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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29 11:56
[한국사] 고구려 유민 남단덕의 묘지명 간략 소개
 글쓴이 : 고이왕
조회 : 1,554  

출처 http://hermod.egloos.com/2205434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제96회 콜로키엄]

전쟁과 운명: 入唐 고려인 생존상황 고찰
- 새로이 발견된 당대 남단덕(南單德) 묘지명 연구의 시각으로부터 -
6월 9일 목요일 오후 4시 규장각 1층 회의실(112호)

왕연룡(王連龍, 중국 길림대학 고적연구소)
개요: 당고종(唐高宗) 총장 원년(總章元年,668년), 고려를 멸망하게 만든 전쟁으로 인해 고려인들은 고향을 멀리 떠나 당 왕조의 안쪽 지역에까지 이주하게 된다. 이로부터 다른 운명과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다. 학술계에서 입당 고려인들의 생존상황에 대한 연구는 항상 중요시되었다. 이 과제의 중요한 학술가치에 비추어, 본 논문은 새롭게 발견된 남단덕의 묘지명에 대한 연구라는 시각에서 출발하여 입당고려인들의 인생경력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또한 사례연구를 사회현상을 연구하기 위한 착안점으로 삼는 방법을 시도함으로써, 이것이 방법론 면에서 관련문제의 연구에 아무쪼록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一、안동(安東)에 유배되어 거주하다.
총장 원년(668년), 당왕조는 고려를 멸망시킨 후 고려의 옛 땅에 9개의 도호부(都護府)를 설치하고, 42개의 기미주(羈縻州), 100개의 현을 설치하고 모두 안동도호부의 통일관리 하에 두었다. 당 왕조는 공을 세운 고려의 추장(酋長)들을 지방관리로 중용하여 화이(華夷)관리로써 고려의 백성들을 공동관리하였다. 남단덕(南單德)의 가족은 명문거족으로서, 안동마미주(安东磨米州)로 이주되었다. 남단덕의 조부 남적(南狄)은 기미주 도독을 지냈다. 총장 2년(669년), 당 왕조는 고려이주민들을 하서(河西), 롱우(隴右), 강남(江南), 산남(山南) 등 지로 이주시켰다. 남단덕의 부친 남우(南于)는 이주민들을 따라 산남으로 가서 귀주자사(歸州刺史)를 지냈다. 무주성력(武周聖歷) 2년(699년), 남단덕은 귀주(歸州)에서 태어났다. 당 왕조의 내지로 이주당한 고려인들은 군진(軍鎮)과 성방(城傍)에 따라 모여 살면서 가을에는 모아 군사훈련을 하고, 봄에는 해체하였으니, 전시에는 군인으로, 한가한 때에는 농민으로 살았다. 즉 백성과 번병(藩兵)의 신분을 겸하고 있었다.
二、처음에 사생(射生)이 되었다.
개원(開元)초에 남단덕은 내공봉사생(內供奉射生)으로 남았다. 사생(射生)은 원래 사렵복무생(射獵服務生)으로, 제왕을 모시고 사냥(遊獵)을 하였는데, 후에 중앙숙위금군(中央宿衛禁軍)으로 바뀌었다. 당 왕조 초기에는 사생을 죄예(罪隸)에서 선발하였다. 전쟁포로, 망국한 소수민족 가운데 용맹스럽고 기마와 활쏘기에 능한 자가 이른 시기의 사생의 공급원의 하나였다. 당 왕조는 변강 기미주의 고려 장병들의 육성과 선발을 중시하였다. 고려 번장인 고정방(高定方), 고문협(高文協), 고족유(高足酉), 고성문(高性文), 고자(高慈)、고질(高质)、왕모중(王毛仲) 등은 모두 사생관, 위부중랑장(衛府中郎將)을 제수받아 경성을 수위하는 중임을 담당했었다. 이러한 인재선발(取士) 전통과 환경배경 및 가족세력의 영향에 의해 남단덕은 비교적 쉽게 내공봉사생으로 선발되고 삶의 궤도는 바뀌어 궁궐에 드나들며 황제의 신변을 지키게 되었다.
三、양번(两蕃) 반란을 평정하다.
개원(开元) 18년(730년), 거란의 가돌우(可突于)가 반란을 일으키자 남단덕은 중앙금군의 신분으로 반란을 진압하러 갔다. 영주(營州) 반란진압군 지휘관은 분음공(汾陰公) 설초옥(薛楚玉)이었다. 그는 일찍이 중앙금군(中央禁軍)에서 좌우림장군(左羽林將軍)직을 지냈으며 남단덕과는 구면이었다. 남단덕의 경력과 마찬가지로, 고려의 번장 고적유、고질、고자、고덕무(高德武) 등 영주 성방(城傍)의 고려자제들은 모두 거란, 해(奚)와 전쟁을 치른 적 있으며 대부분은 공훈을 세웠었다.
四、归降封王
천보(天寶) 14년(755년), 안록산(安祿山)이 범양(范陽)에서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에 반란을 일으켰다. 남단덕은 영주군대에 있었고, 또 개인발전의 도모 등 원인으로 인해 반란군에 참가하였다. 건원(乾元) 2년(759년), 사사명(史思明)은 안경서(安慶緒)을 죽이고 그 군대까지 합하여 다시 한번 낙양(洛陽)을 공략하려고 하였다. 그런 중요한 시각에 남단덕이 군대를 거느리고 당 왕조에 투항하였다. 남단덕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요양군왕(饒陽郡王), 개부이동삼사(開府儀同三司), 좌금오위대장군(左金吾衛大將軍)로 봉해졌고 식읍(食邑)이 삼천호(三千戶)였다. 남단덕이 왕으로 봉해진 상황은 고려 번장들 가운데서는 보기 드문 경우이다. 왕으로 봉한 것은 당시의 전쟁형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당 왕조도 반란군세력을 와해시키고, 민족모순을 완화시키는 등에 대한 고려가 있었던 것이다. 남단덕 외에 고려 번장 고선지(高仙芝) 왕사례(王思禮)도 “안사의 난(安史之亂)”평정에 참여했으나, 전자는 전쟁에 패하고 살해당했으나, 후자는 공으로 승진되었으니, 결과는 사뭇 다르다.
五、공을 세운 후 벼슬에서 물러나다.
남단덕은 왕으로 봉해진 후 장안에 살면서 편안하게 만년생활을 누렸다. 남단덕은 대력(大曆) 11년 3월 27일에 장안의 영녕리(永寧里) 사저에서 죽었는데, 죽을 때 나이가 78세였다. 남단덕의 일생은 운명이 굴곡적이고 기복이 많았다. 비록 망국한 고려인 출신이었지만, 끝내 당나라의 군왕이 되었으니 삶이 그야말로 전기적 색체를 띠었다고 하겠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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