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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6-29 17:41
[기타] "역(易)인가 주역(周易)인가" 사마천의 역사사기를 폭로한다-뻐꾸기의 역사(5/5)
 글쓴이 : 환빠식민빠
조회 : 2,393  

⑤ 역(易)인가 주역(周易)인가 - 사마천의 역사사기를 폭로한다



 1주일에 1편씩 올리기로 하였으나 차질이 생겼다. 차이나 옛 문헌의 근거 확인이 어려워서다. 더구나 차이나의 고대 서적들은 가짜투성이다. 그동안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것들까지 다른 문헌과 비교하고 꼼꼼히 분석해 보면 가짜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차이나의 통사(通史)는 주(周)에서 현대까지 3000여 년이나 된다. 이들의 고대사는 주초에 시작된다고 본다면 BCE 12세기의 초이다. 그러나 이들 사료들은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시대를 올려 잡아도 춘추시대(BCE 770-BCE453) 말에 기록하였거나 정리한 흔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부분이 전국시대(BCE452-BCE221)의 글임에도 기원전(BCE) 12세기에서 BCE 2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런 글들 중에는 후한(CE25-220) 때에 기록한 흔적조차 있다.

 예를 들면 《서》 <하서> <오자지가>에는 전(畋 : 사냥하다)이라는 글자가 나온다. 이 글자는 전(田)에서 파생된 글자이다. 전(畋)으로 쓰기 전에는 田으로 쓰고 ‘밭(田)과 사냥하다(畋)’ 두 가지 뜻으로 사용하였다. 복잡한 글자는 간단한 글자에서 파생된다. 田 자가 있고 나서 畋 자가 만들어졌으며, 문헌의 출현을 조사하면 약 1000여 년 뒤에나 畋 자가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畋 자는 사마천(BCE145-86)의 《사기》에도 사용되지 않은 글자인데 하나라(夏, BCE2208-BCE1767)의 역사서에 기록하였으니 후대의 조작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오늘날 경서 연구가들은 <오자지가>를 가짜 서경이라는《위서(僞書)》에 넣는다.


 필자의 학문 수준으로 차이나 5000여 년 역사에서 거짓을 도려내고 3000여 년으로 원상 복구한다는 것은 만용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내친걸음이라서 끝까지 쓸 요량이다. 이번에 쓰기로 한 주자의 역사왜곡은 접는다. 주자는 경학자이지 역사가가 아니다. 그가 《역》의 번역에 저지른 역사 왜곡도 사마천에서 출발한다. 또한 역사사기꾼 공자와 사마천에 주자를 더하니 제명이 단순하지 못하다. 슬쩍 언급하는 것으로 그치고 주자의 역사사기는 다루지 않겠다.


 이 글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번역하다가 쓰게 되었다. <동이전> 번역은 뒤로 미루고 차이나 역사의 거짓을 먼저 밝힌다. 거짓을 밝히지 않으면 동이 역사의 진정한 실체가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차이나의 경사가(經史家)들은 《주역》이 가장 오래된 책이며 그 다음이 《서》라고 여긴다. 시간을 숭배하는 이들은 《주역》의 저술 연대를 높이고 자신들의 조상인 문왕이 이를 썼다고 한다. 과연 그러한가를 따지어 보자. 이 글에서는 선유(先儒)들의 연구결과보다 필자 나름의 연구 결과를 내놓으려 한다.


이 글은 《역(易)》이라고 부르던 책이 왜 《주역(周易)》이 되었는가를 따지려고 한다. 기원을 따지는 일이라서 문화의 기원이나 책의 형성 연대를 거론하는 잡다한 글이 될 것이다.   


 고목나무에 꽃이 핀다는 말은 회춘을 의미한다. 이 말은 뜻밖에도 《역》 효사에 나온다. 그러나 고목나무는 늙은 할아버지가 아니고 늙은 할머니를 가리킨다.

 대과(大過) 95의 효사를 보자.


고목나무에 꽃이 핀다. 늙은 할머니가 젊은 사내를 얻으니 허물도 없고 명예도 없다(大過, 九五, 枯楊生華, 老婦得其士夫, 无咎无譽).

 

 

 

 대과 괘의 해석에서 괘상(卦象), 괘의 변화법, 지괘(之卦), 내호괘, 외호괘, 배합괘, 효(爻)의 명칭과 중(中), 정(正), 응(應), 비(比)에 따른 판단법 등은 고려하지 않고 한문의 문맥만 고려한다. 전통적 해석법은 남성 중심적 사고를 가진 번역자가 괘상(卦象)과 효상(爻象) 등을 자의적으로 바꾸어서 해석하여 괘사와는 다른 해석을 내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문맥의 주체까지 바꾸어서 번역한다. 아래에 있는 몽(蒙) 괘와 진(晉) 괘도 한문 문맥만 따진다.

