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통계의 스포츠이며, 진보적인 통계 분석가들의
오랜 노력을 통해 선수와 팀의 미래 성적을 예측하는 ‘프로젝션(projection)’ 시스템이 고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매년 오프시즌이면 여러
미디어와 세이버메트리션 집단에서는 저마다의 시스템을 가동해 다가오는 시즌 각 팀의 성적과 선수의 성적을 예측한다. 시스템마다 어느정도 편차는
있지만, 실제 결과가
예상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특히 빅리그에서 여러 해 동안 활약한 선수일수록 프로젝션의 정확도가 높은 편인데, 이는 선수가 그간
쌓아온 ‘에버리지’를 예측의 기반으로 삼기 때문이다. 가령 커리어 내내
평균 3할 타율을
치던 선수가 한 시즌 2할대 초반으로 무너질 경우, 대부분의 프로젝션은 그
선수가 다시 3할
가까운 기록을 회복한다는 예측을 내놓을 것이다.
여기에 각종 프로젝션은 비슷한 경력을 쌓은 선수간의 ‘유사성(similarity)’, 나이,부상 경력, 스킬의 발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복잡한 계산 과정을 거쳐 향후 커리어에 대한 전망을 내놓는다. 애틀랜타 1루수 프레디 프리먼의 올 시즌
예상 성적이 좋은 예. 프리먼은 3년차 시즌인 2012년 .259/.340/.456을 기록하며 ‘부진’했지만, 많은 프로젝션에서는 프리먼이
올해 ‘브레이크아웃’ 시즌을 보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2012년 후반기 들어 프리먼의
출루율과 장타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데다, 볼넷과 삼진 비율이 극적으로 개선되었기 때문. 젊은 유망주일 경우 이런
약점의 개선은 급격한 성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프리먼은 올 시즌 .319/.396/.501에 23홈런 109타점을 기록하며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프로젝션은 동일 리그 내에서의 성적 변화뿐만 아니라, 한 리그에서 다른 리그로
이동했을 때 성적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서도 답을 내놓는다. 가령 윌 마이어스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해서 어느 정도의 활약을 할 수 있을지, 양키 스타디움에서 뛰던 좌타자가 세이프코 필드로 옮기면 홈런 숫자에서 얼마나 손해를 볼지, 베이브 루스가 1930년대가 아닌 2013년에 뛰면 어떤 성적을
낼지 등이 모두 다루어진다.
최근에는 일본 야구에서 미국으로 무대를 옮긴 선수들의 성적을 예측하는 작업이 주목을 받고 있다
. 지금까지 약
50명 가까운 일본 선수가
빅리그에 진출하면서 어느 정도 데이터가 축적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트리플
A에서 빅리그에 올라간 수많은
윌 마이어스들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겠지만
). 여기서 가장 돋보이는 결과물을 내고 있는 인물은 코너 제닝스
(Connor
Jennings)인데
, 그가 운영하는 웹사이트
‘NOM Projections’에서는 일본 현역 선수들의
미국 진출시 프로젝션은 물론 과거 일본 출신 빅리거들의 사례
, 일본 야구장의 파크 팩터
등이 소개되고 있다
.
