 라는 반박이 많습니다
심지어 대중을 설득하는 사람들은 같은 대중들입니다.
반면 재야쪽에서는 교수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직접 설득을 해주는거구요...
(동영상이나 글을 말하는겁니다)
물론... 학계 뿐만이아니라 인터넷에서도 괴리가 있는게
제가 계속해서 물고 늘어지는 조선시대 인구나 생산량 이런것 또한
학계와 인터넷간의 괴리성이 있더군요.

학창시절에는 닥치고 외어라 이렇게 말하다가
어른이 되었는데 증거까지 찾을정도로 역사공부할거면 사학자 하고말지
누가 거기까지 파고들겠습니까?

진화론이 창조론을 대체한 이유는
창조론을 완전히 반박했기 때문이 아니라 더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대체가 된겁니다.

맨 처음에 역사의 흐름이 왜 그렇게 된건지
그게 정설이 된 이유가 있을건데 왜 정설이된건지 아무도 몰라요. 뭐 교수들은 알겠죠.
그런데 그 정설이란게 일제시대에 만들어졌고
물론 조선시대 때 부터 있던 내용들이 일제시대에 정립된것이긴합니다만
일제시대 왜곡된 역사가 있는건 가까운 과거이니까 확실히 드러나있습니다.

문제는 어디가 왜곡된건지 아무도 모른다는거죠.
누군가는 왜곡된 부분을 진보적으로 바꿔나가고
누구는 보수적으로 바꿔나갑니다. 누구는 그냥 옹호를 하구요.

애초에 그 판내에서 게임을하면 당연히 보수적인 쪽이 유리합니다. 모든 유기적인 부분을 미리 만들어놨기 때문에 순환논리 사용하기에도 딱이구요.
그런데 왜 성립된건지 확실하게 설명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그냥 믿어라라고 말한다면
사실 종교단체나 다름없겠죠. 자기네들이 만들어놓은 판에서 설명하면 당연히 자기네들이 유리합니다.
임나일본부 주장하던 사람들도 자기네들 상식에서는 아마 옳다고 생각했을겁니다.

특히... 당연하지만 재야사학자에서 주류사학자들을 공격할떄는 보통
자신의 이유 + 상대방이 아닌 증거를 보여줍니다.
물론 그게 취사선택된 증거라고 할지라도요.
어느쪽이 옳다를 떠나서... 둘다 합리적이다라고 생각되니까 주장을 시작하는 편인데
그 반대는 둘중 하나는 뭔가 그럴듯하지가않습니다
(주류사학계라고 말하기에도 자격미달인 일반인들이 역사를 떠들고 있기에 그런걸지도 모릅니다.
앵무새처럼 그 위에 사람들이 말했던걸 되풀이하는거밖에 못하는거죠)

장영실 드라마 보신분은 아실텐데
태양이 지구를 돌건 지구를 태양이 돌건 일식날자는 어느정도 맞출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지구가 태양을 돌게 계산해야 훨씬 맞지만
그 반대로 계산해도 들어맞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만 구멍이 생길 뿐이죠.
그런데 둘중 어느곳의 구멍이 많느냐를 보면...
재야사학자들은 구멍을 숭숭 파주시는데
강단사학에선 그런 대응이 비교적 적습니다.
유물이나왔다 한마디하면 끝이아니죠. 이게 왜 낙랑 유물인지 설명을 해주셔야죠.
그리고 누군가가 조작을 한번이라도 했으면 조작을 왜했겠습니까?
1. 본인의 명예를 위하여 2. 역사를 왜곡하기위하여
1번은그렇다쳐도 2번은 내가 이 역사를 주장하고 싶은데
증거가 없기 때문에 조작한다 즉 실제 증거가 없다는 반증정도로 생각할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역사학계의 상식이란게 일반대중들의 상식과 다른것인지...
제가보기엔 상식이 아닌것들도 상식이라고 하시고(물론 이건 제가 무식해서일수도있지만)

재야사학과 주류사학에서의 이중잣대가 심심치않게 등장합니다.
같은논리인거같은데 우리나라에 안좋은내용에 옹호되었던 내용이
같은논리로 유리한내용을 주장할땐 아니라고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집니다.

