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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27 18:56
[한국사] 사료의 역산으로 추정해보는 삼국과 통일신라의 인구
 글쓴이 : 고이왕
조회 : 1,815  

夫餘는 長城의 북쪽에 있는데, 玄菟에서 천 리쯤 떨어져 있다.남쪽은 高句驪와, 동쪽은 挹婁와,서쪽은 鮮卑와 접해 있고, 북쪽에는 弱水가 있다.국토의 면적은 사방 2천 리가 되며,戶數는 8만이다.
(송화강 유역.)

高句麗는 遼東의 동쪽 천리 밖에 있다. 남쪽은 朝鮮,濊貊과, 동쪽은 沃沮와, 북쪽은 夫餘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丸都의 아래에 도읍 하였는데 면적은 사방 2천리가 되고 戶數는 3만이다.
(내륙 압록강-두만강 근처)

東沃沮는 고구려 蓋馬大山의 동쪽에 있는데, 큰 바닷가에 접해 산다. 그 지형은 동북간은 좁고, 서남간은 길어서 천리 정도나 된다.북쪽은 挹婁·夫餘와, 남쪽은 濊貊과 접하여 있다. 戶數는 5천戶인데, 大君王은 없으며 邑落에는 각각 대를 잇는 우두머리(長帥)가 있다. 그들의 말은 고구려와 대체로 같지만 경우에 따라 좀 다른 부분도 있다.
(개마고원에 위치)

濊는 남쪽으로는 辰韓과, 북쪽으로는 高句麗·沃沮와 접하였고, 동쪽으로는 大海에 닿았으니, 오늘날 朝鮮의 동쪽이 모두 그 지역이다. 戶數는 2만이다.
(동해안 북부 위치)

遼東郡,戶五萬五千九百七十二,口二十七萬二千五百三十九。縣十八:襄平,新昌,無慮,
望平,房,候城,遼隊,遼陽,險瀆,居就,高顯,安市,武次,平郭,西安平,文,番汗,沓氏
(요동군/5만 5972호,27만 2539명/요동반도 위치)

樂浪郡,戶六萬二千八百一十二,口四十萬六千七百四十八。縣二十五:朝鮮,俨邯,浿水,含資,黏蟬,遂成,增地,帶方,駟望,海冥,列口,長岑,屯有,昭明,鏤方,提奚,渾彌,吞列,東傥,不而,蠶台,華麗,邪頭昧,前莫,夫租。
(낙랑군/6만 2812호,40만 6748명/현 평안도,황해도 부근 위치.)

玄菟郡,戶四萬五千六,口二十二萬一千八百四十五。縣三:高句驪,上殷台,西蓋馬。
(현도군/4만 5006호/22만 1845명/요동 동부.)
(한사군,요동의 인구는 한서지리지 출처)

(마한)5십여國이 있다. 큰 나라는 萬餘家이고, 작은 나라는 數千家로서 總 10餘萬戶이다.
(경기도,충청도,전라도부근 위치.)

弁韓과 辰韓의 합계가 24國이나 된다. 大國은 4~5천家이고, 小國은 6~7백家로, 총 4~5萬戶이다
.
(변한은 경상남도,진한은 경상북도 부근 위치.)

후일 삼국의 영토가 되는 지역은 이정도고 이 인구는 한나라 시기의 인구이다.

고구려는 부여,옥저,낙랑,현도,요동,부여,동예의 일부의 영토를 차지하고
백제는 마한의 대다수(삼국통일전쟁 시점 기준ㆍ의자왕의 대 신라 공세~멸망 직전 부근쯤에 진한과 변한 일부 차지),신라는 동예 일부,진한,변한 부근을 차지한다.

당시 인구를 후일 삼국의 강역에 대충 맞추어보면 고구려 280,000~290,000호,백제 10만호 미만,신라 5만호 이상의 수준이었음을 볼수 있다.

물론 시대가 발전하면서 개발도의 차이도 조금씩 낮아지지만 (삼국시대 당시 개발도는 북쪽>남쪽이고 서쪽>동쪽이었다. )

대충 인구를 맞추어보면(호당 4.5명 기준) 후일 고구려 영역 140만,백제 ,신라 합이 75만명 이상이다.

멸망 당시 고구려의 인구는 고구려가 멸망할때의 인구 69만호와 연남생이 투항한 10만호등의 합일것이고 가장 인구가 많을때는 이것보다 더 많았을것이다.

백제는 당서 76만호와 당평백제비 24만호 둘이 제일 신뢰할만한데 원삼국 당시 인구랑 비례해보면 당평백제비가 더 신뢰할만 하다.

신라는 특별한 기록은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강 영유 이후로는 백제보다 많았을걸로 추정한다.