 

이 효사에서 사부(士夫)의 해석이 어렵다. 단순히 ‘士의 관직에 있는 지아비’으로 해석하면 족하다. 그러나 한문은 대구가 번역의 열쇠를 쥘 때가 많다. 노부득기사부(老婦得其士夫)에서 노부(老婦, 上六)는 사부(士夫)와 대구이다. 노부와 정응에 해당하는 구삼(九三)으로 보느냐,  상비(相比)에 해당하는 이웃의 늙은 사내 구오(九五)로 보느냐. 아무래도 ‘士의 관직에 있는 젊은 사내’로 해석해야 적절하다. 같은 괘 구이(九二) 효사의 어린 아내(女妻, 初六)와 대구임도 고려해야 한다. 응과 비의 관점에서 볼 것인가 문맥의 대구를 고려할 것인가 난점이 따른다. 구오는 王이지 士가 아니기 때문이다. 젊은 사내로 짧게 줄이니 간과할 수 없는 내용이 생략된다. 주나라에서 士란 무엇인가.

 주나라에서 士는 대단한 관직이었다. 《주역(周易)》이 이름처럼 주(周)나라의 역(易)이라면 주나라의 士夫는 젊은 엘리트 관료라고 볼 수 있다. 제후국에는 공(公, king)이 1명, 경(卿)이 3명, 대부(大夫)가 5명, 士가 27명이다. 서열 35위의 젊은 사내 士를 얻어 지아비로 삼는다면 여왕이 아니고서 가능할 리 없다. 여왕은 주나라에 없었다.

 《주역(周易)》에 나타나는 사회제도를 일별해 보자. 여왕이 지배하는 나라의 유습은 진괘(晉卦) 효사에도 나타난다.


 나아감이 근심스러우나 바르게 감이 길하니 큰 복을 할머니에게서 얻으리라(晉卦 六二, 晉如愁如, 貞吉, 受玆介福, 于其王母).

 

 

 

 

 주자는 《가례》에서 왕모(王母)는 조모(祖母)라고 한다. 이 글로는 왕모라는 명칭의 단서가 되지 않는다. 우리말에 왕고모라는 말이 있으니 참고로 찾아본다.《사고전서》에 왕고모(王姑母)는 명대의 동사장(董斯張)의 廣博物志에 딱 1번 나온다. 이 책은 79000귄이나 되는 방대한 책 중에서 지표가 될 만한 권위는 없다. 또 2번 이상 나타나지 않으니 무시해도 된다. 이 정도의 출현 빈도는 주나라에서 왕고모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음을 입증한다. 또한 주자의 《가례》에는 왕고모가 아니라 종조조고(從祖祖考)로 적혀 있다. 결국 왕모(王母)란 주(周) 족들이 《주역》을 만들 때 사용하지 않았으며, 후대에도 차이나 인들이 사용하던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주나라에서 王은 천자를 뜻하므로 함부로 사용할 수 있는 글자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지금도 왕고모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왕고모’를 사용한다고 소급하여 주역 또는 역을 만든 민족과 연관성을 주장함은 지나친 속단일 것이다. 단지 참고 사항이다. 역은 은나라에서 만들기 시작한 것이 확실하고 우리와 은나라는 같은 동이 겨레이다. 소발굽점(殺牛觀蹄以占吉凶 - 위지동이전, 부여조)과 윷이 있으니 거북점이나 역(易)과 같은 사유체계를 발전시켰음은 알 수 있다.


 하여간 주나라는 남성 중심, 장자 중심의 사회였다. 우리 겨레처럼 말자상속제(末子相續制)와 대조적이다. 주의 창시자 고공단보는 3째 아들의 손자 창(昌)이 똑똑함을 알았으나 맏이와 둘째가 있어 고민이었다. 그래서 집안의 계승권을 셋째 아들 계력(季歷)에게 물려준다. 그래서 맏이인 태백(太伯)과 둘째 우중(虞仲)은 왕위상속권을 버리기 위해 스스로 오나라로 갔다고 한다. 이는 말자상속제처럼 보인다. 그러나 무왕(武王)이 죽었을 때 무왕의 어린 아들 성왕이 13살에 즉위한다. 주공(周公)은 무왕과 자신의 형제였던 관숙과 채숙과 싸우면서 성왕을 보호한다. 공자는 꿈에 주공이 보이지 않았음을 한탄하곤 할 정도로 존경하였다. 이런 인물이면 스스로 왕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끝까지 조카를 보호하였다. 말자상속 사회라면 어린 조카를 보호할 이유가 없다. 주공은 주 문화를 계승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고 공자는 이점을 존숭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은 왕위계승의 두 가지 사례는 주나라는 동이족과 달랐음을 말한다.


