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왕조라고 부르는 놈치고 제대로 된 놈이 없는데...이씨왕조라는 용어 자체를 왜놈들이 만들어 붙인 거임...그런 용어로 조선을 비하하는 걸 봐서 상당히 왜에 동조적인 듯 보임...그리고-... 어떻게 ItZiMoTal을 불멸로 보나? 별 시덥지도 않은 소리하고 있네....영어든 한글이든 일어든...그리고 역사든...뭐 하나 제대로 표현할 줄 모르는 듯
역사는 우연과 필연의 조합이라는 말이 있지요. 연애와 결혼은 타이밍이란 말이 있고.
조선 왕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지배적인 것 같은데, 사실 왕조 말기에 근대화가 겹쳐서 그런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것 같네요. 거기에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고통받은 트라우마도 작용하는 것 같고, 제국주의가 악의적으로 퍼뜨린 식민사관 탓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대중들의 부정적인 인식과 다르게 조선 왕조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상당히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통치 시스템을 갖춘 왕조였고, 문화적으로도 풍성했던 왕조입니다. 서구 근대 문명 수준에 이르는 합리성은 아니더라도 상당히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통치 체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조선왕조실록같은 문헌이나 경국대전같은 성문법 체계가 확실하게 자리잡은 나라가 별로 없어요. 그리고 신분제라고 해도 과거를 통해 등용된 양인의 비율이 1/4~1/3에 달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후기에 매관매직이 성행했고, 수탈이 심했지만 그것은 왕조 말기의 현상이거든요. 그냥 타이밍의 문제. 그리고 이어진 식민 지배로 인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할 뿐이지 사실상 조선 왕조가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왕조는 아니에요.
그리고 문종의 경우 좀 오해가 많은 것 같아서 문종 폐하 홍보 좀 할께요. 사실 문종이 먼치킨에 가까운 분이에요. 정조만큼 외모가 뛰어나고 무예도 출중하면서 다방면에 재주가 많았던 분입니다. 과학기술에 관심도 많고, 실제로 뛰어난 재능까지 갖추신 분입니다. 훌륭한 정책 입안가였고, 백성 구휼에 관심을 많이 쓰신 훌륭한 통치자였고, 집현전을 통해 합리적 공론화 과정을 거쳐서 정책을 만드시는 뛰어난 리더로서의 자질도 갖춘 분이었습니다.
재위기간이 짧아요. 그런데 우리의 세종대왕님께서 괘기와 여성들을 너무 좋아하셔서 ㅋㅋ 말년에 당뇨로 고생하셨거든요. 그래서 병상에 약 10년간 누워 계셨어요. 그 기간동안 실질적으로 조선을 통치했던 것이 문종입니다. 그리고 재위 2년. 실질적으로 12년을 통치하셨구요. 즉 세종 말기 10년(대리청정 7년 반)은 문종의 통치 기간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에요.
문종의 업적을 대강 나열하면 세종 때 시범 사업이었던 구휼제도 정착. 4군 6진 완비(종서씨가 괜히 단종빠가 아니에요), 화차 직접 설계(이게 과거 로켓포입니다), 화차와 관련된 부대 운용 고안 및 부대 인원 수 결정, 환도 길이 표준화. 전쟁사 편찬 지시, 병법서 편찬 지시(심지어 진법도 만듬), 정말 놀라운 것은 여러분 측우기 아시죠? 측우기 아이디어 제공. ㅋㅋ 우리의 세종대왕님은 직접 하시기보다 시키고 감독 관리에 능하신 갑질 마스터시지만, 문종은 갑질의 희생자(?)였던 비운의 능력자였던 것 뿐입니다. 이른 나이에 요절(사실 39살에 죽어서 이른 나이도 아니었구요)하셨던 것도 과로사 때문이었다는 .. 풍문도 있지만 사실은 종기로 인해 고생하다가 사망했다는 설이 지배적입니다.
