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비주류역사학계와 재야역사학계(근현대 민족종교, 강단 밖의 연구자, 역사애호가 등)는
강단주류사학계를 식민사학이라 부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ㅡ 일제의 식민사학의 앞잡이었던 이병도의 제자들이 해방 후 대한민국 사학계를 장악하면서 카르텔화 된 점
ㅡ 일제의 식민사학이 피강점 하의 우리 민족에게 역사적 열등감과 패배감을 불어넣어 정신적 항거불능 상태로 만들어 통치와 지배를 원활히 하기 위한 목적과 계획 하에 일본제국주의 정부와 그 관변학자들이 써내려 간 조선사를 강단에서 가르치고 배워 학맥을 형성한 점
ㅡ 그 기조가, 한국사 기술 태도와 방식이 식민사학을 극복하지 않고 오히려 수구하는 점
ㅡ 중국의 정사, 각종의 관련기록을 편취하거나 외면하는 점
ㅡ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을 불신하면서 오히려 일본판 환단고기에 다름 아닌 일본서기는 신뢰하는 점
ㅡ 고고물질문화의 발굴 성과의 진척을 자신들의 기조와
주장(실은 식민사학 계승)을 수구하고자 외면하는 점
등.
춘천레고랜드 부지에서 1,000 기의 청동기 시대 집자리와 고인돌이 발굴되었을 때에 문화재청과 강단주류사학계가 보여준 천인공노할 태도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는 가야사를 연구했으면 좋겠다" 한마디 했더니
현 고고학회장까지 직접 나서서 학문의 자율을 침해할 수 있다, 돈만 들이고 기초단체만 좋은 일이 될 수 있다며 게거품을 무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갑니까?
ㅡ 영호남 공동의 역사인 가야사를 연구함으로써 영호남의 갈등정서를 해소하는 데 일조할 수 있고
ㅡ 일본의 침략주의 역사왜곡인 임나일본부에 대항할 수 있으며(실제 아직도 외국에서는 당시 한반도 남부를 일본의 식민지로 기술하여 가르치고 배움)
ㅡ 실제 500 여 년 역사를 이어간 가야사가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는 것이 사실인데도
왜 저렇게 게거품을 물며 저항하는지, 그것도 아직 시작하지도 예산이 편성된 것도 아닌데?
도종환 의원이 문체부 장관에 지명되자 강단주류사학의 똘마니들과 젊은 얼치기 학자들이 국내 내로라 하는 언론사에 기사를 내서는 유사역사학에 경도돼 있어서 우려스럽다는 개가 지 붕알 핧는 소리를 연거푸 떠들고 있는데
동북아역사재단은 이 씨부랄 것들아, 순수연구단체가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항하여 연구하여 논리를 개발하고 사실을 밝혀 우리 국가와 민족공동체의 긍지와 존엄을 수호하라는 뜻으로 국가에서 만들어서 국민의 혈세로 운영돼 온 곳이다
순수학술연구단체를 왜 국회에서 청문회를 열어 검증을 하겠니? 어?
동북아역사재단을 뭐하라고 혈세들여서 국가에서 만들었는지 잊었어? 몰라? 씨부랄 진짜 욕이 안 나올 수가 없다
그런데 이 개새들이 하라는 거와는 정반대로
ㅡ "한국은 역사의 처음이 중국의 군현이었고 이 군현을 통해 중국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여 비로소 국가단계로 발전했이유~"
ㅡ "4세기까지 중국의 군현이었고 한반도에는 변변한 나라도 없이 소국들이 난립해 있었고 이 조무래기들도 중국의 낙랑군에 컨트롤 당했구먼유~"
이런 지도, 이런 역사기술을 미합중국 국회에도 보내고 미국 하버드대와도 공동으로 펴내고 이 지랄을 했는데
그걸 가만둡니까?
그러면 국가에서 만든 국가연구단체의 주장이 이러한데
ㅡ 시진핑이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고 뭐여? 사실이네?
ㅡ 아, 너희 한국은 그 당시 쪼무래기 소국들이 난립해 있어서 위로는 중국에 먹혔고 밑으로는 일본에 털렸구나 하면 뭐라고 해야 하냐?
지도를 봐, 동북아역사왜곡재단이 쳐만든 지도를 보라고
백제와 신라도 없고
삼국사기 기록은 하나도 반영이 안 되었고 경기도까지 중국 땅인 지도를 대체 이 씨부랄 것들아 누가 납득을 하냐? 어? 주둥이만 살아 나불대는 것들아
뭐? 독도?
이 개새끼들아,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왜곡(임나일본부, 독도침탈 야욕)에 맞서라고
국가에서. 정부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게 동북아역사재단인데 뭐?
아오ㅡ 시팔 진짜
뭐? 지도 축척 때문에 보이지 않았을 뿐인데 뭔 시비냐고?
야 이 개것들아
그래서 보이게 다시 만들라는 거 아냐
너네 돈 주는 국민의 대리자들인 국회에서 청문회를 열어서
정말 시팔 진짜 내가 이걸 왜 쓰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열불이 난다
그럼 씨부랄것들아 국회청문회 때는 왜 그렇게 그 나불대는 조동아리 닫고 있었냐?
학자면 자신의 연구에 목숨을 거는 건데 왜 그 자리에서
ㅡ 경기도까지 중국땅이었습니다
ㅡ 당시 한반도에는 딱히 표기할 국가가 없었습니다
ㅡ 고구려는 남만주에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ㅡ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4세기까지는 다 구라입니다
ㅡ 우리 정사인 삼국사기를 불신합니다
ㅡ 지도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독도는 지도를 현미경으로 보시면 보입니다
이런 주장을 왜 당당히 못 했냐?
에라 이것들아
천하의 쌍것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