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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1-12 02:52
[일본] [펌] 2조작된 역사로 억지 부리다 처참하게 깨진 어느 원숭이2(스압있으나 읽어볼만한 가치있음)
 글쓴이 : 아드
조회 : 3,089  

이어집니다~
 
antijap
아 존나 웃겨 실신해서 한참 웃었네 ㅋ 이 미친 사루는 기본이 안되어 있어 남의 글에 비판을 하려면
정확히 상대가 포스팅한 글을 정독하고 거기에서 인용한 사료라든지 고고학적 증거라든지 인프라등을 입체적으로 비교하고
서지학적으로 3국이 당대에 공통적으로 기술한 부분 추출하여 엄밀한 정합성을 띠고 논지 전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증거는 하나도 없이 자기가 평소에 꿈꾸던 환타지를 가지고 그것을 몽유병식으로 기술하는 전형적인 니뽕식 황국사괸에 입각하니
설득력도 떨어지고 욕만 쳐먹고 결국은 원숭이 꼬리 내리고 깨갱대지 ?~!

내가 제시한 왜왕의 이름이 왜씨라는 것 신라가 백제의 부용국이며 백제인이 신라의 왕이었다는 부분
흠정만주원류고에서 백제를 동북아 책봉체계상 형식적으로는 쥐나 아래 형식을 휘하지만 실제는 쥐나에 대해 대등한 실력으로
스스로 부용국이나 속국을 거느렸다는 역사적 사실 신라에서 칠지도가 발견되었는데 백제의 속국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등에 대해서는 하나도 반론하지 못하고 지 희망사항만 이야기해요 전형적인 쪽바리들의 방식이지 ㅋㅋ

그리고 사료독해 능력이 떨어지니까 논쟁의 대상도 안되요 이 쪽바리는 찬진제흥무까지 찬진제흥은 전혀 찍 소리 못하고
백제의 진동대장군보다 두 품계가 낮은 안동장군을 아무말 없이 받아 들이고 유독 왜왕무만 급격하게 승차한 사실만 부각하며
속국 왜와 다툼이 있는양 주접을 싸지 ㅋㅋ 그래봤자 무령왕의 영동대장군에 비해 떨어 지는 품계인 것을
이따가 자세하게 말하겠지만 전통적으로 왜는 백제의 22담로중 가장 큰 곳으로 본국 백제의 왕족중 특히 좌현왕이나 아니면
태자신분정도의 왕족을 왜총독으로 보내지

그래서 본국에서 백가의 난등 왕족이 아닌자의 반란이 있을 시에는 그 적통을 잇기 위하여 왜열도의 총독으로 파견됐던
적통계승자를 불러 들여서 난을 진압하고 백제의 왕위를 잇는것은 극히도 자연스러운건데 그게 무엇이 이상하냐 개쪽바라.
프랑스의 놀만디 공이 영국왕의 지위를 승계하는 것과 같은 거지.

동성왕도 곤지의 아들로서 니뽕에 있다가 해씨의 난이 일어 나고 귀국하여 해씨의 난을 진압하고 본국의 왕이 됐고
북위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후 진동대장군보다 더 높은 품계인 정동 대장군으로 승차한다

역시 곤지의 이복제인 무령도 소진철 교수및 이시와타리(응신릉의 피장자는 누구인가등의 저서)등의 유력한 학설상으로
왜에서 왜왕 무로 있다가 백가의 난이후 본국으로 귀국하여 백가의 난을 진압하고 본국 백제의 왕을 잇는 것은
작위 품위를 받는 개로의 적통인 왜왕武이자 후일 무령왕일 수 밖에 없는 사마 입장에선 당연한거 아니냐
이는 년대기적으로 왜왕무의 급격한 승진과 왜왕무의 마지막 품계인 정동대장군 이후 무령왕이 그 중간 단계 없이
바로 영동대장군으로 승진하는 것은 이를 입증하며 니뽕서기상 왜왕무가 하늘로 날아가 사라졌다는 메타포와 관련하여
당연한 거 아니냐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백가의 난이 일어나 본국 백제의 적통이 흔들리자 거기에 대해서 급격하게 대처하고자
요즘 말로 이야기하면 현재 분쟁중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처분을 요구 하는 것처럼
당시의 동북아 책봉질서에서 조정자 역할을 하는 쥐나에게 백제의 적통은 나에게 있노라며 백제에 대한 지분권을 왜왕무이자
무령왕이 가처분적 지위인 '안동대장군-개로왕 탈상시점에서 개로왕 지위인 진동대장군-백가의 난 진압직후 동성의 지위인
정동대장군'으로 급격하게 요구하고 승차하는 건 당연한 건데 니 눈깔에는 그게 백제와 다툼하는 것으로 보이냐 이 쪽바리,바리야 ㅋㅋ

당시 거의 100여년간 왜찬-왜진-왜제-왜흥으로 이어지는 동안 찍 소리 안하고 백제 보다 두 품계 낮은 안동장군 직함에
충실했던 왜가 별안간 왜왕 무에 와서 그렇게 방방떴겠는가? 그 년대대적 수순과 당시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지
왜왕무 시절에만 있던 혼란에 쌓인 백제 본국과의 관계는 치지도외하고 니 마스터베이션만 치냐 미췬 ?바라 ㅋㅋ

고대의 왕권 시대에는 귀족들인 측근이 난을 자주일으키기 때문에 백제의 가장 큰 담로인 왜에 태자나 적통의 계승자를 파견하고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해 그들에게도 쥐나의 공식적인 지위 공인을 받아 두어 훗날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은 극히도 자연스러운 일이지

그러한 역사적 함의는 쌩까고 '왜가 속국이라면 별도로 쥐나에게 품계를 받는냐?'는 니 궤변이 말이 되느냐
전통적으로 왜는 동성왕때도북위왕의 전쟁 후 쥐나에게 매라왕 벽중후의 백제 공신의 관작 당당하게 요구한 것에서 보듯이
백제는 스스로 후왕을 임명하고 이들의 지위를 보전하기 위해서 쥐나에게 공인을 요구하지 그것은 전통인데
그게 무엇이 이상한 일이냐

이러한 백제 입장에서는 속국인 倭 역시 본국 백제의 묵인 아래 훗날의 사태를 대비 하기 위해
가장 큰 담로에 나가 있는 왜씨 성을 가진 백제의 적통 왕족에게 쥐나에 그 직위에 대한 공인을 요구해서 보험을 들게 하는 것은
그래서 부연할 가치조차도 없는 당연한 거란다 이 무식한 놈아

백제의 적통을 잇는 무령입장에서는 당연히 현재 누란의 위기에 처한 본국백제의 왕위 승계문제가 화급을 다투는 일이고
지금 백가라는 귀족에 의해 유린되고 있는 위기상황을 타개하고자 당시 왜왕 무인 무령왕의 입장에선 왜나 백제 구분없이
그냥 백제 국내의 문제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부득이하게 쥐나에게 백제에 대한 통제권을 요구한 것이란다.
졸만아 엉아가 잠시 업무 처리하고 서지학적 문헌적 사료등을 들어서 이 밑에서 또 사루를 교화시키지 ㅋㅋㅋ
antijap
정정 -바로 위 댓글 '곤지의 이복제'를-'동성의 이복제'로 바꿈

