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이후, 근대적 노무관리로 돌입하면서, 보편적으로 기술로서 정착하게된 온정주의.
어찌보면 가족같은 분위기로 이끌며,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기듯, 이상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노사간 주종관계를 명확히 하여, 사가 노에게 베풀고 있다는 관념을 고착화시키는 방편에 그치고 있다. 이런 온정주의는 유독 한국에서 더 기형적으로 토착화되었는데, 그것은 한국 특유의 유교적 관념에 기대어, 노사관계를 은원관계로 치부하며, 지배적 노사관계를 강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소속사는 땅파서 나온 돈으로 장사하나?
흔히 이런 얘기를 하곤 하는데, 하나의 스타를 키우려고 많은 투자를 했기에, 스타가 된 이후에도 어느정도 수익배분의 주도권을 소속사가 가지는 것이 맞다는 논리다. 물론 일정부분 동의할 수 있는 얘기다. 특정스타의 수입으로 소속사 식구들이 먹고살고, 또한 같은 소속사의 신인 아이돌이 데뷔하는 것에 투자도 할 수 있게 되니 말이다. 허나, 이런 계약의 타당성은 앞서 얘기한 목적성에 부합하려거든, 벌어들인 수익규모가 회사유지에 충분한가 따지는 것에 기반할 부분이지, 흔히 노예계약이라 일컬어지는 장기계약에 기반할 부분은 아니다. 특히 이전 카라와 소속사의 분쟁 당시 쟁점이 되었던, 수익배분의 투명성부분은 계약자체의 존속을 위해할만한 요소였기 때문에 계약 내용과는 별개로 엄정히 다뤄져야할 문제였다.
물론, 회사라는 것이 항상 정도만 걷는 것도 아니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기득권을 쥔 자들로부터 이권을 배분받기 위해서는 일정부분 회계상 처리되지 못하는 잡비용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기획사들은 이런부분에 대해 충분히 소속 연예인들과 협의하지 않고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카라분쟁 자체의 원인도 여기에서 출발했다. 부리는 자들에게 일당을 책정하여 던져주면 그 뿐, 주인이 재화를 어디다 탕진하건 알 필요 없다는 정보독점의 폐단이 그런 사태를 촉발했다.
흔한 말로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스타가 되기 힘든 한국 연예계의 현실에서, 일개 연습생이 기획사가 일방적으로 제시한 계약조건를 무시하고 데뷔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노동자의 인권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취업준비생이 회사의 근로조건을 수정해달라고 얘기하기 힘든 부분과 같은 논리다. 누구든 같은 분야에서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난 이후에야 근로조건의 수정이나, 이직같은 현실적 노동조건의 보정이 가능해지는 논리는, 연예계라고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솔직히 쉽지는 않다. 한국의 노동문화가 주종관계를 탈피하기 힘든 이유는 앞서 언급한 온정주의가 유교적 은원관계로 착인되고 있는 점과도 맞닿아 있다. 신입이 경험을 쌓아 어느정도 업무역량이 되었을 때,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하려고 하면, 흔히 듣는 얘기가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 데려다가 회사가 이만큼 키워줬는데..."라는 핀잔이다. 그러나, 회사가 일할 여건을 만들어 준 것은 맞지만, 그만큼 역량을 키워낸 것은 개인의 몫이다. 또한 그 업무 역량의 성장만큼 회사에 기여한 부분을 무시한 논리이기도 하다.
애초부터 회사는 개인의 업무 역량에 따른 직무설계를 해야 한다. 초짜면 초짜에 걸맞는 직무를 배분하고, 그에 걸맞는 연봉을 제시한다. 몇년을 일했건 그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 기다린 것이 아니라, 그 성장에 걸맞는 직무를 배분하여 전체 시스템을 운영해왔을 뿐이다. 때문에 개인의 퇴직이나 이직 자체에 대해 도덕적 은원관계를 들이밀 것이 아니라, 본디부터 결원에 대비하는 회사의 시스템부재를 질책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노노갈등의 도화선을 기형적 유교관습으로 엮어놓고, 여론 몰이를 하고 있는 한국 기업의 부도덕한 노무관리행태가 한심스럽다. 특히 이번 카라사태에서 DSP가 보여준 모습은 여전히 실망스러웠는데, 카라라는 그룹의 존속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서, 잘못된 언론플레이로 인해, 이전에 수도 없이 당했던 사례와 다르지 않게, 다시금 카라의 개별멤버가 희생양이 되는 한심한 작태를 보자니, 니콜의 재계약 포기가 어느정도 이해가는 상황이다.
2년전 소속사 분쟁 후, 멀어질대로 멀어진 언론과의 관계는 한치도 개선되지 않았고, 그런 언론의 반카라적 성향은 지속적으로 대중에 대한 카라이미지의 훼손으로 연계되었다. 이번 언론과의 접촉도 이정도까지의 반응을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언론은 한걸음 더 나아가, 내분으로 카라가 끝이 나는 듯, 또 한차례 카라를 짓밟는 행태를 보였다. 논란이 한참 지나간 후, 뒤늦게 수습하는 제스쳐를 보인 것은, 향후 일본 콘서트나, 국내 비지니스를 감안할 때, 언론접촉이 오판이었음을 자인하는 모양새였다.
카라라는 가볍지 않은 이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니콜을 끌어안고 가야한다. 다행히 니콜 스스로도 소속사와 계약되지 않더라도 자신은 계속 카라를 유지하겠다고 한다. 유학문제가 거론되고 있지만, 분명 지영양도 니콜측의 대응에 영향을 받은 모양새다. 힘든 연예계 일정에 지친 멤버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명확한 것은 다섯 모두 카라 활동자체에 대한 의지가 있다는 점이다. 재계약한 멤버들의 비지니스가 문제없이 정상궤도에 오르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카라라는 울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DSP는 제대로 인식했으면 한다.
냉정하게 얘기해서 재계약한 멤버들이 카라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아직 시장에 제대로 안착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카라라는 이름을 벗어던질 수가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DSP가 박규리, 한승연, 구하라 라는 개인이름을 내 건 활동을 강하게 뒷바라지할 역량이 있는 것도 아니라 생각된다. 때문에 소속사와 멤버 모두가 안정적 궤도에 들기까지 현재의 시스템은 유지될 필요가 있다. 그것에 한, 두 멤버의 재계약 불발이 있다 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