아래 목련? 님이 삼국사기 이야기를 하는것도 같은맥락인데 같은책에서 취사선택이 심하다는 내용같습니다. 즉 삼국사에 나오는 주류사학계와 다른 많은 내용은 부정하면서 임나일본부는 고작 몇글자 나오는데 옹호한다는것이 이상하다 이거겠죠...
(주류사학계에서 임나는 믿으면서 다른 글들은 믿지 않는 이유는 있겠죠. 물론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이자리를 빌어서 알려주신다면 물론 좋겠지만 그정도 전공자분은 아니신듯하더군요...

또한
 순환논리(a가 맞으니 b가 맞다 반대로 b가 맞으니 a 가 맞다)
이런논리도 가끔씩 보이는듯하구요...

독도에서 무대응을 하는 이유는 독도를 점유하기 위해선 결국 "폭력" 이 동원되야하기 때문이죠.

학문연구는 폭력이 아니라 논리와 증거가 지배하는 곳이잖아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카르마익 17-06-03 16:26
   
아무래도 밥줄의 문제가 걸린 사안이기 때문일수도 있습니다..
민족사학의 주장을 일부라도 인정해버리면 자신들이 그동안 쌓아왔던 이론들이 일거에 쓰레기가 될수도 있고 그러므로써 자신들의 입지 자체가 무너질수 도 있기 때문일겁니다..
전 역사를 공부했지만 학자적 양심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현재의 사학자들은 기득권에 이미 매몰되버린 사람들이 많아서 다른 주장을 논리적으로 그리고 실증적으로 연구해서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는게 목적이 아니라 그들의 주장만을 합리화 시키는 것을 취사선택해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토 17-06-03 16:28
   
논지에따른 근거가 잘못됬네요 주류사학에서 임나일본을 믿는다?  누가주장하는지 알려주실래요  임나일본  주류사학에서퇴출된게 언제인데.
     
Marauder 17-06-03 16:42
   
일단 첫번째 임나일본부는 주장하던. 그리고 주어도없고요.
두번쨰 글은 아랫 분들 글 보시면 이해 가능합니다. 임나는 일본과 교류하던 창구였다 이런식으로 주장한다고 하시더군요. 식민지배하던 그런게 아니라요. 혹은 임나가 일본으로 넘어갔다 이런 이야기도 있구요.
mymiky 17-06-03 16:43
   
임나일본부는 고작 몇글자 나오는데 옹호한다는것이 이상하다 이거겠죠? 가 뭔 뜻인지?

재야사학자들이 증거를 잘 내놓는다? 라는 것도 전 동의하긴 어렵습니다만-.-
재야사학쪽이 대중들이 혹-가게 해서 그런가 보네요;; 그럴싸? 해보이니까 그런건가;;

님의 말씀처럼,
주류사학이 좀 더 대중서나  교양서를 통해 쉽게 다가갈수 있게 노력하고,
대중들을 위한 역사 강의들에 신경을 쓰면 좋을듯 하네요.. 그점은 나쁠거 없다고 생각합니다.
     
Marauder 17-06-03 16:46
   
마이미키님이 밑에서 목련존자님과 대화하던 내용을 그냥 압축해서 넣었습니다. 목련존자님이 임나라는 존재자체를 부정하는데 현사학자들은 임나의 존재를 인정하죠. (여기서 임나일본부대신 임나가야라고 써야했을진 모르겠네요.)

