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성서의 사본과 역본들의 문제 - 성서의 원본은 존재하지 않는다.
1) 필사과정에서의 문제 - 부정확
2) 성서의 사본들 - 많음.서로 다름.
3) 고대 역본(譯本) - 많음. 서로 다름.
4) 서로 다른 텍스트(사본)와 번역본들
5) 삭제 당한 성경 구절
~전략
결론은 서로가 서로의 대본들을 부정확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이 있다. 박창환 교수의 말 중에 “원본에 가까운 원문을 대본으로 삼은 번역”이라는 구절에 대해서이다. 여기서 “원본”은 신약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예수가 말한 ‘아람어’에서 희랍어(그리스어)로 번역, 기록된 성경을 말한다. 물론 이 원본은 존재하지 않으며 5000개가 넘는 사본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아람어 --> 희랍어 --> 영어의 번역과정에서 아람어는 예수의 목소리와 함께 증발해 버렸고 무수히 많은 희랍어 번역사본들 중에서 심혈을 기울여 예수가 말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원문을 추려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비평학이 고도로 발달되어 거의 원본(희랍어)에 가까운 희랍어 원문이 만들어진 것이 소위 현대 비평판 헬라어(희랍어) 성경이고 그 헬라어 성경의 원문을 대본으로 번역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대본도 문제가 있지만 또 번역의 과정에서 얼마나 본래의 뜻이 왜곡되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예수가 말한 메시지가 그대로 전해진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물론 ‘하나님의 감동’ 운운하는 것이겠지만 현재의 성서번역에 수많은 오류가 발생하고 이 번역판은 못 믿겠으니 새로운 번역판을 만들자는 식으로 해서 발행된 새로운 번역판은 미국만 해도 100여 종류가 넘는다. 그리고 번역의 오류뿐 아니라 복음서끼리 서로 모순이 발생하는 것으로 볼 때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증거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성경 구절을 임의로 삭제했다는 확실한 증거도 있다.
5) 삭제 당한 성경 구절
개역 한글판(1956), 공동번역 성서(1977), 현대인의 성경(1986), 현대어 성경(1991), 표준새번역(1993) 등의 성경에는 "없음"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구절이 13군데나 있는데 이 구절들이 한글 킹제임스성경에는 그대로 실려 있다. 그 중에서 일곱 개의 구절은 예수가 직접 말한 내용인데 "없음"이라고 되어 있다. 예수는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고 말하였지만 무려 일곱 군데나 삭제를 당한 것이다.
지금 “없음”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구절은 다음과 같으며, 이 중에서 [ ]안의 구절들은 예수가 직접 말한 구절이다.
마태복음 [17:21], [18:11], [23:14]
마가복음 [9:44], [9:46], [11:26] 15:28
누가복음 [17:36] 23:17
사도행전 8:37 15:34 28:29
로마서 16:24
이런 구절들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라 성경이 전달되는 과정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믿음과 맞지 않기 때문에 고의로 삭제해 버렸다고 한다.
한글개역판 등의 성경과 한글킹제임스 성경은 서로 다른 텍스트를 기반으로 번역한 까닭에 많은 부분에서 서로 상이한 구절들이 많고 결국에는 교리까지 완전히 틀려지게 되어 버린다. 따라서 ‘한글개역판’ ‘공동번역판’등의 성경을 고집하는 기득권 세력은 한글 ‘킹제임스’성경(1994)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킹제임스’성경측은 ‘한글개역판’ 등의 성경을 사탄이 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누가 옳을까? 어차피 ‘원전’이 없는 까닭에 이 번역판이 옳니 저 번역판이 옳니 하며 싸울 수밖에 없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일 것이니 중세시대 천주교의 종교재판이나 장로교의 창시자 칼뱅(Jean Calvin)이 그와 교리를 다르게 주장하던 세르베투스 등을 모조리 처형한 것처럼 교리를 다르게 주장하는 자들을 모조리 죽여 없앨 수 없는 작금에 와서는 그 시시비비를 가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바로 원전이 없는 까닭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지금의 온갖 종류의 성경들은 모두 번역본이고 사본일 뿐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원래부터 성경은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성경과 같은 형태로 있었다고 순진하게 믿고 있는 사람들이나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져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는 책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성직자들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5. 성서 번역의 문제
Bible은 원전이 없는 번역판이 존재할 뿐이며 이 번역판을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다음은 「번역의 이론과 실제」(나이다&타버 共著, 김용옥譯)의 내용 중 몇 가지만을 발췌한 내용이다.
