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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9-03 20:47
어짜피 5.18은 폭동으로 되게 되있어
 글쓴이 : 폭동이야
조회 : 2,230  

항상 보면 그당시에는 좌빨놈들이 선동질해서 일시적으로
국민들이 속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보수가 옳았다는것이
역사를 통해서 증명되고 있는데
5.18이라고 해서 예외일수 없음.   보수들이 괜히 욕먹어가면서도
5.18이 폭동이라는 주장 굽히는게 아니다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5.18을 정치적이로 이용하려는 종북주사파와 야당빼고 선동당한 좌좀들이
빨리 정신챙겨라...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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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w104302 13-09-03 20:52
   
이사람은 몇일동안 5.18민주화운동 드랍치네...ㅋㅋㅋㅋㅋㅋ  역사를 통해 증명된게 민주화운동이요~ 좀 다른 주제로 말하시죠.
당신생각 13-09-03 20:52
   
일베충 보수단체 고생한다...젓두환지지자 ㅋㅋ
꿈트리 13-09-03 20:55
   
목숨 바쳐 민주 주의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게 부끄럽지도 않나요?  지금 익명이라는 것때문에 자유롭게 글쓰시는데 이것도 그분들의 희생이 있어서 할수 있는겁니다. 더이상 욕돼게 하지마세요.. 그리고 정신좀 차리세요!
종북척결 13-09-03 21:04
   
최규하 대통령..긴급조치9호 해제...김대중 가택연금 해제...내년에 유신헌법 개정했어..대통령 직선제 한다고 약속함....5.18 최규하 물러나라....전두환 집권 .....전라도 전두환의 민정당 50%이상 지지해줌...6.10항쟁 전두환 대통령 직선제 하기로 함..

5.18 때문에 니들이 지금 인터넷 쓰고 있는줄 알아~!!!!!!!!!!!!!!!!!!!개가 웃지요~!!
어흥 13-09-03 21:06
   
적어도 민주화운동으로 볼 수는 없는 일이 광주사태였다 판단합니다.
그리고 민주화, 민주주의라는 말의 의미가.. 소위 보수 혹은 애국진영 사람들과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 차이가 있으니,,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동일용어에 대해 혼란을 겪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쿤다리니 13-09-03 21:10
   
광주민주화 운동은 끝난 이야기 아닌가요? 어흥님아? 뭘 더 보여줘야하나요? 예전에 우리끼리 쇼부 봤잖아요? 일베 애들 거 퍼왔다가 개작살나고 일베 애들이 홍어 무침이니 뭐니 했다가 욕쳐먹고 고소 고발 사태나고....ㅎ 당시 소스를 보여줘야하나요? 사태라고 쇼부를 본 것은 민주화 운동이라고 다들 인정을하지만, 님같이 의심이 있으신 분들은 객관적 용어로 사태라고 표현하는 게 낫다라고 선을 그은건데 이제와서 무슨 민주주의 용어니 뭐니 이런 말을 하십니까?
     
쿤다리니 13-09-03 21:12
   
그때 우리 그랬잖아요? 의심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태라고 하겠다~라는 건데 기본전제로 민주화운동이라는것 자체는 의심하지 않기로 했잖아요. 북한 어쩌구 이런 건 개그라는 거 다 밝혀졌고...

물론 요 글을 쓴 분께서는 당시 없었으니까, 개잘살 난 거 반복하는 말씀이고... 폭동이니 뭐니 이런 것도 부마 항쟁이나 419 혁명을 예로들면서 다 깨진거고.. ㅎ 근데 왜 너님이 이런 글에 와서 민주주의니 뭐니 이런 말씀을 하시냐는 거예요.. ㅎ
          
어흥 13-09-03 21:18
   
?????????

제가 광주사태 문제로 쿤다리니님과 쇼부본 적이 있었던가요? 혹시 다른 분과 착각하는 것 아님??
저는 일단 광주사태로 부르고 재조사,재논의,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한결같이 해왔습니다.
(여기서 재평가란 사법적 재평가가 아닌 역사적 재평가고요.)
폭동이냐 민주화운동이냐 아니면 그외 다른 무엇이냐.. 이런 것은 그 후의 결론이죠.
민주화운동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의심하지는 않겠다 식의 말을 한 적 없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 의미 차이를 얘기한 이유는... 광주사태를 민중(인민)민주주의 기반으로 활용하는 자들이 있기 떄문입니다.
               
쿤다리니 13-09-03 21:20
   
예~~~~ 쇼부 본적 있습니다. 그럼 또 논쟁을해야하나요? 뭘 가지고요?

그리고 민주주의 기본으로 활용하는 자들이라뇨.... 허참...
                    
어흥 13-09-03 21:22
   
뭔가 오해가 있었다 생각하겠습니다.
카르리안 13-09-03 21:12
   
엄밀히 말하면 중도 보수 관점에선 5.18은 사태죠. 의혹이나 문제도 있긴 했지만 민주화에 영향은 주었던. 하나의 사건으로 그 영향에 대한 평가를 해야합니다. 폭동으로 몰거나 신성시 하는건 둘다 지나친듯해요. 나라가 보상을 시행하였으니 언젠가 의혹에 대한것도 확실히 규명은 해야겠지요.
종북척결 13-09-03 21:16
   
이석기 깜방가면 종북이들 이석기 석방운동 해도..나중엔 민주화 운동이라고 하겠네 ...ㅋㅋㅋ
종북척결 13-09-03 21:22
   
쿤다리니 <---쿤님아...보편적도덕관 이야기 하면서 전라도나.. 일본의 예외로 보면...보편적이란 말을 잘못쓴거인가요??애초에 글이 잘못된건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가 웃지요~!!!!
     
쿤다리니 13-09-03 21:25
   
님 저번에 저와 대화 잘 나누시더니 왜 또 이런 캐릭터로 가세요? 광주 민주화 운동 때문에 좀 열이 받으신듯하는데, 객관적으로 님 여기 오시기 전에..... 다 털렸어요.. 그때.. 열린 마음으로 보세요. 아니면 제가 자료 정리된 블로그 소개해 드릴까요? 님께서 보시고자 한다면 링크 걸어드리겠습니다. 물론 님이 진실을 알고 싶다는 충동이 계시다면.
쿤다리니 13-09-03 21:23
   
죄송한데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일베 애들 꺼 가지고 선동된 분들, 다 털렸습니다. 이건 거의 끝난 게임이예요. 예전에 끝났습니다. 폭력이 있었다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419 혁명 때도 총기류 턴 사람들도 있었고, 부마 항쟁때는 방송국이나 광공서에 불지르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남은 의혹이 대체 뭐가 있나요? 발포도 군인이 먼저했고.. 북한하고 연결짓는 것도 뭐 생쇼로 끝났고.. 다 깨졌습니다 예전에.. 남은 의혹이 대체 뭔지 모르겠네요.
     
어흥 13-09-03 21:29
   
광주 및 전남 지역에서 일어난 충돌과정은 하위사건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당시 박정희가 사망한 상황에서 과도기 정권인 최규하정부가 개헌을 약속하고 그 프로세스를 밟고 있었던 상황에서,,,
정부를 상대로 봉기협박하고 기획을 하는 바람에 이 프로세스가 깨지고,, 이로 인해 최규하가 물러나고 전두환이 집권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입니다.
당시 최규하의 말대로 그당시 헌법에 따라 개헌한 뒤 그에 따라 차기정권을 세우는 것이 법적 정당성과 국가안위를 모두 얻는 방법이었고,,, 봉기해서 우루루 몰려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은 절대 할 수 없는, 해서도 안되는 일이었다 판단합니다.
종북척결 13-09-03 21:25
   
쿤다리니<--끝나긴 멀 끝나요...끝내긴 했지 입만 벙긋하면 법적조치 한다고...자신 있어봐 그따위 짓 하겠음?? ㅋㅋㅋㅋㅋㅋ

님 은 혼자 원래 정신 승리 잘하잖음..ㅋㅋㅋ
     
쿤다리니 13-09-03 21:27
   
아니, 희생자 사진을 걸어놓고 홍어무침이라고하는.. 미치광이들이 있었는데.. 그게 처벌되는 게 왜 문제인가요?
종북척결 13-09-03 21:28
   
쿤님 하나만 물어봅시다...5.18때 최규하 물러나라 전두환 찢어 죽이자 해놓곤...막상 전두환 집권했을때 전라도에서 민정당 왜 50% 이상 지지해줬나요??????그땐 오리지날 독재 했는데....
     
쿤다리니 13-09-03 21:29
   
제가 알기론 김대중 밑에서 있던 사람이 후보로 나온 걸로 알고있습니다.
쿤다리니 13-09-03 21:30
   
http://blog.naver.com/chiyahn?Redirect=Log&logNo=20171304853

1 요기가서 보세요. 그럼... 댓글도 수천 개 달렸는데 다 털렸습니다. 일베 애들이 가서... 가서 보시고 말씀하세요. 이 자료 퍼와서 제가 아니라 딴 분들이 다 털었습니다. 몇개월전에.. 저는 되려 이런 팩트가 아니라 평소대로 철학적인 메타 담론을 가지고 말을했고, 딴 분들이 다 털었어요.
     
쿤다리니 13-09-03 21:32
   
위에 어흥님아서 가서 보세요. 식은 소리 하지 마시고. 악의적으로 자료 편집하고 포토샵 이용해서 왜곡하고... 일베 애들이 그런짓을 했는데, 다 까발려지고.. 이제 남은 게 뭡니까? 그리고 당시 서울에서도 수만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시위하고 있었습니다. 전두환 거론하면서.
          
어흥 13-09-03 21:36
   
저런건 본질이 되지 못합니다.
민주화운동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제가 위에 단 댓글.. 그걸 깰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79년,80년의 개헌선언 이후 벌어진 일들과,, 87년의 개헌선언이후 벌어진 일들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종북척결 13-09-03 21:32
   
아 김대중 밑에 있는 사람이 전두환 민정당으로 나와도 찍어주는군요...그건 확인 못해봤지만..그게 뭥미????

전두환 때문에 5.18했다더니...김대중 석방 운동 아니고....?

김대중밑에 있던 사람이 전두환 민정당 이면...완전 배신자 아님??????????????????????
쿤다리니 13-09-03 21:33
   
종북님, 그게 보세요... 광주 민주화 운동하고 기성 정치판 돌아가는 거 하고 이반이 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굳이 그걸 캐낸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일단 진실을 알고 싶으시면 블로그 내용가셔서 보시고 말씀하세요. 여기에 대해선 더이상 댓글 안 달겠습니다.
쿤다리니 13-09-03 21:35
   
아니 팩트니 뭐니 일베 애들 그래놓고 진짜 팩트가 밝혀졌는데 뭔 고집으로 그렇게 뗑깡을 부리는지 모르겠어요. 물론 종북님께서 모르시니까 그럴 수 있다쳐도, 일베 애들 보면 아직도 그 광주 폭동이니 뭐니 이런 말 하고 돌아다니거든요.. 쩝...

이상 댓글 끝입니다...^^

참 댓글이 더 재밌으니 시간나시면 저 블로그 댓글들도 읽어 보세요^^ 그럼~
종북척결 13-09-03 21:36
   
쿤다리니<--님이 쓴 긴글 읽을 필요가 머 있음....내가 객관적 사실을 말하면 되지...그게 거짓이면 님이 자료 제시하고 거짓이라고 하던가...위에 님 설명 논리적으로 맞다고 봄???