그리고 주류사학자들은 대부분 결과만 보여주지 과정은 잘 안보여주거든요. 말그대로 그냥 그럴싸해보입니다.
          
mymiky 17-06-03 16:49
   
삼국사기에 임나가야란게 나오고, 또 무슨 스님 탑비에도 그 분이
임나가야출신에다 김유신의 먼친척이였다는 금석문이 실제로 출토되었으니까요.
존재자체를 부정하긴 어렵죠.

임나일본부의 문제는,, 그게 일본측이 한반도 남부를 지들이 경영을 했다느니
지배를 했다느니.. 구라를 까기 때문이지;;

임나 자체가 없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아니죠.
               
Marauder 17-06-03 16:57
   
그분은 임나를 일본에있었다 뭐 이런식으로 이야기하신거같기도한데...(제착각일지도) 임나의 실체는 그 정도밖에없다 뭐 이런 논리 아니었나요? 즉 임나라는 기록 이외의 다른 모든 내용은 허구라구요.
 그런데 삼국사기의 다른 기록들중에서 불리한것은 무시한다... 뭐 이런내용이죠.
     
Marauder 17-06-03 16:54
   
그리고 대중들을 위한다는건 지금도있는편이긴 하지만 문제는 두 논리가 부딪혔을떄입니다.
예를들어 강동 육주를 비정하는 방법은 현 고려국경에 근거해서 비준하게 되는데 재야사학자들은 강동육주의 지명이 요동에있다! 라고 주장하죠.(그외 몇가지 지형이야기도 있던거같습니다만)
그런데 주류사학자들이 강동육주가 한반도내에 있는 이유는 고려 국경이 한반도내에 있기 때문이 그렇게 비준하는건데 제 눈에는 일종의 순환논리로 보였습니다.
물론 고려 국경을 거기로 비준한 이유가있겠죠. 예를들어 거리가있겠고 병력의 이동이있겠고... 그런데 재야쪽에서는 그런걸 하나하나 설명해주는데 강단사학쪽에서 그렇게 설명해주는 경우는 별로 못봤습니다. 문제는 설명해주더라도 서로 논리의 충돌이 일어나는 부분까지는 가지않거든요.
          
호랭이해 17-06-03 17:10
   


평장사(平章事) 유소(柳韶)에게 명하여 북쪽 경계에 관방(關防)을 새로 설치하도록 하였으니, 서해(西海) 연안 옛 국내성(國內城) 인근에 압록강(鴨綠江)이 바다로 들어가는 곳에서부터 시작하여 동쪽으로 위원진(威遠鎭)·흥화진(興化鎭)·정주(靜州)·영해진(寧海鎭)·영덕진(寧德鎭)·영삭진(寧朔鎭)·운주(雲州)·안수진(安水鎭)·청새진(淸塞鎭)·평로진(平虜鎭)·영원진(寧遠鎭)·정융진(定戎鎭)·맹주(孟州)·삭주(朔州) 등 13개의 성을 거쳐 요덕진(耀德鎭)·정변진(靜邊鎭)·화주(和州) 등 3개의 성을 지나, 동쪽으로 바다에 닿았다. 사방으로 뻗은 길이[延袤]가 천여 리나 되고, 돌로 성을 쌓았는데 높이와 두께는 각각 25척이었다. 

압록강이 바다에 들어가는곳, 동쪽으로 바다에 닿지 않는점.

제가 모르는점이 있겠으나 일단 천리장성 위치가 이상하네요
          
mymiky 17-06-03 17:16
   
얼마전에, 고려국경이 철령까지였다?
이거 말하시는건가요?

http://www.newsis.com/view/?cid=10701&id=NISX20170522_0014911619#

근데, 이 지도를 보면,,
고려영토가 그렇다고 치면,
발해는 자연히 어디로 더 위로 옮겨져야 하는 하는데;;

발해가 어디라는건지? -.-
발해가 망하고 압록강변에 있었던 정안국은 고려땅 안에 있었단건가?

발해가 위로 가면,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켰는데, 그것도 좀 더 위에서 벌어졌다?
거란은 대체 어디서 이동해서 발해를 친거야 ㅋㅋㅋㅋㅋ

발해의 5경에서 출토되는 유물들은 또 어찌 할 것인지??