▷ 단어라는 것은 단순한 의미의 점이 아니며 의미의 면이다. 따라서 다른 언어체계에 있어서 상응하는 단어들의 의미론적 면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원문의 한 단어를 번역하는데 있어서 수신자언어에 합당한 단어를 선택하는 일은 고정된 축어적 일치성 즉 한 단어를 사전적으로 대응시키는 것보다는 그 문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보디”(몸)을 뜻하는 희랍어 단어 “소마”(soma)가 개역표준판(RSV)과 새영어성서(NEB), 그리고 오늘영어판(TEV)에서 번역된 몇 개의 용례를 들어보면 일목요연하게 설명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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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SV |
NEB |
TEV |
마태 6:25 |
몸 |
몸 |
몸 |
마가 5:29 |
몸 |
그녀 자신 |
그녀 자신 |
누가 17:37 |
몸 |
시 체 |
죽은 몸 |
로마 12:1 |
몸 |
너희 바로 그 자신 |
너희 자신 |
골로 2:11 |
(육체의) 몸 |
천한 성품 |
(죄스러운) 몸 |
▷ 축어적 직역이 과연 완전히 정당한가? 그러한 직역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거나 곡해되지는 않는가?(많은 경우에 부자연스러운 동시에 곡해된다) 맥락적 일관성과 축어적 일관성의 대조는 희랍어 단어 사르크스(sarks, 축어적으로는 “flesh"[살])의 몇 용례의 번역을 대조해보면 명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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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SV |
NEB |
TEV |
누가 24:39 |
살 |
살 |
살 |
고후 7:5 |
살 |
피로한 몸 |
우리 |
로마 11:14 |
살 |
나 자신의 종족의 사람들 |
나 자신의 종족의 백성 |
사도 2:17 |
살 |
모두 |
사람 |
로마 8:3 |
살 |
천한 성품 |
사람의 성품 |
고후 10:3 |
살 |
연약한 사람 |
세속‥‥세속적 |
고전 1:26 |
살 |
인간의 기준 |
인간적 관점 |
▷ 누가가 기록한 산상수훈에는 그냥 “가난한 자”로 되어 있지만, 마태의 기록에 의하면 “심령이 가난한 자”로 되어 있다. 누가는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지칭하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마태는 그것을 정신적 문맥에 집어 넣고 있다.
우리말 성경의 문제를 살펴 보자.
대부분의 우리 나라 교회에서 쓰고 있는 한글 개역판 성경에는 문법이 틀리거나 말이 잘 통하지 않거나 부적당한 말이 많아 고쳐야 할 곳이 대략 10,000개 정도나 된다고 앞에서 얘기한 바 있다. 그렇다면 성경이야말로 우리 나라의 수많은 번역서적 중 가장 엉터리 번역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의 ‘한개’(한글개역판)와 ‘공번’(공동번역판)의 문장을 한 번 비교해 보자.
고린도후서 3:10
+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을 인하여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한개)
+ 과연 지금의 이 영광은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이 영광에 비긴다면 과거의 그 영광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공번)
▷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한개)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 받지 않을 것이다.(공번)
남을 심판하지 말라 그러면 하나님도 너희를 심판하지 않을 것이다(TEV[오늘영어판])
한글개역판을 보면 남에게서 비판받지 않기 위해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글개역판의 번역은 철저한 오역(誤譯)이다. 마7:1의 한글개역판 문장을 읽고 오해하지 않을 자는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공동번역판의 번역조차 TEV만큼 선명하게 되어 있지는 못하다.
▷ “하늘 나라“는 장소일까? 아니면 사건일까?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그래도 번역의 사소한 문제라고도 보아 줄 수 있으나 “하늘 나라” 또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련된 번역은 아주 중대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번역의 이론과 실제」의 저자 나이다(Nida) 박사는 “하나님의 나라” “하늘 나라”는 “장소”라는 의미로 번역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라는 표현은 너무도 자주 사람들에게 오해되어 왔다. ‘나라’(kingdom)가 명사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곧 반성 없이 그것은 ‘대상’을 지시해야만 한다고 상정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장소’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실상 그것의 제일차적인 지시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the rule of God)을 지시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이러한 문제는 ‘하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라는 구문에 오면 더욱 첨예화된다. 이 경우는 “하늘”이 “하나님”의 대용어(代用語,substitute)로 쓰이고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이라는 말에 대한 유대인들의 금기적 습관의 결과일 뿐이다. 그리고 “하늘”은 보통 일종의 장소술어(place term)로 간주된다. 이 결과 나타나는 경향은 이 구를 “하늘에 있는 나라”(the kingdom which is in heaven)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인데 이것은 명백히 착오적인 것이다.“
그리고 도올 김용옥 선생은 여기에 역주(譯註)를 달았는데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