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에 차지 않게 느리지만 교화가 조금씩 되기 때문에, 교도소에서 계속 출소시켜도 전체적인 강력범죄 숫자는, 통계상 조금씩 줄고 있습니다.
교화는 사람의 삶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이라서 당연히 쉽지 않습니다. 어린이를 교육시키는 것도 쉽지 않은데, 어른을 교화시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범죄를 저지르면 모두 죽일 수도 없고, 멀고 먼 땅으로 추방시키고 영원히 안 볼 수도 없는 일입니다. 수십년간 가둬 두는 것도 비용이 매우 많이 드는 일이며, 계속 재소자가 Input에 비해 output이 적어서 누적되면, 사회에 풀어놓을 수도 없고, 계속 가둬 놓으면 비용이 계속 늘어나기만 해서, 부담만 많아지게 됩니다. 바로 미국사회가 삼진아웃제를 적극적으로 채택했다가 빠진 딜레마입니다. '교화'는 현대의 민주 국가라면 포기할 수 없고, 아무리 느리더라도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3년 이하의 징역만 집행유예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미국만 봐도 그런 제한이 없습니다. 그래서 징역 10년형에 대해서도 집행유예를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1992년 LA 폭동의 원인이 되었던 '라타샤 할린스 살해사건'에서 피고인인 두순자씨에게 내려진 형벌은 징역 10년형인데, 집행유예 5년형이 부가로 내려져서, 두순자씨는 풀려났습니다. 즉, 우리나라가 집행유예를 자주, 관대하게 내리는 게 아닙니다. 미국만 해도 (주별로 형법이 달라서 쉽게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나라보다 더 완화된 규정으로 집행유예형을 내리고 있습니다.
집행유예형을 내리지 않고 교도소에 모두 가둬 버리게 된다면, 해당 피고인은 사회와 단절되고 범죄자의 낙인이 찍히게 됩니다. 결국 교화가 되기는 커녕 교도소에서 더 나쁜 범죄만 배워서 나오게 되고, 절망 상태에서 교도소에서 풀려나면 다시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래서 재범의 가능성이 낮은 경우(보통 초범)는 집행유예를 줘서 그 기간 동안 집에서 있으면서 조심하며 살게 만드는 겁니다.
앞에서 언급한 두순자씨도 집행유예 기간 5년 동안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서 집행유예 기간이 끝났습니다. 집행유예형의 목적이 제대로 달성된 것이죠. 물론 형벌의 목적을 '복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맘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만, '형벌'의 목적을 '범죄 예방' 또는 '범죄 줄이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제대로 작동한 사례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