정혜공주 무덤은 발해의 첫 수도이었던 동모산 부근의 육정산에서 발견되었으며, 정효공주 무덤은 발해의 두 번째 수도였던 중경 부근의 용두산에서 발견되었는데???
               
mymiky 17-06-03 17:19
   
인하대 고고학 연구소를 일단 찾아봤습니다.

이런글이 나오네요..

남창희 인하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인하대 융합고고학과 학과장을 역임하기도 했는데, 그는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중국 홍산문화의 고고학 발굴성과들이 놀라울 만큼 『환단고기』의 기록들과 일치하고 있어 진실성 입증은 시간 문제”라고 말했다. 남 교수의 주장을 정리하면 이렇다. 중국의 대표적 사서 사마천의 『사기』에서 치우에 대한 본문 기록은 고작 몇줄에 지나지 않지만 『환단고기』에는 매우 세밀하고 풍부한 자료가 들어 있다. 중국의 기존 사서는 인류 최고문명 홍산문화를 해석할 수 있는 문헌적 근거가 빈약하지만 『환단고기』는 너무 풍부해서 고민일 정도라는 것이다.

환단고기- 음.. 그렇다는군요... 인하대까지 퍼진듯....
               
Marauder 17-06-03 17:39
   
환단고기는 잘모르겠고 그부분 인용하는건 저도안보는데 '단순논리' 대로라면 발해는 얼마 안가 망하였으니 고려랑 딱히 영역문제가 있을 이유가 없지 않나요?
아니면 제가 모르는 무언가 다른이유가있나요?
발해유민이 고려로 들어왔을때 고려가 발해의 땅을 일부 접수하였는데 그 땅이 어디까지인지 정확하게 고증되고 그이유를 정확하게 분석한게 있나요?
강동6주가 호랭이해님 말대로 압록강 바로 위라면 발해 망하고 고려가 압록강까지 땅을 넓힌 뒤에 다시 강동육주를 획득하여 땅을 넓혔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mymiky 17-06-03 18:04
   
발해와 거란과도 꼬이지만,, 거기 여진족들은요?
발해가 멸하고, 발해부흥세력들이 잠시 일어났다가, 금나라가 건국되죠.
아골타 활동무대도 그럼 어디로 해야하는지??? 문제까지 발전될수 있죠.
아골타가 요동에서 활동했다는건지?
윤관이 동북9성을 여진족들에게 반납하는데, 그게 요동이란 소리임?
1114년 여진의 아골타가 거란을 공격하여 승리한 뒤 1115년황룡부(黃龍府: 지금의 길림성 농안)를 무너뜨리고 거란의 천조제의 친정군을 물리침으로써 동북방의 대세는 여진에게로 넘어가는데.
그럼, 아골타의 활동영역까지 다 꼬인다는건데요-.-;;
당시 아골타가 수만명을 이끌고 싸웠는데, 고려 영토 안에서 싸웠다는건지?
고려는 뭐하고 있었답니까?;;;
                         
Marauder 17-06-03 18:11
   
동북9성 요동설은 본적이 있거든요. 비정되는 위치가 크게 세부분인데 함흥, 그리고 그보다는 위함경남도, 그리고 두만강 걸쳐서 요동까지 뻗어나가는 위치 세군데정도 있더군요.
그런데 정작 그럴리가 없다라고 부정하는 이유가 고려 서북경게면에비해 동북9성이 요동이라면 국경이 일직선으로 그어지게되어 형태상 말도안된다라고 하더군요. 즉 이 논리도 순환논리의 일부였죠. 서쪽국경이 다시그어진다면 동쪽국경도 다시그어져야죠.
                         
