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을 지원하고 제암리 사건의 참상을 알린 캐나다 선교사가 스코필드입니다.
2016년 3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인물이 바로 그입니다.
그가 한국을 사랑해 붙인 한국명이 석호필이지요.
정운찬 총리도 스코필드 장학생이었습니다.
그런 스코필드가 5.16 혁명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http://www.dailian.co.kr/news/view/173801
“그는 1961년 6월 14일자 코리언 리퍼블릭에 ‘5.16군사혁명에 대한 나의 견해’라는 긴 글을 발표했다. 그는 투고의 첫머리에서 한국의 현 정세를 잘 검토해볼 때 누구든지 ‘5.16군사혁명은 필요하고도 불가피한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민주당 정권의 부정과 무능을 공박하고, 군사혁명 전의 한국사회의 부패상을 낱낱이 폭로하고서는 ‘한국에는 아직 진정한 민주주의가 시험된 적이 없다’고 단정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군사정부가 한국과 한국 사회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 후에야 비로소 그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끝에 가서 이번 군사정부는 앞날의 번영을 위한 ‘마지막 희망이며 마지막 기회임’을 특히 강조했다.” (이장락 지음 <민족대표 34인 석호필-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5.16의 그해 72세이던 스코필드 박사는 당시 YMCA 총무 전택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박 장군은 농민의 아들이고 정직합니다. 그는 부정부패 몰라요. 그리고 아주 강합니다. 한국의 마지막 희망이 여기에 있어요.” (조선일보 1998년 11월 5일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315회)
스코필드 박사의 박정희 혁명정부 지지 이유는 이러했다.
“4.19학생들의 혁명은 결코 아무런 일도 못했어. 그후 군인들이 혁명을 일으켜 무능과 부패에서 나라를 구한 건 당시로 봐선 유일한 길이었어. …한국의 제일 급한 문제는 정치보다 국민들이 먹고 살 길을 마련하는 것이다.” (한국일보 1962년 3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