그리고 세종 말에 명나라가 오이라트에 대차게 발려서(토목의 변) 조선 전기에는 군사력 증강에 대단히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이 모든 것이 망테크를 타기 시작한 것은 사실 세조 때부터입니다. (단종이야 뭐 ㅋ)
본래 양반이란 말도 사실 관료를 지칭하는 말이에요. 일제 시대 거치면서 사농공상 신분 체제에 대한 고정관념이 자리잡혀서 마치 카스트 제도에 준하는 제도인 것 같은 인식이 있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체면 문화가 일부 있긴 했지만 양인들의 경우 신분 상승이 충분히 가능했구요. 오히려 함정은 노비들의 숫자가 전체 인구의 30~40%(15c~17c기준)에 달했다는 점입니다. OTL.하지만 어떤 사회든지 피라미드 식 형태의 지배 구조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ㅎㅎ
양반에 대한 인식도 변화해서 현직 관료가 아니라 집안의 문제로 변질되었고, 사실 3대째 관료를 못하면 양반이 아니다 라는 새로운 인식이나 기준도 생겨난 겁니다. 사실 여러분의 상당수는 조상님이 노비였을 겁니다. 라고 해도 놀라지 마세요. 이미 조선 중후기부터 족보의 위조와 족보 팔이가 성행했고, (영정조 때가 피크였다는 농담까지 ㅋ) 오늘날에 와서는 전국민 조상이 모두 양반이 되어 버렸지만, 오늘날 남아있는 족보의 대부분은 위조된 것이니, 유전자 검사 결과 여러분의 조상님과 여러분의 DNA가 다르더라도 당황해 하지 마십시오. 민주 사회에서는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돈은 좀 중요합니다만 ㅋ ^^
1. 조선 500년동안 일상적인 일인양 쓰면 곤란합니다 -> 조선 500년동안 노비가 30~40%에 달했다고 한 적 없는데요.
2. 근대 통계학이 들어온지 얼마 안됩니다 -> 수치의 정확성은 글의 맥락 상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구요. 외국 학자의 논문을 인용한 것 뿐입니다. 맥락을 좀 보시죠. 지배구조 특성 상 하층민이 더 많았다는 것 뿐이고. 심지어 한 번 노비면 평생 노비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그리고 통계학 자체가 근대에 나온 학문이에요. 통계학을 만든 이가 골턴(우생학은 병맛이지만) 입니다. ㅋ
3. 그리고 농업 기반의 사회에서는 반드시 노예가 아니라고 해도, 노예에 준하는 노동력이 필수적입니다. 조선시대, 특히 천인에게는 소유권과 거주이전의 자유가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현대에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면 중국엔 아직도 완전한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습니다. 특히 농민공들 경우 ㅋ
4. 영조가 등극한 해를 떠올려 보시죠. 노비의 비율이 30~40%에 달했다는 말은 외국 학자의 논문을 인용했을 뿐입니다. 물론 이 학자는 조선 시대가 노예 사회라는 취지로 논문을 썼고, 개인적으로 조선시대가 노예 사회였다는 학자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습니다. 주장이 다른 사람의 의견이라도 해당 사람이 조사한 결과를 차용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주장하는 바가 일치해서 다른 사람의 조사를 인용하는 것은 아닙니다. 전혀 다른 맥락으로 사용되는데 굳이 수치를 문제삼는 이유가 무엇인지. ㅋ
또, 이 30~40%라는 수치는 글의 맥락상 중요한 수치가 아닙니다. 심지어 괄호 안에 15~17세기라는 시기까지 병기를 했습니다. 답변을 달 때는 댓글을 쓴 사람의 의도를 어느 정도 파악한 이후 답변을 달아주시죠.
중앙집권이 강력하고, 농업 중심 경제인 조선에서 중앙 정치가 어느 순간을 시점으로 개판이 된 탓에 이후 민생이 점차 나빠졌던 상황을 기술한 것 뿐입니다. 자영농이 소작농이 되고 소작농이 노비가 되거나 유랑민이 되는 상황 속에 노비의 비중이 올라갔던 것이고,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시기를 병기했습니다. 글 좀 제대로 보세요.
그리고 글의 전체 맥락에 반대를 하지 않고 순수하게 보충을 하실 요량이라면 , 이 부분은 오해를 살 여지가 있으니 보충을 하겠다고 하고 정말 내용을 보충을 해주시던가. 이건 뭐. 보충도 아니고.. 과거 문헌은 불완전한 자료다. 그럼 뭐 .. 30%아니고 80%라고 해도 되는 겁니까? 통계학은 근대에 나왔다. 그게 뭐 어쨌다구요. 그냥 불완전하다 라는 것이지 틀렸다 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보충을 할 것이라면 보충을 해주던가. 뭥미
어느 한 문장이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방의 의도를 곡해하면 .. 난감하죠. 그리고 문제점을 수정하거나 지적할 때는, 왜 그것이 문제인가를 먼저 말을 하고, 이렇게 수정해야 한다고 해야지. 의도도 제대로 밝히지 않고..심지어 불분명함. 이건 뭐 수학에서 결론을 내는 과정에서 완벽한 오류를 발견했다는 듯. .. 제발 좀.
5. 대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죠? 글의 맥락에 동조를 한다는 것인지, 반대를 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풍부한 지식으로 보충 설명을 해주겠다는 것인지.. 개별적인 댓글을 쓰시던가. 댓글에 종속되는 답변을 달면서, 댓글에 대한 자신의 입장도 분명히 밝히지 않고 횡설수설하면 어쩌란 말입니까. 대체 하고자 하는 애기가 무엇이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가 영화제목인 줄만 알았더니 ㅋ
예를 들면 영락제가 제위를 찬탈하면서 금화학파를 숙청하는데 나중에 정권을 잡고나서 정권을 안정적으로 이어야 하는데 이런 역활을 하는 금화학파 등의 유학자들을 숙청하다 보니 영락제 시기에는 늘 불안정 했죠.
