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위층 탈북자를 만났다. 표정이 어두웠다. 이렇게 가다가는 승산이 안 보인다고 했다. 남쪽에서는 대북제재로 북한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자기가 보기엔 시간만 벌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경제가 아니라 사상으로 돌아가는 사회다. 그걸 남쪽이 모르는 것 같다고도 했다. 김정은을 혁명의 참모부인 노동당이 에워싸고 주민이 일심 단결해 체제를 수호한다. 상당한 고위직이었던 자신조차 남한에 오기 전에는 당과 수령을 위해 한목숨 초개처럼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당과 국가의 고위직에 수두룩하고 군인들 역시 잘 먹지는 못해도 정신무장만은 철저하다. 중국과 민생 분야 교류만 허용되면 대북제재도 충분히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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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양한모 |
시간은 북한 편처럼 보인다고 한다. 북한은 핵무장으로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게 목표다. 그래서 주한 미군이 철수하면 군사적으로 남측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고 본다. 언젠가 국제사회로부터 핵 보유 국가로 인정받으면 외국 투자도 활성화될 거라고 믿는다.
김정은 체제가 아직 김정일만큼 당 조직을 통해 북한 사회를 확고하게 틀어쥐지 못한 지금이 기회라면 기회다. 그러나 아까운 시간만 까먹고 있다. 5월 당 대회와 6월29일의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김정은 체제는 전열을 정비 중이다. 최고인민회의에서 북한은 비상시 운영하던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개편했다. 앞으로 정상국가 행보를 걷겠다는 자신감의 발로다.
그는 왜 남한이 자신들의 강점인 경제를 적극 활용하지 않는지 궁금해한다. 1980년대 북측에서는 ‘남쪽은 정치의 대가는 없지만 경제의 대가가 많다’며 부러워했다고 한다. 정치는 자기들이 윗길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이래 남쪽은 제대로 할 줄도 모르면서 정치·사상·이념으로만 북을 상대해왔다. 북한 사회 변화를 이끄는 데 전혀 기여한 바가 없다. 결과적으로 북쪽 체제를 도와준 격이다. “옛 소련이 핵이 없어서 무너졌는가? 이집트 무바라크는 철통같은 통제체제를 구축했지만 민주화 시위 후 보름 만에 무너졌다.”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추진할 때 김정일 위원장이 당 조직에 긴급 지시를 내렸다는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무서운 정책이 등장했다. 대책 방안을 마련해 보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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