전두환이 전라도와 김대중 잡아넣은 원수인데...김대중 밑에 사람이 전두환 민정당으로 나왔다고 50%이상 지지 해준다???? ㅋㅋㅋ 혹시 5.18이 전두환 때문에 일어난게 아니고 김대중 때문에 일어난거 아님???
아무리 생각해도 5.18이 전두환 때문에 일어난거 같아 보이진 않는데...내가볼땐..ㅋㅋㅋㅋ
     
쿤다리니 13-09-03 21:40
   
그것도 가서 보시면 설명되어 있습니다. 김대중 때문에 일어난 거? 실제론 군부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더 컸고, 가서 보심 압니다. 그리고 제가 한 반론이 뭐냐면, 김대중 밑에 있던 후보가 된 게 그렇다고해도 그게 광주 민주화 운동이란 개념을 깔 맥락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를들면 프랑코라는 스페인 파쇼와 바로셀로나 지역의 사람들이 싸웠지만, 그 이후에 극우파들이 집권한 역사가 있잖아요? 역사는 그런 아이러니한 게 있는 법이예요. 그렇다고 프랑코 파쇼와 내전을 치렀던 카탈루니아 좌파 자유주의자들의 공로가 사라집니까?
어흥 13-09-03 21:38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의 자세한 추이에 있어 양측의 몇몇 오류가 있는 팩트에 대한 지적은 북한연관설 관련한 것 외에 그리 의미가 없다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제가 위에 단 댓글 내용.. 그걸 깨야 할 것입니다.
     
쿤다리니 13-09-03 21:41
   
님아 님아가 쓴 것도 반론이 되어 있어요. 근데 왜 안 읽고 식은 소리를 하십니까? 가서 읽어 보라니까요?
          
어흥 13-09-03 21:45
   
리스트상으로는 안보이는데요.
우주벌레 13-09-03 21:38
   
518은 폭동과 민주화운동 그 중간 정도가 아닐까요?
Edge 13-09-03 21:42
   
군인들 총기창고 털어서 총질한게 민주화인가 보군요 ㅋㅋ
     
쿤다리니 13-09-03 21:43
   
그럼 419 혁명 때 총기 창고 털었던 사람들은 뭔가요? 실제로 곳곳에서 총기가 사용되었다는 기사도 있습니다만.. 그렇게치면 프랑스 혁명은 뭐고 현재 리비아 혁명 같은 것들은 뭡니까?
          
Edge 13-09-03 21:47
   
그렇게 따짐 LA 흑인 폭동도 민주화운동인가요?
               
쿤다리니 13-09-03 21:50
   
본인께서 뭐라고 하셨나요? 총질한 게 민주화 운동인가요?라고 물으셨죠? 그래서 그런 민주화 운동도 있다고 했을 뿐입니다. 답을 했으면 반론을 하셔야지.. 왜 딴 걸 가지고 오셔서 말씀을 하십니까? 그럼... 왜 LA 폭동과 광주 민주화 운동이 같은지 설명을해 보세요.
                    
Edge 13-09-03 21:53
   
아뇨 님말대로라면 LA 흑인 폭동 사건도 민주화 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 그것도 미국이

흑인들의 자유를 억압해서 흑인들이 총기들고 싸운거니까요. 안.그.렇.습.니.까?
                         
쿤다리니 13-09-03 21:55
   
총질한 게 민주화 운동이냐고 했지요? 그래서 아닌 근거를 댄 거 아닙니까? 그건 왜 암말 안 하십니까? 그리고 일반적인 민주화 운동과 흑인들의 인권 운동하에 나온 폭력 사태를 왜 등치시킵니까? 보편적 운동과 흑인 폭등은 다른 거 아닙니까? 맥락이? 비교하시려면 위와같은 같은 사례를 비교하셔야죠^^
                         
Edge 13-09-03 21:59
   
내 님말대로 민주화 운동이라고 치죠. 그런 전례도 있고요.

그렇담 LA 흑인 폭동도 민주화 운동이냐고 불릴수 있는지 님의 주관적 의견을 듣고 싶어서 말하는겁니다.
                         
Edge 13-09-03 22:00
   
민주화 운동과 인권운동의 주체는 결국 자유 아닙니까?
                         
쿤다리니 13-09-03 22:04
   
제 주관적인 생각으론, 과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흑인 인권 운동의 흐름으로 봤을 때 말콤 X등등.... 뭐랄까... 갱단이 설쳤다고 할까요?
                         
Edge 13-09-03 22:12
   
http://blog.naver.com/roadsprinter?Redirect=Log&logNo=100176935888

님도 블로그글 퍼왔으니 저도 퍼올게요.

이것 좀 봐주시겠습니까
     
쿤다리니 13-09-03 21:45
   
그리고 군인들이 먼저 발포했습니다.
          
Edge 13-09-03 21:48
   
군인들이 먼저 발포했다구요? 미쳤다고 군인들이 먼저 싸움을 걸까요?
               
쿤다리니 13-09-03 21:53
   
가서 위에 링크를 보세요. 그럼. 군인이 먼저 발포했고, 시민들에 대한 폭력도 먼저 사용했습니다. 그것도 시위대가 아닌 일반 시민들에게.
                    
Edge 13-09-03 21:58
   
아니 가만히 있는데 미쳤다고 총을 빌포하겠냐구요
                         
쿤다리니 13-09-03 22:04
   
아니 그렇게 탄압하는데 가만이 있겠냐고요...;;
쿤다리니 13-09-03 21:42
   
아니 성실하게 본인들이 지적한 거 다 저기에 나와있는데 읽지도 않는 건 뭐하는 겁니까.. 제가 여기에 퍼 와요? 왜 그래야되요?
종북척결 13-09-03 21:50
   
쿤다리니<---최규하대통령이 대통령 직선제 약속할때 총기들고 일어난 사람들이 몇십년 지난것두 아니고 바로 다음해 선거때...전두환이 독재할때 신민당 이상 지지해준거에 대해서 설명해달라니..김대중 밑에 사람 ..신민당은 김대중 있던당아님??역사적 아이러니.....ㅋㅋㅋㅋㅋㅋㅋㅋ

차암 논리적이네요!~~!!!!!!!!!!!!!!!!!!!
     
쿤다리니 13-09-03 21:52
   
그런 일이 있고, 우선적으로 그런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다고해도 그게 광주 민주화 운동을 까는 논점이 될 수 없다는 거고, 나아가 그렇다고쳐도 김대중 석방이 우선이 아니었다는 것 블로그 내용에 있지 않습니까?
          
Edge 13-09-03 21:53
   
혹시 그 블로그라는게 개인이 쓴 블로그 인가요?
               
쿤다리니 13-09-03 21:56
   
개인이 쓴 블로그고요. 제가 알기론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기념관에서 자료를 가져 온 걸로 알고있습니다.
어흥 13-09-03 21:52
   
링크의 안치영이라는 사람 글엔 제가 위에 댓글 달았던 내용, 즉 근본적이고도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반론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못찾는 것이라면,, 쿤다리니님이 찾아주시건가 요약해주시던가 해보시길..!
님은 있다고 하니까요.
     
쿤다리니 13-09-03 22:02
   
3.08 5·18민주화운동 진압 당시 대통령은 최규하였으므로 5·18민주화운동과 전두환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출처 : http://www.ilbe.com/438961786, http://www.ilbe.com/439148590


다음은 전두환에 대한 내란죄 관련 판결문입니다.


"...피고인들이 이른바 12·12군사반란으로 군의 지휘권과 국가의 정보기관을 실질적으로 완전히 장악한 뒤, 정권을 탈취하기 위하여 1980. 5. 초순경부터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비상대책기구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시국수습방안' 등을 마련하고, 그 계획에 따라 같은 달 17. 비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전군지휘관회의에서 결의된 군부의 의견인 것을 내세워 그와 같은 조치를 취하도록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강압하고 병기를 휴대한 병력으로 국무회의장을 포위하고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하여 국무위원들을 강압 외포시키는 등의 폭력적 불법수단을 동원하여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의결·선포하게 함으로써, 국방부장관의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배제하였으며, 그 결과로 비상계엄 하에서 국가행정을 조정하는 일과 같은 중요국정에 관한 국무총리의 통할권 그리고 국무회의의 심의권을 배제시킨 사실, 같은 달 27. 그 당시 시행되고 있던 계엄법(1981. 4. 17. 법률 제3442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9조, 제11조, 제12조 및 정부조직법(1981. 4. 8. 법률 제342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5조에 근거하여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및 그 산하의 상임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상임위원장에 피고인 전두환이 취임하여 공직자 숙정, 언론인 해직, 언론 통폐합 등 중요한 국정시책을 결정하고 이를 대통령과 내각에 통보하여 시행하도록 함으로써, 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원회가 사실상 국무회의 내지 행정 각 부를 통제하거나 그 기능을 대신하여 헌법기관인 행정 각 부와 대통령을 무력화시킨 사실 등을 인정한 다음, 피고인들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게 하여 비상계엄 하에서 국가행정을 조정하는 일과 같은 중요국정에 관한 국무총리의 통할권과 이에 대한 국무회의의 심의권을 배제시킨 것은 헌법기관인 국무총리와 국무회의의 권능행사를 강압에 의하여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것이므로 국헌문란에 해당하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여 헌법기관인 행정 각 부와 대통령을 무력화시킨 것은 행정에 관한 대통령과 국무회의의 권능행사를 강압에 의하여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것이므로 역시 국헌문란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http://glaw.scourt.go.kr/jbsonw/jbsonc08r01.do?caseNum=96%EB%8F%843376&courtName=&docID=35129A9B850E40EAE0438C01398240EA)


다시 한 번 밝히지만 전두환은 내란죄, "즉 국토의 참절 또는 국헌문란(國憲紊亂)의 목적으로 폭동하는 죄"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폭도와 그 폭도에게 맞서 싸운 5·18민주화운동의 광주시민이 어떻게 아무런 관련이 없을 수 있습니까.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동이라 부르시려면 우선 전두환이 일으킨 12.12 쿠데타와 5.17 쿠데타가 쿠데타가 아니라는 걸 입증해야하지만 12.12 쿠데타와 5.17 쿠데타가 쿠데타라는 명백한 사실은 위의 판결문에서 보시다시피 이미 90년대 재판에서 수차례 확인된 진실입니다. 이후에 사면을 받았으니 상관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목차의 3.12를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3.11 계엄 선포 당시의 사회 상황을 고려하면, 5·17비상계엄전국확대(5·17 쿠데타)는 정당화될 수 있다.


어떻게 일제가 하는 말과 한결같이 똑같습니까. 다음은 전두환에 대한 내란죄 관련 판결문입니다.


"...피고인들이 이른바 12·12군사반란으로 군의 지휘권과 국가의 정보기관을 실질적으로 완전히 장악한 뒤, 정권을 탈취하기 위하여 1980. 5. 초순경부터 비상계엄의 전국확대, 비상대책기구설치 등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시국수습방안' 등을 마련하고, 그 계획에 따라 같은 달 17. 비상계엄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전군지휘관회의에서 결의된 군부의 의견인 것을 내세워 그와 같은 조치를 취하도록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강압하고 병기를 휴대한 병력으로 국무회의장을 포위하고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하여 국무위원들을 강압 외포시키는 등의 폭력적 불법수단을 동원하여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의결·선포하게 함으로써, 국방부장관의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배제하였으며, 그 결과로 비상계엄 하에서 국가행정을 조정하는 일과 같은 중요국정에 관한 국무총리의 통할권 그리고 국무회의의 심의권을 배제시킨 사실, 같은 달 27. 그 당시 시행되고 있던 계엄법(1981. 4. 17. 법률 제3442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9조, 제11조, 제12조 및 정부조직법(1981. 4. 8. 법률 제342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5조에 근거하여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및 그 산하의 상임위원회를 설치하고, 그 상임위원장에 피고인 전두환이 취임하여 공직자 숙정, 언론인 해직, 언론 통폐합 등 중요한 국정시책을 결정하고 이를 대통령과 내각에 통보하여 시행하도록 함으로써, 국가보위비상대책상임위원회가 사실상 국무회의 내지 행정 각 부를 통제하거나 그 기능을 대신하여 헌법기관인 행정 각 부와 대통령을 무력화시킨 사실 등을 인정한 다음, 피고인들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게 하여 비상계엄 하에서 국가행정을 조정하는 일과 같은 중요국정에 관한 국무총리의 통할권과 이에 대한 국무회의의 심의권을 배제시킨 것은 헌법기관인 국무총리와 국무회의의 권능행사를 강압에 의하여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것이므로 국헌문란에 해당하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여 헌법기관인 행정 각 부와 대통령을 무력화시킨 것은 행정에 관한 대통령과 국무회의의 권능행사를 강압에 의하여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 것이므로 역시 국헌문란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http://glaw.scourt.go.kr/jbsonw/jbsonc08r01.do?caseNum=96%EB%8F%843376&courtName=&docID=35129A9B850E40EAE0438C01398240EA)


5·17비상계엄전국확대가 이래도 정당화된다고 보이십니까? 5·17비상계엄전국확대는 강압적인 쿠데타입니다. 이를 두고 당시 최규하의 재가를 받았으므로 상관없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을사조약이 무효인 이유를 생각해보십시오. 


