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를 녹여 안중근을 세우다
일본의 식민지배 시대, 일본의 위인의 동상이나 기념조형물들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동상 역시 장충단 앞에 세웠습니다.
장충단은 전쟁에서 죽은 장병들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는데요.
일본은 우리의 군대를 해산시킨 후, 제사를 중단하게 하였으며,
그 후 식민화의 결정적 역할을 한 이토 히로부미의 동상을 장충단 앞에 세웁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이 동상의 운명은 이토 히로부미의 운명과 같아 집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동상은 해방 후 녹여지고, 그것으로 안중근의 동상이 만들어집니다.
안중근의 동상은 이토 히로부미 동상이 있던 자리에 그대로 세워졌습니다.
동상이라는 것은 영원한 기념을 위한 것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화 시키고 그것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한 오만의 상징물을 녹여 버리고
우리 민족의 위인으로 변모시킨 것은 통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왜 죽였을까?
<안중근 의사의 유언장면. 안 의사가 순국하기 이틀 전, 면회온 두 아우와 프랑스 신부에게 유언을 하고 있다>
<출처 : 이이화의 한국사_KRPIA_ 누리미디어>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이유로 15가지를 직접 언급합니다.
"내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는 이러하다"
한국의 민황후를 시해한 죄
한국의 황제를 폐위시킨 죄
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맺은 죄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
정권을 강제로 뺏은 죄
철도, 광산, 산림, 천택을 강제로 뺏은 죄
군대를 해산시킨 죄
교육을 방해한 죄
한국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킨 죄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퍼트린 죄
현재 한국과 일본사이의 전쟁과 살육이 끊이지 않는 데 태평무사한 것처럼 그대들의 천황을 속인 죄
동양 평화를 깨트린 죄
그대들의 천황의 아버지 태황제를 죽인 죄다!
<이토 히로부미의 죄악 15개조, 출처 : 이이화의 한국사_한길사_KRPIA_누리미디어>
안중근이 언급한 죄목의 대부분은 우리 조선에 대한 일본의 폭압에 대한 울분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가장 큰 이유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고종황제 폐위 사건을 가장 먼저 언급한 것에서도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동양의 평화가 사라진 점,
그리고 권력을 위해 천황의 아버지를 살해한 죄까지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습니다.
20세기 초, 전 아시아의 적국 일본, 그리고 그 수장인 이토 히로부미를 안중근이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한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 출처 : 한국사(한길사)_ KRPIA_누리미디어>
안중근은 어떤 사람인가.
안중근은 진보적 애국 계몽운동가였습니다.
초기에는 문화 운동을 통해 민중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노력하였는데요.
학교를 세우고,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는 등 활기찬 애국운동을 벌인 인물이지요.
그러나 일제의 폭압이 날로 심해지자 무장투쟁으로 전환하여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의병생활을 합니다.
무기와 수적인 열세로 인해 고민하던 안중근은 하얼빈 역에 조선총감 이토 히로부미가 시찰 온다는 소식에
1909년 10월 26일 아침 9시 정각,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에 총을 쏘아 사살합니다.
이 일로 안중근은 사형에 처해지지만, 민족의 가슴에 독립의 불을 지피게 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일을 빌미로 일본은 한일병합을 단행합니다.
안중근은 우리가 자주 듣는 명언을 많이 남겼습니다.
爲國獻身 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 : 나라를 위해 몸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見利思義 見危授命(견리사의 견위수명 : 이익을 보면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쳐라)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 :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안중근은 이를 스스로 실천하며 애국독립활동을 한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위인입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누구인가?
러일전생에 승리한 일본은 우리나라에 독점적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해 통감부를 설치합니다. 이 통감부의 설치를 주도한 것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입니다. 소위 을사보호조약을 강요하고,
일본정부는 그 대표자로서 한국황제궐하에 1명의 통감을 두되 통감은 경성에 주재하여 황제폐하를 친알할 권리를 가짐
이란 조항을 통해 통감부를 설치 한 것이지요.
이 통감부는 이후 일본의 국권침탈까지 우리의 내정일체를 간섭하며 사실상의 왕실의 행세를 합니다.
을사조약에 도움을 준 매국노 을사오적을 중심으로 내각을 꾸려 우리 민족의 불만을 사게 되며,
1907년에는 헤이그 밀사를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양위시키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우리 민족에게 만행을 저지른 이토 히로부미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결국 안중근에 의해 처단됩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정부의 요직을 거치며 일본제국의 헌법의 기초를 다지는 등, 일본에서는 인물로 평가되지만,
일본 제국주의와 조선 식민지화를 주도한 각 국가의 공적이기도 합니다.
[출처]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 _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 |작성자 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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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골든벨에서 학생이 안중근이 처단한 인물이름을 잘못적어서 탈락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해서 올려봅니다.
글 분류를 [기타] 로 분류한 이유는 굳이 일본이라고 분류하기 보다 우리의 이야기라 생각이 되어서...
선택되는 항목이 없는거 같아 기타로 분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