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 '보수와 진보의 정신분석' 중 발췌....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보수와 진보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특히 서구와는 달리 보수의 상대어로 급진이나 혁명이라는 용어가 아닌 진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도 특기할만한 일이다. 단순히 한자의 뜻으로만 보면 보수(保守)는 '보호하고 지킨다'라는 의미이며 진보(進步)는 '앞으로 나아간다'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 있어서 보수와 진보의 논쟁은 단어가 주는 의미 이상의 복잡성을 가지고 있기에 그 핵심을 이해하기가 사뭇 혼란스러운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특히 보수와 급진 혁명의 논쟁이 서구 사회에서 유래된 것이고 보면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의 의미는 더욱 혼란을 가져오게 한다.
보수와 혁명(혹은 급진)의 갈등은 서구 사회에서 왕권 수호와 새로운 국민 주권을 부르짖는 자유주의를 향한 혁명에서 유래되었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자유주의를 향한 열망이 1789년 드디어 프랑스 혁명을 일으켰지만, 민중은 프랑스 왕권 타도라는 명분에 도취되어 무질서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때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Edmond Burke)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성찰(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이라는 저서를 통해 인간 사회에는 역사 속에서 쌓아 온 보존하고 지켜야 할 가치들이 있음을 주장하였다. 당시 버크는 무질서한 프랑스 혁명이 영국으로 번지는 것을 우려한 나머지, 프랑스 혁명을 국가를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한 폭도들이 책임도 없이 왕권을 무너뜨리려는 비합리적 행위로 인식하고 인간이 지켜야 할 명예나 전통을 강조하면서 보수(conservatism)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때부터 보수란 현실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논리의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급진이란 현실을 파괴하고 새로운 현실을 구사하려는 혁명 세력에게 부쳐진 이름이 되었다. 당시 현상으로 보면 왕권을 수호하려는 세력이 보수로 불렸으며, 시민의 자유를 강조하여 왕권을 무너뜨리려는 자유주의 혁명 세력에게는 급진이라는 이름표가 붙었다. 다시 말하면 보수와 그 상대어로서 급진의 의미는 특정 이념의 구체적 내용을 의미한다기보다는, 현실을 지키느냐 아니면 무너뜨리느냐의 기준에 따라 부쳐진 이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capitalism)에 근거한 유럽의 근대 국가들은 19세기 말 또 하나의 커다란 도전을 받게 된다. 그것은 바로 마르크스(Karl Marx)의 공산주의(communism) 실현을 위한 혁명 사상이다. 마르크스는 군주를 무너뜨리고 성립된 자유주의가 민권의 향상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자유주의의 근거가 되는 자본주의는 소수 자본가들의 이익을 극대화할 뿐, 수많은 무산대중은 한없는 자본가의 착취로 인해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한다는 인식을 가졌다.
그래서 역사의 마지막 발전 단계로서 계급 없는 사회 건설을 위한 공산혁명론을 부르짖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주의 체제의 기득권 세력은 공산혁명을 통한 사회의 변혁을 두려워하여 자연히 보수적 성향을 가지게 되었으며, 새로운 사회 건설을 부르짖은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의 혁명 세력에게는 급진이라는 이름표가 붙게 되었다. 이는 바로 보수와 급진이라는 용어가 '현실 유지냐 아니면 현실 변화냐'라는 기준에 따라 부쳐진 명칭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19세기 말 공산혁명의 슬로건이야말로 무산대중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계급 없는 사회(classless society)에서 '능력만큼 일하고 원하는 만큼 가지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하에서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꿈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혁명을 부정한 기득권 세력들은 혁명 세력의 미래에 대한 약속에 대항하기 위하여 그들 나름대로 자신들도 변화를 통하여 민중에게 보다 나은 삶을 보장한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리하여 등장된 것이 바로 '개혁(reform)'이라는 용어이다.
한마디로 개혁이란 용어는 보수 세력이 혁명 세력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서 사용한 것이다. 정치학에서 격언처럼 이해되는 "혁명의 위험이 없이는 개혁도 없다."라는 말은 이러한 상황에서 유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얼핏 보면 개혁이란 혁명 세력이 사용하는 용어인 것 같으나, 그 근본을 따지고 보면 혁명에 대한 상대어로 사용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칼 포퍼(Karl Popper)의 점진적 개혁(piecemeal social engineering) 이론은 대표적인 보수주의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포퍼는 플라톤(Platon)이나 마르크스의 절대적 혹은 궁극적 설명(ultimate explanation)은 그 무서운 도그마(dogma) 혹은 전체주의(totalitarianism)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궁극적 설명 대신 시행착오(trial and errors)를 통한 점진적 개혁을 강조하고 있다.1)
점진적 개혁을 원하는 이유는 바로 급작스러운 혁명적 변화가 가져올 예기치 못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연과학과는 다르게 사회의 변화는 실험이 불가함으로 혁명적 변화보다는 작은 분야에서 새로운 정책을 시행해 보고 문제가 발생하면 다시 고침으로써 점진적으로 사회를 개혁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포퍼의 이론을 비판적 합리주의(critical rationalism)라고 부른다.2)
급작스러운 변화를 강조하는 혁명 이론의 환상성을 비판하고 있는 보수·개혁론자들에 대하여, 혁명론자들은 역사의 진리를 강조하면서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혁명의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공산혁명론자들은 역사는 진보(progress)하는 것이기에 결국 인간은 이성을 통하여 역사의 마지막 발전 단계를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강력한 신념을 가지고 혁명의 불가피성을 강조한다.
