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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9-04 01:55
[기타] 백제 멸망에 대한 가설
 글쓴이 : 확정신고
조회 : 3,012  

기본적으로 전 대야성함락때까지는 백제가 신라보다 힘이 우월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대야성이 왜 중요하냐면 간단히 말하면 고구려의 제 1 요새성 요동성 만큼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최전방 방어선의 중추이자 변방의 수도역할을 했으니까요
 
이 대야성이 무너지면서 바로 경산부근으로 후퇴하는데...
 
이게 지속된다면 경남지방에 복속된 가야계의 반란 혹은 백제편입이 이루어져 사실상 신라는 경북만 가지는 신라말기의 도시국가 수준의 국가가 되죠
 
이런 성을 빼앗긴 나라가 대등하거나 우월한 국력이다라고 말하긴 힘듭니다... 뭐 배신도 있었지만... 실제로 몇명이서 성문 열면 정벜ㅋ 이런건 아니라고 봅니다...
 
삼국사기에서 백제의 성과를 까내리기 위한 김부식의 조상사랑이 들어가서 배신자를 크게 이야기한 듯보입니다
 
문제는 여기를 점령하기위한 군대가 대야성에 라인을 잡고 주변 평정작업을 한 뒤 뜸금없이 당을 공략한다는 기록이 등장합니다(조선상고사)
 
여기서 이걸 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나름대로 정치적 감각이 있어 자국의 개혁과 변혁을 주도하고
 
대외 팽창정책을 펼치던 의자왕이 당시 백제의 자체전력을 과대평가하여 2개의 전선을 유지하겠다고 작정했을까요?
 
글쎄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럼 왜 당과 적대를 위해 주도적으로 행동했느냐라고 생각할때 제가 생각한 답은
 
성왕과 좌평들이 죽어나갔었기 때문인거 같습니다...
 
응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겠는데요
 
후계자인 의자왕의 세력이 되어주어야 할 친위세력이 관산성에서 상당수 죽어버린 탓에 손잡을 세력없이
 
적대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백제의 본국세력이 아닌 해외세력과 손잡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그렇기 때문에 해외세력이 가진 선진적인 정치체제인 유학을 받아들이고 중앙집권의 왕정독재를 시작했죠
 
거기에 해외세력의 직접적 바람인 거점 마련을 위해 해외 원정행위가 시작되어 이원화된 전선을 가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덕분에 당과 신라가 연합하여 몰려올때 제대로된 유격군편성도 못하고
 
변변한 전투가 고작 황산벌 전투와 수도 사비와 전수도 웅진 전투로 멸망하죠
 
즉 백제 원래의 힘이 수도 사비 주변에 형성이 된것이 아니라 다원화하여 퍼져있엇지 않았나 싶은 의문이 듭니다...
 
또한 다원화된 세력이 후기 의자왕이 숙청한 신하들로 대표된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숙청된 명장 윤충은 대야성 공략이후 중국대륙 일부를 점거하고 직접 경영했다고 하니 그 근거로 삼을만 하다 보여집니다
 
거기에 명신 좌평 성충은 윤충의 형으로 알려져 있으니 같은 계통일테구요(역시 숙청됩니다)
 
고로 여러가지 가설을 드리밀었는데...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백제 본래의 힘은 신라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여도 신라보다는 더 강했다...
 
다만 수도와 그 주변에 힘이 존재하는 신라와 수도와 번국 혹은 해외 경영지에 힘이 더 실린 백제는 한반도 내에서만은 신라와 대등하거나 오히려 집중적 투사능력이 뒤지는것 같다
 
그런 와중에 해외세력에 대한 부담감이 가중된 의자왕은 해외파는 숙청하고 스스로 성장시킨 본국세력 위주의 새판을 짯으나 맞상대가 신라가 아니라 신라+당이라는 계산 착오로 인해 멸망당했다
 
이 정도가 제 생각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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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다가스카 12-09-04 02:17
   
백제는  당나라가 덕적도에 주둔하며 공격준비한다는 사실을 알고있었습니다. 3개월이란 시간적 여유도 있었구요. 하지만 국가체계가 이미 무너졌다고 보는게 맞는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비상상황에 겨우 모을수 있는 병력이 수도방어를 위한 2만여명의 병력과 계백 5천결사대가 전부였으니.. 물론 귀족들 사병들은 더 있었을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부흥운동하는 걸보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들 귀족들도 자기의 이권에만 급급하여 국가에 자신의 사병을 내놓지 않죠.. 결국 국가의 정신이 무너졌고 동원체계가 무너진 상황입니다.  그리고 삼국중 가장 귀족들의 폐해가 심했던 나라가 바로 백제였구요. 결국 이러한 원인등이 종합되어 백제는 멸망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었을겁니다.
     
확정신고 12-09-04 02:25
   
제 생각은 이겁니다...

덕적도에 주둔하고 공격한다는 정보를 들었다고 하여도

숙청된 이후 이해관계가 없다고 판단한 해외세력이 모르는 척해버리는 바람에 의자왕의 친위세력만이 싸웠다는 생각입니다

이후 그 해외파와 결합한 왕가가 부흥운동을 전개햇지만

국내잔류파와 해외파는 피칠갑한 역사가 있다보니 하나의 세력으로 연합하기는 힘들었다

고로 부흥운동도 내분으로 멸망하는게 어찌보면 필연적 수순이다라는 정도요

내용상 거의 비슷한 내용이지만 제가 첨가한 내용은 해외세력이라는

해상백제에 대한 변수의 존재에 대한 논의가 아닌가 싶네요... 근데 제 말은 역사적 근거가 빈약한 추론이니 틀릴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다다다다다 12-09-04 02:20
   
삼국의 역사는 제대로 고증하기 어렵습니다. 제대로 된 역사서가 내려오지를 않으니까요.