군부대로 국무회의장을 포위하고 외부와의 전화선을 끊어버린 상태에서 내린 결정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습니까. 미 국무부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NO information indicating a North Korean intention to attack was received by the United States during the period covered by this statement, nor did United States officials regard the domestic situation in the South as being so serious as to justify either Full Martial Law or harsh repressive measures."
"미국은 북한의 공격 의도가 있었다는 어떤 정보도 [1980년 당시] 받지 못 했고, 미국 정부는 대한민국의 당시 상황이 계엄령 또는 극심한 탄압을 정당화할만큼 심각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General Wickham met Chun Doo Hwan on May 13. In contrast to what he had told Ambassador Gleysteen previously, General Chun now told General Wickham that North Korea was the hidden hand behind the student demonstrations and that the decisive moment for an attack on the South might be at hand. Wickham replied that the U.S. as always stood ready to defend Korea, but that there was no sign that a North Korean invasion was imminent. General Wickham asserted the U.S. view that movement toward political liberalization would bring stability to South Korea and that stability was the principal means of deterring North Korea. General Wickham reported that Chun's pessimistic assessment of the domestic situation and his stress on the North Korean threat seemed only a pretext for a move into the Blue House."
"위컴 장군은 5월 13일에 전두환을 만났다. 앞서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말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전두환은 북한이 학생시위를 배후조종하고 있다며 남침을 감행할 결정적인 시기가 임박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위컴 장군은 미국은 언제나처럼 한국을 방어할 태세를 갖추고 있으나 북한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징후를 찾을 수 없다고 답했다. 위컴 장군은 정치적 자유화가 한국의 안정을 가져올 것이며, 그 안정이야말로 북한의 남침을 억지하는 주요 수단이라는 미국 측의 견해를 피력했다. 위컴 장군은 전두환의 국내정세에 대해 비관적으로 평가와 북의 도발 가능성을 강조하는 것이 청와대에 입성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한 것 같다고 보고했다."


"On May 13, Washington reacted to reports from Ambassador Gleysteen and General Wickham and to rumors of North Korean activity then circulating in Seoul. The State Department press spokesman stated:
'From our information we see no movement of troops in North Korea out of the usual and we see no movement which would lead us to believe that some sort of attack upon the South is imminent.'"
"5월 13일, 워싱턴은 글라이스틴 대사와 위컴 장군의 보고와 당시 서울에서 나돌던 루머에 대응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가 가진 정보에 따르면 북한에서 평소와 다른 부대이동을 볼 수 없으며, 한국에 대한 공격이 임박했다고 믿을 만한 움직임이 없다.'"
(http://seoul.usembassy.gov/backgrounder.html)


신군부는 일본 측으로부터의 정보를 악용해 북한의 위협을 날조하기도 했습니다(http://www.youtube.com/watch?v=AHb3VKmPWXU). 이와 관련해 같은 해 5월 10일에는 육군본부 정보참모부가 "북괴 군사동향은 정상적인 활동 수준으로서 특이 전쟁징후는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15



심지어 전두환을 위시로 한 신군부는 정치 활동을 금지한 계엄포고 10호를 최규하 대통령에게 승인은 커녕 사전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은 5월 20일 계엄포고 10호에 따라 의원의 의사당 출입을 금지시킨 사실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100838). 이는 최광수 당시 비서실장의 증언에서도 드러나는 사실입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139680).
          
어흥 13-09-03 22:10
   
광주사태 이전에 있었던 12.12와 광주사태 이후에 있었던 국보위 관련하여 전두환 까는 내용들일 뿐이군요.
따라서 제 주장을 무너뜨릴 반론이 되지 못합니다.
전두환 하나 나쁜놈 만든다고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반론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쿤다리니 13-09-03 22:12
   
아니 보세요~ 그 이전에 이미 전두환이 권력을 잡았다는 징후가 있는데 뭐가 반론이 아닙니까?
                    
어흥 13-09-03 22:16
   
으이구..
전두환 하나 나쁜놈 만들면 다 되는게 아닌 겁니다 이건.
종북척결 13-09-03 22:01
   
쿤님아 위에 그리고 프랑코가 머시긴가 사건이 5.18이상 머가 비슷함 ..검색해보니 하나두 안비슷하구만...

실각한다음 ..내전 일으켜 정권 잡아는데 금방 또 실각했더만...
     
쿤다리니 13-09-03 22:06
   
그쵸. 실각하죠. 그게 뭐.... 전두환이도 물러갔잖아요;; 님의 논리에 따르면 전두환은 왜 물러가야했습니까? 비슷하다고했나요 제가? 그런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다는 걸 거론한 거 뿐이예요. 내전과 민주화 운동이 같습니까. 거의 뭐 그땐 전쟁 상황이었는데요. 스페인이.. 지금도 바로셀로나하고 마드리드하고 라이벌인 이유가 그 때문이예요.
Edge 13-09-03 22:02
   
우리의 주적인 북한마저 5.18이 민주주의 운동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쿤다리니 13-09-03 22:11
   
북한은 419도 기립니다. 죄송하지만.
          
Edge 13-09-03 22:12
   
               
쿤다리니 13-09-03 22:17
   
자 보세요. 419도 기립니다라는 건 광주 민주화 운동을 북한 애들이 기리지 않는다라는 반론이 아니라, 기리는데 걔네들은 419도 기리고 부마항쟁도 기리고 다 기린다. 근데 왜 광주 민주화 운동만 문제가 되냐~라는 반론 아닙니까? 근데 왜 동어반복을 하시죠?
종북척결 13-09-03 22:06
   
정작...최규하는 어떠한 증언두 안했고..전두환도 그런적 없다 했는데 지들끼리 아주 소설을 썻네 판결문 이란게...최규하 적이 누구일까???대통령 직전제 하자고 하는데도 물러나라고 데모한 김영삼 김대중 아님??? ㅋㅋㅋㅋㅋㅋ그 적들이 지들 민주화 운동에 오점이 될까봐 아주 소설을 썼어 판결했군~!!
     
쿤다리니 13-09-03 22:13
   
뭐가 소설인가요? 전두환 내란죄입니다. 최규하과 관련된 게 아니라. 아니 까실라면 저거에 반대되는 어떤 걸 가지고 와서 까셔야죠. 얼마전에 토론할 땐 잘 하시더니 왜 비꼬고 계실까요?
종북척결 13-09-03 22:10
   
쿤다리니<--전두환이 바로 물러났음??? 전라도 때문에 물러났음????? ㅋㅋㅋㅋ 비교를 해도....저긴 정권잡고 바로 다음해인가 물러났더만...그래서 묻자나요..전라도는 바로 다음 해랑 그다음해 왜 그랬냐고????근데 저거랑 비교하면서 머가 역사적 아이러니?????진짜 논리력 쩐다...ㅋㅋㅋㅋ
     
쿤다리니 13-09-03 22:15
   
아니 그럼 프랑코 정권은 바로 물러났습니까? 기본적으로 논리란 게 형식부터 잡고 말하는거지, 왜 계속 쓸데없는 거 가지고 비웃고 계실까요? 논리적으로 프랑코 파쇼 애들과 싸우던 카탈로니아 세력. 내전. 그리고 프랑코 파쇼가 권력을 잡음. 십년이상 해쳐먹다 물러남. 그걸 형식 논리로 이와같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다는 걸 말한건데 뭐가 문제닙니까?
어흥 13-09-03 22:14
   
아래 링크는 과거 제가 여기 가생이에 올린.. 광주사태 이후 5월30일 있었던 최규하 담화입니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politics_bbs&wr_id=351963&sca=&sfl=wr_name%2C1&stx=%EC%96%B4%ED%9D%A5&sop=and&page=2

그리고 또 아래 링크는 <최규하씨 법률고문 이기창 변호사 일문일답> 입니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politics_bbs&wr_id=357925&sca=&sfl=wr_name%2C1&stx=%EC%96%B4%ED%9D%A5&sop=and&page=2

참고 바랍니다.
이것들은 광주사태 이해를 위해 반드시 읽어봐야 하는 두개의 글입니다.
     
쿤다리니 13-09-03 22:19
   
5·17비상계엄전국확대가 이래도 정당화된다고 보이십니까? 5·17비상계엄전국확대는 강압적인 쿠데타입니다. 이를 두고 당시 최규하의 재가를 받았으므로 상관없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을사조약이 무효인 이유를 생각해보십시오. 


군부대로 국무회의장을 포위하고 외부와의 전화선을 끊어버린 상태에서 내린 결정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습니까. 미 국무부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견을 개진했습니다:
"NO information indicating a North Korean intention to attack was received by the United States during the period covered by this statement, nor did United States officials regard the domestic situation in the South as being so serious as to justify either Full Martial Law or harsh repressive measures."
"미국은 북한의 공격 의도가 있었다는 어떤 정보도 [1980년 당시] 받지 못 했고, 미국 정부는 대한민국의 당시 상황이 계엄령 또는 극심한 탄압을 정당화할만큼 심각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General Wickham met Chun Doo Hwan on May 13. In contrast to what he had told Ambassador Gleysteen previously, General Chun now told General Wickham that North Korea was the hidden hand behind the student demonstrations and that the decisive moment for an attack on the South might be at hand. Wickham replied that the U.S. as always stood ready to defend Korea, but that there was no sign that a North Korean invasion was imminent. General Wickham asserted the U.S. view that movement toward political liberalization would bring stability to South Korea and that stability was the principal means of deterring North Korea. General Wickham reported that Chun's pessimistic assessment of the domestic situation and his stress on the North Korean threat seemed only a pretext for a move into the Blue House."
"위컴 장군은 5월 13일에 전두환을 만났다. 앞서 글라이스틴 대사에게 말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전두환은 북한이 학생시위를 배후조종하고 있다며 남침을 감행할 결정적인 시기가 임박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위컴 장군은 미국은 언제나처럼 한국을 방어할 태세를 갖추고 있으나 북한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징후를 찾을 수 없다고 답했다. 위컴 장군은 정치적 자유화가 한국의 안정을 가져올 것이며, 그 안정이야말로 북한의 남침을 억지하는 주요 수단이라는 미국 측의 견해를 피력했다. 위컴 장군은 전두환의 국내정세에 대해 비관적으로 평가와 북의 도발 가능성을 강조하는 것이 청와대에 입성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한 것 같다고 보고했다."


"On May 13, Washington reacted to reports from Ambassador Gleysteen and General Wickham and to rumors of North Korean activity then circulating in Seoul. The State Department press spokesman stated:
'From our information we see no movement of troops in North Korea out of the usual and we see no movement which would lead us to believe that some sort of attack upon the South is imminent.'"
"5월 13일, 워싱턴은 글라이스틴 대사와 위컴 장군의 보고와 당시 서울에서 나돌던 루머에 대응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가 가진 정보에 따르면 북한에서 평소와 다른 부대이동을 볼 수 없으며, 한국에 대한 공격이 임박했다고 믿을 만한 움직임이 없다.'"
(http://seoul.usembassy.gov/backgrounder.html)


신군부는 일본 측으로부터의 정보를 악용해 북한의 위협을 날조하기도 했습니다(http://www.youtube.com/watch?v=AHb3VKmPWXU). 이와 관련해 같은 해 5월 10일에는 육군본부 정보참모부가 "북괴 군사동향은 정상적인 활동 수준으로서 특이 전쟁징후는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15



심지어 전두환을 위시로 한 신군부는 정치 활동을 금지한 계엄포고 10호를 최규하 대통령에게 승인은 커녕 사전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희성 당시 계엄사령관은 5월 20일 계엄포고 10호에 따라 의원의 의사당 출입을 금지시킨 사실을 인정한 바 있습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100838). 이는 최광수 당시 비서실장의 증언에서도 드러나는 사실입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139680).
          