그리구 결국 왜왕무가 이런 국내사정을 들어 설명하며 애를쓰며 백제에 대한 연고권을 인정받으려했지만 어디 쥐나에서 인정해주대?
왜왕무가 478년에 등극해서 백제에 대한 통제권까지 요구하다가 ?찌 맞고
전통적인 명예직인 열도내 신라 가야분국 통제권만 인정 받고 안동대장군으로 품계를 하사받고 바로 1년뒤인 479년
즉 개로왕이 죽은지 딱 3년째 되는 탈상시점에 개로왕의 직위인 진동대장군을 남제서에서 수여받고-이후 502년에
동성왕을 시해한 백가의 난이 진압되자마자 동성왕이 가지고 있던 품계인 정동대장군 칭호를 수여받고-그 이후 니뽕 환타지에서
왜왕무가 하늘로 사라졌다고 하면서 은유를 깔고 역사무대에서 사라지자마자 바로
백제의 무령왕이 전통적인 백제의 위계인 진동대장군에서 절차적 승차절차인 정동대장군을 거쳤다는 기록도 없이
바로 영동대장군으로 진급한 것은 바로 왜왕무=무령왕이라는 증좌라고 분석하지

즉 왜왕무시절 아무리 분란에 휩쌓인 백제지만 전통적으로 왜가 백제의 속국임을 인지하고 있는 쥐나는
왜무왕의 간절한 요청을 거절하고 백제에 대한 통제권은 전혀 인정하지 않고 전통적으로 왜의 한국계 주민들이 세운 분국인
신라 가야 임나 모한 진한등에 대한 통제권만을 인정하는 품계를 내린다는 거다
그러니 백제에 대한 연고권주장 운운은 개소리 닭대가리나는 거지

그리고 이 쪽바라 어떻게 니 편리한대로만 역사를 정치적으로만 해석을 하니 왜 5왕시절부터 그 전통을 이어 온
열도나 규슈내의 분국의 후신이 있으니까 한날 한시에 출발해서 기내로 동시에 조공을 드리러간
신라 통일이후의 신라 고구려 백제분국이 존재하는 거지 분명히 존재하는 실체를 기본적인 서지학적 증거도 없이
니 립서비스로 단순히 명예직이며 화이질서의 소산이라고? ㅋㅋ 개가 웃겠다

즉 그보다 훨씬 전인 야마토 혼란기인 왜무왕시절인 5세기말(478년) 혼란기에 중이(衆夷)나 모인(毛人)등으로 비칭되는
100여개의 소분국이 난립해서 동정과 서정 북정을 해대는 왜국의 형편상
바다 건너에 있는 가야나 신라에 대한 통제권을 요구한다는게 말이나 되냐 개쉬밤바야

송 상표문을 보면 왜왕무가 얼마나 좃에 땀나게 사방으로 혼란스런 한국에서 온 출신지별로 이루어진 열도에 난립한
신라계 가야계 마한계 진한계등의 동족과 싸우고 바쁠 때인데
어디 건방 떨면서 한반도에 있는 신라나 가야에 대한 통제권을 주장해? ㅋㅋ

열도내의 신라 가야계 분국과의 싸움이 너무 힘들고 거의 추스려가니까 후일을 도모하여
안전빵으로 분국들에 대한 종주권을 공식화하려고 쥐나에 인정을 요구하는게 합리적이지 안그냐 짱똘 왜구야.

이미 없어진 나라에 대한 통제권 요구가 단지 화이질서의 쇼맨쉽이라고라? 꿈보다 해몽일세나 쪽바리군
왜 굳이 5세기 말에 수백년전에 사라진 마한이나 진한에 대한 통제권을 쥐나에 요구하는데?
그게 단순하게 화이질서라구? 원숭이가 웃겠다 xx러마야 답좀 해봐라 ㅋ

그건 실체적으로 백제계 정권인 야마토를 위협하던 열도내에 분명히 존재하던
마한계 진한계 세력에 의해 건국된 분국에 대처하기 위해 종주적 통치권을 요구한 증거란다.

암 관계도 없는 수백년전에 사라진 마한과 진한이 단순히 화이질서의 소산이라고 변명하구 가면
그게 문외한 사람에게는 먹힐지 몰라도 나같은 고수에게 먹히겠냐 쉽할너마 ㅋㅋ 변명치곤 너무 군색하지 하지 않냐
정신차려라 왜 화이질서를 노리려면 고구려까지 종주권을 요구하지 미친 놈 ㅋ

그리고 양직공도에서 보듯이 그런 경제적 인프라와 왕도 아직 판자집내지는 초가집에 살고 철도 생산되지 않는 시점에서
무신 신라나 가야에 대한 허구적 통제권을 요구하는 오지랍이 넓어 왜 개뻥을 쳐요? 마한과 진한이 왜 들어 가냐고?

신라나 가야만 들어 가도 쪽바리가 그정도 주장하는구나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이건 완전히 캐오버해서 안드로메다까지 넘어가서
궤변을 놀어 놓으니 말이 되는 거냐 시방. 이 시방삼쉑이 개족바라
니들의 왜곡된 위조 사기짓거리및 궤변은 체임벌린이 지적한 아래의 글처럼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1882년에 고사기를 영어로 번역한 ?벌린(1882판: 137-8)은, 에도(江戶) 후기 국학파(國學派)의 거장인
모도오리(本居宣長, 1730-1801)가 고사기를 (가나로) 번역을 하면서 한국이라는 표현을 삭제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모도오리가 내용을 변조하려 한 이유는 오로지 전통적인 신대 설화에서 한국이 일본의 뿌리로 거론된다는 사실을 은폐 하고 싶다
는 분명한 이유에서 였다. 자신이 논평-해설을 한다는 원문을 그렇게 부정직하게 처리한 행위는 절대로 용서될 수 없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또한 宋書의 百官 篇 安東 將軍 조에 보면 왜왕과 왜왕의 부하들도 송으로 부터 당연히 관직을 받지 이것은 일종의 관례야
니말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드러 내주는 거지 '왜 백제와 관직 다툼을 하나요?' 라는 ㅋㅋ
기본적 역사적 소양이 있어야 토론을 하지 쉬바라

자 그럼 이제 또 문헌적 서지학적 근거를 들어 saru갈구기 놀이를 시작해볼까나 ㅋㅋ
우선 서지학적 자료로부터 이 왜구를 갈궈야지 구당서부터 시작해볼까

[舊唐書 列傳 東夷 百濟조 원문]

處大海之北, 小海之南. 東北至新羅, 西渡海至越州, 南渡海至倭國, 北渡海至高麗.
"百濟國은 大海의 북쪽, 小海의 남쪽에 자리하고, 東北으로 신라에 이르고, 西로 바다를 건너
越州(중국의 산동성 복건성일대등의 중국 동해안)에 이르고, 남으로 바다를 건너 倭에 이르고, 북으로 바다를 건너 高麗(고구려)에 이른다. "

[부연]越州 지역에는 백제가 진출하여 세운 晉平郡이 있었고, 고구려를 공략하여 遼西郡이, 신라는 백제의 附傭國이었고,
倭는 백제의 담로였다.

다음으로 元史
'"백제는 22담로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 가장 큰 곳은 倭담로이며 그곳은 백제의 왕족과 왕자들이 다스린다"

다음으로 쥐나 송나라의 '도화견문지' -倭國乃日本國也. 本名倭旣恥其名. 又自以在極東因號日本也. 今則臣屬高麗也) - 郭若虛.『圖畵見聞志』 卷6. 高麗國-
왜국은 일본국이다. 倭라는 원래 이름을 부끄러워했는데, 극동에 있다고 해서 스스로가 일본이라고 부른다.
고려의 속국이다(고려때도 쥐나인들은 왜를 고려의 속국으로 인식했네 ㅋㅋ)

다음으로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백제편'에는 백제의 侯王 제도에 대해서 이렇게 적고 있다.

