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물론 '빨갱이'였다. 그는 6.25전 남로당의 군내 조직의 고위간부였다. 날조나 조작이 아니었다. 그러나 야당으로부터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공격을 받은 박정희는 이렇게 분노를 표출했다.
"나는 지금 테로(테러)를 당하고 있어요. 그저 참고 있자니 이 나라의 원수(元首)인 나를 '빨갱이'로 몰아치니… 그래 아무리 정권도 좋지만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리니 이게 공산당 수법과 다를 게 뭐요? 내가 '빨갱이'라면 이 나라가 2년 동안 '빨갱이' 치하에 있었단 말이오? 화제가 '빨갱이' 이야기에 미치자 그는 한층 더 격하게 흥분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야당들이 이번 선거전을 통해 그를 '빨갱이'로 모는 데 대한 분노는 밖에서 일반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격한 것이었다."(동아일보 10월 14일자에서 인용)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42791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건대, 박정희는 왜 '빨갱이'가 됐을까? 비록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당시로선 수재들이 들어가던 대구사범학교를 나와 문경에서 보통학교(현 초등학교) 교사로 3년 가량 근무하였다. 이후 만주로 건너가 일제하에선 만주군 장교로, 또 해방 후에는 육사를 나와 장교로 근무하면서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그다. 그런 그가 대체 왜 '빨갱이'가 됐을까?
뿌리 없는 나무가 없고, 샘이 없는 물이 없듯이 모든 일에는 시원(始原)이 있기 마련이다. 박정희가 '빨갱이'의 길로 들어선 데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시대적 배경, 개인적 성격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대체로 다음 세 가지를 든다. 첫째 사범학교 시절에 목격한 '현준혁사건', 둘째 바로 위 친형 박상희의 죽음과 분노, 셋째 춘천 8연대-육사 근무 시절 좌익 군인들과의 교류 등이 그것이다. 그 하나하나씩을 살펴보기로 한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45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