제닝스는 과거 먼저 미국에 진출한 선수들과의 유사성 외에도 BABIP(인플레이 타구의 안타
비율), 파크 팩터
등을 독자적으로 계산해서 프로젝션에 활용한다. 심지어는 일본야구 공인구 교체로 인한 영향까지 고려할 정도로 꼼꼼하다. 가령 어떤 투수의 좋은
성적에 ‘운’이나 수비 도움이 주요하게
작용하지 않았는지, 엄청난 홈런을 쏟아낸 타자의 성적 뒤에 홈런치기 유리한 구장이 자리잡고 있지는 않은지 등을 감안해서 조정을
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구한 프로젝션과 실제 선수가 기록한 성적을 비교해 본 결과는 꽤 흥미롭다. 일본에서 최고의 타자로
활약한 스즈키 이치로는 .332/.399/.446의 성적이 예상되었고, 이는 실제
이치로가 2012년까지 빅리그에서 올린 타/출/장 비율과 거의
일치한다. 3.25
LERA/3.15 FIP를 예상한 다르빗슈 역시 지난 2년간 3.34 ERA/3.28
FIP를 기록하며 기대에 부응(?)했다. .302/.375/.368를 예상한 아오키가 빅리그 첫해 .433의 장타율을 기록한 것은
의외였지만, 올해
아오키는 .286/.356/.370를 기록하며 본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미국 진출
직전 2점대
평균자책을 기록한 이가와 케이에 대해 프로젝션은 4.82 LERA/5.08 FIP의 끔찍한 예측을 내놓았고, 이가와는 6.66의 공포스런
평균자책점으로 무너졌다. 일본에서 10년간 .582의 장타율을 기록한 마쓰이 히데키의 프로젝션상 장타율 최대치는 .475였고, 마쓰이는 실제로 .462로 커리어를
마감했다.
물론 프로젝션 중에는 오카지마, 사이토 등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성적을 올린 사례도 있다. 또한 조지마 겐지처럼
포수라는 포지션과 의사소통의 한계를 계산에 넣지 못한 경우, 마쓰자카처럼 건강 문제로
크게 빗나간 성적을 올린 예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제닝스의 연구가 지금도 계속해서 진행 중이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점차
보완해 나가는 중이라는 점이다. 앞으로 일본출신 선수의 수가 더욱 늘어나고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제닝스의 프로젝션은 점점 정확도를 높여갈
것이다.
그렇다면 제닝스의 프로젝션에서 이대호는 어느 정도 성적을 예상하고 있을까? 2012년까지의 성적을
토대로 내놓은 프로젝션에서는 이대호가 최대 .277의 타율과 .341의 출루율, .436의 장타율에 17홈런 46볼넷/76삼진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600타석 기준). 이는 탬파베이 레이스 1루수 제임스 로니의 올 시즌
성적(.299/.348/.430
13홈런 44볼넷/77삼진)과 비슷한 수준. 2013년 빅리그에서 1루수로 출전한 선수들이 올린
평균 성적(.261/.336/.436)과도 유사하다. 지난해 성적을 기준으로 하면
빅리그 평균 수준의 1루수가 기대치라는 이야기다.
이대호에 대한 제닝스의 평가도 비슷하다. 그는 포스팅을 통해 “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
중 한 명”이라고
소개하면서 “괜찮은
타율과 볼넷 비율, 좋은 삼진 비율에 꽤 괜찮은 파워를 보여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포지션이 1루수라는 게 문제”라며 “이대호는 충분히 좋은 타자가
될 수 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1루수는 ‘엄청난 타자’가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44홈런을 때려낸 2010년만큼은 아니더라도, 일본에서보다는 나은 홈런
파워를 발휘해야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의 2년간 이대호는 장타보다는 정확성에 초점을 맞춘 타격을 보였는데, 미국야구는 좀 더 공격적인
승부를 펼치고 삼진에 관대한 경향을 보인다. 이대호가 자신의 또 다른 장기를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다.
한편 NOM
Projections에서는 이대호 외에도 올해 24승 무패 대기록을 세운
다나카 마사히로,
60홈런 신기록을 세운 발렌티엔 등의 프로젝션도 공개하고 있다.프로젝션대로라면 다나카는
미국에서도 정상급 투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다나카는 평균자책 3.59에 FIP 3.03, 9이닝당 탈삼진 8,86에 9이닝당 볼넷 2.92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탬파베이 에이스인 데이비드 프라이스(3.33 ERA/3.03 FIP)와 비슷한 수치다. 제닝스는 다나카가
미국에서 WAR
4~5 정도에 해당하는 퍼포먼스를 보여줄 것으로 예상하는데, 올해 다르빗슈는 2년차 시즌에 fWAR 5.0을 기록한 바
있다. 조만간 시작될
다나카의 포스팅에서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이유다. 다나카 외에도
오가와(ERA
3.29), 마에다(ERA 3.12), 요시카와(ERA 2.87) 등이
미국에서 뛰어난 성적을 낼 수 있는 투수라는 예상이 나왔다.