"其國內衆建侯王以酬勲懿 -> 나라 안에 여러 侯王을 세워 그 공훈에 보답하였다." 라고 되어 있다. ㅋㅋㅋ

이러한 쥐나의 사서에 입각하면 백제가 속국이던 신라와 왜에게 칠지도를 하사하는건 당연한 거야.
우선 신라 황남대총에서 왜의 이소노카미진쟈와 같은 테마와 크기(3센티차이)의 칠지도가 발견되지
그런데 왜의 사이비 학자들은 여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지 ㅋㅋ
자학적 컴플렉스이고 그토록 한반도와 관련해서는 실증실증을 외치면서도 이런 결정적인 대목에서는 쌩까지 쉬부럴 것들 ㅋㅋㅋ

그럼 신라가 백제의 후국이며 부용국이며 백제가 신라를 후국으로 거느리고 있다는 기록을 볼까

北史에서 기록한 신라에 관한 내용
"其王本<百濟>人, 自海逃入<新羅>, 遂王其國. 初附庸于<百濟>,
<百濟>征<高麗>, 不堪戎役, 後相率歸之, 遂致强盛. 因襲<百濟>,
附庸於<迦羅國>焉.
"그 왕은 본래 '백제'사람으로 바다로 도망하여 '신라'로 들어가 그 나라에서 왕을 하였다.
처음 '백제'에 의지해 있었는데, '백제'가 '고려'를 정벌할 때, 혹독한 사역을 견디지 못하여,
후에 돌아와 강성하게 되었다. 그런 이유로 '백제'를 엄습하고, '가야국'에 의지하였다" ㅋㅋ 신라는 백제의 부용국 즉 속국이네 ㅋ

또한 왜의 고고학적 인프라상 치욕인 양직공도의 기록을 한번 볼까
양직공도상에도 신라가 백제의 부용국임을 명확히 기록하고 있다.

"梁職貢圖

所治城曰固麻, 謂邑檐魯 於中國郡縣 有二十二檐魯, 分子弟宗族爲之.
旁小國有 叛波, 卓, 多羅, 前羅, 新羅, 止迷, 麻連, 上己文, 下枕羅 等

수도는 고마라하고 읍을 담로라 하는데 이는 중국의 군현과 같은 말이다. 그 나라에는 22담로가 있는데,
모두 왕의 자제와 종족에게 나누어 다스리게 했다. 주변의 소국으로는
반파, 탁, 다라, 전나, 신라, jimi, 마연, 상기문, 하침라 등이 부속되어 있다."

ㅋㅋ 쪽바라 쥐나의 모든 역사서들이 백제는 후국을 거느린 제후국이라고 하네 어디 주접 좀 한번 떨어 봐라 니 주관적 망상만
토설하지 말고 말이다. 후국인 신라에게 통치자 입장에서 칠지도를 수여하네 ㅋㅋ 그리고 왜에도 똑같은 형식의 칠지도가 발견되네

거기다가 왜왕의 성씨는 倭씨네 ㅋㅋㅋ 니 립서비스 변명 말고 뭐가 더 필요해 백제가 제후국이라는 증거가 ㅋㅋㅋ
아 졸만한 왜구 존나겨 웃겨요 동성왕때 기록 더 들어줄까 ㅋㅋ

남제서에 보면 윤색된 사족인 가필빼면 동성왕이 남제의 숙원왕(482~493)에게 일방적으로 통고형식으로 보낸
남제서 백제전에 실린 조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단다 사루야 질 들어라 무식한 놈아

"是歲(AD488年)魏虜又發騎數十萬攻百濟入其界 牟大(東城王)遣將沙法名 贊首流 解禮昆 木干那 率衆襲擊 虜軍 大破之.
建武二年(AD495년) 牟大遣使上表曰 臣自昔受封 世披朝榮 忝荷節鉞 克攘列辟. 往姐瑾等並蒙光除臣庶鹹泰. 去庚午年(AD490년)
獫狁弗悛 舉兵深逼. 臣遣沙法名等領軍逆討 宵襲霆擊,匈梨張惶,崩若海蕩. 乘奔追斬 殭屍丹野. 由是摧其銳氣
鯨暴韜兇. 今邦宇謐靜 實名等之略 尋其功勳 宜在褒顯. 宜在褒顯. 今假沙法名行征虜將軍 邁羅王 贊首流為行安國將軍 辟中王
解禮昆為 行武威將軍 弗中侯 木幹那前有軍功 又拔台舫 為行廣威將軍 面中侯. 伏願天恩特愍聽除."

한자나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사루를 위해서 이 선생님께서 특별히 해석을 해주지 대가리 읊조리고 잘들어라 쉬밤바야

남제서 백제전 동성왕조 해석-

건무2년(495년)에 동성왕은 남제에 사신을 보내 전달한 국서의 내용은

"이해에(서기488년) 북위(北魏)가 또다시 기병수십만(騎兵數十萬)을 발하여 백제(百濟)를 공격하여 백제국경선 안으로 들어오니
동성왕(東城王)이 장군 사법명(沙法名) •찬수류(贊首流) •해례곤(解禮昆) •목간나(木幹那) 등으로 하여금 무리를 이끌고
북위군을 습격하고 이를 크게 파(破)하였다」

짐(臣)은 사법명등을 파견하여 軍을 이끌고 역습하여 미명(未明)에 드리치기를 우뢰치는 소리같이 하며 흉리(凶梨)
[흉노(匈奴)를 가리키는 말인 듯하나, 여기서는 북위군(北魏軍)이다]가 장황(張惶)하여 붕괴함이 바닷물이 밀리는 것과 같았다.

도망치는 것을 틈타 추격하여 사살하니 쓰러진 시체가 붉게 들판을 물들였다. 이로 말미암아 그 예기(銳氣)를 꺾어
고래 같은 횡포(橫暴)는 그 흉아(兇牙)를 감추었다. 이에 지금 국가는 안정을 얻었으나 실로 사법명 등의 위략(偉略)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공훈을 추심(追尋)하여 마땅히 표창(表彰)하여야 하겠기에 지금 사법명으로 하여금 행정로장군(行征虜將軍)•
매라왕(邁羅王)을 삼으며

찬수류로 하여금 행안국장군(行安國將軍)•벽중왕(辟中王)을 삼으며
해례곤을 행무위장군(行武威將軍)•불중후(弗中侯)로 삼으며

목간나는 전에 군공(軍功)이 있었는 바 또 대방을 함락시켰으므로 행광위장군(行廣威將軍)•면중후(面中侯)로 삼는다.

이에 이 인사내용(此 人事內容)을 통고(通告)한다(伏願天恩特愍聽除)."

ㅋㅋㅋ 얼마나 당당한 동성왕이냐 저렇게 남제서 동성왕조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 백제의 신하들을 왕후라 칭하는 것 말이다 ㅋㅋㅋ

① 사법명(沙法名) - 행정로장군(行征虜將軍)•매라왕(邁羅王)
② 찬수류(贊首流) - 행안국장군(行安國將軍)•벽중왕(辟中王)
③ 해례곤(解禮昆) - 행무위장군(行武威將軍)•불중후(弗中侯)
④ 목간나(木幹那) - 행광위장군(行廣威將軍)•면중후(面中侯)

왕이 2명이 후가 2명이나 있네 개 쒸밤바 쪽바뤼쳉코야 어디 니 찢어진 주둥아리로 변명이라도 해봐라 xx년아!!
이런 전통적인 쥐나의 기록을 참고하여 원사나 흠정만주원류고는 백제가 제후국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주는거란 말이다
개호로새퀴야

마지막 서비스로 니뽕서기상 기록된 사실로서 백제의 후왕제도를 증명하는 기록으로서 근구수왕이 돌아 가시고
침류왕이 등극할 당시의 기사를 올려주마

"日本書紀 巻九 神功皇后摂政六四年。百濟國貴須王薨。王子 枕流王 立爲 王。
왕자면 왕자이지 王은 또 뭐냐? 그런데 분명히 왕자를 왕이라고 부른다. 侯王인 것이다."
ㅋㅋㅋ 전통적으로 백제의 태자들은 가장 큰 담로인 倭를 다스리면서 제왕학 수업을 받는단다.

