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명한 나관중의 삼국연의를 보면
장판교에서 홀로 조조의 대군을 맞이한 장비가 무척 멋있게 그려집니다.
장판교 전까지는 장비가 무예만 뛰어날 뿐 지혜는 없는 듯 그려졌으나
장판교에서는 다리 건너편 뒤쪽으로 소수의 부하들에게 흙먼지를 일게 하여
다리 너머 복병이 숨겨져 있는 듯한 계책까지 냈으니 말입니다.
복병을 의심한 조조가 물러나자 장비는 다리를 불태우고
황급히 퇴각한 스토리는 다들 아실 겁니다.
실은 나관중의 삼국연의 이전에,
송나라 원나라 때 이야기꾼이 장터에서 얘기를 들려주는
講史강사라는 것이 유행했습니다.
그 강사의 대본을 강사화본이라 불렀고 원나라때는 平話평화라고 칭했습니다.
나관중의 삼국연의는 원나라 때의 삼국지 평화에,
진수의 삼국지랑 배송지의 주석을 첨부하여 더 다채롭게 편집한 것입니다.
삼국지 평화에서 장판교의 장비 모습을 어떻게 묘사했냐 하면,
장비가 조조에게 호통을 치자 그 소리가 벼락소리 같아서,
다리가 무너져 끊어져 버렸고 조조군은 놀라 30리를 퇴각한 것으로 나옵니다.
삼국연의에 비해 삼국지평화는 좀더 과장스런 장비의 모습이 나오는군요.
자, 그럼 진짜 역사책 진수의 삼국지에서는 장판교의 장비가 어떻게 나올까요?
장비는 이미 다리를 끊어놓고 끊어진 다리 건너편에서 조조군에게 큰소리를 칩니다.
추격할 수 없게 다리를 이미 끊어놓고 그 건너편에서 큰소리치는 건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장판교에서의 장비 얘기를 꺼낸 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스토리라는 것이 이렇게 진화되어 간다는 걸
말하기 위함입니다.
구전이든 아니면 기록이든 간에, 話者화자는
내 얘기가 상대방에게 더 흥미롭고 흥미진진하게 들리게 하기 위해서
사실을 뛰어넘는 재미를 가미해서 전달합니다.
모세의 엑소더스 스토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세가 파라오의 왕궁을 찾아가 야훼의 전언을 전하며
담판을 지으려 한 얘기를 알고 있습니다.
근데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반정부의 지도자가 대통령과 면담하는 게 불가능한데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는 단순한 국가의 지도자가 아닌,
신의 분신이라 여겨졌던 존재인데
그런 파라오를 만나 독대하며 자기 요구 조건을 내세우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요?
미얀마의 유명한 모델 파잉 탁콘은 자기 SNS 계정에 미얀마 사태를 알리며
미얀마의 민주주의를 외치다가 지금은 실종된 상태인데
파잉 탁콘이 미얀마 쿠데타의 주역 민아웅을 만나 자기 요구 조건을 말하는,
그런 모습이 머리에 그려지십니까?
사람 대 사람으로서도 불가능한 일인데
파라오와 모세는 신 대 인간으로서 만나는 것인데 그게 가능할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모세 얘기가 담긴 모세5경은
기원전 3세기 마케도니아 핏줄의 이집트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명으로,
헬라어로 만들어진 70인역의 전승 및 번역입니다.
모세5경은 히브리인의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헬라어로 씌어진 70인역보다
더 오래된 히브리어 기록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유태인의 가장 오래된 설화가 자기 언어가 아닌 남의 언어로 번역된 게
가장 오래된 기록이란 겁니다.
한글 창제 전에 한자로 기록된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자기 문자가 있음에도 남의 문자로 번역된 게 가장 오래된 기록이란 겁니다.
70인역을 제외하면, 히브리어나 아람어로 기록된 문서는
제일 오래된 게 기원후 3세기입니다.
이 상황을 굳이 억지로 우리 사정에 끼워 맞춘다면
히라가나로 써진 단군신화가 우리 말로 써진 단군신화보다
6백년이나 앞섰다는 얘기가 됩니다.
모세가 파라오를 만나 신의 전언을 전하는 모습은
우리가 많은 영상물에서 봤듯이, 무대 세트에 등장하는 배우의 연기를 연상시킵니다.
실제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두 존재가 언쟁을 하고 대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파라오의 왕궁이라는 세트장에 등장해서 연기하고
모세 역을 맡은 배우는 파라오에 실망하며 무대 한쪽으로 퇴장하는,
전형적인 고대 그리스의 연극의 형식을 띕니다.
우리는 70인역의 헬라어 성경이 만들어지기 100년 전에,
이미 고대 그리스에서는 지금까지 전해내려오는
안티고네나 오이디푸스왕의 연극이 성황리에 무대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고향으로 알고 있는 나사렛 근처에는 세포리스라는 신도시가 있었는데
원형극장의 유적이 발견될 정도로, 헤롯왕 및 그의 아들 안티파스가
헬라식의 아름다운 신도시로 만든 곳입니다.
그러니까 히브리인들도 로마의 지배를 받았을 당시에
고대 그리스 연극에 대해 무지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예수의 아버지인 요셉도
세포리스 신도시 건설에 노동자로 참여했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모세가 파라오를 만나 담판 짓는 모습은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이 아닌,
고대 그리스의 연극에 영향을 받은 어느 작가가
헬라식 희극의 형식으로 성경을 집필했다는 것입니다.
헬라어로 씌어진 70인역의 편집자들 역시 객관적 사실에 입각한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고대 그리스 연극의 스타일을 지닌 스토리에
더 매력을 느끼고 그런 부분을 편집에 집어넣었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삼국연의 얘기를 했지만
옛날 이야기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그 이야기가 진실이기 때문이 아니고
비슷한 여러 이야기 중에서 가장 그럴듯하게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고대에도 분명 모세에 대한 여러 판본이 존재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모세 얘기는 그 여러 판본 중에 가장 팩트에 근접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게 아니고
읽기에 가장 재미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재미있는 얘기는, 우리도 알다시피 가장 진실에서 먼 얘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