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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9-02 18:22
13.여호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않았다
 글쓴이 : 레종프렌치
조회 : 437  

2) 여호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않았다.

 

구약성서에는 하나님이 세계를 짓기 전에 하나님의 신이 지면에 운행하고 있었다고 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설은 제사문서(창세기 1), 야훼문서(창세기 2), 2 이사야, 욥기, 시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기록이 처음 나오는 곳은 마카비 27:28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구약, 그것도 외경(外經)에 속하는 마카비서에 나오는 구절을 가지고 기독교 전체 교리를 결정하는 부분이 정해 졌으니 말이다. 마카비서에 나오는 한 귀절로 교리를 삼은 근본목적은 하나님의 전지전능과 선하심, 그리고 상대적으로 인간의 타락을 강조하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110)  기독교인들이 외경을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정작 중요한 교리를 외경에서 취한 것은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강조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뿐이다.

 

어떠한 원인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는 사고, 반드시 시작과 끝이 있어야 된다는 사고가 바로 직선史觀의 시원론(始原論)111)이고, 이 시원론은 이원론의 산물이다.  기독교의 창조주神觀 또한 이원론이며, 시원론이다. 러셀(Bertrand Russell)은 신의 존재증명인 1원인론을 비판하면서,  하느님(1원인)이 원인 없이 존재할 수 있다면 세계도 원인 없이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112)


창조주 신관에 쐐기를 박는 주장이 현대과학에서도 제기되었는데, 아인스타인 이래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는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W. Hawking)<A Brief History of Time(시간의 역사)>에서 그 결론을  태초의 시간 경계는 무경계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  만약 성서에 하나님이 있었다 해도 그 하나님은 할 일이 없는 실업자 하나님이었다.’라고 했다.


그러면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현대 과학에서는 약 100~150억 년 전에 대폭발(Big Bang)’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어떤 한 점, 즉 특이점(singularity)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마침 원뿔의 꼭지점과 같은 특이점에서 말이다. 호킹은 이 특이점을 지구의 북극, 남극에 비유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주는 북극의 한 점에서 시작된다. 남쪽으로 감에 따라 북극에서 일정한 거리에 있는 우주는 점차 커지는데 ...... 우주는 적도에서 최대로 커졌다가 다시 작아져서 남극의 한 점으로 수축한다. 그러나, 설사 북극과 남극에서 우주의 크기가 0이 되었다 하더라도, 이 두점은 특이한 점이 아니다.” 곧 이 두 점은 시공간이 이어지는 점이라는 것이다. 원뿔의 꼭지점과는 다르다.


호킹은 동료 하틀과의 연구를 통해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우주에는 시공간의 경계가 없다.” “만일 우주가 처음 생긴 어떤 시작점이 있다면, 이 우주에 창조자가 있을 거라는 가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주가 시작이나 끝이 없이 늘 스스로를 변화시켜 간다, 도대체 신이 설자리는 어디일까?”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고, 다만 하나의 시공연속체로 본래부터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주는 창조된 우주가 아니라 영원히 열려 있는 우주이며 스스로 변화해 가는 존재라는 말이다. 그리고 우주가 처음 열릴 때 신()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호킹의 말에 따르면 기독교 창조주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의 주장은 기독교의 이원론적인 신의 사망선고인 것이며, 시작도 끝도 없는 순환적, 동양적 우주관에 오히려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서양의 신관에는 무엇보다 (principle)'에 대한 인식이 빠져 있다. 우주의 변화원리, 창조원리에 대한 인식이 없다. 스티븐호킹의 말대로 우주는 본래부터 영원히 열려있는 우주로 존재하며, 늘 스스로를 변화시켜나가는 우주이다. 그러한 변화는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것일까? 변화하되 그 변화하는 원리나 법칙이 존재한다.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시공간 속에 살고 있으나 그 변화가 아무렇게나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하는 길, 법칙이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바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면서 봄,여름,가을,겨울의 일정한 주기에 따라 변화하는 것처럼... 이러한 춘하추동(春夏秋冬),생장염장(生長斂藏)113)의 우주변화원리를 표현한 것이 주역(周易), 정역(正易) 등과 같은 동양의 역()이다.


서양의 창조신관은 유목민족의 사막문화에서 탄생했기 때문에 농경민족처럼 순환적 시간관에 대한 인식이 생길 수가 없었다. 동양문화가 싹튼 중심지는 농경문화이다. 사막문화와는 달리 농경문화는 자연의 春夏秋冬 변화의 이치에 대한 확연한 인식을 필요로 한다.


