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댓글을 보니 공산주의가 실패했기 때문에 맑스 이론은 쓰레기... 무조건 악의 사상이라고 보시는군요.
맑스주의의 개괄적인 내용을 찾아 올려드립니다. 이걸 한번 읽어보시고 왜 공산주의가 실패했는지 생각해 보시고 비판하는게 좋은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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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xism
K.H. 마르크스의 사상·이론·학설. 넓은 뜻으로는 마르크스와 F. 엥겔스를 계승한 사상·이론·학설 및 그에 따른 실천활동을 가리킨다. 마르크스주의의 사상적·논리적 기초는 변증법적 유물론·사적 유물론(史的唯物論)이며, 경제학설로서의 잉여가치설 그리고 정치적 학설로서의 계급투쟁론과 결부하여 자본주의사회의 붕괴와 사회주의·공산주의사회의 도래를 전망하였다. 그 실천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마르크스주의는 노동운동·사회주의운동에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였으며, 20세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의 하나가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의 형성〕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그 때까지 인류사의 다양한 지적 유산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19세기 중반에 형성되었다. G.W.F. 헤겔의 변증법을 비롯한 독일 고전철학, A. 스미스·D. 리카도 등의 영국 고전파 경제학, 생 시몽·C. 푸리에 등의 프랑스 사회주의·공산주의 사상을 V.I. 레닌이 <마르크스주의의 3가지 원천>이라고 명명하였으며, 고대의 유물론철학, T. 홉스·J. 로크·J.J. 루소 등의 근대시민사상, C. 다윈의 진화론을 포함한 자연과학의 성과 등도 마르크스주의의 생성과 전개에 큰 역할을 했다. 엥겔스는 생 시몽·R. 오언·푸리에 등의 <공상적 사회주의>에 대비하여 근대 여러 과학분야에서 이끌어낸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사상을 <과학적 사회주의>라 하였다. 마르크스 자신의 사상형성을 살펴보면, 헤겔좌파에 속하는 급진적 민주주의자로 출발하여 《경제학·철학초고(草稿, 1844)》를 거쳐 엥겔스와 공동 저술하여 유물사관을 확립한 《독일이데올로기(1845~46)》에 이르는 초기 마르크스, 《공산당선언》과 1848년 혁명의 패배·성찰을 거쳐 《경제학비판요강(1857~58)》 등 정치경제학을 비판하는 노트 작성에 힘을 기울인 중기 마르크스, 《자본론》 제 1 권을 간행(1867)한 때부터 제 1 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협회)의 지도자로서 파리코뮌을 경험하고, 《프랑스의 내란(1871)》 및 《고타강령(綱領) 비판(1875)》 《자술리치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남기면서 《자본론》 제 2 권 이후를 완성하지 못하고 죽은 후기 마르크스로 나눌 수 있다.
〔인간해방의 세계관〕
초기의 마르크스는 프랑스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으면서 헤겔철학의 사변적·관념론적 측면을 L.A. 포이어바흐적인 <현실적 인간>의 입장으로 극복하여 실천적·유물론적 변증법으로 정리했다. 그 당시 마르크스는 그리스도교적인 보편주의와 프로이센국가의 환상적 공공성을 인간의 유적(類的) 본질의 소외 형태라고 생각하고, 인간의 공동성 회복을 위해서는 사적 이해대립을 가져오는 사적 소유를 폐지해야만 한다고 하였다. 역사 발전의 주체를 현실적 개개인으로 간주하고 인간생존의 제 1 조건인 생산에 착안하였다. 생산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 인간과 인간의 사회적 교통방법에 초점을 맞춘 역사관·사회관인 사적 유물론의 성립은, 인간 존재 그 자체를 자연사(自然史) 속에 두고, 정신·의식에 대한 물질적 존재의 선행성을 인정하며, 존재의 물질적 운동을 내적 모순의 발전과정으로 파악하는 세계관인 변증법적 유물론의 성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이것은 인간의 유적 해방의 이론으로서, 개개인의 자유로운 협동사회인 공산주의사회의 구상과 결부되어 형성된 것이었다.
[인간은 사회관계의 총화 : 인간관]
동구권의 붕괴 이후에도 사회 철학에서 맑스주의가 단연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현상으로 미루어, 맑스의 등장은 철학적 인간학에 거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동구의 현실 사회주의 정권들이 스스로 그 체제를 포기한 이후에, 일부에서는 이데올로기에 물들지 않은 사회 분석을 가정하고, 현대 사회를 순전히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움직임도 있으나, 그들도 기술 공학과 사회 발전이 인간을 소외시킬 수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는 사회 과학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형성된 대표적인 철학적 인간학으로, 맑스의 인간관을 개괄한다.
마르크스는 추상적 '인간'을 논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으며, 그가 관심두는 것은 구체적 사회 발전 속에 처해 있는 인간에 대한 과학이다. 이 과학은 새로운 사회 과학적 실천을 위한 이론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의 해석에 의하면, 인간 본질은 관념적 보편에서 연역되는 존재가 아니요, '사회 관계 들의 총화'이다. 맑스는 시종일관 인간을 공동체적이고 나아가서 사회적인 존재로 보고 있으며, 인간을 사회적 조건들의 성격에서 측정하고자 한다.
