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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21 17:33
[한국사] 소소한 역사탐방......세검정에서 백석동천을 지나 환기미술관까지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998  

소소한 역사탐방......세검정에서 백석동천을 지나 환기미술관까지





정자가 있는 이 지역은 한성의 북방 인후(咽喉 : 목구멍)가 되기 때문에 조선 영조 때 총융청(摠戎廳)을 이곳에 옮겨 서울의 방비를 엄히 하는 한편, 북한산성의 수비까지 담당하게 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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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융청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군사들이 쉬는 자리로 정자를 지은 것이 바로 세검정인데, 당시 총융청감관으로 있던 김상채(金尙彩)가 지은 창암집 蒼巖集에는, 육각정자로서 1747(영조 23)에 지어졌다고 적혀 있다.

 

이곳은 도성의 창의문(彰義門) 밖 삼각산과 백운산의 두 산 사이에 위치하며,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탕춘대(蕩春臺)라는 언덕이 있었고, 부근에는 통일신라 때 창건된 장의사(藏義寺)라는 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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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의 정자는 1941년 화재로 타 버렸으나, 1977년 옛 모습대로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자형의 3칸 팔작지붕 건물이다.

 

세검정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궁궐지 宮闕志에 의하면, 인조반정 때 이귀(李貴김류(金瑬) 등의 반정인사들이 이곳에 모여 광해군의 폐위를 의논하고, 칼을 갈아 씻었던 자리라고 해서 세검정이라 이름지었다고 전한다.

 

동국여지비고 東國輿地備攷에는 세검정은 열조(列朝)의 실록이 완성된 뒤에는 반드시 이곳에서 세초(洗草 : 史草를 물에 씻어 흐려 버림)하였고, 장마가 지면 해마다 도성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물구경을 하였다.”고 적혀 있다.

 

또한, 한경지략 漢京識略에는 정자 앞의 판석은 흐르는 물이 갈고 닦아서 인공으로 곱게 다듬은 것같이 되었으므로, 여염집 아이들이 붓글씨를 연습하여 돌 위는 항상 먹물이 묻어 있고, 넘쳐흐르는 사천(沙川)을 거슬러 올라가면 동령폭포가 있다.”고 하였다. 그 밖에 세검정과 관련된 시로 정약용(丁若鏞)유세검정 遊洗劍亭이 있다.

 

석파랑(흥선군의 별당지)에서 길을 건너 직진을 하면, 도로가에 멋진 정자가 나온다. 칼을 씻었다는 세검정 이다. 세검정은 서인이 정권을 잡은 인조반정과 관련이 깊다. 광해군은 계비인 인목대비의 호를 삭탈하고, 서궁에 유폐를 시킨다. 특히 인목대비의 아들인 영창대군을 유배보내고 사실상, 강화에서 살해를 한다. 이에 폐모살제를 구실로 1623년 김류,이귀, 심기원, 김경징 등 반란공신은 세검정에 모여 반정을 모의한 후 칼을 씻으면서 결의를 다진다.

 

반정군은 모화관에서 심기원의 병사와 합류를 한 후 창의문을 지나 동궁(창덕궁)을 점령함으로써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반정에 성공한다.

광해군은 역모의 기미를 알았지만,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김개시라는 상궁 때문이다. 실록은 김개시를 다음과 같이 평한다.

 

김상구는 이름이 개시 즉 개똥이였는데, 나이가 차서도 용모가 피지 않았는데, 흉악하고 약았으며 계교가 많았다, 춘궁의 옛 시녀로서 왕비를 통하여 나아가 잠자리를 모실 수 있었는데, 인하여 비방(성적기교)으로 갑자기 사랑을 얻었으므로 후궁들도 더불어 무리가 되는 이가 없었으며, 드디어 왕비와 틈이 생겼다

 

실록에서는 보기 드물게 여자의 용모와 잠자리 비방 등을 직접 거론한다. 김개시는 못생겼지만, 계교에 뛰어나서 광해의 총애를 받는다. 그런데도 그냥 상궁에 머문다? 솔직히 조금은 이상한 노릇이다.

 

이 곳 세검정은 의외로 정약용의 흔적도 남아있다. 목멱산 아래 명례방(명동) 집에서 벗들과 술잔을 기울이던 1791년 어느 여름날 다산이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사방에서 먹장구름이 몰려오고 우랫소리가 저 멀리에서 들려오던 무렵이다. 곧 폭우가 쏟아질 기세다.

 

말을 타고 창의문 밖으로 냅다 달린다. 아니나 다를까 비가 후덕이기 시작한다. 세검정에 올라 자리를 벌이니 비바람 크게 일어나 산골 물이 사납게 들이친다. 잠시 후 산골 물도 잦아 들고 해도 뉘엿뉘엿 저문다. 다산은 벗들과 더불어 베개를 베고 누워 시를 읇조린다. 늦게 도착해서 이 장관을 보지 못한 벗 심화오를 골리며 한 순배 더 마시고 집으로 돌아간다. 다산이 세검정에서 벗들과 노닐었던 기록 유세검정에 있는 내용이다. 다산은 이 글에서 세검정을 즐기는 방식을 일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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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검정의 빼어난 풍광은 오직 소낙비에 폭포를 볼 때 뿐 이다. 그러나 막 비가 내릴때는 사람들이 옷을 적셔가며 말에 안장을 얹고 성문밖으로 나서기를 내켜하지 않고, 비가 개고 나면 산골 물도 금세 수그러들고 만다.

이 때문에 정자가 저편 푸른 숲 사이에 있는데도, 성중의 사대부 중에 능히 이 정자의 빼어난 풍광을 다 맛본자 가 드물다.

 

세검정에서 하천을 따라 걸어가다가 오른쪽 골목길로 접어들면 금세 깊은 산속에 이른다. 이곳을 백사리 계곡으로 불리는데 별서정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별서서원을 지은이는 연객 허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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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왼쪽 길가에 백석동천이라 각자한 바위가 나온다, 여기서 백석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우선 백악산(즉 북악산)의 옛 이름 백석을 때서 백석동천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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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열서전에 보면, 신선 백석생이 들어가 살았다고 해서, 백석동천이라 했다는 설도 있다, 이 백석은 신선이나 하늘 위 세상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백석에 신선이 노니는 동천복지를 구현하고자 했기 때문에 백석동천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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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타고 올라가면, 중턱언덕에 카페가 나온다. 바로 산모퉁이 카페이다. 이 산모퉁이 카페는 목인박물관 수장고와 김의광 관장 작업실이다. 2007년 커피프리스 1호점의 이선균의 집으로 촬영하면서 알려졌다. 그 후 청담동 스캔들과 유나의 거리 촬영 장소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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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걸어가면 야생화갤러리를 거쳐 박노해 시인이 만든 라 카페 갤러리가 나온다. 박노해의 시 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라는 시가 있다.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산

가장 높고 깊은곳에 사는

께로족 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희박한 공기는 열 걸음만 걸어도 숨이차고

밤길에 떨어지는 돌들이 아찔한 벼랑을 구르며

태초의 정적을 깨뜨리는 칠흑 같은 밤의 고원

 

신기루인가

멀리 만년설 봉우리 사이로

희미한 불빛 하나

 

산 것이다.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 이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아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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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내려오면 환기미술관이 나온다

 

환기미술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특히 변동림(김향안)과 김환기에 대한 할 말이 많지만, 지극히 사적인 것이기에.....

그러나 김환기의 절친인 김광석 시인의 저녁에라는 시가 생각이 난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그림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그림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그림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서 사라지고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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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기 미술관을 떠나며, 소소한 오늘의 탐방이 끝이 난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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