근세조선도 마찮가지라고 보면 됩니다. 세종은 정권의 정통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용비어천가를 짓고 유학를 장려 하죠. 예를 들면 당시 왕실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할 정도로 무식쟁이가 많았고 늘상 치고 박고 싸웠다고 하죠. 이걸 세종이 뜯어 고치죠. 이건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런 세종의 문민정책에 의한 왕권의 정통성 확립 정책이 세조로 무너지죠. 그런 세조의 정책이 어떠 했는지 알 수 있는 것죠. 우리가 알고 있는 오랑캐의 어원이 되는 울량합이 세조때 무너 집니다. 세조 때 군사력은 상당히 강한 편 이었습니다.
성종 때 왕권의 정통성을 강화 하다가 연산군 때 무너지고 중종 때 어느 정도 확립 되지만 선조시기는 왕권의 정통성이 많이 약한 상태 였습니다. 선조는 늘 상 왕권의 정통성 때문에 고통을 받아서 정통성 있는 중전의 아들을 왕으로 세울려고 했으나 실패했고 광해군이 집권하지만 광해군 역시 정통성에 문제가 있게 되지요.
결국은 숙종 시기에 이르러 절대왕권이 완성 되는 것 입니다. 숙종은 아무 하자 없는 조선시기에 예가 없는 임금으로 송시열 등을 숙청 할 수 있을 정도의 절대권력의 임금 이었죠. 영조 시기는 또 정통성 시비가 일고 영조의 뻘짓으로 사도세자를 죽임으로써 정조가 곤란을 겪고 결국은 왕실의 쇠약으로 망하는 것 입니다.
거시적으로 보면 환경의 압력은 문명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제가 조선의 발전이 유교때문에 저하된 것이 아니라고 한 이유는 이런 거시적인 환경에서 인간의 삶이 자유롭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강조 한 것이었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만일 임진왜란으로 일본이 도공을 납치해 도자기 생산을 하는 일이 없었고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설 혼란기에 도자기를 구하던 서구의 상인들이 조선의 백자를 대체품으로 선택 했다면 어땠을까요?
당시에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베트남도 있었긴 하지만... 많은 역사가 바뀌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인물, 어떤 사건이 역사를 바꾸기도 하지만 모든일이 계획대로 발생하고 진행하지는 않습니다. 운과 운명이랄 수 있는 수많은 변수가 발생하고 환경은 거시적인 역사를 조종합니다.
인류가 가장 먼저 발생한 아프리카는 이집트라는 위대한 문명을 일구었음에도 쇠퇴를 하고 그리스와 로마 중국에 문명의 패권을 넘겨줍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는 수메르는 어디선가 검은머리 외국인이 문자와 법율을 가지고 도래했다고 합니다.
동유럽에는 신석기 시대의 거대 유적이 발굴되기도 하고
어떤 중국학자는 서해바다가 8천년전까지 육지였다는 지구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황해문명론을 설파 하기도 합니다.
글로 남겨지지 않은 역사도 많고 아마도 우리가 모든 것을 알게 되는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겁니다.
한반도의 조상들은 우리에게 많은 물질적 부를 안겨주지 못했지만 수 많은 무형의 자산을 남겨주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그건 아니죠 고려때 아라비아상인과 교역했고 교황청에서 정식사신도 왔던기록이 있습니다..그때 금속활자가 서양으로 전파된것 이고요..이를 연구한 유럽학자들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다큐 직지를 보시면 자세히 나옵니다 이런 문화충격이 지금이 서양을 만든것입니다..다시 우리는 현대의 서양의 문화를 받아 지금의 이른것입니다..돌고도는것이지요...
제가 님의 이전 글에 대해 위화감이 너무 강하게 들어서 비판을 좀 했는데 개인적으로 악감정은 없습니다만. 한번 더 말씀을 드리죠. 님은 역사를 논하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패권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것도 현재의 패권이 아니라 과거의 패권. 패권을 논하시려면 차라리 현대, 그리고 지금을 이야기해야죠. 굳이 과거를 왜 꺼내죠? 그리고 역사에 정말 관심이 있긴 하십니까? 정말 큰 착각을 하고 계신 것 같은데. 님은 패권다툼에 흥미를 느끼는 것 뿐이에요. 심지어 문명. 패권 이야기하면서 80년대 비판받았던 서구의 '오리엔탈리즘' 인식까지. 그럴 필요 없다니까요. 국력이 과거에 약했으면 어때요? 이미 지나간 과거, 심지어 과거의 패권에 왜 그렇게 집착을 하시는지.
