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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09 18:59
[한국사] 환단고기라는 책의 정체와 이유립이란 사기꾼 정체
 글쓴이 : 고이왕
조회 : 1,435  

1.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우리나라의 고대 역사를 다룬 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 환단고기는 누가 쓴 책인가?
환단고기는 편집된 책으로 그 안에는 네가지 책이 들어있으며 각기 저자가 명기되어 있다. 하지만 환단고기가 공개되기 이전에 그 안의 내용을 인용한 책은 없다. 이전 기록에 그 제목이 알려져 있는 경우는 있으나 비교 검증할 내용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3. 그럼 환단고기는 언제 세상에 나타났는가?
1979년에 한암당 이유립李裕岦(1907-1986)에 의해서 필사본을 영인한 100부가 세상에 나왔다. 이 책은 광오이해사光吾理解社라는 출판사에서 나왔으며, 이 책의 글을 토대로 녹도승의 일역본과 임승국의 [한단고기]가 나왔다. 그러나 이 책에는 오류가 많았다. 이유립은 오류를 수정한 환단고기를 1983년에 다시 출간했는데 그 출판사는 배달의숙이었다. 광오이해사 출판본에 대해서는 이유립이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배달의숙에서 나온 책의 간행연도를 1979년으로 고쳐놓고, 100부 발행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광오이해사 본이 멀쩡하게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니, 이유립의 눈속임 수작은 무위로 돌아가고 만 셈이다.


보시다시피 서로 다른 곳에서 나온 책인데, 똑같은 발행년도와 발행부수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음흉한 짓거리 속에 탄생한 책이 바로 환단고기다.

4. 환단고기의 지은이가 이유립인가?
그 의심은 합리적이다. 이유립은 환단고기가 자기 스승인 운초 계연수桂延壽(?-1920)에 의해서 1911년에 30부가 간행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타난 각종 증거를 보면 이유립이 1960년대부터 오랜 시간 작성해 온 책임에 분명하다. 특히 그 증거들에 대해서는 악질식민빠님의 블로그 - 환단고기의 성립 [클릭]에 잘 나와있다. (또한 이 글의 하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유립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친일 재야사학의 끝은 어디일까? 이유립 편 [클릭]을 참고하기 바란다. 간략히 말한다면 이유립은 갈데없는 친일파로 과거 자기 행적을 묻고 민족주의의 탈을 쓴 인물이라는 것이다.)

5. 1911년에 만들어진 책이 왜 1979년에 세상에 알려졌는가?
1911년에 만들어졌다는 30부는 전혀 흔적이 없다. 이유립에 의하면 계연수는 1920년에 일본 밀정에게 살해당했는데, 그 전에 이유립에게 [환단고기]를 주고 60갑자가 지난 다음 경신년(1980년)에 세상에 공개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때 이유립은 불과 열네 살이었는데 말이다. 이에 따라 이유립은 [환단고기]를 간직하고 있다가 1979년에 필사 영인본 100부를 내놓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환단고기]는 1979년에도 세상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던 책이다. [환단고기]에 대해서 처음 언급된 것은 자유 지 발행인 박창암에 의해서인데 그때가 1981년이다. 박창암은 [환단고기] 원고를 녹도승에게 건넨 인물이니 환단고기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후 환단고기가 인용된 첫 책은 1983년에 나온 김상일의 [한철학]이었다. 즉 배달의숙에서 나온 100부에 의해서 환단고기는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셈이다. 그러나 임승국의 [한단고기]가 1986년에 나오면서 이유립이 심혈을 기울인 수정본은 잊혀지고, 광오이해사 본의 [환단고기]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광오이해사 본의 오류를 고쳐서 내놓은 책이 배달의숙 본이다.) 추가로 말하자면 임승국은 녹도승의 [환단고기] 일본 번역문을 적극 참고해서 자신의 한글번역본 [한단고기]를 내놓았다. (이에 대해서는 궁금해진 임승국의 환단고기 번역 [클릭] 이하 위 포스팅에 들어있는 일련의 연작 시리즈를 읽어보기 바란다.)

6. 그럼 이유립이 필사를 한 원본은 있을 것이 아닌가?
그 원본을 분실했다고 한다. 1949년에 오형기吳炯基라는 사람에게 원본 환단고기(1911년 간행)를 주고 필사시켰는데, 그 과정에서 원본을 분실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의 이야기는 조금씩 달라서 원본을 잃어버리고 필사본을 보관해왔다가 그것을 발행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잡지 한배달 2001년 7월호를 보면 중요한 기록이 있다. 그 부분을 인용한다.