양떼 앞에 서 있는 목자(牧者)는 자신을 양떼의 일부로 생각하지 않는다. 목자는 어디까지나 양떼 위에 군림하는 초월자이며 그 초월자는 또 그 양떼에게 법칙을 주는 입법자이다. 그러나 식물과 인간은 모두 천지자연의 거대한 생명체의 유기적 일부로서 이해될 뿐이며, 식물에게 농부가 법칙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식물은 식물 나름대로의 내재적 법칙성을 가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유목생활의 사유구조에서는 필연적으로 초월성(transcendence)이 강조되고, 농경생활의 사유구조에서는 필연적으로 내재성(immanence)이 강조된다. 유목민족의 초월성에 대한 강조는 초월적 신만을 유일한 실재로 간주하는 사유를 낳기 때문에 , 그러한 하느님숭배에 있어서는 하늘과 땅이 완전히 이원적으로 분리되고 땅은 부정된다. 그러나 농경민족의 내재성에 대한 강조는 하늘과 땅은 내재적 전체로 이해되기 때문에 양자는 이원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하늘의 비가 없는 데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고 농사를 짓는 땅이 없이 하늘의 비가 생겨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농경문화에서 하늘성(남성성)과 따성(여성성)이 상보적 관계를 이루며, 이러한 인식구조의 필연성은 현대물리학이 얼마나 이러한 상보성을 중시하고 있는가 하는 데서도 여실히 입증된다114)


유목민족에게서 목자가 양떼의 질서를 창조하듯이 우주질서까지도 창조한 창조주신관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땅이 철저히 부정되는 사막의 유목문화와 하늘과 땅이 동시에 중요한 농경문화 중에 어디에서 발생한 진리가 더 보편타당성을 가질지는 불문가지일 것이다. 결국 유목민족의 이원론적 사유구조를 치유하는 방법은 결국 농경민족의 사유구조 속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천지만물의 생명은 어떤 한 분이 만든 게 아니라 생명을 창조해 내는 법칙 생장염장의 는 우주 속에 본래부터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우주 속에 있는 그 이치에 의해, 모든 생명이 드러난 것이다. 모든 신들도, 모든 성자들, 인간도, 모든 동물들 ,풀 한 포기, 먼지조차도.

 


직선사관과 순환사관

 

우리는 여기서 서양의 직선사관(창조-타락-종말)과 동양의 순환사관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 직선으로 인간세의 역사를 파악할 때에는 대부분 종말을 향한 어떤 가치관의 직선체계가 성립하게 마련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세는 좋아진다든가, 문명은 진보한다든가, 더 살기좋은 세상이 된다든가, 자유를 향유하는 계급이 더 많아진다든가, 자유의 의식의 점차적 증대가 이루어져서 좋다든가 하는 등등의 생각이 이루어진다. 헤겔이 말하는 변증법적 사관은 이러한 기독교의 묵시록적 직선사관의 대표적인 예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직선사관의 병폐는 역사의 목표를 역사 밖에서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가 직선으로 그 무엇을 향해 돌진한다는 생각은 반드시 그 역사의 목표를 설정하는 주체가 역사 밖에 있게 마련이다. 그 역사 밖에 주체가 있어야 그 목표가 설정될 것이며 따라서 역사는 그 목표에 의하여 일사분란하게 지배되고 작동될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 밖에 있는 역사의 주체는 더 말한 나위없이 기독교에서는 하나님(God)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직선사관의 병폐는 역사 밖에 있는 역사의 허구적 목표를 향해 역사의 현실을 연역적으로 획일화시키며 너무 일률적으로 가치판단을 고정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우 무서운 독단에 의해 역사의 현실적 다양성을 희생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히틀러나 스탈린이 만들어가고자 했던 사회모순의 배경에는 분명 그러한 직선사관의 오류가 숨어있을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순환은 역사가 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려서부터 기독교문명 속에서 먹고 자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이외의 체험이 본질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그들은 순환과 반복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일차적으로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환은 반복이 아니다. 순환은 중용의 말을 빌리면 시중(時中)”일 뿐이며 순환 그 자체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는 비반복적인 것일 뿐이다. 순환의 역사는 중용의 역사며 중용의 역사는 역사의 목표를 역사 자내의 밸런스에서 구하는 역사다. 직선의 역사는 역사의 목표를 역사 밖에 두지만 순환의 역사는 역사의 목표를 역사 안에 둔다. 역사의 목표란 현실적 인간에게 삶의 기준이 되는 이상(Idea)을 말하는 것인데, 이상이라는 것은 영원히 달성할 수 없는 영원한 이상일 수도 있지만 그 이상은 반드시 우리의 삶의 밖에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면 내가 죽어서 천당을 간다고 하는 생각은 나의 이상이 분명 나의 삶의 밖에 있는 것이며 그것은 영원히 확인될 수 없는 이상이다. 그런데 내가 살아 있을 동안 나의 몸의 Input()Output()의 발란스를 취하여 완벽한 건강을 이룩한다는 것도 매우 일상적인 것 같지만 영원히 달성할 수 없는 이상의 자격으로 말하자면 동일한 것이다.