공업용 미싱으로 확 오바로꾸할 무식한 년같으니라고 주접을 싸요 사서 매를 벌어요 너 매져키스트냐
채찍으로 졸라 두드려 줄까 자칭 해뜨는 천자의 나라라고 쌩까다가 수에 문전 받대받고 본국 백제의 사인에게 붙잡혀
채찍질 당하고 수의 의례적 국서조차 빼앗긴 왜놈의 후예 쪽바리 쉬버럴 새퀴야 콰악 ~~쥑이뿔라 !@!ㅋㅋㅋ
원사의 기록에는 1267년, 고려 원종 8년 때의 기사.
"백제가 사신 양호를 파견하여 황제를 조알하고 비단을 하사 받았다"

983년 고려 성종 2년에 성종이 송황제로 부터 받은 책봉문을 보면 "삼한의 옛 땅과 백제가 남긴 봉지를 가지고 있다"는
구절이 등장하고, 이어 985년에 내려진 송황제의 조서를 보면 "항상 백제의 백성들과 장회의 족속들을 평안케 하여라"는 구절이다.
장회는 지금의 광서성이다.
夏と松と海
古くから、巨石(花崗岩)で作られた玄室が露出しており、その形状から石舞台と呼ばれていた。玄室は、長さ約7.7m、
幅約3.5m、高さ約4.7m、羨道は長さ約11m、幅2.5m。石室内部に排水施設がある。約30の石が積まれ、その総重量は2,300tに
達すると推定されている。이상은 고분시대에 만들어진 石舞台 고분에 대해 짤막하게 설명드린 겁니다.
님이 하신 고인돌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부탁인데 매너는 지켜주시고, 자세한 반박은 좀 여유가 생기면 자세하게 해드릴께요.
미즈노 ?페이
당연히 夏と松と海는 여유가 없을 수 밖에...
자신의 판타지를 어떻게 다시 끼워 맞추어야할 지 고심해야 하니까.
그리고 antijap님이 말은 험하게 했어도 논리타당한 역사적 근거를 내세웠고,
이와는 달리 夏と松と海는 말은 곱게 한 것처럼 비꼬면서 논리는 저 안드로메다로 보낸 버린 무개념탑재로 똘똘 뭉쳐 있으니....
사실 antijap님에게 욕 먹어도 당연한 것이다.
antijap
어쭈구리 자칭 구다라의 자손 '녀름또마츠또우미'사마가 놀구 있으시네 ㅋㅋ 백제인 목협만치(니뽕식 소아만치)의 후손
소아마자의 석무대 고분을 니 무덤으로 택한게야? ㅋㅋ

탁월한 선택이야 구다라의 사이비 후예 '녀름또마츠또우미'사마의 선택치곤 ㅋㅋ 이 캐병진은 년대기적으로 1000년이나 차이나는
BC3세기의 한반도 고인돌과 7세기 열도의 백제인 무덤을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초딩도 안하는 짓거리를 하고 있어요. ㅋㅋ

이 석무대 고분 니뽕말로 이시부타이 고분은 백제식의 횡혈식 석실고분이지 그위에 씌웠던 봉토 즉 봉분은 1300년의 풍상속에서
없어지고 돌무데기만 남은 거지 그런데 이 돌무데기 중에서 가장 핵심이자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가는 천정석이 77톤이 나가지
77톤 ㅋㅋ 한국인들이라면 피식 웃고 말아.

이미 기원전 3세기경에 한반도 남부에서 천정석이 300톤이 나가는 고인돌만 4개 이상이 발견되는데 77톤이 대수냐 ㅋㅋ

77톤이면 끽해봤자 당시 왜열도의 실권자이던 소아노우마코가 하루에 동원할 수 있었던 최대 인원은 한 800에서 천명
그것도 아스카 인근의 수혈식 움집에 거주하던 인구 탈탈 털어서 말이다 ㅋㅋ

그런데 그보다 더큰 300톤이나 되는 천정석을 니들의 모국인 한반도에서는 이미 이시부타이로부터 1000년전에 식은 죽 먹듯이
했다는 이야기지. 오늘부터 이시부타이 고분을 자칭 구다라의 사이비 후손 '녀름또마츠또우미'의 가매장 무덤으로 명명해주마 ㅋㅋ

그냥 농담따먹기로 댓글 단 것으로 알겠다 졸만한 왜구야 ㅋㅋ
夏と松と海
참 어이가 없네.. 천정석이 300톤이면 그것을 받히는 돌들의 중량은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할까?
니말대로 이시부타이의 천정석 중량이 77톤이라고 치차.. 그런데 이시부타이 고분의 총중량이 얼만줄 아니? 2300톤이야.
만일 고인돌의 천정석 무게가 300톤이라면 그 고인돌의 총중량은 대략 얼마나 되어야 할것 같아? 제발 거짓말좀 하지말지..
니가 아는 무게는 고인돌의 총중량이야. 천정석의 무게가 아니라구. 참 피곤해 너희같은 민족차별주의자, 한민족우월론자들은
어떻게든 주변 나라들을 깎아내리고, 자신들은 높이려 하지, 너가 아무리 폄하하려고 해도 고분시대에 이른 일본은 이미
대규모 고분을 전국적으로, 심지어는 낙도지역에까지 조성할수 있을만큼의 능력을 갖춘거야.
너희들의 목적은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을 깎아내리는 것이 목적이기때문에 오직 그것에만 포커스를 맞춰서 이율배반적인 논리를
들이밀지.. 예를 들면 한반도에서 건너온 도래인들에 의해 야요이시대가 열렸음을 강조할땐, 이들에 의한 인구폭발을 강조해.
그리고 그것에 합당할만한 연구자료를 들이밀지 그래서 나온게, 너희들이 이구동성으로 주장하는 것처럼 죠몬시대 말기에 7만에
불과했던 인구가 580만으로 급증했다는 거야. 사실 이것도 한국학자가 처음 주장한게 아니라 일본학자가 주장한거야.
너희들은 그런 일본학자들의 주장을 줏어서는 한민족우월론을 합리화하려 하지. 일본의 학계는 다양성이 존중되기 ?문에
댜양한 주장들이 나올 수 있는데 그것을 악용하는 거지.
그런데 또 당신같은 부류는 그 인구가 다시 고분시디에 이르면 50만에서 70만에 불과했다고 말을 하네? 도대체 누구말을 들어야 하지?
그 사이 일본열도에서는 대기근이 들었었나봐? 그래서 인구가 1/10로, 죠몬시대의 인구감소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그렇게 감소되는 추세에서 고분시대의 대규모 고분조성이 이루어진건가?
난 그래도 한민족우월주의자들을 이해하려고 했다. 한국인은 자신들의 역사가 왜곡 축소되었다는 피해의식이 있으니까
그것에 대한 반발로 이러는 것 뿐이라고 말이야. 하지만 막상 대해보니까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드네.
너희들은 그저 인종차별주의자며, 극우적 민족주의자들일 뿐이야.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은 그냥 동물일뿐이고.
너희들의 그러한 이미지는 이미 세계에 알려지고 있어. 너희들이 그러면 그럴수록 고립되는 것은 너희들일 걸.
그 태도를 고치지 않는 이상, 아무리 너희들이 우리의 원래 역사는 이거다라고 이야기 한다해도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거야.
이건 나의 혈통도 한반도와 연관이 있기에, 애써 말해주는 충고야.
요시노가리 유적을 400ha라고 쓴건 오류였음은 솔직히 인정할께. 한민족우월주의자들과는 다르니까.
그러나 과연 당신은 자신이 저지른 오류를 수정할 수 있을지 ..
antijap
어이가 없어 ? ㅋㅋ 아 이거 완전 미친 또라이 왜구 아냐 ㅎㅎㅎ 아 졸라 웃겨서 한참 웃었네야 캐캐병진아
넌 고고학이나 역사학의 기본이나 된년이냐 놈이냐 이 xx쳉코같은 개쪽바라 횡혈식 석실고분의 개념하고
남방식 고인돌의 개념하고 완전 낫토궁물에 말아 쳐먹은 캐또라이같은 xx놈이네

왜식 청동투겁창 거짓말에 이어서 13000년 토기에 이어 400ha 개뻥구라에 이어서 이제는 고인돌에 대한 무식까지 드러내
아주 사방에서 난리 부루스구만 똥싼놈이 주접싼다더니 왜구 쪽바리 근성 확실히 보여주네 에라이 니거미 망코다.