결국 모든 삼국에 대한 설명은 추측에 불과하죠. 삼국사기조차 정확하게 설명을 못 하고 있으니까요.
쏴로도라쏘… 12-09-04 02:56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고 주 원인이 뭔지도 설이 많으나 일단 첫째로 전쟁은 둘이서 한놈 족치면 한놈은 두놈 상대하기 벅찬게 전쟁인즉. 당시 백제 고구려가 우호관계삘이었는데 백제가 당나라하고 신라한테 공격을 당하는걸 고구려가 알았으면 반드시 도와주러 왓었어야했는데 고구려도 이미 6세기에 귀족연합정권등등 삼국중 내분이 제일먼저 일어나고 백제는 혼자서 상대해야헸죠. 쪽바리들이야 도움 코딱지도 안되는 토인수준이었고. 둘째로 이미 백제는 성왕때 신라한테 뒤통수 쳐맞고 나서부터 기운것 같습니다. 야사로 신라가 나제동맹 배신때리고 한강유역 쳐묵하고 나서 다시 성왕이 태자한테 병사를 주고 공격시켜서 신라 바르고 있었는데 백제 이기고 있다고 하니 성왕이 구경하러 가다 신라매복부대한테 인질이 되서 태자가 구출하기위해 어쩔수없이 무리수를 두고 앞뒤없이 공격하다 패망하게 되고 이미 이때부터 백제의 실질멸망의 길을 들어섯다 봐야죠. 셋째로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내분이 분명 있었던거 같습니다. 의자왕이 당과신라가 온다는걸 알고 자문을 구한충신이 귀양을 가 있었다는점에서 내분이 있었다는건 맞는것 같습니다. 의자왕이 충신에게 어쩌냐고 물어보니 충신이 당은 쪽수가 장난아니니까 배에서 내리게 하면 안된다고 금강하구에 진을 쳐야하고 신라도 상대하려면 전력분산이 심하니 반드시 평지가 아닌 험난한 탄현에서 진을 쳐라고 충고해줬는데 이미 당은 도착해있고 신라는 탄현을 넘고 있었다죠. 이걸본 계백도 패망을 짐작했었는듯함.
뽀로뽀로 12-09-04 05:21
   
아마 백제는 당연히 신라를이길거라고생각했음

무왕이나 성왕때 당나라에 굽신대던 백제가
고구려가 수와당을 격파하자 당의 명령을 무시하고 신라를 계속 몰아붙일 정도였다는건
당과 신라를 상대할 자신감이 그만큼 크고 당과 신라를 무시했다는 결론이나옴

그리고 백제 계백도 우리가알기와는 다르게
자신이 신라의 발목을 잡을 동안 백제군이 당을 격파할거라고 생각했을것임

그리고 웅진에서 백제의자 왕이잡혔는대
당시 당군과 신라군은 웅진까지가지도않고 사비에있었음 당군이 10만이넘는군대라 보급문제때문에
웅진쪽으로 가지않았는대

웅진 성주인 예식진이 의자왕을배신하고 잡아 투항했음
2007년에 예식진의 무덤이 발견되었는대 당시 백제 의자왕은 시간을벌고 지방군을 웅진쪽으로모으고
당군이 10만이넘는군량미를 충족하지못하는걸알고 장기전으로가려했는대

예식진이 의자왕을 배신하고 끌고왔다고 기록하고있음
KilLoB 12-09-05 08:29
   
당과 신라의 협공, 기습에 어이없이 무너진것. 의자왕이 등극과정도 보면 쿠데타로 집권한 가능성이 많고,(선대 무왕의 행적을 보면 원래 정복활동같은 적극적 사람인데. 일정시기이후 갑자기 사냥, 온천만 다니는 온순한 사람으로 바뀌고, 의자왕이 된후 배다른 동생인 교기왕자나 그 어머니와 외척인 전북익산의 사택씨 가문이 제주와 훗날 일본으로 귀향감- 일본에서 쿠데타를 해서 아마 왕이 됬을것)  / 힘은 백제가 더 쎘습니다. 집권기간 내내 신라에 싸움을 거는 쪽이 백제였는데. 싸움이 끊이지가 않고. 훗날 백제가 망하고 부흥운동때에서  왜에서 10만 넘는(사실상 왜국의 가능한 전부가 오는-아마 교기왕자의 어머니(백제 무왕 후비)가 일본여왕이었을것. 또 일본서기에는 김춘추가 일본에 온 내용이 나오는데. 잘생기고, 어쩌고, 아마 교기왕자가 일본서 쿠데타로 정권잡은후라서, 자기를 매일 공격하고, 교기를 일본으로 보낸 의자왕에 같이 복수하자는 내용이 아니었을까? 삼국사기에 그 내용이 나올수 없는 이유는 편집원칙상. 왜는 당시 백제의 부분인데, 신라가 백제를 칠려고 백제에 사신을 보냈다를 쓸수없기때문이 아닐까? 당서에 보면, 의자왕이 형제우애가 깊었다고 칭송하는데 그 이유는 훗날 자기가 귀향보낸 교기의 왜국을 독립으로 인정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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