그 가운데 1부가 한암당 선생에게 전해져 칠십년 대 초반까지 보관하고 있었다. 당시 한암당 선생은 의정부에서 셋방을 얻어 있다가 너무나 어려워 군산으로 잠깐 내려가 있었다. 그 사이 주인은 방세도 못내는 노인이 어디 갔는지 나타나지도 않자 책을 내다 팔아 버렸다. 이때 그『한단고기』도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보관해 왔던 것이 오형기의 필사본이든 계연수의 원본이든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 환단고기는 대체 어떻게 발간된 것인가? 역시 한배달 2001년 7월호를 보자.

급기야 기억을 되살려【한단고기】를 다시 써야 했다. 워낙 공부를 많이 하고 어려서 전령으로 활동할 때 문건보다는 외워 전달했던 것이나 속독으로 훈련된 탓에 새로이 한단고기 내용을 기억하여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후 잘못된 부분이 몇 군데 제자들에 의해 발견되기도 하였으나 '거의 맞을 거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던 선생의 인품을 의심하는 사람은(식민사학자들을 제외하곤) 거의 없다.

위 글에 나타난 바와 같이 환단고기는 결국 이유립이 창작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유립의 창작을 의심하는 사람은 [식민사학자]가 된다니 명심들 하기 바란다.

더구나 더 흥미로운 사실이 최근 신동아(2007년 9월호)에 의해 밝혀졌다. 그 기사 일부를 옮긴다.

다음은 전형배씨의 기억이다.
“이유립 선생은 오형기씨가 붙인 발문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유립 선생은 ‘발문은 그 책을 쓴 사람이 붙이는 것이지, 필사를 한 사람이 붙이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또 이유립 선생은 오씨가 필사한 환단고기에는 오자가 있다며 환단고기를 가르쳐줄 때마다 틀린 글자를 지적하면서 수정해주었다.”


자, 앞의 한배달의 기록에서는 [환단고기]를 잃어버렸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발문은 누가 기억을 되살려 써놓은 것이 되겠는가? 발문이 마음에 들어서 기억을 더듬어 적어놓았다면 몰라도, 못마땅해 했다면서 그것을 기억을 되살려 적어놓았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이겠는지? 더구나 [환단고기]를 볼 때마다 틀린 글자를 지적하며 수정해 주었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일까? 이미 책은 잃어버렸다고 하지 않았던가? 전형배가 이유립을 만난 것은 70년대 중반 이후다. 따라서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기억을 되살려 써놓은 다음에 만난 것이다. 이렇게 앞뒤가 안 맞을 수가 있는가? 이 책이 엉터리 책이라는 증거로 이보다 확실한 일이 있겠는가?

신동아 기사에는 이것 말고도 이유립 부인 신매녀申梅女의 증언도 실려있는데, 이것도 잘 들어둘만 한다.

“6·25전쟁이 났을 때 금산의 산속에 있는 집 헛간을 빌려 피난 살림을 했는데, 그만 불이 나 살던 집이 타버렸다. 그때 남편이 보던 책들도 타버렸는데 그 일로 인해 남편은 석 달을 앓아누웠다. 그러고는 다시 책을 갖고 다녔는데, 아마 다른 곳에 숨겨놓은 것을 가져왔거나 아니면 그의 머릿 속에 기억해놓은 것을 꺼내 새로 썼을 것으로 생각했다. 남편은 집 앞에 무궁화를 심고 무궁화꽃을 책갈피에 끼워두는 버릇도 있었다.”

이유립은 기억해서 사서를 다시 쓰는 전문가였던 모양이다. 신매녀의 증언에서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은 1950년대에 이유립이 가진 책은 모두 타버렸다는 것이다. 1949년에 오형기가 필사했다는 환단고기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때 불타 버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1949년에 오형기가 환단고기를 필사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오형기가 필사했다는 광오이해사 본을 보면 오형기는 강화도 마리산의 대시전大始殿에서 이유립을 만났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1949년에는 강화도 마리산에 대시전이 없었다! 1949년 정서본이 있을리가 있나 [클릭]

위 포스팅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유립이 대시전을 짓기 시작한 것이 1969년 봄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장소에서 알 수 없는 인물이 강화도에도 있지 않았던 사람을 만나서 옮겨적은 것이 바로 환단고기라는 책이다. (신동아 기사를 보면 이유립은 이무렵 대전에 있었다.) 심지어 배달의숙본을 보면 원본이 1911년 3월 16일에 발행되었다고 되어 있다. [환단고기] 범례를 보면 계연수는 1911년 5월 5일에 범례를 쓴 것으로 나온다. [환단고기]는 쓰여지기도 전에 발행된 책이다! (위 사진 중 아래쪽 것이 배달의숙 본이다. 빨간 테두리 옆에 보이는 날짜를 읽어보라.)

