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일본어로 "쿠다라"라고 한다.
백제(百濟)는 (十濟),(伯濟) 등의 이칭이 있다.
여기서 伯(백), 百(백),十(열)에서 추정해보면 "쿠"는 "크다", "많다" 정도의 접두사로 보인다.
濟(제)의 뜻은 "돕다"이다.
그런데 백제는 자기를 남부여 또는 부여라고 지칭하였는데,
扶餘(부여), 夫餘(부여)라는 글자가 쓰인다.
扶는 "돕다"인데, 여기서 ㅂ은 "도우니", "도우라", "돕고". "돕다가" 등의 형태로
어미에 따라서 ㅂ탈락현상이 발생한다.
백스터(Baxter)와 사가르(Sagart)의 중국어 상고음 재구에 의하면
餘(여)는 "La"로 발음 되므로 그대로 읽어서 "라"라고 본다.
"돕+라"가 되는데. 발음은 "도라"가 된다. ㅂ탈락현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夫는 (지아비)인데, ㅈ에서 ㄷ은 구개음화로 음이 바뀐다.
(지아비), (지압), (디압), (답)으로 변화 가능하다.
扶, 夫 모두 당시 발음이 "답" 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 뒤에 餘라고 하는 한자음 그대로 "라"가 붙게 되니, "다라"가 되는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북부여성주(北扶餘城州)를 본래 조리비서(助利非西)라 한다고 했다.
助는 "도울 조"이며, 利는 "이로울 리"이다.
소리값이 "도리"가 된다.
앞서 살펴본 扶餘(부여), 夫餘(부여)의 소리값인 "다라"와 똑같은 것이다.
일본서기와 비석문에는 扶餘福信(부여복신)이 鬼室福信(귀실복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찬성씨록에는 鬼室(귀실)씨가 扶餘(부여)씨에서 왔다고 되어있다.
鬼(귀)라고 하는 것은 "귀신"이다.
접두사로 보아 음을 그대로 따와 "귀"라고 보았다.
室(실)이라 하는 것은 훈독으로 "집"이다.
"집"은 구개음화에 의해서 "딥"으로도 변화가 가능하다.
"귀+딥"이 되는데 이는 "쿠다라"와 같은 어원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백제(百濟)는 "쿠다라", 부여(扶餘)는 "다라"
귀실(鬼室)은 "귀딥"이 되는데, "쿠다라"와 같은 것으로 본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부여(夫餘)가 濊王之印(예왕지인)이라는 도장을 사용한다고 하였다.
나라 이름이 다른데, 왜 부여(夫餘)에서 濊王(예왕)이라는 도장을 사용하냐,
기록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濊는 우리말 훈독은 "더럽다"이다.
이외에 穢(예)로도 불리는데, 마찬가지로 훈독은 "더럽다"이다.
여기서 종결어미에 해당하는 "다"를 제외하면 원래 뜻은 "더러"가 된다.
夫餘는 "다라"라고 읽는데, 濊와 어원이 같았기에 그와 같은 도장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松岳(송악)을 扶蘇岬(부소갑)이라고 하였다.
松(송)은 계림유사에 이르기를 鮓子南(자자남)이라고 하였다.
이를 우리말로 바꾸면 "잣나무"이다.
"잣"은 구개음화에 의해서 "닷"으로 변화가 가능하다.
扶(부)는 "돕"이고, 松(송)은 "닷"이 된다.
그 비교를 보면 훈독으로 읽은 것이 분명하다.
삼국사기에는 부령현(扶寧縣)은 원래, 개화현(皆火縣)이었다고 하였다.
부(扶)는 "돕다"이고, 皆(개)는 훈독해보면 "다", "두루"가 된다.
백제(百濟), 귀실(鬼室), 예(濊)는 모두 扶餘(부여)와 같은 말이다.
그러니까, 소리는 같은데, 한자만 다른 것이다.
扶餘(부여)는 "다라"라고 부른다.
<모든 자료는 전부 공개하니까, 연구자들은 편하게 가지고 가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