과거 위대했던 선조들의 영광. 어느 나라나 은연중에 그런 것을 강조하지만. 특히 유독 강조하는 나라가 터키, 몽골. 중국, 일본같은 나라입니다. 한마디로 현재 문제가 많을 때. 과거 이야기 끄집어 내고, 과거의 영광을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는 겁니다. 국내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거나, 아니면 지역 패권을 노리거나. 한마디로 그냥 정치적 프로퍼겐더인데 참.
한마디로 과거에 그랬으니 우리는 자격있다. 이거 우생학과 뭐가 다릅니까? 이스라엘 병맛 선민 사상이나 나찌 위대한 게르만 민족. 파시스트들이 제일 좋아하는 떡밥인데 참. 이걸 물고 그리고 계속 집착하고 있으니. 현대에 이런 짓하면 웃기는 짬뽕이란 소리만 들음.
아니 현대 이미 국력 측정하는 틀이 다 있고, 현대에 이미 국력 측정함. 과거를 돌아보면서 현대를 배운다. 그것도 앵커링임. 현대도 아니고 과거의 국력, 지나간 영광, 찬란한 문명..심지어 오리엔탈리즘은 왜 또..
그리고 도자기는 왜.. 그거 미시사입니다. 거시 미시 구분 좀. 커피와 설탕의 역사같은 것임. 미시사나 문화사 소재를 가지고 뭔..거시적 관점 전혀 없음. 거시는 그런 하나하나 개별적 요소를 모두 통합해서 바라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리고 역사를 논하면서.. 선사 타령은 참. 역사와 고고사는 달라요. 문자의 발명 이전과 이후. 심지어 그때 그 동네 살던 애들과 지금 사는 애들 아무런 관련 없음. 그 지역 선사 시대는 그 지역에 살던 공룡이 만든 문명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임. 지금 그 동네 사는 애들이랑 아무 관련 없음. 관광 사업 벌이기에나 좋지. 고고사와 구분 좀.
그리고 정말 국력 좋아해서 하나 힌트를 주자면 한반도는 기본적으로 농업에 적합한 나라가 아님. 화강암이 주라 토질 구린 것으로 세계에서도 손 꼽히는 나라임. 우리 농산물. 우리 것이 좋아 . 그냥 국내 농업 보호를 위한 마케팅임. ㅋ
유교는 동아시아인들의 의식의 진화에 족쇄를 채운 이념이라고 봅니다.
집권세력과 기득권세력, 기성세대에 무조건 복종을 강요하는 것을 정당화, 합리화시켰죠.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설득하려는 노력하고 비전을 제시해 이끌려 노력할 필요성을 느낄 필요가 없는 체제...
그런 영향은 유교권이 아닌 다른 아시아권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듯...
더 정확한 질문은 "조선이 발전하는 동안 유럽, 일본이 더 많이 발전한 이유는 뭘까?"이고
지금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는 "왜 조선이 발전하지 못했을까?"보다도 "왜 세계 GDP에서 한국 비중이 1996년 이후 제자리걸음했을까?" 입니다.
이 질문의 답이 한국 청년세대가 세계서 가장 애를 안 낳는 이유와도 직결됩니다.
지난 10여년간 저출산 고령화, 선진국 담론, 한국 VS 일본 비교 떡밥으로 수많은 글이 올라왔지만,
이 질문을 신경쓰는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15~64세 인구가 정점에 도달하기 직전 20년간 세계 GDP에서 비중은 중국 일본이 5배, 2배 이상 증가한 반면 한국만 제자리걸음했습니다.
대다수 네티즌 기대 수준에 맞게 한국 국력이 크려면 빨리 IMF 벗어나 다시 상승궤도에 올랐어야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정부가 정말 중요한 시기였는데, 그때 정책 방향을 잘못 잡고 이후 정부가 계속 그쪽으로 쭉 가는 탓에 저성장 + 양극화 + 저출산이 날로 심해지는 중입니다.
10여년간 주식으로 손실이 누적 중이라면, 그동안 뭘 잘못 했는지 반성하고 그것을 토대로 주식공부를 새로 하든, 주식 외의 길을 택하든 하는 게 순리이듯
한국인이라면 최근 20년, 30년간 정책을 제로베이스에서부터 되돌아보고, 정책 방향 바꿀 생각해야 합니다.
조선은 영토 확장하고 20세기 초까지 독립 유지해 민족정체성과 고유문화를 지켰는데
한국이 지금 정책 방향대로 쭉 가면 영구분단돼 영토가 조선의 절반 미만으로 고정되고, 한국인은 이주민에 밀려 아메리칸 원주민과 같은 포지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