결국 보수 세력이 개혁이라는 개념을 주장한 이후 보수주의와 급진주의 사이에 야기된 사회 변화에 대한 방법적 논쟁은 '개혁이냐 아니면 혁명이냐?'라는 논쟁으로 요약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보수적 개혁을 주장한 자유주의자(liberalist)의 상대 개념으로 공산주의 혁명론자들은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러한 분류는 혁명의 위협을 느낀 자유주의자들이 개혁을 주장한 것에 반해 공산혁명주의자들은 단순한 개혁보다는 근본적인 변화를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 이론에 있어서 보수·개혁의 논리는 표면적 치료(cosmetic healing)로, 급진·혁명의 논리는 외과적 수술(surgical operation)로 비유되기도 한다.
19세기 유럽 사회에 큰 충격으로 다가온 세계 공산주의 운동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하나의 변화가 일어났다. 즉, 혁명만이 공산주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는 혁명주의자와는 달리, 자유주의 체제하에서도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사회주의적 이념을 실현할 수 있다는 비혁명주의자들이 출현한 것이다. 이들의 노선을 소위 '수정주의(revisionism)'라고 부른다.
1840년대 이후 마르크스의 혁명 이론은 유럽 사회에 있어서 강력한 호소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이르러 영국을 위시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 호전, 자유민주주의 제도에 보통선거 제도의 도입, 사회복지정책의 확대 및 노동조합의 활성화 등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하는 혁명의 불가피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혁명 회의론에 대한 이론을 제공한 사람은 독일의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Eduard Bernstein)이었다.
베른슈타인은 당시 유럽의 자본주의를 분석하면서 마르크스가 예언한 자본주의의 붕괴가 실제로 어렵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마르크스의 혁명 이론에 반기를 들었다. 특히 그는 마르크스의 혁명 이론은 유토피아(utopia)적이라고 설명하면서 사회주의자들은 부르주아 사회(bourgeois society)를 대신하여 무산자 사회(proletarian society)를 건설할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시민 사회(society of universal citizenship)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1)
베른슈타인은 한마디로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의 혁명 독재를 비판하면서 민주적이며 점진적인 사회 개혁을 통하여 사회주의의 목표에 도달해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베른슈타인의 주장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져 많은 공산혁명주의자들에 의해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시 독일의 사회민주당은 베른슈타인의 이론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서유럽에 존재하고 있는 사회주의 정당들이 베른슈타인이 주장한 수정주의의 후예들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한국 사회에서 진보라는 용어는 바로 앞서 지적한 수정주의적 흐름을 인식한 상태에서 논의하는 것이 타당하다. 실제로 서구 정치철학에서 보수의 상대어로서 진보(progress)라는 용어는 생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우리 사회에서 진보라는 용어를 제일 먼저 사용하였으며, 그 진정한 의미가 무엇으로 이해되어 사용되기 시작하였는지는 애매하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진보라는 의미는 공산혁명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통해 사회주의 이념을 실현해 보자는 정도의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진보란 서구의 수정주의와 그 맥을 같이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서구의 수정주의적 입장을 우리 사회에서는 왜 생소한 진보라는 용어로 대용하였는가? 그 근거는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의 역사관에서 찾을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공산주의자들은 역사란 계속하여 발전(development) 내지 진보(progress)한다고 믿고 있다. 헤겔의 역사철학에 근거한 마르크스의 혁명론은 바로 역사의 마지막 발전 단계로 계급 없는 사회를 언급하였고, 인간은 그 목표를 향하여 공산혁명을 필연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자들의 역사관을 '진보사관'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해방 후 우리 사회에서 북한의 혁명노선에는 반대하지만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회주의적 정책들을 제시하고 이를 의회를 통하여 확대해 가려는 세력에게 '진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면 유럽의 수정주의적 개혁과 우리 사회의 진보적 개혁, 그리고 자유주의 체제하에서 보수의 개혁과는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적어도 급진·혁명이 아닌 바에는 모두가 점진적 개혁론자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다만 보수의 개혁은 자유주의적 개혁을 의미하며, 진보의 개혁은 사회주의적 개혁을 의미하는 것일 테니 이념적 성향상의 대칭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굳이 한 마디를 첨가한다면 수정주의나 한국의 진보적 개혁은 자유주의적인 체제하에서는 자유주의적인 보수·개혁보다 그 강도나 속도가 강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자유주의 체제하에서 사회주의를 향한 개혁은 그 체감적 의미가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보수·개혁보다 훨씬 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수·개혁의 상대어로 '진보·혁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도 있다고 본다. 즉, '혁신'이라는 용어가 '개혁'보다는 속도나 강도에 있어서 조금 더 강한 것으로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