쿤다리니 13-09-03 22:20
   
요 밑에 이 글은 참조 안 하시나요?
          
어흥 13-09-03 22:24
   
아 글쎄 이런 건 반론이 되지 못한다니까요.
최규하나 신군부 처벌하고 싶으면 김영삼이나 김대중이 새헌법으로 집권한 뒤에 하면 될 일 아닙니까.
광주사태 이전에 개헌프로세스가 중단된 것도 아닙니다.
               
쿤다리니 13-09-03 22:26
   
아니 보세요. 님하~ 이미 그 이전부터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조짐이 있었고, 광주보다 먼저 서울에서도 전두환에 대한 시위가 있었는데, 대체 뭔 이야기를하고 싶으신겁니까? 위에 써 드렸잖아요? 수만명의 사람들이 이미 시위하고 있었다고? 당시에 광주보다 먼저 시위하고 있었어요. 서울에서. 군부 물러가라고.
                    
쿤다리니 13-09-03 22:29
   
1980년 5월 초부터 신군부 세력의 정치 관여를 반대하기 위해, 학생과 시민 10만여 명이 모여 서울역에서 시위를 벌였고 5월 15일 시위대 대열 속에 속했던 청년 한 명이 버스를 탈취하여 저지선을 돌파, 전경에 돌진하여 전경 이성재 일경이 사망하고 4명이 중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15] 5월 17일 24시 신군부는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를 내려 18일 1시 부로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됐다. 같은 날 새벽 2시 신군부는 국회를 무력으로 봉쇄해 헌정중단 사태가 발생했다. 김대중, 김종필 등 정치인 26명은 합동수사본부로 연행됐고, 2,600여 명의 학생·교수·재야인사 등이 체포됐다. 신민당 총재 김영삼은 무장헌병들에 의해 가택 연금됐다. 신군부가 이날 내린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정치 활동 금지·휴교령 등의 민주주의 역행 조치에 항의해, 5월 18일 오전 전남대 학생들은 학교 정문 앞에서 시위를 했고 공수부대는 학생들을 구타·폭행으로 진압했다. 과격한 공수부대의 투입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1 위키백과 내용이예요. 서울에서 먼저 시위하고 있었어요.

http://ko.wikipedia.org/wiki/5%C2%B718_%EA%B4%91%EC%A3%BC_%EB%AF%BC%EC%A3%BC%ED%99%94_%EC%9A%B4%EB%8F%99
                         
어흥 13-09-03 22:32
   
왜 정부가 비상계엄 전국확대 하고 정치인들 연행했는지도 아셔야지요.
봉기협박 및 기획이 발각되어 행동한 것입니다.
김대중 체포할때 수색과정에서 임시내각구성도 발각되었지요.
(나중에 김대중 사람이 되는 이종찬의 증언.)
                         
쿤다리니 13-09-03 22:35
   
아니 왜 말을 딴데로 돌리세요? 시위하고 있는 게 뭐겠어요? 당시? 그 이전부터 전두환과 신군부에 대한 시민과 학생들의 불안, 그 권력의 문제들을 알고 있었다는 반증아니예요. 근데 무슨 최규한 발언 나오고.... 위에 처음에 말했잖아요? 서울에서도 시위하고 있었다고. 대체 왜 남의 말을 씹고 같은 말을 반복하게 만듭니까?
                         
어흥 13-09-03 22:37
   
아.. 정말.. 에혀...
불만 있다고 해서 봉기해서 정부 전복해도 된단 말입니까?
민중은 선이니까? 혁명?? ;;;;;;;;;;;;;
                         
쿤다리니 13-09-03 22:38
   
혁명이고 나발이고 왜 말을 계속 돌립니까? 시위가 정당하니 마니를 떠나서 객관적으로 당시 시민들과 학생들이 전두환과 신군부에 대한 불안이 있었다는 반증을 말하는 거 아니예요. 근데 왜 광주가 뜬금없이 전두환과 상관없이 최규하 무너뜨리려고 했다는식의 논리가 나옵니까? 엄연히 블로그 자료에도 나오는바 신군부를 규탄하고 있는데요?
                         
어흥 13-09-03 22:42
   
말을 돌리긴요.
본질을 지적해주는데 님이 자꾸 이해를 못하는 것이죠.
당시 그 일은 단순히 시위가 격해지고 과잉진압한 일이 아닌 겁니다.
그 이전부터 계엄령 하인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어느정도 시위를 묵인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정부전복을 위한 봉기협박이었다는데에 큰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쿤다리니 13-09-03 22:45
   
아 됐고. 님아는 그냥 본인이 불리하면 반복 신공이군요. 더이상 대화할 가치 없습니다. 본질이라고요?ㅋ 본질을 잘 아는 분께서 상대가 뭘 깠는지 이해력 독해력이 떨어진 주장을 하십니까? 반복해서 말해도 이해 못하니까, 전 그냥 갈랍니다. 재미없어요. 수고~
                         
어흥 13-09-03 22:45
   
5공측에서 이런 얘길하죠.
당시 민주화세력이 정부를 너무 얕본 것 같다고.
5공세력에 대한 시선이 어떠하든,, 그건 맞는 말입니다.
당시 김영삼이나 김대중이나 풋내기 양아치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어흥 13-09-03 22:48
   
불리하니 반복신공 펼친다?? 말돌린다??
허허.. 님은 기본이 안되어 있습니다.
국가와 체제 사이 가치위계도 안잡혀 있습니다.
아무리 불만 있어 시위를 해도,,, 개헌과정을 지켜봤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그 어떠한 이유를 대도 모두 핑계,변명에 불과해지는 겁니다.
어떤 문제가 있다해도 국가를 책임지는 사람들 입장에서 말하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대응할 수 밖에 없었다는 반론을 민주화세력이 무너뜨릴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어흥 13-09-03 22:30
   
제가 시위가 없었다 말하지 않았습니다.
본질을 좀 보시라고요!!
                         
쿤다리니 13-09-03 22:31
   
뭐가 본질입니까? 전두환 신군부 가지고 시위하고 있었는데? 아니 대체 뭔 말을 하고 싶으신 거예요? 예? 광주가 같은 이유로 시위한 건데 뭐가 문제가 되요?
                         
어흥 13-09-03 22:35
   
무슨 핑계를 대건.. 당시 헌법 절차에 따른 정부측에 의한 개헌프로세스를 중단시키려 했다는 점을 아셔야지요.
김대중은 이걸 봉기를 통해 헌법절차 무시하고 자기 입맛에 맞는 내용으로 개헌한뒤 자기가 대통령 해먹으려 했었다는 평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쿤다리니 13-09-03 22:37
   
뭐가 핑곕니까? 애초부터 시민들이나 학생들이 전두환과 신군부에 대한 불안이 있다는 증거 아니예요. 그래서 광주에서도 같은 의미의 시위가 난 건데?
                         
어흥 13-09-03 22:40
   
최규하, 전두환에 불만 있다?? 그래서요??
그게 개헌절차 안따를 이유가 됩니까??
                         
쿤다리니 13-09-03 22:47
   
아니 군부가 이미 권력을 장악했다는 사람들의 인식이 있었으니 시위한 거 아니예요. 님아.. 참나... 그냥 됐소 마. 잠이나 주무셔~
                         
어흥 13-09-03 22:51
   
군부가 권력을 장악했다?? 허허
그건 12.12 탓으로 돌리는 민주화세력의 일방적인 주장이자 자기합리화일 뿐이죠.
장악했으면 뭐 어떻다는 겁니까?
민주화세력은 개헌과정 중단시킨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아까도 말했습니다. 전두환 하나 나쁜놈 만든다고 되는 일 아니라고.
79년,80년과 87년의 차이를 좀 깨달으세요!
                         
어흥 13-09-03 22:55
   
아무리 민주주의 좋고 신군부를 싫어하고 당시 일어나던 일들에 불만이 있어도,,,
봉기협박 및 기획은 절대 안될 일이었습니다.
적어도 개헌과정이 신군부에 의해 중단되거나 개헌안이 최규하가 말한 훌륭한 헌법을 만들지 못했을때 봉기를 해도 했어야 했던 것입니다.
종북척결 13-09-03 22:15
   
쿤다리니<--저 판결문 고대루 믿을꺼며 애초에 말도 안꺼냈죠...정치적 판결이라는 의심이 많으니 다시 한번 재평가 해봐야 된다고 하는거지...걍 객관적 사실로 논쟁해야지 판결문 들이밀고 계시네...그거 믿음....애초에 5.18 말이 왜나옴???
     
쿤다리니 13-09-03 22:20
   
그 밑에 부분은 참조 안 하시죠?
Edge 13-09-03 22:16
   
http://blog.naver.com/roadsprinter?Redirect=Log&logNo=100176935888

이것도 봐주시고요 쿤다리니님
     
쿤다리니 13-09-03 22:21
   
자 보세요. 419도 기립니다라는 건 광주 민주화 운동을 북한 애들이 기리지 않는다라는 반론이 아니라, 기리는데 걔네들은 419도 기리고 부마항쟁도 기리고 다 기린다. 근데 왜 광주 민주화 운동만 문제가 되냐~라는 반론 아닙니까? 근데 왜 동어반복을 하시죠?
종북척결 13-09-03 22:52
   
쿤다리니<--정치적 판결문 말고...최규하 변호사가 말한 최규하 증언엔 그런말 없는데...ㅋㅋㅋ진짜 전두환 독재할땐 부산보다 더 지지해 주더만...ㅋㅋㅋㅋ
     
쿤다리니 13-09-03 23:01
   
님 위에 자료 보시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위에서 어쨋든 님께서 반론한 게 어흥님아하고 똑같은 거죠? 근데 그 시절에 이미 서울에서 수만명의 사람들이 신군부 물러가라며 시위를하고 있었고 똑같이 광주에서도 시위를 한 건데 최규하에 반대 한 것이라고요? 위 블로그 내용중에 당시 광주 시위자들이 돌린 팜플렛을 보면 분명히 신군부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대체 뭔 이야기를하고 싶으신 건가요? 그리고 어흥님아가 가져 온 자료만 자료인가요? 분명히 제가 올린 자료들 증언 기사들 있는데 뛰어 넘으시게요? 변호사요? 것 보다 당시 비서실장 발언들은요? 그게 더 팩트가 가깝지 않을까요?

본래 뭘 이야기하고 싶으신 거였어요? 아니 위에서 뭘 하든 시민들하고 학생들이 그렇게 느껴서 시위를 한 건데 그게 뭔 상관입니까?
          
어흥 13-09-03 23:06
   
당시 빈번했던 시위 자체를 문제삼는게 아니랍니다.
에혀.. 그만 하렵니다.
쿤다리니 13-09-03 23:05
   
2.13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의 존재를 아는 시민들은 극소수였다.
출처 : http://www.study21.org/518/discuss/nk300.htm, http://cafe.daum.net/518cafe/IEVu/24, http://study21.org/library/beef/tricky_slogans.htm


역사학자라는 극우 인사가 일부 시민들의 증언을 이용해서 만들어낸 어처구니 없는 주장입니다.