 《논어》에 여성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여성의 역할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주족과 동이족이 달랐음을 보여준다. 동북아시아에서 BCE 6세기 이전에 여성 상위의 나라는 어디일까. 오늘날 차이나 소수민족사회를 보면 여성 상위의 유습을 볼 수 있다. 동이족 중에는 고구리(高句麗)의 결혼 제도도 여성 상위였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보면 데릴사위 제도였다. 데릴사위제도란 여성 상위 사회임을 말한다. 최근세까지 만주족은 한 여성이 2명의 지아비를 데리고 살았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읽어 보자.


 고구리(高句麗)의 혼인하는 풍속은 결혼의 언약이 정해지면, 여자의 큰 집 뒤에 작은 집을 짓는데, 이를 '서옥(壻屋)'이라 한다. 사위 될 사람이 저녁 무렵에 여자의 집 대문 밖에 이르러, 스스로의 신분을 밝힌 후 꿇어 엎드려 절한다. 그는 여자의 부모에게 서옥에 들어가서 여자와 하룻밤 자기를 청한다. 저녁마다 두세 번 간청한다. 여자의 부모님이 받아들여 작은 집에서 잠잘 수 있게 하면, 돈과 비단을 내놓는다. 아들을 낳고 장성하게 되면, 그제서야 부인과 집으로 돌아온다.


 여성 중심 사회이지 않는가. 고구리를 건국한 소서노를 생각해 보자. 여성이었다.

 그러나 《역》 대과(大過) 괘 효사에 남성 중심적 사회임을 알려주는 단서도 있다.


고목나무에 뿌리가 나온다. 늙은 지아비가 처녀 아내를 얻으니 좋다(大過, 九二, 枯楊生稊, 老夫得其女妻, 无不利).

어리석은 이를 포용하니 길하고 아녀자를 용납하니 길하여 아들이 집안을 잘 다스림이로다(蒙卦, 九二, 包蒙, 吉. 納婦, 吉, 子克家).

여자를 취하지 말지니 돈 있는 사내를 보고 제 몸을 간직하지 못하니 이로운 바가 없으리라(蒙卦, 六三, 勿用取女, 見金夫, 不有躬, 无攸利). 


그러므로 《역》은 여성상위에서 남성 상위로 변해가는 과도기적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역》이 주 문화와 무관하게 성립하였다가 후대에 주 문화적 요소가 가미된 것임을 말해 준다. 주 무왕이 즉위한 BCE 1122년, 즉 기원 전 12세기 말에도 남성 중심적 사회였을까. 만약 이 시기에 남성 중심적 사회가 어느 정도 확립되어 있었다면 《역》의 역사는 소급될 수밖에 없으며 장구한 시간을 두고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는 증거로 삼을 수 있다. 이를 고구해 보자.


 차이나의 사가들은 《역》의 근원을 어느 정도까지 소급할까. 이들은 걸핏하면 《역》이 하나라 때는《연산》, 은나라 때는 《귀장》, 주나라 때는 《주역》이라 한다. 이 설은 《주례》라는 책에 나온다. 근대의 학자 홍성(洪誠)은 《독주례정의》에서 《주례》가 늦어도 동주 혜왕(惠王 BCE 676-652) 이전에 완성되었으리라고 본다. 필자는 이 가설에 동의할 수 없다.


주역은 특이하게 오랜 시간을 두고 완성된 책이다. 완성시기만 놓고 따진다면《의례》보다는 늦으며 《예기》보다는 앞서나 《춘추좌전》보다 다소 늦게 완성된 책이라고 본다. 필자는 《의례》는 BCE 5C-BCE 3C, 《예기》는 BCE 74-BCE 49, 《춘추좌전》은 BCE 3세기 전후라고 추정한다. 추정 근거는 다음 글에서 밝힌다. 주역은 BCE 7세기 이전부터 CE(기원후) 2세기에 걸쳐 지금의 형태가 된 책이라고 추정한다. 이 시기는 책 내용의 형성 연대는 아니다. 여성 상위시대가 《역》에 나타남을 고려하면 《역》은 동이 겨레인 은(BCE1766-BCE1123)에서 처음 만들었으므로 BCE 18세기까지 소급해야 한다. 차이나족들이 하나라의 역을 《연산》이라 하나 하나라의 실체를 입증하기 어려우므로 고려할 수 없다. 그러나 주역(周易)이라는 명칭을 붙일 때는 성립 연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주역》이라는 말조차 《사기》에 겨우 나온다(권 36 陳杞世家). 오늘날 우리가 보는 《주역》에서조차 ‘周易’이라는 글자가 나오지 않는다. 경문에는 물론이고 십익(十翼)이라는 주석에도 나오지 않는다.


