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주말광장이라고 듣보잡 신문이라고 한 분이 계셨죠.
중앙일보 금요특집입니다.
야당의원만 고문했냐면 그것도 아닌듯
< 공화당 의원들에게도 가해진 고문 >
위 기사에도 잠깐 언급이 되지만 야당 의원들만 끌려가서 고문 당했던 것이 아니다. 71년 북파공작원들이 총들고 서울 시내까지 침입한 실미도 사건이 터지자 신민당은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당시 내무부 장관 오치성의 해임안을 국회에 제출한다.
그런데 평소 오치성에 불만을 느꼈던 공화당 의원 수십명이 이 해임안에 찬성표를 던져서 오치성 내무부장관 해임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만다.
당시 오치성은 공화당 4인방 (김성곤,길재호,김진만,백남억) 체제를 견제하라는 박정희의 명령을 받고 공화당 4인 체제의 세력 기반을 허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당연히 공화당 의원들과의 알력이 심했으며 이것이 공화당 의원 수십명이 오치성 장관의 해임안에 찬성표를 던졌던 이유다.
오치성이 국회 해임안 통과로 잘려나가자 이에 분노한 박정희는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에게 지시, 해임안에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국회의원들을 색출해 중앙정보부로 잡아다가 무차별 구타와 고문을 자행한다.
결국 육사 8기로 5.16 주체세력의 한 명이었던 길재호, 박정희의 정치 자금을 담당했던 김성곤등은 무차별 구타를 당하고 공화당에서 내쫓기고 만다.
여당 국회의원이건 야당 국회의원이건 박정희의 눈밖에 나면 무차별 고문을 감수해야 하던 시대였다. 국회의원의 신분을 가진 사람도 이정도 취급을 받았으니 일반 국민은 더 말 할 필요도 없을것이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비판이나 저항은 그야말로 일제시대때 독립운동 한다는 정도의 희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던 시대였다.
결국 박정희 리더쉽의 기본은 이러한 조폭적 리더쉽이다.자신의 권력 유지와 강화를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저항하면 폭력을 통해서 철저히 응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