Marauder 17-06-03 18:15
   
제가 고려한건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농안고성이 한반도나 그 부근에 있었나요? 어쨌든 동북 9성이 여진족에게 다시 되돌아갔는데 그 부분이 만주에있었다면 다른 역사적 도시들과 겹치는 경우가 있나요?
                         
mymiky 17-06-03 18:19
   
일단,, 저 가설이 맞을려면,
발해는 발해대로 거란은 거란대로,
여진족들도 자연히 순서대로 다 꼬이게 됩니다..

아골타의 초기 승전인
영강주, 출하점, 호보답강 전투 다 어디서 일어났다는 건지? -.-
중국에는 흑룡강성 쪽에 출하점 전투 기념비도 있는데;;

동북9성이 요동에? 아골타가 요동에서 싸워야 한다는건데?
저 지역이 길림성, 흑룡강성 그런데인데;;
흑룡강쪽에 기념비가 있으면 안되죠..
                         
Marauder 17-06-03 18:25
   
애초에 그러한 역사들의 초안이 대부분 일제시대 때에 만들어진것 아닌가요? 저도 그걸 몰라서 남들에게 말은 안하지만... 앞서말했듯 순환논리의 일환으로 만들어진거라면 옳은지 그른지 파악하기 어려우니까요.
 물론 이건 판을 깨부수는 쪽에서도 일일이 지정을 해줘서 하나하나 고쳐야겠지만요. 평양에있는 기자묘도 옛날에는 진짜라고 생각됬었죠.
                         
mymiky 17-06-03 18:34
   
일제시대 이전에도, 역사에 대한 개념은 있었죠.

그래서 실록도 만들고, 고려사절요도 만들고, 삼국사기란 것도 만들고
다 한거잖아요?

일본이 오기전엔 역사책 안 만들고,
역사에 대해서 우리 조상님들이 아무것도 몰랐다고 생각하세요?

일제시대때 갑툭튀 한것은 아닙니다.

물론, 조선시대엔 기자숭배 사상이 있어서, 기자를 높이 평가한 부분이나
그런 차이는 있겠지만요..

아울러, 일제가 한국역사를 축소시켰다? 고 믿으시는 분들이 많은데..

솔직히, 일본은 한국 역사가 저기 대륙까지 뻗어가고 하면 더 좋습니다.

왜냐면,, 그때는 지들이, 조선땅을 천년만년 가지고 있을꺼라고 생각하던 때라..
이쪽까지 다 조선의 옛 영토니까, 조선땅= 일본땅. 다 우리꺼,

내꺼는 내꺼고, 니꺼고 다 내꺼라고 주장하는게 더 유리하고 편했을 거예요.
만선사관이 괜히 있는게 아닙니다.

비슷하게 아이러니 한 일이지만..

민족주의 사관이 발전하게된 이유도 박정희때 독재정권에서
국민들의 애국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민족주의 사관을 지원해준 부분도 있거든요.

이번, 박근혜 정부의 국정화 교과서도, 근현대사는 아버지 업적 미화용인 대신
고대사쪽는 환뽕?쪽으로 채울려고 그랬었지요..
                         
Marauder 17-06-03 18:40
   
정확한 위치 비정은 그때 된거 아닌가요? 평양이야기를 자꾸 꺼내는 이유가... 기자가 어디에 도읍을 했는지 아무도모르는데 막연히 평양이라고 생각하고 기자묘를 지었는데 그걸 본사람들이 봐라 기자가 평양에 도읍했지않느냐 이러는데 전혀 증거가 아닌데 증거로 채택한걸 말한거에요.
당연히 조선 고려시대에도 당연히 역사는 있었고 그러니까 책을 쓰는거죠. 그런데 그떄 그 역사들이 어디서 일어났는지 현대의 위치로 다시 찾아보니까 문제가 된것 아닌가요?
근데 일제때 왜곡시도가 있던게 사실이니까 다른부분도 왜곡이 되있지 않았을까 푹푹 찔러보는거죠.
               