반면 홈런왕 발렌티엔에 대한 예상은 다소 비관적이다. 발렌티엔이 미국야구에 복귀할
경우 홈런 23개로
어느정도 파워는 보여줄 수 있지만, 0.219/0.314/0.395의 저조한 비율 스탯에 무려 136개의 삼진을 헌납한다는
예측이 나왔다. 이는
고질적인 약점인 선구안 문제에다 야쿠르트 홈구장인 메이지 진구 스타디움이 우타자가 홈런을 치는데 42%나 유리한 구장이기
때문. 프로젝션은
이대호의 팀 동료인 이토이에 대해서도 8홈런에 .271/.341/.377 정도의 성적을 예상해 눈길을 끈다.
물론 프로젝션은 어디까지나 과거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는 작업. 사람이 하는
야구를 100% 완벽하게 맞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선수의 몸 상태나
동기부여, 새로운
구종 개발, 폼
변경, 약점 보완
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예측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프레디 프리먼의
경우 고질적인 시력 문제를 2012년 시즌 중에 해결하면서 성적 향상 효과를 봤다. 프로젝션은 선수가 경기 중
부상을 당하거나, 불안정하던 심리상태가 결혼을 통해 안정을 찾고, 마음이 맞는 코치를 만나
훈련에 열중하게 되는 등의 변화는 계산에 넣지 않는다. 40홈런을 치던 타자가 새로운 팀에서 원하는 등번호를 받지 못해 불안에 떠는 상황도, 로버트 드니로를 닮은 광팬의
협박을 받는 상황도 예측에는 없다.
그러니 앞서 나열한 이대호나 다나카 등의 프로젝션도 참고는 하되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선수의 변화와 노력에 따라
실제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대호가 만일 미국에 진출한다면 그에 필요한 변화와 노력을 할 것이고(류현진이 슬라이더와 커브 비중을
높였듯이), 미국에서의 이대호는 일본 이대호와는 전혀 다른 타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의 2년을 토대로 낸
프로젝션 결과(메이저 평균 수준 1루수)보다는 훨씬 나은 성적을 낼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
그럼에도 제닝스의 연구는 한국야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닝스의 프로젝션이 가능한
건 그만큼 일본 선수들이 활발하게 미국 야구에 진출해 있기 때문. 이제는 앞으로의 성적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의 체계가 자리를 잡았다. 반면 한국야구는 아직까지
그럴만한 레퍼런스가 없다. 올 초 류현진의 프로젝션(180.1이닝
평균자책 3.99 탈삼진 169개 K/9 8.44 BB/9 2.85)도 한국인 투수가 아닌 일본 투수들과의 유사성을 토대로 계산한 것이다(물론
류현진은 이 프로젝션을 훌쩍 뛰어넘는 성적을 거뒀다).
지금은 류현진 하나뿐이지만 윤석민-오승환 등을 시작으로 한국 프로야구 출신 빅리거의 수는 앞으로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야구를 갖고
독자적인 예측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날도 그리 머지 않다. 앞서 진출한 선수들의 성적 변화를 토대로 후배들의 성적을 예측하는 게 가능해지는 때가 온다. 코너 제닝스는
ESPN 매거진과 인터뷰에서 “다음은 한국야구 차례”라고 밝혔다. 일본야구는 제닝스에게 선수를 뺏겼다. 제닝스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한국의 많은 야구광들이
선수를 내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대호 .277 / .341 / .436 / ops .777 / 17홈런 / 46볼넷 / 76삼진
다나카 3.59 era / 3.03 fip / 9이닝당 볼넷 2.92 / 9이닝당 탈삼진 8.86
발렌틴 .219 / .314 / .395 / ops .709 / 23홈런 / 136삼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