야 개쪽바라 횡혈식 석실묘가 어떤 건지는 알고 지금 아가리 떠드는 거냐 ㅋㅋ
횡혈식 석실분이란 그 안에 시체 넣는 현실 따로 무지하게 많은 부장품 넣는 현실 진입로 따로 그러기 위해서는
길게 높게 주위에 돌벽을 만들고 무수한 천정석을 얹는다는거지 당연히 길게 높게 석실을 만들려면
늘어 놓거나 세워 놓을 돌들이 필요하겠고 그런 돌들 다 합해서 2300톤 되는게 뭐 자랑이냐 이 캐병진아
그리구 그 중 주현실에 가장 무거운 천정석에 77톤짜리 통짜 돌이 필요한거구 나머지 현실이라든지 하는데에는
자잘한 77톤보다 덜한 무게의 천정석들을 다합한 수치가 2300톤이라는 건데 그 기본적인 개념조차 이해 못해서 이런 주접을 떠냐
미친 쪽바라 어구 인물 났다 2300톤 되서 ㅗㅗㅗㅗㅗㅋㅋ

그리고 고인돌에 대한 기초개념이나 있는 놈이냐 초딩도 안할 소리를 이 미친 쪽바리는 서슴 없이 해대네 초딩애들이 너보면 웃겠다 ㅋㅋ

북방식 고인돌은 뭐냐? 그리구 남방식 고인돌은? 이런 기초적인 역사지식도 없는 불학무식한 놈이니
저렇게 안드로메다 개념없는 소리를 해대지 이 무식한 년인지 놈이지 매번 가르치기 진짜 짱나네 기초개념부터 가르쳐 가면서
논쟁하는거 진짜 피곤해..

북방식 고인돌이라고 하면 실제 네 귀퉁이에 지지돌을 높이 세우고 그 위에 천정석을 얹는 석실묘의 원조같은 형식이니까
300톤 규모의 판개석을 올리려면 그 하중때문에 엄청난 크기의 지지돌이 필요하지
따라서 북방식 고인돌 형식에서는 하중이 많이 나가는 고인돌 무덤은 거의 발견되지 않지

하지만 남방식 고인돌은 바둑판식이라는 거지 즉 땅바닥에 거의 밀착된 형식의 굄돌만 있으면 300톤의 하중은
실제 땅이 그 응력을 다 받는다는 거야 그런데 무신 300톤하중을 다받는 지지돌이 필요하냐
이 미친 xx녀리 개쪽바리 무식한 왜놈아 !!

이런게 어디서 개좃도 모르면서 주접을 싸면서 깐에는 밤새 생각한게 자충수에 무덤파는 거냐 이 국으로 가만히나 있으면
이런 개모욕은 안당하잖아 너같은 무식을 안드로메다에 날려 보낸 개쪽바리 때문에 니뽕이라는 나라의 이미지가
한국에서 맨날 그모양 그꼴이라는 거야 이 그리고 이게 어디서 아가리를 함부로 놀리고 있어 현피까서 되지고 싶으냐
명성황후처럼 난자질 해줄까 배때기에 니 손으로 직접 못하면 내 손으로 니 배지에 하라키리 해줄까 이 미친 쪽바리

강의료 내놔 씨밤바야 남방식 고인돌에 대한 강의료 ㅋ 그리고 어제 논쟁 본문 http://blog.daum.net/innomy/14336678 의
맨밑에서 두번째 댓글 3번째 문단은 봤냐 너 알츠하이머 걸린 치매 쪽바리냐 아니면 원래 그렇게 정신이 없는 놈이냐
남의 글은 정독도 안하고 니 젓꼴리는 대로 니가 보구 싶은 거만 보냐 개호로새퀴야

거기서 내가 뭐라고 써놓았대 눈깔 잘 씻고 봐라 산나이 유적에서 죠몽시대 쌀 나왔다고 개구라 치듯이 또 거짓말 치지말고

'즉 다시 말하면 죠몽 말기 7만 5천이던 인구가 나라시대에 오면 거의 수백만으로 증가하고 신장의 평균치도 죠몽 말기의 남자
157센티미터에서 야요이 초기에 급작스레 남자 164센티미터로 증가하고 이 수치는 고분시기의 말기인 나라시대까지 변하지 않는다 '

보이냐? 쪽바라 보통 일반적으로 375년 이전을 고분 전기로 분류하고 가마쿠라 이전 헤이안까지를 고분후기로 분류하는 방식을
따라서(실제는 아스카시대 전까지 실질적인 고분시대는 끝나고 375년부터 아스카까지를 후기고분시대로 분류하기도 한다)
나라시대말의 인구를 수백만이라고 분명히 적시했다 즉 코야마 슈조가 추정한 8세기의 나라시대까지는 인구가 수백만 즉
500만 내외로 증가한다(이 수치도 실제 믿을 건 못 되서 수백만으로 한것이다.)라는 분석치를 어제 또 다른 논쟁 발제 글에서
댓글로 분명히 이야기했는데 그거 안보이나 보네 하이머 환자에 이제 백내장까지 앓고 있어서 쌩깐거냐 이 캐병진아.

그리고 니가 지적한 이 6번째 댓글의 9번째 문단이 전기고분시대인 닌도쿠왕릉(313-399)축조를 말하면서 거기에 들어간
하루 동원 가능한 인원수를 제시하면서 전기고분시대의 인구수치를 말하는데 거기서 왜 나라시대쯤이나 되는 인구로
혼자 개꼴갑쇼를 하니 난독증이냐 쉬뱅아

"즉 하루 고작해야 2000명 동원이 최대치라는 게야 그런데 위에서도 봤지만 이미 한반도 남부지방에서는 각지역의 호족들도
3000명정도는 하루에 너끈하게 동원하지 차이는 돌멘이라는 것과 흙으로 만든 고분이라는 것 밖에는 없어 냉정하게 분석해서
당시 왜열도의 인구는 30만에서 50만정도라는 거야 인구밀도가 진짜 희박한 거지 서기1세기를 중심으로 한반도 남부는 250만
열도는 30만 정도 고분시대 정도 되면 열도 인구가 한 50만 정도 된것이라는 게 고고학적 유물로 보는 추정되는 수치지."
이게 너는 고분시대를 통털은 나라시대쯤의 인구로 보이냐 저 문단에 어디 그런 의미가 있대 쉬밤바야
닌도쿠 왕를시대인 전기고분시대와후기고분초기를 이야기하는거지