Marauder 17-06-03 17:45
   
개인적으로는 원나라가 왜 심양을 돌려주었을까? 하는 의문에서 만약 고려가 강동육주를 차지했었고 원나라가 뺴았았다가 다시 돌려주었다라고 하면 설득력있다고 생각되거든요.
기존의 학설로는 고려가 한반도도 넘지 못하는데 수십년간의 전쟁 끝에 갑자기 많은 수의 고려인들이 심양으로 진출했다라고 주장해야하는데 그렇게 진출하는것보다는 원래 고려사람들이 있었다라고 생각하는게 자연스럽죠. 또한 원나라가 단순히 사람만 많다고 땅을 주는건 에러가 아닐지...
                    
mymiky 17-06-03 18:09
   
심양을 고려에 돌려준게 아니라, 충선왕이 원 무종의 옹립에 공을 세워서
심왕자리에 앉혀준 겁니다. 

엄연히 원나라땅이예요. 고려땅이 아니고요.
관리만 충선왕이 맞는거죠.

원나라안에서의 충선왕의 봉지(封地)의 개념입니다.
고려라는 나라와는 달라요.

고려국따로, 심양의 봉지는 또 따로입니다.
원나라 안에서의 관리직? 개념에 가깝습니다.

원과의 전쟁으로, 많은 고려인들이 원으로 끌려갔습니다.
갑자기? 많은 수의 고려인들이 심양으로 진출한게 아니예요.
대몽항쟁기만 해도 30여년 정도의 장시간 입니다..
                         
Marauder 17-06-03 18:19
   
좀 궁금한게... 이게 해석인지 아니면 역사적 사실인지 하는겁니다. 원래 땅이란거야 먹은놈이 임자죠 당연히. 그런데 끌려간사람이 원주민보다 사람이 많을리도 없고 현재 우리나라가 중국인 관리하겠다고 중국인 경찰 끌고오는것처럼 봉작을 준다는게... 그 이전에 다른 사례가 있나요?
                         
mymiky 17-06-03 18:23
   
고려사 대표적인 매국노 가문인..
홍다구 집안이 그런 케이스죠.

고려인 포로 감시하라고 완장 씌워줘서 승승장구
원에서 출세한 집안 ㅋㅋㅋ
                         
Marauder 17-06-03 18:28
   
제가 물어본건 다른 나라에게 땅을 줬냐고 물어본거였는데... 사실 계속 말해봤자 해석여지일듯하고 제가보기엔 어느쪽도 확실한거같진 않네요. 제가 주장한것도 아니고 그사람들 대신해서 토론하기엔 제 지식이 짧아서... 어느쪽이건 좀더 확실해보이는 근거가 나와야 할 성 싶네요.
                         
Marauder 17-06-03 18:31
   
해석인지 역사적사실인지? - 이걸 물은이유가... 중국에서는 세폐를 주면서 사실상 자기들이 삥뜯기면서 하사했다 뭐 이런식으로 글을 썼죠.
마이미키님이 말씀하신 내용들이 역사학자들이 해석한건지... 아니면 책에 쓰여있었는지... 이게 궁금했거든요.
                         
mymiky 17-06-03 18:39
   
자기 땅을 그리 덥썩 주는 예는 거의 없죠.

충선왕은 원나라 입장에서 남이 아닙니다.
쿠빌라이의 외손자이고, 고려의 왕족이자, 원의 황족입니다.
황제와 사촌이고, 뭐 그런 친척이였죠.

그래서, 믿고 맡긴거예요.

심양쪽을 고려국에게 주는 그런 개념이 아닙니다.
고려왕으로써 고려를 통치하면서, 심양쪽도 따로 관리하는 형태이지.
심양이 고려땅이 된게 아님.

대몽 항쟁기간 중에 원에게 넘어갔던

탐라총관부나 평양쪽에 동녕부를 반환한 예시는 있습니다.
사위인 충렬왕이 애걸해서, 다시 쿠빌라이가 돌려준거죠.
                         
