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과 저항
장준하(張俊河)는 처음에 군사정권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하지만 5.16이전 국토 건설 본부장을 맡았던 그가 추진한 농촌우선 개발정책과 달리 군사정권이 공업화 우선의 개발정책을 실시하자 그들을 불신하고 부정적으로 판단하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군사 정부는 전국적 깡패 소탕작전의 일환으로 많은 도시의 불량배를 잡아들여 각처의 국토 건설 현장에 투입시켜 노예를 방불케 하는 강제 노역을 시켰다. 이처럼 국가의 기본경제구조와 국민을 고려하지 않은 그들의 정책은 장준하가 정권에 반대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이어 장준하는 ≪사상계≫에 함석헌(咸錫憲)이 쓴 ‘5․16을 어떻게 볼까’ 라는 글을 실으면서 군사 정권에 첫 도전을 하게 된다.
군인정신은 '깨끗'이라는 한 말에 다 된다. 필 때는 천지가 눈이 부시게 피었다가도 수정(受精)이 된 다음엔 깨끗이 싹 떨어져야 꽃의 값이 있다. 지고난 후에도 떨어지기 싫다는 듯 시들시들, 지적지적 붙어있는 꽃은 참 더럽다. 그러므로 ‘할 일을 다 한 후는 곧 정권을 민간인에 물려주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선언한 것은 참 군인다운 말이다. 잎은 길이길이 있으므로 나무에 그 바치는 바가 있지만 꽃은 깨끗이 떨어지므로 그 나무를 위해 영원히 공헌하는 것이 있다. 그 꽃이 떨어져도 그 뿌리로 돌아가 그 나무속에 길이 사는 것이다. 다만 그 형식이 다를 뿐이지 그 뜻은 같다. 평화(平和)정신은 늘 부르짖어야지만 무단(武斷)정신은 한 번만 써야 한다.
1961년 7월호 사상계 함석헌 <5․16을 어떻게 볼까>중
5․16쿠데타의 불가피성과 역사성을 일단 인정하면서 ‘혁명 공약’에 따르는 민정 이양을 촉구하는 입장을 취했던 그는
약속과 달리 권력을 쥐려고 하는 박정희 세력에게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냄으로써 정통성 없는 정권에 맞서는 깨끗한 언론인으로 평가받았다.
자신의 의견이 현실과 괴리되자 즉각적으로 입장을 현실에 맞추어 재정비하는 것은 당시 그의 위상으로 봤을 때 큰 용기를 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