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서> 백제국은 본디 고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1천여 리에 있었으며, 그 뒤에 고려는 요동을 공략하여 가지게 되었고, 백제는 요서를 공략하여 가지게 되었다. 백제가 다스리던 곳을 일컬어 진평군 진평현이라 한다.
- 위는 대륙백제를 기록한 대표적인 중국측 기록입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가 요동을 공격하자 백제는 요서를 공격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고구려가 요동을 공략한 시기를 알면 백제의 요서 공략 시기를 알 수 있겠지요.
저는 이러한 추측에 따라 <삼국사기>의 고구려와 백제의 기록들을 살펴보았고, <송서>와 교차검증되는 기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삼국사기> 동천왕 16년(서기 242년), 왕은 장수를 보내 요동 서안평(西安平)을 쳐서 깨뜨렸다.
- 그리고 4년 후 백제의 기록
<삼국사기> 고이왕 13년(서기 246년) 위나라의 유주자사 관구검이 낙랑태수 유무와 삭방태수 왕준과 더불어 고구려를 쳤다. 왕은 그 틈을 타서 좌장 진충을 보내 낙랑의 변방 주민들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유무가 이를 듣고 노하자 왕은 침공을 받을까 염려하여 그 사람들을 돌려주었다.
-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두 기록의 시차는 고작 4년차입니다. 위의 <송서>의 기록과 일치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겁니다.
혹여, 사람들이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낙랑을 습격하여 뺏었다는 기록과 <송서>의 백제의 요서 공격이 어떻게 이어지는 거죠?”
예전부터 주장해 왔던 저의 주장을 보시면 알겠지만 저는 한사군이 요서에 있었음을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위의 백제 기록은 요서를 공격한 기록이 되는 것이고 <송서>와 일치하는 겁니다.
이를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삼국지>에 나옵니다.
<삼국지> 부종사 오림은 낙랑이 본래 한국을 통치했다는 이유로 진한 8국을 분할하여 낙랑에 넣으려 했는데, 통역하는 관리가 말을 잘못 옮겼다. 그러자 신지가 한(韓) 백성들을 격분시켜 대방군의 기리영을 공격했다. (대방)태수 궁준과 낙랑태수 유무가 군사를 일으켜 이를 정벌하였는데, 궁준은 전사했으나 두 군은 마침내 한을 멸망시켰다.
- 위의 삼국사기 백제의 기록과 비교해 보십시오. <삼국사기>와 <삼국지>의 기록이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만 대방태수 궁준이 삭방태수 왕준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즉, 삼국지에 나오는 한은 백제이고 신지는 고이왕입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한반도의 정세를 잘 몰랐기 때문에 백제를 마한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리고 한을 멸망시켰다는 <삼국지>의 기록은 딱 봐도 중국측의 왜곡이지요. 결론적으로 당시 백제의 고이왕은 대방군과 싸워서 이긴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건 백제가 대방과 싸워서 이겼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당시 백제와 대방군의 관계가 서로 적국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요. 여기서 이상한 점이 생깁니다.
다음은 고이왕의 아들인 <삼국사기> 책계왕조의 기록입니다.
<삼국사기> 고구려가 대방을 치니 대방에서 우리에게 지원을 청하였다. 이에 앞서 왕이 대방 왕의 딸 보과에게 장가들어 부인으로 삼았기 때문에 "대방은 우리와 장인과 사위 관계의 나라이니 그 청을 듣지 않을 수가 없다" 하여 드디어 군사를 내어 지원하였다.
- 앞서 말씀드렸다 시피 책계왕은 고이왕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이 기록에서는 책계왕이 대방 왕의 딸인 보과와 혼인하였으며 책계왕이 대방을 지원하였다고 나옵니다. 여기서 만약 대방이 한사군의 대방군이라면 모순점이 생기는 겁니다. 고이왕 시기 백제와 대방군은 서로 적이었고 백제에 의해 대방태수 궁준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고이왕의 아들인 책계왕이 대방 왕의 딸과 혼인했지요. 책계왕이 대방 왕의 딸 보과와 혼인 한 것은 고이왕 때인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고이왕 때 백제와 대방군은 서로 적이었습니다.
즉, 백제와 대방은 서로 사돈끼리 싸운 것이고, 보과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게 시집간 것이며 고이왕은 자신의 사돈을 죽인 것이 됩니다. 이건 말이 안 됩니다.
모순은 해결할 수 있는 저의 답은 이렇습니다. 책계왕이 지원한 대방은 중국의 대방군이 아니라 한반도의 대방국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앞의 고이왕의 기록의 대방은 중국의 대방군을 이야기 합니다.
마지막 결론입니다. 고이왕 시기 백제가 공격했던 낙랑군은 요서의 낙랑군이고, 이는 <송서>의 기록과 일치한다. 즉, 다시말해 백제는 고이왕시기 대륙에 영토를 마련한 것으로 정확한 시기는 앞의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서기 246년이다.
<삼국사기> 고이왕 13년(서기 246년) 위나라의 유주자사 관구검이 낙랑태수 유무와 삭방태수 왕준과 더불어 고구려를 쳤다. 왕은 그 틈을 타서 좌장 진충을 보내 낙랑의 변방 주민들을 습격하여 빼앗았다. 유무가 이를 듣고 노하자 왕은 침공을 받을까 염려하여 그 사람들을 돌려주었다.
고이왕 시기 백제의 대륙 영토 (발그림 ㅈ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