Marauder 17-06-03 18:44
   
자꾸 무식한 티를 내서죄송하긴한데... 원래 고려의 땅이었다가 원나라가 줬다고 보는게 한번도 고려의 땅인적이 없었는데 원나라가 줬다고 보는것보단 설득력이 있다고보여서요. (심지어 여진족에게 뺏겼다가 다시 원나라가 먹었다고 하더라도)
그 땅이 원래 고려의 땅이었다는게 원나라가 땅을 하사하는것과 불가분의 관계인건가? 싶은거죠. 근데 이건 뭐 역사적인 증거다 이렇게 꺼낸건아니고  뭐 애초에 동아게에 그렇게 주장하는 분들이 있으니까 그것보고 제가 그럴거같다고 추측한것 뿐입니다.
                         
Marauder 17-06-03 18:47
   
좀 오래되었는데 몇가지 글을 본거같긴한데 기억은 안나는군요...
                         
Marauder 17-06-03 18:53
   
마지막으로 한마디하자면 저랑 마이미키님의 의견차이가 무엇인지 알기위해 상당히 긴 글을 써내려갔죠. 그런데 저는 이런 긴 토론이 사실.. 비생산적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그걸 생략하고 싶다는 마음에 일정한 양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홈페이지를 만들려고했었죠... 뭐 지금은 다른일때문에 일시중단이지만요...
                         
mymiky 17-06-03 18:56
   
심양은, 고구려와( 잠시 당나라)그리고 발해 땅이였다가, 발해가 멸망하고 거란(요나라)가 차지했고,  그뒤 금나라에게 넘어갔다가, 원의 몽골족들에게 넘어갔습니다.

당시의 심양, 즉 지금의 펑톈·랴오양은 고려인의 전쟁 포로나 유민(流民)이 많이 살면서 특수한 지역을 형성하고 있었기에, 두 나라 사이의 교통상·군사상·경제상 극히 중요한 곳이라서
원나라는 이 지방을 원활히 다스리기 위해 충선왕을 심양왕에 책봉하였다고 합니다.
                         
Marauder 17-06-03 18:58
   
이내용은 저도 다알고 쓴글이라... 같은말 반복하신다고 하셔도...
고려시대 1차자료가있으면 제가 마이미키님을 확실하게믿을테고 조선 초기 1차자료가 있으면 제가 반박하기는 어렵겠죠. 조선 중후기만 되도 별의 별 역사가지고 서로 논쟁이 있었던 때니까요...
               
Marauder 17-06-03 17:52
   
또 여러가지 기록들중에서도 고려가 수십만의 군대를 동원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그 작은 땅에서 많은 수의 군대를 뽑아냈을리가 없다고 허세일거다 이런식으로 분석하는 분들도 많더라구요. 그런데 땅이 좀더 컸었다면 충분히 그만큼 병력을 동원하는것도 가능했을 테구요.
물론 원간섭기 시절에는 이미 심양왕과 고려가 분리해나갔으니 그뒤에 나오는 통계는 아마도 영토가 충분히 축소된 이후였겠죠.
                    
mymiky 17-06-03 18:12
   
고려의 군사가 정확히 몇명인지는 지금와서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조선과 달리 사병이 존재했고, 전란이 많았기에 전쟁준비에 익숙했을수도 있을거 같긴 합니다.
진실게임 17-06-03 18:13
   
학자는 논문으로 말하는 겁니다.

다른 건 좀 외도하는 거고, 방송 출연이나 대중서 집필, 현실/정치 참여 같은 건...

서구에서는 그런 쪽도 학자의 책임이고 필요한 일이라고 인정하는 거 같지만...
     
Marauder 17-06-03 18:20
   
저도 제가 그것때문에 오해할 수 있지 학자의 책임이라고 한적은 없습니다. 다만 두개의 논문이 부딪힌다면 해결은 봐야겠죠.
     