7. 환단고기를 이유립이 썼다는 의심에 대한 재야학자들의 반론은 없는가?
있다. 환단고기를 [한단고기]라고 처음 부른 임승국 교수가 박광용 교수의 [환단고기 위서론]에 대한 반론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매우 재밌으니 꼭 읽어보기 바란다. (출전 : 월간 자유 1990년 11월)

박교수는 이글에서 1940년 전후시기에 이유립에 의해서 저술되었고 1940년대 후반에 한단고기는 완성되었을 것이라고 사뭇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묻노니 박교수는 이유립옹을 만나 본적이나 있는가? 만약 이옹(이유립)이 작고하지 않고 살아 계셨다면 박교수의 글을 읽고 어찌 나오셨을까. 생각해 보면 관운장의 전사통지를 받은 의제 장비의 진노를 연상케하여 저절로 홍소를 금할 길 없다. 그리고 위의 단정처럼 1940년대 이후의 저술 운운]하는 넋두리는 이옹(이유립)을 가까이 지내봐서 잘 아는 사람이면 아무도 한단고기가 그의 장난에 의해서 생겨난 작품이라고 망언을 농하진 않을 것인데 박광용 교수가 이따위 글을 쓴 것을 보니 이옹을 만나 본적이 없다고 단정 지을 수밖에 없다. 학자에겐 풍기는 학풍이란 것이 있고 문사에겐 내어 뿜는 문체라는 것이 각기 다르기 마련이다. 셰익스피어의 글과 볼테르의 문체가 다르듯이 같은 상고사학자라도 신채호의 글과 위당 정인보의 글이 다르다. 이유립옹이 [한단고기]를 위작할만한 학인이었다면 아마도 그의 학문은 지금쯤 더욱 빛을 발했으리라. 이유립옹이 쓴 글은 한문으로 된 것은 물론 국한문병용의 서찬도 일반이 잘 이해할 수 없는 글이었다. 따라서 고대사학의 기관지 구실을 해 온 본 자유지에 다른 학자의 글은 자주 실렸으나 옹의 글은 거의 실리지 않았던 게 현실이었다. 그런데 한단고기의 저술이라니 이는 그의 학풍을 아는 사람이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노릇이다.

위에 나온 바와 같이 임승국은 이유립의 학문이 워낙 낮아서 환단고기를 위작할 능력이 되지 못한다는 말로 이유립 위작론을 일축하고 있다. 이렇듯 학문이 낮은 사람이 외워서 쓴 책이 바로 지금의 환단고기라는 이야기다. 정말 코메디가 따로 없다. 하긴 이 코메디의 결정판은 이유립의 글이 [자유]지에 거의 실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아래 링크를 통해 여러분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이유립이 [자유]지에 실었던 그 엄청난 양의 글들 [클릭]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다. 임승국은 이유립을 엄청나게 질투했거나, 아니면 그에 대해서 아는 바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

8. 숙명여대에 원본이 있다는 루머가 있는데?
루머의 발원지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다. 숙명여대 도서관에 있는 것은 1983년에 만들어진 배달의숙 출간본 100부 중의 하나다. 그것에 대해서는 환단고기 원본 [클릭] 에 사진과 함께 증명이 올라가 있다.

9. 계연수가 쓰지 않았다고 의심하는 이유로 다른 것이 있는지?
(1) 우리나라 계 씨는 수안 계 씨뿐인데 계연수는 수안 계 씨 족보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계연수라는 사람의 실존을 의심하는 견해인데 족보는 한말 혼란기라는 점을 감안해서 생각하면 부정확할 수도 있다. 결정적인 증거라고는 볼 수 없다.)
(2) 환단고기 범례에는 환단고기를 모두 해학 이기가 감수했다고 하는데 해학 이기는 책이 나오기 2년 전에 죽었다. (죽기 전에 감수를 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기가 남긴 저술에는 환단고기 같은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 보아야 한다.)
(3) 계연수가 썼다는 범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런데 또다른 단군세기가 세상에 전하고 있는데 이 책의 내용이 앞 책과 매우 다르므로 다시 언급하지 않겠다.

