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내의 할아버지는 ‘치노’라는 말만 들으면 화 를 냈다. 치노는 흔히 눈이 째졌다는 뜻으로 멕 시코 등 중미지역에서 중국 사람을 비하해 부르 던 말이다. “나는 중국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 이야!” 그의 외할아버지 베드로 정(1985년 작고) 이 그렇게 언성을 높였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멕시코에서 사회복지상담가로 일하는 세사르 안 토니오 로사도 정(30)은 그때 알았다. 자신이 멕 시코로 이민 온 한인 4세라는 걸. 여태껏 집안 가 전제품이 삼성, LG 등 한국 제품으로 도배돼 있 었다는 걸.
●가전제품 온통 삼성·LG 도배
베드로 정의 아버지는 한국인 정학순씨, 어머니 는 멕시코인이었다. 1905년, 정의 외고조 할아 버지인 정인복씨가 학순씨 등 세 아들과 함께 멕 시코 사탕수수 농장에 갔다. 부산엔 두 딸과 아 내를 남겨 둔 채. 4년의 계약이 끝났지만 일제 강 점기여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학순씨가 멕시코인과 결혼해 정착한 뒤 베드로 정을 낳았 다.
●“독도 문제 등 日에 적대감”
외할아버지 얘기를 통해 알게 된 ‘또 하나의 조 국’이 궁금해서 그는 지난 7일 한국에 왔다. 다른 32명의 멕시코 한인 3·4세들과 함께 재외동포재 단이 주최한 ‘멕시코 한인 후손 모국 체험 연 수’에 참여했다. 용설란으로 불리는 에네켄 농장 에서 일했던 한인들인 이른바 ‘애니깽’의 후손들 이다. 이들은 일주일 동안 서울, 경북 경주, 울산 등지를 돌며 ‘외할아버지의 나라’를 둘러본다.
한국에 오기 전 한국을 가슴에 또 한번 새길 기회 가 있었다. 런던 올림픽 경기였다. 여자 양궁 개 인전에서 멕시코와 한국이 맞붙었다. 금은 한국 차지였지만 멕시코는 은·동을 가져가며 양궁 사 상 첫 메달을 땄다. 멕시코팀 지도자 역시 한국 인이었다. 어느 편을 응원할 것 없이 마냥 좋았 다. 정은 지인들에게 자신의 선조가 한국인이라 는 사실을 자랑했다고 말했다.
“나는 두 개의 심장을 갖고 있다. 하나는 멕시코, 하나는 한국.” 속된 말로 ‘손가락이 오그라들 것 같은’ 말을 정은 웃음기 없이 말했다. 두 살배기 딸이 크면 정은 한국의 역사를 들려줄 생각이다.
“한국은 멕시코보다 자원도 적고 땅도 좁다. 그 런데 더 열정적이다. 한 단어로 표현하면 ‘한강 의 기적을 이룬 나라’다. 한국 전쟁 이후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걸 바꾼 기적 같은 나라.”
정은 “내 몸 안에 그런 피가 흐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내재 돼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내가 사는 캄페체에 한국인들이 놀러 오는데 한국과 비슷 하다고들 한다.”면서 “와 보니 많이 다르다. 더 부유하고 발전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두 나라가 다 잘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언제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느끼느냐고 물었다.
“독도 같은 문제가 이슈화되면 기분 나쁘고 불쾌 하다. 일본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도 생기고…. 하 하. 그러고 보니 다음 주가 광복절 아닌가?”
백민경·명희진기자
http://m.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811001009&cp=seoul
민족의 정체성과 혼마져 잃어버리고 서토 오랑캐가 되어버린 지금의 연변족과 대비가 되는 사례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