역》을 누가《주역》으로 바꾸었는가.

주(周) 민족주의를 조작하려는 자, 역(易)의 신비화를 꾀하려는 자임에 분명하다. 공자가 《역》을 산정하였다고 맨 먼저 발설한 자는 누구인가. 바로 사마천이다. 공자가 《역》을 많이 읽어 책을 묶은 끈이 세 번 끊어졌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을 누가 맨 먼저 말하였는가. 바로 사마천이 《사기》에서 그랬다. 이를 받아  반고가 《한서》에서 다시 말하였다. 주의 시조 문왕이 유리(羑里)라는 감옥에서 《역》을 지었단다.(其囚羑里, 蓋益易之八卦爲六十四卦-《史記》 〈周本紀〉).


누가 맨 먼저 이런 거짓말을 하였는가.. 바로 《사기》를 쓴 사마천이다. 역사사기꾼 사마천은 왜 이런 사기를 쳤는가. 차이나족의 문화적 연원이 오래되었음을 포장하기 위해서였다. 《書》는 <周書>가 있으나 《書》 또는 《尙書》라 하였으며, 《詩》는 주시(周詩) 위주로 되어 있으나 주시(周詩) 라 하지 않았다. 왜 하필 《역》만 《周易》이라 그랬는가. 《역》은 《시》나 《서》보다 연원이 오래된 책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다는 말이 있다. 도둑질을 하고 싶은데 주인이 개를 데리고 외출해 주는 꼴이다. 사마천이 용감하게 맨 먼저 거짓말을 하고 책에 근거를 남겼다. 그 후 차이나의 경학자들과 사학자들은 《역》이라 하지 않고 《주역》이라 한다. 왕필의 《주역주소》가 그러하고 주자의 《주역본의》가 그렇다. 이들은 《역주소》, 《역본의》라 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사마천이 사기를 친 내용은 이러하다. 사마천이 《易》을 《周易》으로 바꾸어 부르는 단서를 제공하고 그렇게 불렀다. 그 이유는, 책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연원을 가진 것은 《역(易)》이며, 《역》은 은대(殷代)에 만들어졌으나 춘추말에 주나라 경학가들이 손을 댄 흔적이 있다. 이를 빌미로 易을 周易으로 부름으로써 차이나 민족주의를 강화함이 아니겠는가. 차이나 족만이 천명의 비밀을 알고 이를 주관할 수 있었다. 이따위를 주변 민족에게 과시하려는 수작이 아니고 무엇인가. 


 다음 글에서는 《역》과 《서》가 오래된 책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을 말하고자 한다. 차이나 학자들이 이미 내린 결론을 인용하지 않고 필자 나름의 방법을 내놓는다. 필자처럼 천학비재로도 충분히 논박이 가능한 문제임을 말하고자 한다. 필자의 논증 방법을 쉽게 제시하지 못한다면 강단에서나 초야에서 책을 보는 현사나 우부가 믿지 않아도 좋다.


<출처> http://blog.naver.com/songpoet/50019863090

<저자> 송명호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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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토 15-06-29 20:23
   
이걸 읽으라고 올린건가요?  요약도없이?
     
환빠식민빠 15-06-29 21:09
   
- 왜 사마천이 '역'을 '주역'으로 조작한 역사 사기꾼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저자의 입장을 추측컨대) 실증적 분석을 통해 논증하는 것이 필수적인 과정이었겠지요.
이것이야 말로 식민빠들이 툭하면 떠들어대는 진짜 실증적인 자세 아니겠습니까?

- 저자의 원글을 그대로 옮긴 것이니 너무 욱하실 필요는 없을듯..

- 그리고 글 뒷부분 초록색으로 되어있는 부분이 요약 아닐까요?

"결론적으로 사마천이 사기를 친 내용은 이러하다. 사마천이 《易》을 《周易》으로 바꾸어 부르는 단서를 제공하고 그렇게 불렀다. 그 이유는, 책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연원을 가진 것은 《역(易)》이며, 《역》은 은대(殷代)에 만들어졌으나 춘추말에 주나라 경학가들이 손을 댄 흔적이 있다. 이를 빌미로 易을 周易으로 부름으로써 차이나 민족주의를 강화함이 아니겠는가. 차이나 족만이 천명의 비밀을 알고 이를 주관할 수 있었다. 이따위를 주변 민족에게 과시하려는 수작이 아니고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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