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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나의 비판의식과 사회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은, 그 무렵 많은 대학생들이 그러했듯 리영희(한국에서는 이영희라고 쓴다) 선생이었다.
나는 리영희 선생의 '전화시대의 논리'가 발간되기 전에, 그 속에 담긴 '베트남 전쟁' 논문을 '창작과 비평(창비)' 잡지에서 먼저 읽었다. 대학교 1, 2학년 무렵 잡지에 먼저 논문 1, 2부가 연재되고, 3학년 때 책이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접한 리영희 선생 논문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베트남 전쟁의 부도덕성과 제국주의적 전쟁의 성격, 미국 내 반전운동 등을 다뤘다. 결국은 초강대국 미국이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이라는 것이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우리끼리 하숙집에서 은밀히 주고받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근거가 제기돼 있었고, 명쾌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을 무조건 정의로 받아들이고 미국의 주장을 진실로 여기며 상대편은 무찔러 버려야 할 악으로 취급해 버리는, 우리 사회의 허위의식을 발가벗겨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논문과 책을 통해 본받아야 할 지식인의 추상같은 자세를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두려운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었다. 진실을 끝까지 추구하여,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근거를 가지고 세상과 맞서는 것이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실을 세상에 드러내고, 진실을 억누르는 허위의식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리영희 선생은 나중에 월남패망 후 '창작과 비평' 잡지에 베트남전쟁을 마무리하는 논문 3부를 실었다. 그러니 월남패망이라는 세계사적 사건을 사이에 두고 논문 1, 2부와 3부가 쓰여진 셈이었다. 그 논리의 전개의 흐름이 그렇게 수미일관 할 수 없었다. 1, 2부는, 누구도 미국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을 시기에 미국의 패배와 월남의 패망을 예고했다. 3부는 그 예고가 그대로 실현된 것을 현실 속에서 확인하면서 결산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글 속에서나마 진실의 승리를 확인하면서, 읽는 나 자신도 희열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노 변호사(노무현 전 대통령)도 리영희 선생 영향을 많이 받았다. 노 변호사가 인권변호사로 투신한 계기가 되었던 '부림사건'은 청년과 학생들이 수십 권의 기초 사회과학서적 또는 현실비판 서적을 교제로 공부한 것이 빌미가 됐다. 기소 내용엔 '그 책들을 읽으면서 북한 또는 국외 공산계열의 활동을 찬양·고무했다'는 내용의 포함돼 있었다. 노 변호사는 변론을 위해, 수십 권의 서적을 깡그리 독파했다. 그 가운데 리영희 선생의 책 '전화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도 있었다. 변호사로서 변론을 위해 읽은 책을 통해 많은 영향을 받은 셈이다. 이후 노 변호사는 더욱 폭넓은 사회과학서적을 탐독하게 됐고, 그것을 통해서 이른바 '의식화' 됐다. 리영희 선생 책이 그 출발이었다.
그 후 우리가 부민협을 할 때, 리영희 선생 초청강연회를 두세 번 한 적이 있다. 뒤풀이 자리에서 내가 리영희 선생에게 질문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높이 평가했던 것이 오류가 아니었는지"라고. 그는 망설임 없이 분명하게 대답했다. "오류였다. 글을 쓸 때마다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무척 노력했는데, 그 시절은 역시 자료접근의 어려움 때문에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또 그 때는 정신주의에 과도하게 빠져있었던 것 같다." 그 솔직함이 참으로 존경스러웠다.
자유 월남이라~
망상에서 벗어나시오.
월남에 자유는 없었소이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 잡은 응우엔반티유 정권이 독재와 부패를 일삼는 바람에 망한 거요.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공산화를 막으려면 민주주의와 복지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로써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국가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심어 줘야 한다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