지금이나 그때나 중국의 중원,한반도,일본의 인구밀도는 비슷할걸로 추정되고 중원의 면적 300만km2에 이후 당이 안정세를 찿으며 확보한 인구 5000만을 역산하면 인구밀도 km2당 17명 전후가 나오고 전성기 인구 8000만과 대비하면 27명 전후가 나온다.

그걸 기반으로 보면 통일 직후 신라의 면적 약 18만km2의 인구는 약 300만 전성기에는 약 500만 전후의 인구가 나왔음을 추정할수 있다.

대충 고구려 인구 69 10(연남생의 투항) a(전쟁중 유실)만호 즉 79 a만호의 인구는 대충 400만 전후로 추측할수 있다고 본다.원삼국 당시 고구려 강역의 140만에서 3배 전후로 늘어났다고 볼수 있다.

백제,신라 역시 원삼국시대와 비교해서 3~4배의 인구가 증가했다고 볼수 있게 된다.

그리고 고구려 멸망당시 평안도 부근(낙랑)의 인구는 대충 120만 전후라고 볼수 있게된다.

그 영역의 소유는 사서에 따라 다르지만 대충 반씩 나누어 가졌다고 가정하면 통일 신라의 인구는 560만이라고 볼수 있게된다.

디시위키가 의외로 꽤나 정확했을수도.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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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7-12-27 19:08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그런데 고구려 79만 호는 중심지, 그러니까 당에 함락된 지역 인구에 한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Marauder 17-12-27 19:18
   
이 결론을 어디선가 농담으로 이야기한걸 들은거같은데... 아무튼 신라의 인구가 생각보다 많았음을알수있죠. 고려때는 당연히 더많았을테구요...
     
Marauder 17-12-27 19:24
   
어디선가 봤다싶더니 출처가군마갤이었군요...
도배시러 17-12-27 19:59
   
전한의 인구는 수수께끼. 너무 많아요.
후한 진 북위 수 당 으로 갈수록 인구가 줄어가는데...
전한때의 인구 폭발 원인이 뭔지 알수가  없음.

진시황의 통일전쟁에서 다수가 죽었고...
진시황 이후에 내란으로 사람이 꾸준히 죽었고...

전한때는 흉노전쟁으로 다수가 죽고
서역에서 천리마 얻을려고 상당수의 인구가 외부로 유출 되었음.
그때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차나 명마에 목숨거는 부류가 있었는데, 전한의 황제가 심각했었음

역대 중국왕조에서 전한의 인구가 가장 많았던 이유는 뭘까요 ?
     
Marauder 17-12-27 20:27
   
찾아보니까 당나라때는 다시 전한때 인구를 추월했을거라고 추정되는군요. 전한시기의 경우 흉노를 격파하고 조선까지 격파한 전성기였고...
후한은 인구가 조금 적더라도 어느정도 숫자를 유지하다가
 그 뒤 당나라가 나오기 전까지는 제대로된 통일왕조도 없고 통계도 제대로 낼수 없었죠. 진이건 수건 쉽게 무너졌으니깐요.
          
도배시러 17-12-27 20:45
   
바쁠때는 호수만 기록하고...
적당히 살만하면 인구 기록을 남겨 둡니다. 전한 시기에 못 미쳐요.
               
Marauder 17-12-27 22:33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53traian&logNo=220904080507

이거보고 쓴거에요. 뭐 기록된것만 믿는다면 어쩔수 없지만요.
                    
도배시러 17-12-28 00:46
   
여기서도 전한의 전체인구 5,900만명을 넘었던 후대의 기록은 안나오네요.
도배시러 17-12-27 20:16
   
중국의 전한을 기준으로 하면 인구가 줄어드는게 정상이 아닐런지 ?
옆나라는 인구가 계속 줄어가고, 우리 조상들은 인구가 계속 늘어가고...

하대 신라와 연관있는 왕조가 당, 송, 요 나라.
옆집은 전한시절보다 인구가 줄었을텐데 ? 
우리 조상들이 삼국 이후에 인구가 줄어가는것이 정상 아닌가 ?
밥밥c 17-12-27 20:32
   
백제는 당서 76만호와 당평백제비 24만호 둘이 제일 신뢰할만한데 원삼국 당시 인구랑 비례해보면 당평백제비가 더 신뢰할만 하다.



 본문중 위의 문장은 상당히 웃기는 이야기인데, 사실 당평백제비에서는 백제의 인구가 나오기 때문이죠.

 그리고, 당평백제비에 나오는 백제의 인구는 '620만'입니다.

 '620만'이라고는 기록은 쏙 빼고, 호구만을 말한다음 인구를 다시 계산하는 것은 이미 상식적이지는 않지요.