니가가 어느시대쯤 논쟁하고 있는지 이해나 하는지 모르겠다 ㅋㅋ 캐병진 왜구 소위 니뽕서기상으로 270년-310년사이의 응신릉이나
닌도쿠를같은(실제 축조시기는 이보다 훨씬 늦은 5세기말에서 6세기초에 축조된 것이라고 동지사 대학교수 모리 고이치는
밝히고 있지만 여튼 쪽바리들의 주갑을 120년 가량 끌어 올린 니뽕 구라서기의 편년에 입각해서)고분이 축조된 시대에서
광개토대왕의 신묘년조 논란이 되고 있는 391년사이의 고분전기에서 고분 후기초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즉 나라시대인 8세기 초에는 백제멸망후 급증한 도래인과 야요이이후 늘어난 생산력을 바탕으로 한 자연적 인구 증가에 의해
야요이초기 7만5천에서 코야마 슈죠가 밝힌대로 수백만까지 증가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보다 4-500년전인
고분전기(가야계가 통치하고 아직 백제계가 본격적으로 정권을 잡기 전인)의 왕궁도 초가집이고 말도 없고 철도 생산되지 않는
인프라로 50만에서 70만도 많은 것이지 니가 뇌가 무뇌가 아닌 이상 그따구 망발을 하냐 이캐병진아
나라시대 540만을 주창한 코야마 슈조교수도 고분전기엔 끽해야 50만이라고 왜의 인구치를 잡고 있단다 이 무식한 졸만한 왜구야

보통 아스카시대는(592-710) 집단고분군시대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아스카시대는
엄밀하게 말하면 전기고분시대의 무지막지한 전방후원분보다는 백제식 횡혈식 석실묘(나가시마 기미치카)이다.

즉 니뽕에서 인구가 폭증하는 시기는 5세기 중반부터인데 이는 니뽕 열도에 퍼져있는 20만기의 고분 중 80프로 이상이
한반도로부터 대량이주가 시작된 5세기 말부터 7세기초 즉 아스카시대말기까지 축조된 것이라고
'횡혈식 석실의 원류를 찾는다의'의 저자 '나가시마 기미치카'와 아스카 국립문화재 연구소 자료관등의 사료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면 니뽕 고분의 80프로 이상이 만들어 졌다는 아스카시대가 끝나고 코야마 슈조의 수백만인구가 됐다는
8세기초의 나라시대로부터 소급하여(어제 내댓글의 나라시대의 수백만 인구로부터)그보다 4내지 500년전인 고분 전기로 가면
인구 50만 내지 70만은 극히도 합리적인 수치아니냐 쪽바라 무신 큰 오류라도 발견한 양 요시노가리 400ha의 캐망쉰을
만회하고자 발버둥치는다가 더 깊은 수렁으로 곤두박질 치냐 원숭이의 외줄타기가 가소롭기만 하구나 ㅎㅎㅎ


즉 지금 우리가 논쟁하고 있는 지점은 지금 고분전기의 닌도쿠나 응신묘방식의 수혈식 석곽분(수혈식 석적분-니뽕식)을
논하는 시기에 이 씨밤바야 인구가 무신 540만이 된다고 캐 거짓말을 시키면서 어제 내가 쓴 댓글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하고
캐 오버에 생구라쑈쑈쇼를 남발하구 자빠졌니?
야요이시대가 끝나는 3서기 300년경에 대략 인구가 30만정도야 그러면 끽해봤자 고분전기에 50만내지 70만 잡아 주면
당시 왜의 인프라로 봐서 합리적인 숫자지 이 캐병진아

죠몽초기인 13000년부터 야요이직전인 BC3세기까지 10700년간 겨우 인구가 7만 500정도 됐다가
야요이인들의 벼농사등의 생산력 증가로 야요이가 끝나고 고분 전기쯤에는 50만이나 70만으로 늘어 난것도
죠몽의 비율에 의하면 엄청난거지 이 캐병진은 고분전기에 그럼 몇백만이 되야하냐?

村八分같은 놈같으니라고 이왜구놈 분명히 이지메 대상이었을 거야 그 이지메에 맺힌 원한을 한국에 와서 한번 풀어보려고
나대나가는 해골에 총맞아 되진다

남의 주장에 대한 반박을 할 때는 충분히 그 주장을 숙독하고 정독한 다음에 글을 달아라 분한 마음에
또 엄청나게 깨질 것을 자초하는 이따구 글 올리지 말고 이 쉬뱅아 ㅋㅋ

넌 알츠하이머에 백내장 왜구야 오늘부터 내 발바닥이나 빨아라 나라시대에는
니뽕의 인구가 수백만이 되었다는 어제의 글조차 읽지 못하는 백내장 눈으로는 내 발바닥이나 빠는게 딱이다. ㅋㅋ

다양성 ㅋ 지금 니가 나체쇼 하면서 재롱떠는거지 니뽕에 다양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지 하지만 너의 예에서 보듯이
그런 다양성에 대해서 모두 쌩까고 눈감는 다는 거지 야마토 만세일계의 사이비 황국사관에 눈멀어서 그러니까 겁대가리도 없이
엉터리 금석문으로 조작의혹이 있는 광개토대왕비를 3국의 역사서에 전혀 기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불가침의 전범인양 인용을 하고 자빠졌지 미친놈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한국역사를 분석하거나 해석할 때는 실증사학이라해서 엄격한 잣대를 가져다 대고
니뽕열도의 구라뻥 역사를 해석할 때는 환타지가 난무하는데 지금 누가 누구에게 적반하장이냐 이 캐사루야

니가 이 블로그에서 거짓말과 엉터리 황국사관늘어 놓다가 개망신 당한것만 몇개냐 함보까 ㅋㅋ

13000년 도자기 개뻥
원 청동 투겁창과 왜식 투겁창의 기본적인 구분도 못하는 천박한 지적기저
요시노가리의 40ha를 400ha로 개뻥치는 환타지
헤이안 에도 죠몽이 뒤섞여 있는 산나이 유적의 지층에서 쌀이 발견되었다는 천인공노할 거짓말
진주 대평유적에서 그보다 거의 7-800년후나 서기 1내지 4세기에 왜식 청동 투겁창을 수입해다 썼다는 S/F환타지 소설 개구라 쇼 등등
한국보다 년대가 늦은 흑요석이 니뽕이 기원이라고 우기는 천박함
5500년밖에 안된 산나이유적이 한국의 문암리의 8000년 유적보다 먼저이고 죠몽들이 한국에 건너 오서 살았다는 안드로메다 논리 ㅋㅋ
신묘년조의 니뽕서기조차 일기 못한 실력으로 황국사관에 쩌들은 니뽕학자들이 주장하는 광개토대왕비를
불멸의 금과옥조로 전제하고 들어가는 후안무치 등등
횡혈식 석실묘와 남방식 고인돌의 차이도 모르는 캐무식 등등

니가 싸질러 놓은 이 설사들을 봐라 이 캐병진아 알구 주접을 떨어라 아주 누깔에다 낫토를 부어 줄까보다 캐 쉬밤바 왜구
요바이나 해라 이 더러운 왜구 놈들아 어디서 신성한 지들 부모의 땅에 와서 캐거짓말로 댓글이나 달면서
어영부영 맞먹으려고 해 커억 ?~~!
즉 하루 최대동원능력이란 통짜 돌인 300톤 정도 되는 돌을 움직일 수 있느냐라는 기준이 고고학적 준거틀이다
이 붕삼아! 언더스탄도? ㅋㅋ

예를 들면 이시부타이 고분 전체 돌무더기가 2300톤이라 해서 그 돌무더기를 하루에 다 옮기는게 아니라
가장 큰 돌을 중심으로 해서 동원가능한 인력수를 계산하는 거지 큰 통짜돌은 연인원으로 천천히 하는게 아니라
한번에 들어서 움직여야하니까 말이다. 이 무개념 쪽바라 하여튼 좃또 무식한 것들이 지 개뻥친건 쌩까구 주접을 까요
xx러마가. ㅋ