우선 역사학자라는 극우인사는 다음과 같은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http://study21.org/library/beef/tricky_slogans.htm):
"미개인들과 역사치매증 환자들과 518픽션소설가들이 사기치는 것처럼 광주사태가 전두환의 군사독재에 항거하여 일어난 것은 전혀 아니었다. 김대중의 전국연합 사무총장 윤상원 등 주동자 몇몇을 제외한 광주시민군은 전두환이 누군지 전혀 몰랐으며, "전두환 아가리를 찢어 죽이자"고 외쳤을 때 그들은 전두환이 아마도 광주시청 공무원이려니 여기고 있었다. (그해 4월 보안사령관 임기가 끝난 전두환 장군이 중앙정보부서리로 임명되었다는 기사가 두어줄 작게 실린 적은 있었으나, 0.000001 퍼센트 이하의 국민에게만 그 기사가 눈에 띄었고, 그나마 한자로 작게 실린 무명인사의 이름에 관심 가진 이들은 동교동의 소수를 제외하곤 없었다.)"


그가 주장하는 것과는 반대로 전두환은 12.12 쿠데타 당시 계엄사합동수사본부장으로 신문에서 이미 수차례 이름이 드러난 상태였습니다. 주요 신문 1면에도 그 이름과 얼굴이 수차례 나타났죠(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41500329201012&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04-15&officeId=00032&pageNo=1&printNo=10627&publishType=00020,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9102800320101004&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79-10-28&officeId=00032&pageNo=1&printNo=s1&publishType=00030,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79110600329201015&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79-11-06&officeId=00032&pageNo=1&printNo=10493&publishType=00020). 10.26 사건 자체가 대통령의 암살이라는 국가 주요 사태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수사본부장의 이름과 얼굴이 전국에 알려졌다는 건 상식입니다.


그 사실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예로 1980년 4월 15일 자 "신임정보부장서리 전두환 중장"이라는 동아일보 기사의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10.26 사건 후 계엄사합동수사본부장으로 朴대통령시해사건의 수사를 지휘했고 직접 수사전모를 발표, TV와 신문 등에 모습이 드러나 낯익은 얼굴이 되었다. 고 朴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었으며 「12. 12」후 군의 핵심인물로 부상한 全 장군은 12.12 사건 후 주위사람들에게 '군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으며 관여해서도 안 된다. 나 자신은 정치에 취미도 없을 뿐 아니라 정치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강조하고 '정치하려 했다면 5.16 때 군복을 벗고 나가 무슨 청장이나 하나 하고 끝냈을 것'이라고 자주 말해왔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41500209202016&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04-15&officeId=00020&pageNo=2&printNo=18007&publishType=00020)


또한, 4월 15일자 NYT에서는 전두환 중장이 군정보기관인 국군보안사령관임과 동시에 중앙정보부장직까지 맡게 된 사실을 보도하며 그를 "최고 실력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논평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이 전두환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이 기사는 경향신문과 동아일보의 4월 16일자 1면에도 인용되었습니다(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4160032920102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04-16&officeId=00032&pageNo=1&printNo=10628&publishType=00020,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41600209201020&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04-16&officeId=00020&pageNo=1&printNo=18008&publishType=00020).


5월 15일 서울에서 열린 민족민주화성회 당시 시민들이 요구했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이 집회는 광주에서도 5월 14일과 5월 15일에 걸쳐 진행된 집회입니다. 아래 사진은 5월 15일 당시의 광주 사진입니다.
쿤다리니 13-09-03 23:05
   
지식인들 역시 이러한 군부 세력에 대한 반대의 움직임에 동참하기도 했습니다. 지식인 134인 1980년 5월 15일 발표한 시국선언문이 그것입니다. 이들의 목소리는 당시 계엄당국에 의해 보도금지가 된 바 있습니다.13

아래는 시국선언문 전문입니다.14 선언문에 있는 "국토방위의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우리 국군은 정치적으로 엄정중립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한 사람이 국군보안사령관직과 중앙정보부장직을 겸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한 불법이므로 마땅히 시정되어야 한다." 라는 요구사항을 주목해주십시오:


"지식인 134인 시국선언문

우리들 뜻을 같이하는 134명 일동은 민주발전에 대한 과도정부의 모호한 태도, 더욱 심화되어 가는 경제위기, 그리고 민주화와 생존의 권리를 외치며 전국적으로 격화되고 있는 학생과 근로자들의 항의 시위에 다만 강압적으로 맞서고 있는 당국의 무능무책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오늘의 난국은 기본적으로 지난 19년간 독재정권의 반민중적인 경제시책과 강권정치의 소산이다. 이는 민주발전을 저해하는 비상계엄령의 장기화로 빚어진 필연적인 사태 악화이다. 만약 국민이 납득할 만한 발전적 조치를 과정당국이 하루빨리 취하지 않는다면 정국불안에 경제적 위기까지 점차 회복할 수 없는 파국이 초래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에 우리는 오늘의 시국을 근본적으로 타개할 몇 가지 당면책을 제시코자 한다.

1. 비상계엄령은 즉각 해제되어야 한다.
비상계엄령 10ㆍ26, 12ㆍ12 사태 등 전적으로 집권층의 내부 사정에서 선포된 것으로서 이는 분명히 위법일 뿐 아니라 정치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1. 최규하 과도정권은 평화적 정권이양의 시기를 금년 안으로 단축시켜야 하며, 그 일정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현 과정은 의당 폐기될 유신헌법의 절차에 의한 시한적 정권으로서, 명분 면에서 보나 체질 면에서 보나 허약하여 난국의 극복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는 현 과정이 개헌에 관여하는 것을 명분 없는 개입으로 이를 반대한다. 국회의 개헌 심의는 정권야욕에 사로잡힌 작태를 청산하고 민중의 의사를 올바로 반영하여야 한다.

1. 학원은 병영적 성격을 일제 청산하고 학문의 연구와 발표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며, 이 같은 자유를 위한 대학인들의 자율적 민주화운동은 존중되어야 한다. 사학에 뿌리박은 족벌재단, 교수재임용제 등 학원의 민주화 발전을 가로막는 모든 독소적 운영 방식과 제도는 폐기되어야 한다.

1. 언론의 독립과 자유는 민주발전에 가장 불가결한 요소로서 절대 보장되어야 한다. 언론인들은 그간의 잘못을 반성하고 특히 동아ㆍ조선 등 신문사는 부당하게 해직시킨 자유언론 기자들을 전원 지체없이 복직시켜야 한다. 그들의 복직 없는 자유언론 표방은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우리는 필요한 경우 성토, 집필거부, 불매운동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써서 그들의 원상회복을 위한 운동을 벌일 것이다.

1. 일터를 잃고 거리에서 방황하거나 기아 임금으로 신음하는 수많은 근로자들을 위한 시급한 생활대책을 강구하여야 하며 근로자들의 양보할 수 없는 권리, 단체행동권을 포함한 노동기본권은 보장되어야 한다. 대기업 편중의 지원 정책으로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시급히 구제ㆍ육성되어야 한다. 저곡가정책으로 영농 의욕을 잃은 농민들에 대한 정책적 전환이 있어야 한다.

1. 일인독재의 영구화로 억울하게 희생당하고 있는 많은 민주인사에 대한 석방ㆍ복권ㆍ복직조치는 지체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1. 국토방위의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우리 국군은 정치적으로 엄정중립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한 사람이 국군보안사령관직과 중앙정보부장직을 겸직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한 불법이므로 마땅히 시정되어야 한다.

오늘의 난국은 국민의 자발적 합의와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만 극복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의 이 정당한 요구가 외면되고 강권정치가 계속 자행된다면 과도정권은 국가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역사적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1980. 5. 15"
쿤다리니 13-09-03 23:06
   
3.01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이 요구한 것은 민주화가 아닌 김대중의 석방에 불과했다.
5·18민주화운동의 의의를 어떻게든 폄훼하고자 하는 궤변입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이 요구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시민들이 계엄 철폐와 독재 타도, 그리고 전두환 퇴진을 외쳤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명백해 보입니다. 하지만 일부 극우세력들은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들을 무시하거나 조작으로 간주한 채 그 많은 시위 구호 중 하나인 "김대중 석방"을 외쳤다는 증언만을 전체인 것마냥 왜곡하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증언은 잘못된 것으로 여기고 자신의 믿음과 부합하는 증언만을 사실이라 한 뒤 그것을 왜곡하는 것은 그 자체로 굉장한 모순입니다.


증언 자체가 믿을 것이 되지 않는다고 양비론적인 입장을 취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렇다면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이 요구했던 것이 무엇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5·18민주화운동 당시 유포됐던 유인물들을 살펴봅시다(5.18 광주민주화운동자료총서 2권). 사실이 아닌 소문들도 언급된 점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5월 19일, 최초로 배포된 유인물 세 장에는 다음과 같이 김대중과 관련한 내용은 아무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만약 김대중의 석방을 목표로 한 시위였다면, 최초로 배포된 유인물에는 다른 시민들의 요구나 유언비어들보다 김대중의 석방이 훨씬 더 중요하게 언급되어야 했겠지요.
     
쿤다리니 13-09-03 23:07
   
위에서 볼 수 있듯 시민들이 김대중의 석방만을 요구했다고 주장하기에는 1. 시민들이 김대중의 석방보다는 계엄 철폐와 양민 학살 규탄, 그리고 전두환 퇴진을 외쳤고, 2. 김대중의 석방을 요구한 것은 민주 인사를 석방하라는 요구의 일환이었기에 많은 무리가 있습니다.

1 위 ( )때문에 링크가 제대로 잡히지 않고, 또 사진은 첨부하지 못하는데 모두 제가 위에 가져 온 블로그에서 퍼온 자료입니다. 이미 본인들 주장에 대한 반론이 나와있는데 왜 읽지않고 그걸 굳이 퍼오게 합니까. 읽으면 되는 거 아니예요...;;
종북척결 13-09-03 23:07
   
화려한 휴가 26년 그딴거 말하는 워키 백과 말고 신문 기사 찾아오세요...그럼 앞으로 5.18 말 안하겠음...

5.18전 신문기사에서 유신의 잔당..최규하 물러나라 말고...쿠데타로 정권 잡은 전두환 물러나라라고...팻말들고 시위한거 찾았어 링크걸어주세요~!!!

쿠데타를 알고 데모했다는데 당연히 그럼 당시 신문에서 전두환 쿠데타  정권 물러나라고 데모했단 말하는..신문 많았겠죠????
     
쿤다리니 13-09-03 23:10
   
아니 위키백과가 가장 정확한 자료 아닌가요? 위에 그리고 당시 광주에서 뿌려진 팜플렛이 사진으로 링크되어 있습니다. 가서 보시면 됩니다.
종북척결 13-09-03 23:13
   
쿤다리니<--그게 왜 정확한 자료임??그당시 신문이 정확하지..그당시 전두환 쿠데타를 알고...데모했다면서요....5.18판결문도 그렇고 님 주장도 그렇고....그걸 그당시 신문자료로 증명해야지...한참 지나서 정치적 판결 나고 난뒤에 위키백과 들이밀면 판결문 들이미는거나 머가 달름???판결문 자체도....최규하 진술이랑 다른데...
     
쿤다리니 13-09-03 23:15
   
뭐가 위키백과예요? 서울에서 시위난 부분만 위키백과고. 나머지 것들은 죄다 처음에 가져 온 블로그 자료입니다. 죄송하지만.. 그리고 기사와 자료도 첨부하고 있습니다. 몇번을 말합니까? 가서 보시라고요. 기사 첨부되었잖아요? 더이상 뭔 말을 합니까?
     
쿤다리니 13-09-03 23:17
   
제가 판결문만 들이댔나요? 아래 분명 기사와 자료들 첨부되어 있는데요? 또 참고 안 하시죠? 됐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당시 광주에서 돌린 팜플렛이 있는데 왜 참고 안 하십니까? 그냥... 님께선 님 믿고 싶은 거 믿고 싶은 거 뿐이죠? 그럼 뭐. 할 말 없습니다. 그렇게 믿고 사세요.
종북척결 13-09-03 23:18
   
쿤다리니<--님 간단하게 해결 되는거 아닌가???? 5.18 당시에 시민들이 전두환을 쿠데타를 알고 시위했다는 신문기사 찾아오면...애초에 시작이 민주화 의지가 있으니 인정한다구요.....그거 아니구 최규하 물러나라하면 민주주의랑 상관없는거잖아요...최규하가 민주주의 한다고 했는데 왜 물러나라함???간단하게 증명할수 있는걸 증명해달라는데....