꼬마러브 17-06-03 18:31
   
학문을 연구하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그 돈의 대부분은 우리의 세금이지요. 우리는 이것을 지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세금으로 고용된 학자가 거꾸로 우리를 멸시하고 속이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학자는 대중의 봉사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는 대중의 언어로 그들의 학문을 소개해야할 의무를 갖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지고 그들을 검증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학자들은 대중들을 무시하는 엘리트 귀족이 돼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이 부분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더이상 속으면 안되요. 역사에, 그것도 특히 상고-고대사에 관심을 기울어야 할 때입니다.
          
꼬마러브 17-06-03 18:36
   
주류사학은 대중의 언어로 그들의 학문을 소개하는..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너무나 모자릅니다. 오히려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학문을 대중들이 알지 못하도록 어려운 단어로 방어막을 치는 듯한 느낌을..지울 수가 없어요.
 
 
Total 5,277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1119 [한국사] 동북아 역사지도에는 [독도]가 진짜 빠졌나? (13) mymiky 06-05 1373
1118 [한국사] 도종환 후보의 역사인식 보도 관련 언론과 학계는 답… (4) 마누시아 06-05 1129
1117 [한국사] 한단고기는 빼고 얘기합시다 (25) 감방친구 06-05 1544
1116 [한국사] 강원대 기경량 강사, 민족사학자들을 매도하다 (6) 북명 06-05 1502
1115 [한국사] 도종환 후보자님 ‘위대한 상고사’는 안됩니다 카노 06-05 979
1114 [한국사] '명대 한.중 국경선은 어디였는가?' 강원대 남… (3) 마누시아 06-05 1653
1113 [한국사] 환빠로 몰리다 (2) 마누시아 06-05 854
1112 [한국사] 나는 환빠가 싫다 (26) 꼬마러브 06-05 1504
1111 [한국사] 강원대 기경량 강사 민족사학자들을 매도하다 (3) 마누시아 06-05 895
1110 [한국사] mymiky 이분 교묘하게 식민사학의 논리를 전파하고 다… (4) 카노 06-05 870
1109 [한국사] 식민사학자들의 논리... (6) 북명 06-05 865
1108 [한국사] 밑에 링크해주신 역사글을 보다... 하고싶은말 Marauder 06-05 731
1107 [한국사] 친일새누리 보수골통 사학자들의 미친 논리...ㅋㅋㅋ (6) 북명 06-05 1001
1106 [한국사] [기사] 낙랑군 평양설을 식민사학으로 매도 (5) mymiky 06-05 999
1105 [한국사] 고려의 창병 복원 (4) 고이왕 06-05 2020
1104 [한국사] 부여 철가면이 얼굴을 막아주는 투구 역할이라면..... (3) 고이왕 06-05 1057
1103 [한국사] 동양대 김운회교수님 말씀 요약 스리랑 06-05 1358
1102 [한국사] 낙랑은 일단 평양에 있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2) 아비요 06-05 871
1101 [한국사] 시인 도종환의 역사인식 비판’에 대한 견해 마누시아 06-05 1054
1100 [한국사] 대륙백제 반론의 반박 (7) 꼬마러브 06-04 1369
1099 [한국사] . (3) 호랭이해 06-04 981
1098 [한국사] 역사빠 문재인이 가야를 복원 할려는 이유. (6) 마마무 06-04 1643
1097 [한국사] 평양 지역의 중국 유물 (7) 카노 06-04 1387
1096 [한국사] 평양의 낙랑유적과 유물 감방친구 06-04 1216
1095 [한국사] 대방국과 대륙백제 - (고이왕) (16) 꼬마러브 06-04 2139
1094 [한국사]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런일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 스리랑 06-04 1317
1093 [한국사] 원본도 없는데 일제가 무슨수로 유물조작을 했겠냐… (37) 목련존자 06-04 2208
 <  151  152  153  154  155  156  157  158  159  1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