그리고 이제와서 오류를 시인해 좃까는 소리하구 있네 니가 개구라 친게 요시노가리 유적 크기만이냐 저위에 적시한
청동투겁창 산나이 유적지 쌀사건등 기본도 안된 놈이 주접을 싸고 있네 xx년인지 xx놈인지

너는 왕뻥구라에 무식한 왜구지만 한국인은 fact에 입각해서만 말하는 사람들이야 그리구 나는 인종차별주의자다
왜 그게 불만이냐 ㅋ 어이 왜구야 난 정확히 말해서 니뽕인은 열등주의자들이라고 보는 한민족 선지주의자지
어때 니들 허황된 야마토 이지빵주의보다는 훨 합리적이지 않냐 ㅋㅋ

정확히 말해서는 니뽕인 차별주의자고 더 엄밀히 말해서는 원숭이 차별주의자지 ㅋㅋ 그리고 너 어디서
구다라 후손이라고 쌩까구 다니지마라 이 죠몽 원숭이놈아 그냥 넌 죠몽원숭이들과 어울려 사는게 딱이야
고귀한 천손족 쿠다라 이름 팔구 다니면 대가리에 총 맞아 되진다 이건 경고다
그리구 하나 더 난 쪽바리하구 안 논다 자세한 설명 필요 없다 너보다 니네 역사를 더 잘 아는데
너따위가 무신 나하구 놀려구 하냐 쉬밤바야

너하구 말 섞기조차 싫다 앞으로도 여기 쥔장님이 니 접속을 허할지 모할지는 모르겠다만 나하구 말 섞을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수준 떨어지게 너같은 지적 기저도 일천한 쪽바리하구 말 섞겠냐 개쉬밤바야 그런 주제 넘은 망상 꿈꾸지 말고
니가 남자면 A/V나 보고 니가 여자면 A/V나 찍어라 난 열도의 원숭이들하고는 안 논다.
夏と松と海
세계최초로 토기를 제작했던 죠몬인은 동시에 세계최초의 정주사회를 열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토기제작기술을 가진 죠몬인들이 연해주 시베리아 일대로 건너감으로써, 토기제작기술의 확산이 이루어진 것이죠.
초기화작농경은 최초의 정주생활을 하였던 고대 일본열도의 죠몬인들이 주인공입니다. 이들이 대륙으로 건너가,
화작농경을 본격화하게 되고, 문명의 발달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일본열도에 남았던 죠몬인들은 그 이후, 문화발전의 지체현상에 빠졌겠지만 토기제작기술을 가지고 이주해갔던 죠몬인들은
바로, 고대 동북아문명의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담당하였던 것이라고 이해함이 옳습니다.
antijap
역시 쪽바리 아니랄까봐 년대나 주체를 완전히 거꾸로 왜곡하구 쥐랄 생쇼를 해요 ㅋ 야 saru야
세계 최초로 누가 토기를 제작해? 니가 ? 아니면 너와는 아무 관계 없는 신석기 초기인 죠몽 아이누가?
아이누가 현대 일본에 무슨 영향을 끼쳤는데? 일본 역사서 곳곳에 나오는 야마토족의 죠몽 사냥과 전투는 거적이야
니들 스스로 아이누를 蝦夷라 불렀는데 그들이 니들하고 무슨 관계야? ㅋ

죠몽인이 정주사회이구 아이누가 정주민족이었다는 학설은 니가 최초로 개창한거야 발제 논문 좀 가져 와봐라 한번 ㅋ
후쿠이 유적에서 토기파편이나 센부쿠지 유적에서 두립문 고토기만 나오면 무조건 정주한게 되는 거야 ㅋ

문화나 인종의 이동 경로가 거꾸로 가나? 열도에서 연해주로 건너 가고 시베리아로 건너갔다는 황당무계 환타지 소설은
니 창작품이야? ㅋㅋ

요즘 아무르강 유역의 토기나 석기들이 아주 주목을 받고 있지 즉 아무르강 유역의 유적중에서도
중류의 그로마투하·노보페트로브카, 하류의 가샤 유적 등의 유물 구성은 제주도 고산리 유적과 매우 유사하단다.
때문에 아무르 유적은 후기 구석기와 전기 신석기의 전환기의 문화전개 양상을 규명하는데 중요 유적으로 자주 거론된다.

이 중에서도 그로마투하(Gromatukha) 유적은 셀렘자 후기 구석기 문화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2003년에 발굴한
노보페트로브카(Novopetrovka)는 셀렘자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독자적인 석기제작 기법과 토기제작 기술을 가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로마투하 유적에서는 각목이 새겨진 융기문토기와 식물줄기 등이 혼입된 섬유질 토기가 출토되는 등 제주도 고산리 유적과
유물 구성 양상이 아주 비슷하다.(참고로 제주 고산리 토기는 융기문 토기와 섬유질 토기 두 양식이 모두 발견되지)

가샤(Gasha)유적에서는 제주도 고산리와 마찬가지로 식물줄기 등을 섞어 만든 섬유질 토기편이 출토된다.
절대연대 측정결과 가샤유적의 식물성 섬유질토기의 절대연대는 12,960±120B.P.라는 수치가 나왔다.
아무르강 하류의 훔미(Hummi)유적에서도 고토기가 발굴된다.

아무르강 중·하류의 이들 유적들은 셀렘자 후기구석기 문화의 영향을 받은 오시포프카(Osipovka) 문화에 속한다.
절대연대는 대체로 13,000∼10,000B.P.로 알려지고 있지.

그런데 니가 뻥을 까는 니뽕 죠몽 후쿠이 지층의 절대 년도는 끽해야 그 상한이 12700년인 것이고
그 지층에서 융기문 토기편이 발견 된다는 것이지 융기문 토기 자체가 13000년이라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지금까지 학계에 보고된 일본 최고의 토기는 동경근처의 上野遺蹟에서 출토된 말각 융기문토기와
서북구주 센부쿠지 출토 두립문토기이다. 이 두 토기의 탄소연대는 12,000 B.P 이다.
참고로 아므르강 하류의 가샤유적 출토 평저평행침선문토기가 12,960±210 B.P이고
몽고근처의 쟈바이칼지방 우스트-카흐라유적 출토 토기는 12,595±250B.P가 나왔다.

이렇게 년대도 늦은 죠몽인들이 연해주와 시베리아로 건너가? ㅋ
이미 러시아 발굴 유적단에 의해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결과 상한이 13000년전으로 검증된 토기를 니들이 먼저 만들었다고라? ㅋ

더구나 최근 가샤유적의 토기와 함께 분석한 제주도 고산리 섬유질 토기의 절대연대 수치는 10,180±65B.P.가 나왔다.

이처럼 고산리 유적은 식물줄기 같은 것을 넣어서 만든 섬유질 토기 및 양면석기 첨두기 화살촉 등 석기출토 양상이
아무르강 중·하류의 오시포프카 문화권과 같다는 점에서 두 지점간 강한 연관성을 시사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시베리아로부터 한반도-서해안-제주도나 시베리아- 연해주-홋카이도-니뽕동북으로 이어지는 연쇄나
시베리아-한국 동해안-부산-남해안-규슈로 이어지는 루트가 합리적이지
어떻게 고립된 열도로부터 시베리아로 진출한다니 saru야 ㅋㅋ

때문에 현재 러시아나 한국고고학계에서는 우리나라 초기신석기 문화와 아무르강 유역의 다양한 유적군은 동계라고 보지.
최근에는 고산리 초기 신석기 유적이 기원전 1만년을 전후한 급격한 해수면의 변동과정에서 당시 육지인 서해를 따라
아무르강 유역의 오시포프카 문화권에서 육로로 전해졌다고 분석한다

2003년에 러시아학술단과 공동조사단을 이끌고 노보페트로브카 유적발굴에 나선 제주문화재연구소 강창화 실장은
“고산리 유적의 유물구성은 아무르강 하류와 비교할때 11,000∼10,000B.P.쯤에 상한을 둘 수 있다”며
“당시는 해수면 상승과정에서 현 러시아 지역인 아무르로부터 육로를 통한 유입이 가능했다”고 말한다.