정치적 재판을 토대로 한 위키백과..판결문...블로그 말고....
쿤다리니 13-09-03 23:21
   
전 님아들이 올린 자료들 다 봤습니다. 꼼꼼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반론했습니다. 님들은 뭡니까? 블로그가서 보랬더니 안 보고, 거기에 나왔는 거 퍼왔는데도 딴 소리 하시고. 몇번이나 반복해야합니까? 기사까지 있는데도 없다고 하시고. 서울에서도 시위가 있었고 전두환 신군부 반대 시위가 있었다고 말해도 딴 소리하고. 대체... 이래서 제가 토론하기 싫은 거예요. 이런식이니까. 기본적으로.. 상대가 가져 온 자료를 성실하게 읽고 반론이 뭔지 이해하고 재반론하는 게 기본 아닌가요? 여기가 엄격하게 토론하는 곳이었다면, 이런식으로 토론하면 욕먹습니다. 전 이만 가요~ 이미~ 블로그에 죄다 반론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블로그의 댓글로도 님들과 같은 반론한 부류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깨졌는지 다 드러납니다. 약 8천개 정도 달렸네요. 뭐하시면 그 블로그가서 당당히 반론해 보세요. ㅂㅂ2~
     
쿤다리니 13-09-03 23:24
   
본인들이 퍼온 건 블로그 아니었나요? 참나 ㅋㅋ 기사까지 첨부되어 있는 걸 뻔히 위에 있는데 아니라고 우기시고~ 당시 광주 시위자들이 돌린 팜플렛이 사진으로 첨부되어 있다고해도 우기시고 ㅋㅋ 아니 상식적으로 당시에 기사에 그런 게 나겠습니까? 참나 ㅋㅋ
종북척결 13-09-03 23:25
   
쿤다리니<--아니 님아 님이 올렸음 하나만 링크걸면 대잖아요....그당시 전두환 쿠데타 정권 물러나라며 데모했다는 신문기사.....팜플렛 돌리고 대규모 데모했음 신문기사에 났을꺼 아님 한줄 링크걸어달라구요...이상한말 하지 말고....
쿤다리니 13-09-03 23:26
   
판결문? 판결문만 물고 늘어지시는데 그 아래 자료는 뭔가요? 또 또 또~ ㅋㅋㅋ 참조 안 하시죠?ㅋㅋㅋ 돌아 버립니다. 진짜 ㅋㅋㅋㅋㅋ 같은 말 계속 뱅뱅....

님들 봤죠? 이렇게 궁색해지는 겁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 의심하는 분들. 그러니 괜히 딴데서 그러지 마세요. 예전에 이 게시판에서 반복되던 이야기였습니다. 그만 이만~
종북척결 13-09-03 23:26
   
증명도 못하는 주장을 왜함???그당시 사람들이 전두환 쿠데타를 알고 팻말들고 데모했다면서 ...그당시 신문에 난거 하나만 링크걸어달라는데..먼 헛소리가 그렇게 많음.....
     
쿤다리니 13-09-03 23:30
   
당시 팜플렛이 있는데 왜 헛소릴하세요? 그 팜플렛에 신군부에 대한 비판이 있다고 위 블로그 퍼온 자료에 있잖아요? 당시 돌린 팜플렛이라고요. 위키백과(이거 전문가용 백과입니다. 죄송하지만 엔하위키가 아니예요~)에 블로그에 기사에 사진까지 다 나와있는데, 반복으로.. 증명? 본인들이 딸랑 최규하 변호사라는 블로그 자료 하나 올려놓고 이런 말도 안 되는 딴지를 거는 겁니까? 그냥 그대로 믿고 사세요 안 말입니다.
종북척결 13-09-03 23:28
   
쿤다리니<--아놔 5.18 전에 님 주장처럼 전두환 쿠데타를 알고 데모했다라는 그당시 신문기사 링크걸면 ..판결문이나...블로그 님 주장 다 인장한다구요................그게 핵심아님??? 민주화 의지가 있어야 민주화 운동이라고  해주져...총기를 들었던 북한군이 개입됬던 아니던........
쿤다리니 13-09-03 23:33
   
아니 기사가 나겠냐고요. 님아. 더구나 위에 자료 안 보이세요? 시국선언? 당시?
종북척결 13-09-03 23:34
   
쿤다리니<--믿게 해달라니깐...믿게 해주지도 않으면서 이상한 자료만 올려놓고 정작 한줄 링크도 못거시는분이...팜플렛들고..그렇게 대규모 데모했음 당연히...신문기사에 났겠지 안났겠어요?? 쿠데타가 작은 일인가?????

의심만 해도 신문에 대서 특필 했겠네...그거 보여 달라니깐 ...그럼 믿는다고 헛소리만 작렬하시네....
쿤다리니 13-09-03 23:36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51600099207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0-05-16&officeId=00009&pageNo=7&printNo=4367&publishType=00020

자 님께서 그렇게 원하시던 당시 기삽니다. 계엄령 철폐 위키백과 내용 그대로네요? 전 없는 줄 알았는데 기사가 있네요.
종북척결 13-09-03 23:38
   
안보이는데요????발제글 써보세요 제컴이 문제가..느낌표만 보이는데

안보이는데 멀 보라고 그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쿤다리니 13-09-03 23:42
   
뭐가 안 보이세요? 박스 안에 X 누르면 보이는데요? 기사? 이용 안 해보셨어요?
ondaganda 13-09-03 23:40
   
우리가 극좌, 좌좀을 조심해야 하듯
극우주의자도 조심해야죠...
박근혜가 어떠한 이유로 독재를 한다고 해도....
믿고 따를 분이란건 확실........
종북척결 13-09-03 23:43
   
님 저기에...어디 전두환 쿠데타 때문에 시국선언했단말 있음????????????없는데
     
쿤다리니 13-09-03 23:45
   
계엄은 누가 했나요? 님같으면 제가 님같이 기사 보는 방법도 몰랐다면 아마 조롱했을 거예요. 그쵸? 근데? 전 안 했죠?... ㅎ 그리고 쿠데타는 그 이후의 일이죠... 뭔 소릴하시는 거예요.
종북척결 13-09-03 23:47
   
국가 비상시 국가 안녕과 공공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헌법 일부의 효력을 일시 중지하고 군사권을 발동하여 치안을 유지할 수 있는 국가긴급권의 하나로 대통령(최고 통치권자)의 고유 권한이다...대통령이 시해 당했고...그 범인이 그당시 정권의 핵심 실세인 중앙 정보국국장 이랑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인데...

이게 민주주의랑 무슨 상관있음 이게 독재임???????
     
쿤다리니 13-09-03 23:50
   
그 주체가 최규하였나요? 왜 억지를 부리세요? 본인께서 뭐라고 하셨나요? 왜 계엄철폐 따위의 발언이 나오면 인정하겠다고 한 거 아니었어요?
쿤다리니 13-09-03 23:48
   
자 보세요. 제가 반론드린 건 당시 서울에서도 그렇고 쿠데타 전에 이미 학생들이 신군부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있었고 이것이 서울은 물론 광주까지 시위를 한 배경인데, 님들께선 지금 최규하하고 억지로 묶는 거 아니예요. 보세요. 신문에도 나오죠? 계엄철폐. 그게 본래 목적이었다고요. 심지어 위키백과와 기사를보면 시위자들이 스스로 물러났어요. 이러다가 군부가 개입하고 쿤데타나는 거 아니냐며 물러나서 경찰들과 합의해서 물러났다고요. 서울에서...
종북척결 13-09-03 23:51
   
님아...박정희 대통령 시해되고 바로 다음날..대통령 권한대행인 최규하가 내린건데 계엄령은?????????국가 비상시에 적절한 조치 아님???????그 이후로 북한동향도 이상하고....대모도 심하고....머가 문제란거임???
     
쿤다리니 13-09-03 23:51
   
그것과 1212사태가 같나요? 지금?ㅋㅋㅋㅋ 참나 ㅋㅋㅋㅋㅋ
쿤다리니 13-09-03 23:52
   
1979년 12월 12일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전두환, 노태우) 중심의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사건 경과계엄사령관인 정승화를 강제연행하고 대통령 최규하를 협박하여 사후승인을 받음 결과1980년 5월 17일 신군부가 비상계엄전국확대조치를 발표하고 제5공화국의 중심세력으로 부상 관련정보10·26 사태 | 5·18 민주화운동
쿤다리니 13-09-03 23:55
   
본인께서 뭘 비판하고자하는지 스스로 정립해서 말씀하세요. 본질은.... 신군부와 계엄령에 대한 반대가 바로 광주 민주화 운동의 시작입니다.
쿤다리니 13-09-03 23:57
   
저 진짜 이만갑니다. 그냥.. 블로그가셔서 제대로 공부하시고, 만약 반론할 게 있으면 블로그가서 하세요. 전 이만 갈테니.. 이미 블로그에 내용과 댓글로 죄다 반론 싹~ 해 놨습니다. 블로그 주인장과 딴 분들이. 그거 읽는 거 재밌을 거예요. 그럼 갑니다. 진짜. 나중에 재밌는 토론하죠. 오늘같이 조롱하시면 그냥 씹을 겁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종북척결 13-09-03 23:57
   
쿤다리니<--무슨 신군부가 내렸다고....그전에 데모로 경찰관들도 많이 죽고....데모가 너무 심해 희생자가 많이 나니...최규하가 비상계엄령 전국으로 확대조치 한거지.....결국머...애초에 증명하라는....전두환 쿠데타 때문에...데모했다라는 신문기사 하나 안찾아 오고 계속  헛소리....

12.12는...최규하 증언보세요....님 글왜 안읽음??어흥님이 링크걸고 올렸는데...
종북척결 13-09-04 00:00
   
제가 지금 비판하는거처럼 보입니다...님들이 그토록 주장하는 전두환 쿠데타 때문에 5.18이 일어났다는....그당시 신문기사 하나 보여 달라고 했는데...그럼 인정한다고...다시 재평가 해보잔 소리도 전 안한다구요...민주화 의지가 있음 과격해 질수도 있고 ...좋은건 아니지만...그래도 인정한다고 했는데...님이 제가 보고싶어 하는 그 하나를  증명하지 못하면서...자꾸 이상한말 하시는거 아님????증명못할꺼면 애초에 주장하는게 아니죠...
구르미 13-09-04 00:09
   
5.10시위현장에 있었죠. 그때 구호중에 전두환 물러나라는 구호 있었습니다. 학원마치고 나오다 휩쓸린 경우지요. 그래도 광주사태는 법적평가라는 것에 찬성을 합니다. 그리고 그 평가가 이루어진 상황을 보면 민주세력의 밀어붙이기 식의 일방적인 평가라는 것에 일말의 여지도 없는 상황입니다. 가장 중요한 증인중 한 사람인 최규하 전 대통령의 증언이 없다는 것이 이 평가를 다시 해야한다는 한가지 예가 될 수 있겠죠. 그리고 쿤다리니 님이 제시한 것은 맞지만 그것이 광주사태가 민주화운동이란 평가에 대한 증거는 될 수 있지만, 그 당시 정부상황이나 여건에 대한 반대 진영의 진술은 거의 묵인되거나 호도된 경향이 많았다는 사실도 맞다는 겁니다. 검사, 재판장등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의 성향을 한번 보시기바랍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겁니다. 또한 그렇기에 판결문에 대한 믿음이 반감이 되어버린 것이고요.
  이런 이유 때문에 광주사태는 법적인 평가는 받았지만, 객관성이 결여된 평가라는 것이죠. 또한 그렇기때문에 광주사태는 재심이 필요한 사안이란 것이고요.
     
쿤다리니 13-09-04 00:20
   
일단 아래는 기본 개념이 제대로 잡혀야 한다고 보고 올린 자룝니다. 역시 위키백과고. 님이 아닌 윗 분에게....