순환적 역사에 있어서는 역사의 목표가 상황적이며 자내적(自內的)이며 역사자체의 함수에 따라 역동적이다. 그리고 묵시론적 종말을 향해 모든 가치관을 일률적으로 휘몰아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다양한 현실을 포섭한다.115)


돌아감이 없는 직선적 발전은 파괴일 뿐이요, 절망일 뿐이요, 단절일 뿐이요, 종료일 뿐이다. 그것이 헤겔의 오류요, 맑스의 오류요, 기독교 묵시론의 오류요, 사막문명권 사람들의 절망감의 오류인 것이다.  돌아감은 반복이 아니다. 순환은 반복이 아니다. 순환은 끊임없는 새로움의 창조다. 돌아감이야말로 창조의 원천이다. 이 돌아감의 창조를 헤겔사관에 빠진 자들은 정체(Stagnation)와 미개와 암흑으로 오인한 것이다. 발전을 외치는 자들이야말로 미개한 자들이요, 암흑구덩이를 헤매는 자들이요, 유토피아의 신기루에 떠도는 가련한 유령들이다. 그 돌아감의 항상됨을 알아야 우리는 비로소 개명()하다, 밝다()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돌아감의 항상됨을 모르는 자들이 역사와 자연과 인간에 대하여 흉칙한 짓을 망령되이 일삼는 것이다.116)


 

우리가 만일 앞을 향하여 계속 걸어간다고 할 때, 우리 자신은 직선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구의 밖에서 바라보면 그 사람은 거대한 원의 궤적을 따라서 돌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것이 직선으로 보이는 것은 인간의 감각이 지니는 한계로 인한 근시안적인 착각이며, 우주만유는 초미시세계로부터 초거대세계에 이르기까지 순환으로 존재한다. 역사(歷史) 또한 통일과 분열의 연속이며, 순환이다. 새로운 왕조 또는 국가의 탄생기,통일기(統一期)()-성장기(여름)-절정기(가을)-분열기,쇠퇴기(겨울)를 거쳐 또 새로운 왕조,국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우주관이든, 역사관이든 직선적으로 인식하기가 쉽다. 그러나 거대한 원()의 극히 일부분을 잘라 보면 직선으로 보이는 것처럼 직선사관은 단견(短見)이며, 지극히 근시안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각주-------------

110) [Lewis S. Ford <The Lure of God> p2122, 김상일 <한철학> p , 전망사, 1983 재인용]

 111) 실체는 비실체와 구별되어 이원론이 성립되고 자연히 실체는 비실체의 시원이 되고 만다. 시원적이라는 말은 이쪽에서 저쪽을 향하여 움직이나 그 반대는 아니될 경우를 의미한다. 서양인들이 논리적이라 함은 처음에서 끝으로, 위에서 아래로, 뒤에서 앞으로 직선적으로 움직여나감을 뜻하는 시원적이란 말과 같다고 할 수 있다.”[김상일<한철학>] 기독교사관(史觀)이 창조-타락-구원(종말)의 직선의 구조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에 반해 동양의 사관(史觀)은 순환사관이다. 순환은 반복이 아니다

112) [Bertrand Russell, <Why I am not a Christian> 이재황, p , 범우사, 1987 ]

113) 봄에 태어나고(), 여름에 자라고(), 가을에 성숙,결실을 맺고(), 겨울에 휴식, 씨종자를 거두는() 과정

114) [ 김용옥 <여자란 무엇인가?> p , 통나무, 1989 ]

115) [ 김용옥 <삼국통일과 한국통일 > p , 한국사상사연구소, 1994 ]

116)[ 김용옥 <노자와 21세기()> p , 통나무, 1999 ]

다음은 김지하 시인의 말이다. “옛날엔 마르크시즘과 진보주의에 관심을 가졌고, 기독교에도 관심을 가졌지만 목적론이란 게 인간을 이상하게 부패시키고 역사를 굴절시키는 것 같아요. 미래의 왕국은 저 앞에 있다, 하늘에 있다, 이래 가지고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인류는 오늘을 희생시키면서 그저 내일을 위해 하는 식으로 몇천 년간 살아왔어요. 그 과정에 힘있는 자들, 머리 좋은 자들, 운 좋은 자들, 꾀 있는 자들이 출세하고 배불리 살아왔어요. 대다수는 내일을 위해 기도하고 절하는 동안 다 날아가 버렸어. 그러니까 목적론, 화살과 같은 직선적 시간관 등이 문제라고 생각돼요”[신동아,1999]


출처 : 이승훈 편역, 바이블의 진실 -성서의 모순과 오류-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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