 무릇 5도독(都督) 37주(州) 250현(縣)을 두고 호(戶) 24만, 口 620만을 각각 편호(編戶)로 정리하여 모두 오랑캐의 풍속을 바꾸게 했다.


http://gsm.nricp.go.kr/_third/user/search/KBD008.jsp?ksmno=2740 ( 당평백제비)
도배시러 17-12-27 21:04
   
한서지리지 홍농군 475,954명
弘農郡,戶十一萬八千九十一,口四十七萬五千九百五十四。縣十一:弘農,盧氏,陝,宜陽,黽池,丹水,新安,商,析,陸渾,上雒。

구당서  홍농군 88,045명
虢州望漢 弘農郡。隋廢郡為弘農縣,屬陝州。隋末復置郡。義甯元年,改為鳳林郡,仍于盧氏置虢郡。武德元年,改為虢州,改鳳林為鼎州。貞觀八年,廢鼎州,移虢州於今治,屬河南道。開元初,以巡按所便,屬河東道。天寶元年,改為弘農郡。乾元元年,復為虢州,以弘農為緊縣,盧氏、硃陽、玉城為望縣。天寶領縣六,戶二萬八千二百四十九,口八萬八千四十五。西至京師四百三十里,東至東都五百五十三里。

한서 여남군 2,596,148명
汝南郡,戶四十六萬一千五百八十七,口二百五十九萬六千一百四十八。縣三十七:平輿,陽安,陽城,郦強,富波,女陽,鮦陽,吳房,安成,南頓,朗陵,細陽,宜春,女陰,新蔡,新息,灈陽,期思,慎陽,慎,召陵,弋陽,西平,上蔡,浸,西華,長平,宜祿,項,新郪,歸德,新陽,安昌,安陽,博陽,成陽,定陵。

구당서 여남군 60,415=> 460,205 인구증가 ?
蔡州上隋 汝南郡。武德四年四月,平王世充,置豫州總管府,管豫、道、輿、息、舒五州。豫州領安陽、平輿、真陽、吳房、上蔡五縣。七年,改為都督府,廢輿、道、舒、息四州。貞觀元年,罷都督府,廢平輿、新蔡二縣,復以道州之郾城,息州之新息,朗州之朗山,舒州之褒信、新蔡五縣來屬。天授三年,又置平輿、西平兩縣。開元四年,以西平屬仙州。二十六年,省仙州,復以西平來屬。天寶元年,改為汝南郡。乾元元年,復為豫州。寶應元年,改為蔡州。舊領縣十,戶一萬二千一百八十二,口六萬四百一十五。天寶領縣十一,戶八萬七百六十一,口四十六萬二百五。去京師一千五百四十里,至東都六百七十里。

(경사, 경도) 장안의 인구는 당 > 전한 이지만 지방 인구는 전한이 압도적으로 우세
신수무량 17-12-28 09:56
   
대충 인구를 맞추어보면(호당 4.5명 기준) <-- 호당 4.5 너무 적다고 생각하는데요? 당시 당은 한 호당 약 10명 신라는 호당 약 8명이라고 하는데...
1960년대 이전까지 한 호당 출생율이 5~7명이었습니다. 이것이 갑자기 늘어났을리가 없을 것 같고 1~2명은 이른시기에 사망했을 수도 있겠지요..그렇다고 해도 4.5명은 너무 적고...이 수치는 1980년대 정도의 호구수라 보이는데요...
그러면 우리나라는 한 호 당 평균 약 8명이 타당하다고 보이는데...
더 고려해야 할 것은 대가족형태였는가? 아니면 지금처럼 분가한 단독가족형태였는가 입니다.
우리나라 가족형태의 변화를 보면 대가족형태였을거라는 것이 더 일리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면 위에서 가정한 8명도 적습니다.
위 댓글에서도 보이듯이 당나라에 귀속된 백제의 가구수가 76만호 인구는 약 620만명 ...호당 약 8명....
진정해진정 17-12-28 14:21
   
"신라는 한강 영유 이후로는 백제보다 많았을걸로 추정한다"는 근거가 무었인지요?

'개인적'이라고 서술한 점과 마땅한 근거가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합당한 추정으로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도배시러 17-12-28 14:28
   
'추정한다" 라는 말만해도 양심적인 겁니다.
근거없이 현도군이 압록강이라느니... 진번군이 황해도라고 주장하는것보다는 양심적이죠.
          
진정해진정 17-12-28 16:32
   
저는 백제측의 인구가 더 많았거나, 적어도 비등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지적했습니다.

해당 발언이 마음에 좀 걸리더군요.
그냥 심술 좀 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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