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의혹을 제기하려면 명확한 잣대를 가지고 제기하셔야 맞는 거 아닐까요? 단지 정부의 성향(이 또한 관념적인 자기 규정일 분입니다.) 판결문... 이것도요.

객관성이 결여되었다면 결여된 부분이 무엇인지 짚으면 되는건데 님과같이 관념적으로 단지 그 평가에 참여한 사람들 성향이 의심스러워..라면.. 이게 합리적인 의혹 제기라고 할 수 있나요?

그리고 위에 링크된 블로그에 가셨는지 모르겠지만, 의혹 제기 된 거 거의 다 논파 당했습니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hiyahn&logNo=20187619532&categoryNo=16&parentCategoryNo=16&viewDate=¤tPage=2&postListTopCurrentPage=&userTopListOpen=true&userTopListCount=5&userTopListManageOpen=false&userTopListCurrentPage=2

1 《주간조선》- 최 대통령도 몰랐던 518 포고령...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chiyahn&logNo=20171304853&categoryNo=0&parentCategoryNo=0&viewDate=¤tPage=12&postListTopCurrentPage=&userTopListOpen=true&userTopListCount=5&userTopListManageOpen=false&userTopListCurrentPage=12

1 요기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의혹제기를 이 수준으로 하니까 문제죠...
쿤다리니 13-09-04 00:10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당하자 대한민국 정부는 국무총리 최규하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임명하고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10월 27일 계엄사령관에 육군참모총장 정승화가, 10·26 사건 수사를 담당하는 합동수사본부장에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취임했다. 10·26 사건을 계기로 긴급조치로 민주화 여론을 억누르던 유신헌법을 폐지하고, 개헌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통일주체국민회의 선거에 의해 당선된 최규하는 12월 7일 0시 대통령 취임 직후 헌법에 대한 일체의 비판이나 반대 논의를 금지하는 긴급조치 제9호를 해제하면서 민주적인 헌법으로 개정을 약속하고 정치적 억압을 완화했다.[1] 하지만 12월 12일 군부내 강경파 세력인 하나회가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 연행하고 군 주도권을 장악했다. 12·12 군사반란으로 등장한 신군부는 민주화 일정을 불투명하게 만들고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다. 1980년 2월부터 보안사령부는 폐지됐던 정보처를 부활시키고, 민주화 여론을 군부의 정치 참여를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기 위해 언론에 대한 회유를 핵심으로 하는 K-공작 계획를 실시했다. 같은해 3월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육군 중장으로 진급한데 이어, 4월 중앙정보부장 서리(부총리급)를 겸직하며 양대 정보기구를 장악하고 국내 정치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1980년 5월 초순경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 인사들은 시국을 수습한다는 명목 아래 본격적으로 정국을 장악하고 집권을 하기 위한 방안을 의논했다. 5월 12일 보안사에서는 전두환의 지시를 받아 '비상계엄 전국확대'·'국회 해산'·'국가보위 비상기구 설치'를 골자로 하는 집권 시나리오로 시국수습방안을 기획했다. 지역계엄만으로는 신군부가 정국을 장악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전두환 퇴진 등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시위와 저항을 강력히 제압하고 군부가 전면에 나서서 정국을 장악하기 위해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가보위 비상기구를 설치해 내각을 조종·통제하는 기능을 군부가 수행하는 과정에서 헌법상 계엄해제 요구권을 가지고 있는 국회가 계엄해제를 요구할 우려가 있어 신군부에 의한 지속적인 정국장악을 담보하기 위해서 정치인 체포와 국회해산이 필요하다는 것이 시국수습방안의 기획의도였다.[2] 이후 전두환·노태우·황영시·차규헌·유학성·정호용 등 신군부 핵심 인사들은 시국수습방안을 실행하기 위한 논의를 순차적으로 하고,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군지휘관들의 지지결의를 유도함으로써 전군의 의사를 배경으로 시국수습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5월 15일 보안사 대공처장 이학봉은 김대중·김종필 등 주요 정치인을 연행하기 위해 '국기문란자 수사계획', '권력형 부정축재자 수사계획'을 마련해 전두환에게 보고하고, 전두환은 이학봉에게 검거 준비를 지시했다.[3]

1980년 4월 말부터 학생 운동권과 정치권에서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임하면서 권력을 강화하는 전두환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5월 1일 서울대 총학생회는 철야회의 끝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의 정치 개입이 민주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이유로 정치 투쟁을 결정했다. 5월 초부터 대학생들은 전두환 퇴진·민주화 일정 제시 등의 시위 구호를 외치면서 민주화 요구 시위를 벌였다. 한편 5월 중순부터 정부와 국회에서는 민주화 일정을 앞당기고 있었다. 5월 12일 신민당과 공화당 양당 총무들은 개헌안을 접수하고, 5월 20일 10시 임시국회를 소집해 계엄 해제·정치일정 단축 등 정치 현안 문제를 논의하기로 합의했다.[4] 5월 13일부터 대학생들에 의한 본격적인 가두시위가 시작됐다. 5월 15일 서울역에는 대학생 10만명이 결집했다. 군의 동향이 심상치 않자 대학생들은 오후 8시까지 시위를 하던 중 자진 해산했다. 이날 신현확 총리는 정치 일정을 앞당기겠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면서, 80년 말까지 개헌안을 확정하고 81년 양대 선거를 실시해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발표했다.[5] 5월 16일 전국총학생회 회장단은 정상수업을 받으며 당분간 시국을 관망하기로 결정하고 당분간 집회를 중지하기로 결정했다.
쿤다리니 13-09-04 00:11
   
북괴남침설 악용[편집]1980년 5월 10일 중앙정보부는 일본 내각조사실의 첩보를 토대로 대북 특이동향을 경고하는 보고서, '북괴남침설'을 작성했다. 5월 11일 육군본부 정보참보부에서는 '북괴남침설'을 분석하고 이와 같은 첩보는 가치 없다고 결론내렸다. 5월 13일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북괴남침설'와 관련해 "우리가 가진 정보에 따르면 북한에서 평소와 다른 부대이동을 볼 수 없으며 한국에 대한 모종의 공격이 임박했다고 믿을 만한 움직임이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주한미군 사령관 존 위컴은 "전두환이 청와대의 주인이 되기 위한 구실"라고 평가했다.[6][7]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은 5월 12일 심야에 임시 국무회의에서 관련 내용을 과장해서 보고했다. 남침설을 제보했다고 알려진 당시 일본의 내각 조사실 한반도 담당반장과 나카소네 당시 방위성 장관 등은 "그런 구체적인 내용을 말한 적도 그런 정보도 없었다"고 밝혀 5월 17일을 전후한 '북괴남침설'은 신군부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신군부는 북한의 남침 가능성을 빌미로 위기감을 조성하고 비상계엄 확대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남침 첩보를 악용했던 것이다.[8]

군부대의 사전이동[편집]전두환·황영시·정호용 등 신군부 핵심세력은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이루어질 조치에 대한 반대 집회가 있을 것으로 예상해 진압병력 투입 및 강경진압 방침을 결정했다. 시국수습방안은 계엄 확대와 동시에 공수부대를 투입해 과감한 방법의 타격으로 시위대를 진압한다는 지침이 즉각 실행될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9] 1980년 3월 초부터 이미 학생 시위가 가열될 것을 대비해 전국 군 부대에 공세적 폭동진압훈련인 충정훈련이 강도높게 실시됐다.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 이전, 신군부는 군부대를 사전 이동시켜 시위 진압 준비를 마쳤다. 경기도 양평의 제20사단, 강원도 화천의 제11공수여단, 충청북도 증평의 제13공수여단 등은 서울로 이동했으며, 동시에 수도경비사령부에 배속됐다. 5월 10일 2군사령부에서는 광주·대전 등에 제7공수여단을 배치하는 방안을 의논했다. 5월 15일 제7공수여단은 광주·대전으로 이동할 준비를 마쳤고, 제31사단은 광주 지역의 주요 보안 목표를 점거했다.[10]
쿤다리니 13-09-04 00:11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편집] 위키문헌에 이 글과 관련된 자료가 있습니다.
계엄포고 제10호

신군부는 1980년 5월 20일 임시국회가 개회되면 정국 장악에 차질이 빚어질 것을 우려하여, 김재규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는 5월 20일 이후에 시행하겠다던 당초 계획을 수정하고 시국수습방안을 17일으로 앞당겨 시행하기로 결정했다.[11] 5월 17일 9시 30분경 전두환은 권정달 보안사 정보처장을 주영복 국방부장관에게 보내, 시국수습방안을 자신이 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니 대통령에게 전군주요지휘관회의 결의사항이라고 말하라고 요구했다. 17일 오전 이학봉은 전두환의 지시에 따라 전국 보안부대에 17일 24시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니 학생 등 시위 주동자들을 일제 검거할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9]

17일 정오 신군부는 정부로부터 계엄 확대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해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열었다. 노태우·정호용·황영시 등 신군부 핵심 인사들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비상계엄 확대 방안을 역설했으며,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통한 군의 정치개입을 결정하도록 유도했다. 17일 오후 5시 전두환, 주영복 등은 전군의 일치된 의견임을 내세워 대통령과 국무총리에게 시국수습방안의 '비상계엄 전국확대'·'국회 해산'·'비상기구 설치'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했다. 17일 오후 9시 중앙청에 집총한 군인들이 도열하고 외부와의 연락이 끊어진 상황 속에서 국무회의가 열려 특별한 토의 없이 비상계엄 확대안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5월 17일 24시 부로 비상 계엄령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12] 계엄 확대와 동시에 신군부는 계엄사령관 이희성 명의로 계엄포고 제10호를 발령하면서 정치활동 금지·대학교 휴교령·언론보도 사전검열 강화·집회 및 시위 금지 등의 조치를 내렸다. 이는 헌법에 규정된 국회 통보 절차도 거치지 않고 계엄군을 동원해 국회를 무력으로 봉쇄한 채 벌인 불법조치였다. 5월 18일 새벽 2시 신군부는 국회를 점령한 뒤 무력으로 봉쇄했고, 헌정중단 사태가 발생했다. 한편 비상계엄이 확대되기 직전, 보안사에서 예비검속을 통해 김대중·김종필를 비롯한 주요 정치인 26명은 합동수사본부로 불법 연행하면서 학생·정치인·재야인사 2699명을 체포하고 신민당 총재 김영삼 역시 가택연금 처분내리는 정치 탄압을 감행했다.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인해 국회와 정부에 의해 진행된 개헌 논의가 중지됐다. 서울의 봄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13]
쿤다리니 13-09-04 00:12
   
신군부의 정권장악[편집]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에 따라 전국 보안 목표에 계엄군이 투입됐다. 92개 대학에 계엄군 병력 중 93%인 22,342명이 배치됐다. 반면 보안 목표는 109개 목표에 2,395명만 배치됐다. 이는 신군부 세력이 대학가의 시위를 잠재우려는 의도에서 계엄군을 배치했음을 보여준다.[14] 5월 18일 오전 전남대학교 학생 수백여명이 학교 정문 앞에서 계엄령 확대와 휴교령에 반발하는 시위를 했는데, 공수부대는 학생들을 구타하며 잔혹하게 진압했다. 광주 시내에 투입된 공수부대는 대검·곤봉으로 과격진압을 전개했고, 이는 광주 시민을 자극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주요 원인이 됐다. 당시 신군부의 핵심인사였던 전두환은 중앙정보부장과 보안사령관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지휘계통에 불법 개입함으로써 강경진압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신군부는 5월 20일 오전 계엄령 해제와 헌법 개정을 논의하려는 임시국회를 무산시키기 위해 수도경비사령부 소속 제30경비단 병력을 동원하여 국회를 봉쇄하고 국회의원의 등원을 강제로 저지했다.[9]

