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무한대의 평행우주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우주엔 개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며
이는 카오스적 인과율, 즉 예측불가능의 변수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
"바라던 바야."
타임머신이란 사실 시간의 흐름을 앞, 뒤로 돌리는 따위의
시공초월적 역할을 한다기 보단 우주에 구멍을 뚫어서 다른
차원의 우주로 이동하는 공간파괴적 매개물이라 할 수 있다.
"10년 전으로 돌아간다. 성공한다면 우린 지상최대의 부자가 될거야."
"지난 10년간의 경마 우승자 자료가 내 손에 있다. 으핫핫."
타임머신은 처음 사용해 보는 것이긴 하지만 이론상으론 어마어마한
양의 전력을 소비하기 때문에 만일을 대비해 도시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에서 에너지를 끌어왔다.
물론 들키는 날엔 그대로 감옥행이겠지만.
"출발한다."
동력장치를 최대치에 놓고, 프로그램을 가동시키자 타임머신은
금방이라도 녹아버릴 것 처럼 엄청난 빛무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주변풍경이 괴이한 모양으로 일그러져 갔고,
몸이 산산히 분해되는 것 같은 이질적인 감각이 전신을 휩쌓았다.
신생아가 처음 세상에 태어날 때 느끼는 중력이 이와같을까?
아무튼 이로써 주사위는 던져졌다.
"으아아아아."
"크으으윽..."
나중에야 안 사실이긴 하지만 처음 타임머신을 가동시켰을 때
인구 600만명의 대도시 전체가 24시간 가량 단전되었다고 한다.
정신을 차렸을 땐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된거지? 성공인가?"
"일단 밖으로 나가보자."
복고적인 풍경이 시내를 지배하고 있었다.
흘러간 유행가가 곳곳에서 흘러나왔고,
한물간 옷차림새와 머리스타일을 한 사람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성공이다."
우리의 모험은 약간의 오차가 있긴 했지만 무사히 성공했고,
우린 8년전의 과거로 오게 되었다.
그것은 획기적이었고, 신에 대한 우리의 도전이 성공했음을 입증하는
무엇보다도 확실한 증거였다.
"일단 경마장으로 간다."
"좋았어. 부자가 되는거야."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털어보니 4만원이 조금 넘엇다.
적긴하지만 뭐 돈이야 앞으로 얼마든지 벌 수 있으니 상관없다.
우린 8년전의 자료를 확인한 후 3번 경주마에 4만원을 모두 걸어서
마권을 샀다.
"좋았어."
"신이 돕는구나."
배당액은 원금의 무려 12배나 많은 48만원.
이대로라면 앞으로 5번만 더 해도 수십억대의 부자가 된다.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앞으로 1년후엔 로또가 시작된다.
이 다이어리만 있으면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부를 얻을 수도 있다.
"진성아. 이게 설마 꿈은 아니겠지?"
"시끄러 이건 기회야. 내 인생에 찾아올 3번에 기회를 이번 한번으로
바꾼거라고. 얼른 48만원어치 마권이나 사와."
자, 이번에 우승할 녀석은 6번이다.
내 꿈을 실현시켜 줄 위대한 초석이 될 6번.
앞으로 내 행운의 숫자는 6이다. 달려라.
"뭐야?"
"이럴수가..."
마권이 순식간에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한석이 녀석도 마치 맛있는 것을 빼앗긴 어린아이 처럼 멍한
표정으로 마권을 꾸욱 쥐고 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자료가 틀린건가?"
"아, 아냐... 그럴리 없어. 수십번도 더 확인한 거라고."
"그럼 왜... 잠깐..."
타임머신을 만들면서 세웠던 수십가지의 가설 중 하나가 문득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각각의 우주는 예측불가능의 변수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우리가 처음 마권에 당첨되면서 예정된 미래가 바뀌어버린 것이다.
"빌어먹을... 그런거였어."
"뭐, 뭔데?"
"어쩌면 우린 커다란 실수를 저지른 걸지도 몰라."
운명의 수레바퀴는 이미 어긋나 버렸고,
그 어긋난 수레바퀴가 어느쪽으로 굴러갈는지는 아직까지 미지수였다.
경마장을 힘없이 나서던 우린 사람들이 한곳에 집중적으로 몰려있는
광경을 보게되었다.
"뭐지?"
"가보자."
대형 텔레비전에선 뉴스 속보가 방송되고 있었다.
미국은 북한을 악의축으로 선포함과 동시에 전쟁을 선언했다.
한국은 군사적 전진기지가 될 것이며, 이 시간 이후로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말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보였다.
"빌어먹을... 이라크 아니었어?"
"우리가 마권을 사는 바람에 모든게 엉망이 되어버렸어."
한석이와 난 불안하게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붉게 노을진 하늘위로 수십개의 미사일이 날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