즉 제주 고산리 토기도 상한이 11000년이란 말이다 더구나 2001년 인천앞바다 서해도서 지역인 무의도에서는
고산리식 타제석촉 1점이 발견됐다.

이 무의도 석기편은 석기 제작과정중에 떨어져 나온 박편을 2차 가공하여 전면을 잔손질 한 후 만든 첨두형 석촉으로 관심이 모아진다.

즉 한반도 서해에서도 고산리식 유물이 연쇄를 이루며 간헐적으로 출토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과거 빙하기시대에 지금의 해안선보다 더 바다쪽으로 확장되었을 고대의 해안선이 드러나면
아무르강유역과 거의 시기가 유사한 13000년전의 토기가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거지
그 연장선상에 제주도의 고산리 유적이 잇는 거고 말이다. 그런데 니뽕에서 독자적으로 토기를 생산해? ㅋㅋ

정리하면 고산리와 김녕리에서 출토되는 식물줄기로 성형된 원시무문양토기는
한국 본토의 신석기유적에서 발견된 바 없는 특이한 토기이다.

반면 연해주 아무르강유역의 초기신석기유적과 블라디보스톡근처의 액티노브카유적에서 식물줄기로 성형한 토기가 확인된다,
하지만 규슈 센부쿠지 洞穴유적 출토 豆粒文土器의 경우 동물의 털로 성형한 토기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고산리식 원시무문양토기가 고대 빙하기에 한국 서해안과 연결된 제주도 및 연해주와 시베리아 벌판에서 확인되고
한국 내륙및 대마도, 일본지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점은 드넓은 벌판을 무대로,
사냥과 연관된 초원문화와 관련 있다고 보아진다.

그러나 앞으로 100~60m정도 하강한 상태의 황해벌판에서는 발견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실제로 영일만해저와 북구주 長崎縣壓魔島床유적과 西唐津海底遺蹟의 해저 20~-30m지점에서 이시기의 유물이 확인된다.

그런데 말야 한가지 더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줄까
작년에 여수 '안도'(島) 유적지에서 니들이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고토기라고 하는 두립문 토기가 발견됐지 ㅎㅎ

제주 고산리 것은 상한 11000년으로 보더라도 여수 두립문 토기는 센부쿠지 동굴유적 것과 같은 거란다.
두립문 토기는 여하튼 니뽕 센부쿠지 유적에서 발견되는 것이고 신석기 전기의 토기로 인정받는 거니까 말이다 ㅎㅎ

학술적으로는 12000년전 전의 두립문 토기이고 니 뻥을 보태면
13000년전으로 상한을 두는 센부쿠지에서 발견된 두립문 토기가 한반도 여수에서도 발견되었네 어쩌나 사루 ㅋㅋ 쿠야시데쇼?

그럼 니들이 말하는 자칭 세계 최고의 토기에 대해 알아볼까 우선 과연 동북아시아의 초기 신석기문화는 어떻게 전개됐을까.

기존 학계에서는 대체로 2개의 루트로 파악한단다.

하나는 아무르강 하류에서 나오는 석기의 양쪽면을 뾰족하게 다듬은 첨두기(尖頭器)와 세형몸돌을 중심으로 하는
초기 신석기 문화는 사할린과 홋카이도(北海島)를 거쳐 일본 동북지방으로 이어졌다는 견해다.

또 하나는 아무르강 중류의 노보페트로브카 융기문 토기문화가 극동지역을 통해 두만강과 동해안을 따라 강원 양양 오산리 유적,
부산 동삼동 패총, 통영 연대도 유적 등 한반도 남해안에 이어 일본 구주(九州)까지 이어진다고 본다.

그럼 제주 고산리와 일본의 초기신석기 유물은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까.

우리나라의 초기신석기에 해당되는 것이 일본에서는 죠몽(繩文)시대 초창기가 된다. 연대는 1만2천년을 상한으로 볼 수 있다.

일본 구주지방을 중심으로 후쿠이(福井)유적에서는 세석기와 함께 융기문토기가 출토됐다.
이 층의 절대연대는 12,700±500B.P.로 나타나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지 토기가 아니라 지층을 말하는게야
잘 들어라 토기 자체가 13000년이라고 우기지 말고 말이다.

이 규슈 센부쿠지(泉福寺)동굴유적에서는 두립문 토기로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이른시기에 해당하는 고토기가 출토된다.
상한 12000년으로 본다는 바로 그 토기이다.

그런데 이 토기는 섬유질 토기가 아니라 제주 고산리 토기와는 직접 연계가 없는 루트다.
그리고 센부쿠지 토기인 이 토기는 여수에서도 출토된다는 건 위에서 부연했다.
ㅋ 즉 니들이 말하는 토기는 아무르 -한국 동해안-양양-부산-여수등의 남해안을 거쳐 구주로 이어지는
아무르-한반도 계열이라는 거지 ㅎ 이해 되냐

정리하면 아무르에서 출발한 신석기 전기의 문화가 하나는 시베리아-연해주-홋카이도로 이어지는 거고
또 하나는 시베리아-한국 동해안-남해안-구주로 이어지는 거고

또 하나인 제주도 고산리 문화는 아무르-서해안루투-제주로 이어진다는 거지

이 3루트에서 어디 열도로부터 연해주 시베리아로의 逆과정이 있니? ㅋㅋ 개가 또 웃어요 쪽바라
'녀름과 마츠와 우미'라는 이름을 쓰는 saru야 머리는 장식품으로 달고 다니는 거 아니란다. 공부 좀 해라 ㅋㅋ
夏と松と海
죠몬인의 신석기문명의 가장 큰 특징을 놓치고 계시는 듯 해서 첨언드립니다.
일본의 오키제도에는 양질의 흑요석이 대량으로 산출되는데, 이 흑요석을 이용한 타제석기가 바로
죠몬 신석기문명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런데 이 흑요석이라는 것은 그 산출지가 지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일본의 오키제도와 백두산 부근정도일까요?
그런데 동북만주와 연해주지역등에는 일본의 오키제도의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신석기 유물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의 죠몬인들이 연해주지역과 만주지역으로 이주해갔음을 강하게 시사하는 것이며,
또 적어도 이들 지역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음을 반증해주는 것입니다. 토기의 연대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이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일본의 죠몬토기가 가장 연대가 오래된 토기로서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설사 일본의 기록이 ?진다하더라도 신석기 토기문화에 있어서 일본열도가 최첨단을 걷고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드는군요. 토기의 제작과 정주문화를 연결시키는 것은 결코 무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이것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간주하는 것이니까요.
현대의 아이누인들이 과거의 죠몬인인가 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게 아니라고 생각이 듭니다.
죠몬시대의 인골들을 살펴보면, 시베리아 계통의 인골들도 나오는 반면, 또 남방계 인골들도 나옵니다. 죠몬인이란 개념은
공통된 문화의 특징을 공유한 집단을 일?는 말이지, 결코 혈연적 의미는 아니니까요. 현대의 아이누인은 긴시간을 거쳐,
문화적 혈연적 정체성이 형성되어가며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그런 아이누인을 바로 죠몬인과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요?
한국인들이 종종 저지르는 민족개념에 대한 혼선이 또 발견되는군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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