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과 달리 북한에선 모든 친일파를 숙청했다'라는 식으로 잘못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상 북한에서도 친일파들이, 그것도 악질로 분류되는 자들이 정부 요직에 앉았다. 남한에서는 친일파들이 여과없이 그대로 정부 요직에 앉았다는 이유로 북한에서 자주 깐다. 하지만 정작 북한 또한 친일 논쟁에서 완전히 깨끗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워낙 베일에 가려진것이 많은 북한이다보니 지어내서 선동하기도 매우 쉬웠던 것.
해방 후, 38선 이북의 지역의 모든 행정권은 소련 군정에 의해 권력을 이양받은 지역 인민위원회가 장악하고 있었고, 이 인민위원회의 구성은 지역마다 좌파/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막상 모여서 일을 해보려고 하자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이는 오랫동안 일본제국이 한국인들을 저교육상태로 방치한데다가, 행정실무나 업무기구 구성을 맡아 실무 경험을 갖추고 있는 자들이 일본인이거나 친일파 밖에 없었다는 점이 크다.
그래서 북한은 소위 탄백작업이라는 형식의 자아비판 및 공개사과의 형식으로 악질적인 친일파를 제외한 대부분의 친일파들을 용서해주고, 이들을 행정기구에 앉히는 상황이 벌어진다.
어쨌거나 남한은 한국전쟁 당시에 이런 한국군 내 일본군 출신 장교들이 열심히 싸워준것도 있고, 반민특위 등 친일파 자체를 청산하려는 노력도 했고 세대가 지나면서 과거 민주화 운동권이었던 세대들이나 해방 후 세대가 치고 올라와 정권이나 지도층이 교체된 경우도 있었다. 또 이런 과거에 대한 반성 여론도 올라오는 중이지만, 북한은 오히려 박헌영의 예에서 보듯이 멀쩡한 독립운동가들을 김일성과의 정쟁에서 패배했다는 이유로 친일미제간첩으로 몰아붙였고, 이것이 오늘날 북한 정권에서 인정하는 공식 역사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북한 초기의 하부 행정기관에서의 친일/부일경력자 기용은 가려졌다.(예를 들어 심영) 이는 김일성과 김일성을 따른 만주파를 마치 그들만이 홀로 일어난 구국의 독립영웅인냥 포장하고, 나머지 항일운동세력은 존재하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였으며, 그러한 정권에서 친일파를 기용할리가 없다는 성경무오설 북한 정권의 역사관에서도 기인한다. 그렇게 부풀리고 포장했는데 악질 친일파를 기용했다고 떠들수는 없었을 테니까.
반면 행정조직에 편입되지 못한데다, 오히려 그러다 공개사과를 하고 자아비판을 했다간 자신의 재산이 몽땅 날아갈 처지에 있었던 지주나 기업가들은 결국 대부분 월남하게 된다.
이런식으로 요직에 오른 사람이 바로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다. 그는 일본제국 육군 관동군 통역으로 일하고 있었다. 북한에서는 이를 쉴드치기 위해 나름대로 독립운동 했다고 하지만 사실 한게 없다. 7.4 남북 공동성명때는 이후락과 함께 서명하고 동시 발표를 했을 정도로, 남한에서는 북한을 대표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1970년대 후반 김정일과의 후계구도 경쟁에서 밀려난 후, 한동안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1993년 국가 부주석에 올랐고 현재에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즉 현재까지 생존 중.
참고로 친일파 출신의 연극계 인사들이 해방후 월북해서 북한의 선전용 배우역할로 잘먹고 잘살았던 점을 생각하면 북한도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할 수 있다.
북한 또한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친일파들이 새 정권에 참여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공훈배우이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낸 최승희가 있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교육문화성 부상을 지내고 공훈 인민배우 칭호받은 황철등 같은 공산주의 국가 수립에 동조하는 친일파들은 북한정권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내 서열 10위였던 장헌근, 김정제, 조일명 등 많은 친일파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권에 참여하였다. 특히 공군 장교의 경우, 일본제국군, 만주군 출신의 친일파들을 많이 등용하여 조선인민군에 편입했다.
정확한 자료를 원합니다. 신문기사 말고. 공식문서나 증언동영상 같은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