신군부는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에 항거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한 다음, 내각을 조종·통제하는 초헌법적 기구로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설치해 실질적으로 정권을 장악했다. 국보위 상임위원장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상임위 분과위원장에 현직 군인이 중심으로 선임됐다. 신군부 세력은 국보위를 기반으로 통치권을 행사했으며, 군부의 의도에 따라 사회를 개조하는 작업을 시행했다. 전두환은 국보위 사회정화분과위원회를 통해 공직자 숙정계획을 입안하고 1980년 7월 31일까지 공직자 총 8061명에게 사임을 강요했으며[9], 국보위 문교공보분과위원회를 통해 1980년 10월 말까지 기사 검열반대나 제작 거부운동을 주도해 보안사의 '언론 정화자 명단'에 오른 기자 933명을 각 언론사의 자율정화 형식으로 해직하도록 했다.[15] 국보위 사회정화분과위원회는 사회악일소특별조치 및 계엄포고령 제19호에 따라 삼청교육대를 설치하고, 사회정화계획에 따라 합동수사본부에 수사지시를 내려 10·27 법난를 일으켰다.[16]

1980년 6월 말부터 국보위 법사분과위원회가 개헌안을 연구하고,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 주요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통령 단임제와 선거인단에 의한 선출 등을 골자로 한 개헌안이 확정됐다. 8월 14일로 예정된 김대중 등에 대한 내란음모사건의 재판을 앞두고 보안사는 양병호, 민문기, 임항준, 김윤행, 서윤홍 대법원 판사를 일괄 사직하도록 강요했다. 8월 16일 국정 수행에 한계를 느낀 최규하 대통령이 사임하고[17] 8월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 선거에 의해 전두환이 제11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0월 27일 계엄령하에 치뤄진 국민 투표를 통해 제5공화국 헌법이 공포됐다. 제5공화국 헌법 부칙에 따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입법권을 가진 임시 입법 기구 국가보위입법회의로 개편됐다. 국가보위입법회의는 국회의 역할을 대행해 언론기본법, 노동관계법, 정치풍토쇄신을위한특별조치법 등 189개의 법안을 통과시켰다.[9]

신군부는 제5공화국의 출범을 앞두고 집권 기반을 다지기 위해 정치적 정지작업에 나섰다. 80년 11월 전두환과 노태우(보안사령관)는 보안사와 중앙정보부에 지시해 K-공작계획의 결과를 바탕으로 언론기관 통폐합방안을 마련한 다음, 정보기관을 동원해 각 언론사를 협박함으로써 언론 강제 통폐합을 시행했다.[9] 전두환은 보안사와 중앙정보부에 지시해 정치인별 신상카드를 가지고 정치 활동 규제 대상을 선정하게 하고 이를 결재해 사회정화위원회에 그 명단을 전달, 80년 11월 12일 811명에 대한 정치활동 규제조치를 발표하게 했으며, 정치활동 규제조치로 신군부의 집권에 방해가 되는 구 정치인들의 정치적 도전을 막기 위해 3김씨를 비롯한 500여명의 유력정치인들을 정치무대에서 퇴출시켰다. 이후 신군부는 신군부의 정치참여를 위한 여당격인 민주정의당의 창당뿐만 아니라 민주한국당 등 다수의 친여 성향 야당 창당에도 직간접적으로 개입을 했다.[18] 1981년 1월 23일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된 김대중에 대한 사형 판결이 확정됐다.[19] 1981년 3월 3일 전두환이 제12대 대통령이 되면서 공식적으로 제5공화국이 출범했다.[20]
쿤다리니 13-09-04 00:12
   
평가[편집]최규하정부의 국무총리를 역임했던 신현확은 1980년 5월 당시 신군부 세력으로부터 시국수습방안 결재 요구를 받고 나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비상계엄 전국확대, 국회해산, 국가보위 비상기구 설치를 통해 행정부·국회 등 주요 헌법기관을 사실상 장악해 국정을 명실공히 주도하고 나아가 정권까지도 찬탈하려는 마각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신현확은 비상계엄 조치로 인해 실질적으로 내각이 국정운영과정에서 배제됐으며, 이에 따라 무력감을 느끼게 되어 5월 20일 사퇴했다고 말했다.[21] 80년 5월 당시 신현확은 "국보위 설치와 국회 해산에는 내각이 거의 전원 반대하는 입장이며 비상계엄확대조치안은 대통령이 최종 결재할 사안이므로 시간을 두고 결정할 일"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불구하고, 신군부 세력은 임시 국무회의장에 30경비단과 헌병대 병력을 불법동원,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뒤 5.17 비상계엄확대안을 강행 통과시켰다.[22]

1980년 5월 17일 최규하 전 대통령은 '시국수습방안' 첫 재가 요구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최규하는 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 등에게 "헌정질서가 뒤바뀌는 것은 5.16 정변 한번으로 족하다. 모든 일은 법테두리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해 신군부측의 `시국수습방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명백히 했다.[22]

신민당 총재 김영삼은 5월 20일 상도동 자택에서 신군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오늘 계엄통치를 확대 강화한 5 ·17 사태를, 민주회복이라는 국민적 목표를 배신한 폭거로 규정한다. 계엄당국의 강압통치로 빚어진 유혈사태는 이 나라를 파국으로 몰아가고있다."면서 '국민적 목표를 배신한 5·17 폭거'라는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23]

미국 국무부는 5월 18일과 이튿날인 5월 19일에도 워싱턴에서 "우리는 비상계엄이 대한민국 전역에 확대 실시되고, 대학이 폐쇄되고, 많은 정치 지도자와 학생 지도자들이 체포된 것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정치 자유화를 향한 발전에는 법의 준수가 수반되어야 한다. 우리는 한국의 지도자들에게 우리가 매우 우려하고 있는 바를 분명히 밝혔고, 崔대통령이 일찍이 밝힌 바와 같이 헌법 개정과 광범위한 지지기반을 갖춘 문민정부 선거가 즉시 계속되어야 한다는 우리의 신념을 강조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해 신군부의 조치에 우려하는 입장을 밝혔다.[24]
종북척결 13-09-04 00:21
   
구르미<--권력에 핵심이고 공석이된 중앙정보국 국장자리 까지 겸하고 있었으니...운동꼬니들 물러나라 하는게 당연하죠...주사파들이 지금으로 치면 국정원장 좋아하더이까????

최규하도 같이 물러나라고 했죠.. 유신의 잔당이라고 ..그게 민주화 의지랑 상관이 없다고요...최규하는 민주주의 한다고 했는데...그러니 단지 권력에 핵심이고 국정원장 겸하고 있는 주사파들이 싫어하는 전두환 물러나라는 민주주의 의지로 보기는 전 힘들다구요.....전두환 쿠데타 때문에 일어났다 하면 인정한다구요...그건 민주주의의 의지가 있으니...
종북척결 13-09-04 00:25
   
쿤다리니<--진짜 말귀 못 알아들으시네,...걍 그당시 전두환 쿠데타 정권 물러나라 한 기사 한줄 링크걸면 .....인정한다니깐...........먼 글을 저렇게....말을 안해야지...으이구~!!!
쿤다리니 13-09-04 00:30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004150020920101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0-04-15&officeId=00020&pageNo=1&printNo=18007&publishType=00020

말귀 진짜 어우두시네 ㅋㅋ 아까 위에서 말한 건 다 까먹으셨나요? 1212 사태하고 계엄령이 같다고요? 긴급초히 9호하고 비상계엄하고 같다고요? 계엄철폐가 최규하가 한 것이라고요? 위 자료 보시죠. 전두환이가 권력을 잡았다는 4월자 일본발 기사입니다.. 이미 국민들이 알 정도로 정보가 퍼졌고 그로 인해서 위의 위키백과 내용이 맞아 떨어지는데 우기시겠다는 겁니까?
     
쿤다리니 13-09-04 00:32
   
더구나 위 구르미님이 직접 그 시위에 가서 그와같은 구호가 있었다고 발언도 하셨는데 직접 발언은 못 믿으시겠다 이겁니까? 일단 위 자료부터 주~욱 읽고 말씀하시죠.
종북척결 13-09-04 00:39
   
쿤다리니<--먼 헛소리 하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지고 왔어요???님이 주장하던거 전두환 쿠데타 정권 물러나라~!!했다면서 ...계엄령철폐 최규하가 한거라 언제 그러데요???지금 모략질 하심???긴급조치 9호도..최규하가..해제하고....계엄령두 최규하고 했다구요....비상 계엄령 확대조치두 최규하가 한거구....

위기사보면 최규하 정권의 뒷받침하는 권력 1인자라구 하는데..권력의 핵심이지...쿠데타 했단말이 나옴?????

이러니깐 최규하 정권을 뒷받침 하는 권력의 제 1인자 이니깐 ....민주주의 한다는 최규하랑 같이 전두환 두 물러 나라 한거잖아요...자폭질 하는거임???

기사 못읽음?????계엄령 해제할려구 했죠 그 비책으로 전두환...중앙정보국 국장 앉히고...그런데 데모가 심했어 안했다는 거 아님??? ㅋㅋㅋㅋㅋㅋ
     
쿤다리니 13-09-04 00:53
   
푸하하하하하~~~~~~~~~~~ 텍스트를 거꾸로 읽으시는 기적의 사나이시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단하세요~~~~~~~~~

내가 언제 쿠데타 했단 말을 했나요?ㅋㅋㅋ 기본 맥락부터 모르시네 ㅋㅋ 내가 왜 저 자료를 퍼왔게요? 님앙?ㅋㅋ 전두환이가 권력 기관 중심에 우뚝 서 있다는 걸 전 국민이 다 알게되는 기사의 일종으로 퍼 온거예요~~~~~~~~~~ 근데 나오지 않는 자기 해석과 살을 덫붙혀서~ 썰을 푸세요?
종북척결 13-09-04 00:44
   
쿤다리니<---진짜...이상한 사람이네 ....전두환 쿠데다 했어 데모 했다라는 신문기사 하나 보여주면 인정한다니깐....계엄령 기사 퍼오고...최규하가 전두환 중앙정보국 국장 앉히는 비책 기사 퍼오고 머 하자는거임?????

제말은 최규하랑 최규하 정권을 뒷받침하는 권력의 제 1인자 전두환 물러나라 하면서 한편으로 묶어서 다 물러나라 한거 말구 전두환 쿠데타 때문에...일어났다는 기사 찾아 오라고 한거임...

왜 없는줄 암????당연히..쿠데다 한거 모르고...(나중에 쿠데타인지는 다시 조사해봐야됨).. 민주주의하자던..최규하랑..전두환 이랑 같은 무리로 묶어서 물러나라 한거니깐...전두환 쿠데타 정권 물러나라 말이 없는거임....
종북척결 13-09-04 01:00
   
쿤다리니<--눈이 썩었음...님 기사 퍼오기 전에...구르미님에 글에 대한 답 으로 권력의 핵심이라고 말했잖음????? 왜 저런기사 퍼왔음???민주주의 하자던 최규하랑 그정권의 뒷받침 하는 정권의 제1인자 지금으로치면 국정원장..전두환 유신의 잔당들 물러나라 한게 민주주의 의지가 없다고요...제가 볼땐.....

님이 가지고 신문기사도 그러게 말하잖아요 최규하 정권의 뒷받침하는 전두환 이라고..같은 무리란 말이죠...

민주주의 하자던..대통령과 국정원장 물러나라가..민주화 운동이랑 무슨 상관있다고..내 원참...ㅋㅋㅋㅋ
꿀땅콩 13-09-04 01:10
   
당시 정부 쿠테타로 집권한 군부아님?  난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배웠고. 7,80년대는 종교문제만 없지 이집트, 시리아랑 다를게 뭐임.  지금도 많이 바꼇나 몰겠네? 오늘도 pd수첩에는 배타적인 군수사문제가 나오는군.. 언제쯤 이 경직된 사회가 정의롭고 합리적인? 상식있는 나라가 될까
후우니 13-09-04 09:28
   
5.18은 선량한 광주시민들을 남파 간첩들이 선동해서 일으킨 폭동입니다.

지금의 대한민국도 이석기같은 종북, 간첩들이 나라를 이간질 하는 마당인데, 1980년대의 혼란했던 그때는 오죽했겠습니까?
그냥 의문을 품고 곰곰히 생각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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