또다른 단군세기는 무엇일까? 이것은 친일파들이 세웠던 단군교의 경전을 말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경전이 나온 연도다. 이 책이 나온 연도는 무려 1937년. 즉 계연수는 자기가 죽은 뒤에 나온 책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이다.

(4) 환단고기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에는 [천부경]이 실려 있는데, 천부경은 계연수가 1916년에 묘향산 석벽에서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계연수가 대종교단군교에 보냈다는 편지를 잠깐 보자.

제가 이를 마음속에 새겨 두고 구하려 해도 얻지 못하였더니 정성껏 성품 단련함을 기능으로 삼고, 약 캐기를 업으로 삼아 명산에서 구름과 놀기를 십여 년 동안 하다가 지난 가을에 태백산(*묘향산의 옛 이름)에 들어가서 유심히 깊은 골짜기를 걸어감에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은 곳에 이르니, 시내 위 돌 벽에 옛날에 새겨 놓은 것이 있는 듯한지라. 손으로 바위에 낀 이끼를 쓸고 보니 글자 획이 분명한《천부경》이 나타나는지라.

1911년에 자기가 편집한 책에 있는 것을 구하려해도 구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한다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왜 이런 뻔한 착오가 일어났을지는 명약관화하다.

10. 환단고기를 이유립이 오랫동안 작성했다고 믿는 다른 근거가 있는지?
재야사가 주장을 따르는 박성수 교수는 [환단고기]가 최초로 소개된 것은 이유립이 발간한 월간신문 [커발한]에 실린 것이라고 한다. 박교수는 그때가 1960년대 초라고만 말했는데, 그때는 [환단고기]라는 이름이 아니고 [환단유기桓檀留記]였다고 한다. 이 신문은 대전에서 발행되었다고 한다. [환단고기]는 계연수가 쓴 책이라 주장하니 그 이름이 [환단유기]가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이유립은 [환단유기]라는 이름으로 책을 만들고 있다가 공개 시점에서 [환단고기]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유기]는 고구려의 역사책 이름이고, [고기]는 단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니 [환단유기]보다 [환단고기]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이 분명하다.
또한 이유립은 1970년대에 월간 자유지에 [환단고기]의 내용을 계속 공개하고 있었다. 그때 잡지에 공개된 내용은 후일 [환단고기]에서 일부 수정되었다. 즉, [환단고기]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자유지를 통해서 추적할 수 있다. 아래 링크한 포스팅은 바로 그 과정을 추적한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환단고기]라는 이름만 나오지 않는다. [환단고기]의 세부 편명인 태백일사, 단군세기 등이 등장할 뿐이다.

     이유립, 환단고기를 주무르다 1
     이유립, 환단고기를 주무르다 2
     이유립, 환단고기를 주무르다 3 - 가림토의 진실
     이유립, 환단고기를 주무르다 4

11. 역사책이라는 게 틀린 내용이 있을 수도 있지 않는가? 그렇다고 다 위서라고 할 수 있나?
위서란, 그 역사책의 내용이 맞고 틀리고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책을 저술했다고 하는 사람, 그 책이 쓰였다고 하는 시대 등이 잘못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환단고기는 지은이가 거짓말이고, 지어진 시기도 거짓말인 위서다. 위서의 정의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을 참고하라.

장난감은 장난감일 뿐 - 위서론 [클릭]

이와 같이 환단고기는 이유립 혼자 있었다고 믿고 있는 책을 기억하여(?) 저술한 책이다.

보론
환단고기가 재야사가에게 알려진 때는? 2 - 환단고기와 대종교

보론2
[환단고기]의 첫 편인 삼성기는 전편을 안함로安含老, 후편을 원동중元董仲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이유립은 조선왕조실록의 세조 3년조에 있는 [安含老元董仲三聖記]라는 책 이름을 보고 삼성기를 지은 사람이 안함로, 원동중인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실은 저 책은 "안함, 노원, 동중 세 성인의 기록"이라는 뜻이다. 안함은 [해동고승전]에 실려있는 고승이기도 하다. 하지만 물론 재야사가들은 안함로, 원동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우길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불행히도 저 세 사람의 이름 순서를 바꿔놓은 사료가 현존하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황해도 해주목 편에는 안함安咸, 원로元老, 동중董仲 3명이 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적혀 있다. (사진은 Shaw님의 포스팅에서 업어왔음. 안함로, 원동중의 실체를 인정치 않는 식민빠들은 똑똑히 보아라 [클릭])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것이 증명된다. 저자 이름을 날조했다는 확실한 증거니까.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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