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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ㅡ 북부여
회색 ㅡ 읍루
연두색 ㅡ 고구려
보라색 ㅡ 북동부여
하늘색 ㅡ 남동부여
노란색 ㅡ 낙랑국
연하늘색 ㅡ 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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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논점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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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그 연대가 삭감되어 200백 여년에 달하는 시대 기록의 간극이 생기게 되었다.
실상 고구려는 서기전 200년 경에 건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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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국: 낙랑군과는 다르며, 낙랑국은 지금의 평양 지역에 위치했던 나라로 서기전 195년에 건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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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부여(북부여-남동부여-북동부여): 해모수의 정권 장악으로 부여의 단군이 되었으니 이가 북부여이며
원래 부여 단군이었던 해부루는 동쪽으로 달아나 다시 터전을 잡으니 이가 동부여인데 그 손자 대소 대에
이르러 고구려 대무신태왕에 의해 크게 패하여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었으니 북동부여와 남동부여이다.
북부여는 한때 중국 한나라로부터 임금의 수의를 조공받았을 정도로 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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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 지금의 대한민국과 위치와 강역이 대략 비슷하다. 나중에 북쪽에서 내려온 유민들에게 남쪽과 동쪽
땅을 떼어주어 그들이 각각 변한과 진한이 되어 떨어져나갔다. 북으로 낙랑국과 접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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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지도를 만드는데 있어서 특별히 주목했던 고구려 수도 졸본성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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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성에는 주몽의 사당이 있고 사당에는 쇠갑과 예리한 창이 있었다.'
-<삼국사기>-
고구려 국조 추모태왕의 사당은 분명 최초의 수도 졸본성에 있었을 것이므로 '졸본성=요동성' 이라는
중간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고대 요동은 지금의 난하와 요하 중간에 있었으며 대략 지금의 하북성 동부와 요녕성 서부에 걸쳐서
위치했을 것이다. 요동 지역의 중심이었으며 가장 거대했던 성 요동성도 분명 그 내에 위치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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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요동성은 어디에 위치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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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해에 대해 다룬 이광웅 저 '대조영과 발해'에는 '요동성=창려현' 주장이 나온다.
창려현은 만리장성 동단기점 부근에 있으며 고대 요동의 범위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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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박영규의 대중역사서 '신삼국사기 고구려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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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선상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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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본성(현 봉천성 소재지)' 라고 하였던 바. 봉천성은 현재 요녕성의 청나라 시대 명칭이니
요동성(옛 졸본성) 고지의 범위는 현 요녕성으로 확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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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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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본성의 위치는 정확히 알기 힘들다. 그러나 기록을 통해서 가장 정확한 것을 찾아나가야 한다.
필자는 졸본성이 현재의 창려현에 위치했다는 쪽에 무게를 실어서 지도를 제작하였으며
그 영토는 현재의 만리장성의 남부에 이르지만 고구려 건국 당시에는 명대에 축조된 것보다
견고함이 덜하였고 그 경계가 불분명하였으니 장성을 넘어서 영토를 갖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였다
추론하는 바이다. 다만 '장성이 고구려의 영토 확장에 얼마나 장애물이 되었는가'는 지엽적인 문제이므로
더 이상 생각할 가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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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위 지도들은 더 이상 나돌아다녀서
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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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광활한 터전과 만주를 내달
렸던 웅대한 기상은 어디 있는가? 모두
왜곡되고 지도에서는 그 자취를 감춰버
렸다
그 기상을 되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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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학과 그 세력의 척결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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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