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전 대야성함락때까지는 백제가 신라보다 힘이 우월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대야성이 왜 중요하냐면 간단히 말하면 고구려의 제 1 요새성 요동성 만큼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최전방 방어선의 중추이자 변방의 수도역할을 했으니까요
이 대야성이 무너지면서 바로 경산부근으로 후퇴하는데...
이게 지속된다면 경남지방에 복속된 가야계의 반란 혹은 백제편입이 이루어져 사실상 신라는 경북만 가지는 신라말기의 도시국가 수준의 국가가 되죠
이런 성을 빼앗긴 나라가 대등하거나 우월한 국력이다라고 말하긴 힘듭니다... 뭐 배신도 있었지만... 실제로 몇명이서 성문 열면 정벜ㅋ 이런건 아니라고 봅니다...
삼국사기에서 백제의 성과를 까내리기 위한 김부식의 조상사랑이 들어가서 배신자를 크게 이야기한 듯보입니다
문제는 여기를 점령하기위한 군대가 대야성에 라인을 잡고 주변 평정작업을 한 뒤 뜸금없이 당을 공략한다는 기록이 등장합니다(조선상고사)
여기서 이걸 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나름대로 정치적 감각이 있어 자국의 개혁과 변혁을 주도하고
대외 팽창정책을 펼치던 의자왕이 당시 백제의 자체전력을 과대평가하여 2개의 전선을 유지하겠다고 작정했을까요?
글쎄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럼 왜 당과 적대를 위해 주도적으로 행동했느냐라고 생각할때 제가 생각한 답은
성왕과 좌평들이 죽어나갔었기 때문인거 같습니다...
응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겠는데요
후계자인 의자왕의 세력이 되어주어야 할 친위세력이 관산성에서 상당수 죽어버린 탓에 손잡을 세력없이
적대 세력을 제압하기 위해 백제의 본국세력이 아닌 해외세력과 손잡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그렇기 때문에 해외세력이 가진 선진적인 정치체제인 유학을 받아들이고 중앙집권의 왕정독재를 시작했죠
거기에 해외세력의 직접적 바람인 거점 마련을 위해 해외 원정행위가 시작되어 이원화된 전선을 가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덕분에 당과 신라가 연합하여 몰려올때 제대로된 유격군편성도 못하고
변변한 전투가 고작 황산벌 전투와 수도 사비와 전수도 웅진 전투로 멸망하죠
즉 백제 원래의 힘이 수도 사비 주변에 형성이 된것이 아니라 다원화하여 퍼져있엇지 않았나 싶은 의문이 듭니다...
또한 다원화된 세력이 후기 의자왕이 숙청한 신하들로 대표된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숙청된 명장 윤충은 대야성 공략이후 중국대륙 일부를 점거하고 직접 경영했다고 하니 그 근거로 삼을만 하다 보여집니다
거기에 명신 좌평 성충은 윤충의 형으로 알려져 있으니 같은 계통일테구요(역시 숙청됩니다)
고로 여러가지 가설을 드리밀었는데...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백제 본래의 힘은 신라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여도 신라보다는 더 강했다...
다만 수도와 그 주변에 힘이 존재하는 신라와 수도와 번국 혹은 해외 경영지에 힘이 더 실린 백제는 한반도 내에서만은 신라와 대등하거나 오히려 집중적 투사능력이 뒤지는것 같다
그런 와중에 해외세력에 대한 부담감이 가중된 의자왕은 해외파는 숙청하고 스스로 성장시킨 본국세력 위주의 새판을 짯으나 맞상대가 신라가 아니라 신라+당이라는 계산 착오로 인해 멸망당했다
이 정도가 제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