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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실종자 가족 격분 상황을 ‘건의’ 등으로 순화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났지만 정부는 여전히 우왕좌왕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방송은 이를 바로잡지 못하고 있는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에 대한 비판보다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는 상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7일 사고 발생 현장을 방문해 “생존자에게는 1분 1초가 급하다”며 구조활동을 독려하는가 하면 실종자 가족들이 있는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아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데 대해 철저한 조사와 원인규명으로 책임질 사람은 엄벌토록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실종자 가족들이 박수로 호응하는 모습이 지상파 방송사 카메라를 타고 전해졌지만 실제 현장에 있던 실종자 가족들의 반응은 분노 그 자체였다. 일부 가족들은 “여기서 이러지 말고 빨리 대책이나 내놓으라”며 박 대통령에게 거센 항의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같은 현장은 3일째 이어지고 있는 방송 특보가 아니라 아니라 인터넷 매체 <민중의 소리>가 찍어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동영상에는 박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격분한 실종자 가족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해당 영상에는 “대책이나 내 놓아라”, “구조를 하라”, “차량 때문에 구급차가 들어갈 수 없으니 다 떠나라”며 대통령의 방문보다 실질적인 구조 대책과 정부 지원을 바라는 가족들의 절규가 가득했다.
하지만 지난 17일 지상파 방송 3사 메인 뉴스에 담긴 모습은 이와 달랐다. 통곡하는 실종자 가족 사이를 다니며 이들을 위로하며 손을 붙잡아 주는 대통령의 모습이 있을 뿐이었다. 1분 1초가 급하다며 구조 작업에 만반을 기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약속’과 ‘단호한’ 모습만이 비춰질 뿐이었다.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실종자 가족의 목소리는 현장에만 남았다. 또 현장에서의 거친 반응은 ‘건의’ 등 순화된 언어로 표현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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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KBS <뉴스9>, MBC <뉴스데스크>, JTBC <뉴스9>, SBS <8뉴스>. ⓒ화면캡처 |
박 대통령의 현장 방문 소식을 KBS <뉴스9>는 7번째 리포트로, MBC <뉴스데스크>는 8~9번째 리포트로, SBS <8뉴스>는 10번째 리포트로 다루면서 평균 약 1분 32초 가량을 할애했다. 특히 KBS와 MBC는 대통령의 약속에 ‘박수’로 호응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KBS는 “박 대통령 현장 방문…‘1분 1초가 급해’” 리포트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체육관에 들어서자 실종자 가족들의 오열이 더 커진다. 곳곳에서 쇄도하는 질문에 일일이 답을 해준다”고 하는가 하면 MBC는 2꼭지에 걸쳐 관련 소식을 전하며 “박 대통령은 실시간 상황판을 만들라고 즉시 지시하자 박수가 나오기도 했다”(“박근혜 대통령 진도체육관 가족들 위로”)고 전하기도 했다.
이 같은 보도는 SBS “박 대통령 현장 방문…‘책임질 사람 엄벌할 것’”에서도 반복된다. SBS는 박 대통령이 이번 사고의 책임질 사람들은 반드시 엄벌하겠다고 말한 것을 강조했다.
반면 JTBC <뉴스9>는 실종자 가족들이 24번째 리포트 “사고 현장 찾은 박 대통령 ‘약속 안 지키면 책임지고 물러나야’”에서 “실종자 가족들도 만났는데, 격앙된 일부 가족들 사이에선 고성도 나왔다.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의 초동대처와 구조작업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서 격렬하게 항의했다”며 “우리 애들 살려내! 왜 이제 오느냐고”라는 실종자 가족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했다.
한 나라의 수장이 대형 참사 현장에 가서 피해 가족을 위로하는 모습은 이전에도 있어왔지만, 아직 사고 수습 과정에 있고, 사건 초반부터 정치인이나 대통령의 현장 방문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이었던만큼 대통령의 방문이 적절했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실제 17일에는 대통령의 방문으로 구조작업이 중단됐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그러나 방송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보도하거나 지적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박 대통령은 이날 현장에서 실종자 구조를 위해 모든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할 것을 주문했지만 한 기자가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방문으로 3시간 가량 수색이 전면 중단됐다.
이 기자는 “현장에 나가있던 기자가 흥분해서 연락이 왔다. 박근혜 대통령 방문으로 3시간 동안 수색이 전면 중단되고 모든 인원이 의전에 동원됐다고 한다”며 “뉴스에 대대적인 수색을 하고 있다고 생방송 되는 중에도 거의 진행되는 건 없었단다.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기 전 노회찬 전 의원은 일찌감치 자신의 트위터에 “‘산소통 메고 구조 활동 할 계획이 아니라면 정치인의 현장방문, 경비함 승선은 자제해야 한다. 위기상황엔 중요한 분들일수록 정 위치에서 현업을 지켜야 한다”며 “중앙재난본부 방문으로 또 하나의 재난을 안기지 맙시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 역시 자신의 트위터에 “실무 전문가도 아니면서 구체적 지시를 공개적으로 내리면 실무현장에서 무시도 못하고, 무리하다가 피해와 문제만 가중된다”며 “일단 지금은 생사확인 안 된 실종자 단 한 명이라도 더 구하는 게 중요하다. 모든 문제에 정치인과 권력자 계산 개입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언론이 해야 할 일은 박 대통령의 약속과 이에 호응하는 가족들의 박수 소리를 전하는 게 아니다. 실종자 가족들의 바람이 공허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방송은 일원화된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사고 발생 이틀이 지나도록 허둥대는 정부의 대응과 이에 대해 적절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정부 수장에 대해 따끔한 질책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