따라서 철학 또는 철학적 인간학은, '실천적 - 비판적' 활동의 의의를 일깨우는 것이어야 한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채롭게 해석해 왔을 따름이다. 그러나 요점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당시 사회를 향하여 부르짖었다.
철학이 프롤레타리아에서 그 물질적 무기를 발견하듯이, 프롤레타리아는 철학에서 그 지성적 무기를 발견하고, 그리하여 (프롤레타리아 철학) 사상이 섬광처럼 인민들의 순수한 가슴속에 깊이 부딪쳤을 때, 그때에서야 독일 사람을 사람으로 해방시키는 진정한 독일인의 해방이 성취될 것이다.
* 인간이 곧 인간의 세계요, 국가요 사회이다 - 인본주의
마르크스는 일평생 인본주의의 이름으로 유물 사관과 공산주의를 이론화하고 체계화한 인물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사회적 본성, 인간의 자기 이해에 있어서 노동이라는 인자가 갖는 비중, 인간의 소외에 관한 지각을 인류에게 각성시킨 인물이다. 구체적으로 맑스가 보기에는 인간은 관념론 철학자들이 말해온 것처럼, 정신이나 영혼 또는 의식이 아니라 존재요 물질이요 신체이다. - 유물론 - 인간의 작업을 일차적으로 의식의 자기 재생산이 아니라 노동과정의 혹독한 소원(소외)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외의 청산은 사유 속에서만 일어나서는 안 되고, 있는 그대로의 사회의 실생활에서 일어나야만 한다. -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우리가 얻을 것은 해방이요, 잃을 것은 족쇄의 쇠사슬 뿐이다'라는 맑스의 공산당 선언의 실천적 성격을 말한다 -
맑스는 시종일관 인간 해방을 갈파한다. 맑스주의를 경계하는 사회에서는 인간 해방이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 인간 이념, 인간 관계의 조직과 결부되어 있고, 개혁과 도덕이라는 이념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낟. 그들은 계몽을 통해서, 의식의 변화를 통해서, 종교적 감화를 통해서, 혹은 종교적 도덕적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를 통해서, 인간들 및 자연과의 인간다운 관계를 회복함을 통해서만 사회적 재조직을 달성하리라고 기대한다.(중략)
그런데 맑스는 인간 해방을 경제적이고 정치적이며 이념적인 관점에서 보는 사회 문제로 간주한다. 그에게 해방은 이기심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속박과 사회 계급의 문제이다.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은 비인간적 자연에 대한 인간의 새로운 관계 정립이 아니고, 정치에 대한 실천적 투신이다. 맑스는 저변으로부터 올라오는 혁명하는 사회가 사회 재조직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따라서 그는 노동자 계급에 호소하였고, 실천적인 정치적 투쟁을 요구한다. - 사회주의 인터내셔널(International) - 착취당하는 프롤레타리아(무산자, 노동자)가 착취하는 부르주아(유산자, 생산수단의 소유자)에 대항하여 계급 투쟁을 벌이도록 요구하였다
〔유물사관(唯物史觀)〕
사적 유물론을 유물사관이라고도 하는데 마르크스의 《경제학비판》 서문에 있는 다음과 같은 글을 보면 그 대강을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생산에 즈음하여 그들의 의지로부터 독립한 일정한 형태의 필연적인 관계, 즉 생산관계에 놓이게 된다. 이 생산관계는 물질적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단계와 대응하며, 생산관계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적 구조를 형성한다. 이것이 현실의 토대가 되며 그 위에 법률적·정치적 상부구조가 구축되고, 또한 여기에 일정한 사회적 의식의 여러 형태가 조응한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양식이 사회적·정치적·정신적인 생활과정을 규정한다. 즉 인간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은 그 발전의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그때까지 유지되어온 현존의 생산관계, 이른바 소유관계와 모순된다. 이들 단계는 생산력의 발전이라는 형태로부터 질곡으로 전화하며, 그때 사회혁명의 시대가 시작된다. 경제적 기초의 변화와 함께 거대한 상부구조 자체가 서서히 또는 급속히 변혁된다. 대체로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각 시대적 양식으로는 크게 아시아적·고대적·봉건적·근대부르주아적 생산양식을 들 수 있다. 이 정식(定式)에 응축되어 나타난 사회적 존재―사회적 의식, 물질적 생산과정―이데올로기적 생활과정, 토대―상부구조, 생산력―생산관계, 생산양식―경제적 사회구성체 등의 개념은, 마르크스의 방대한 저서에서 여러 가지 뉘앙스를 함축하여 사용되며, 엥겔스·레닌·스탈린 등에 의해 단순화되어 설명되는 경우도 있으나, 마르크스주의적 사회관에 불가결한 요소가 되어 있다. 또 원시공동체·노예제·봉건제·자본주의로 이행되는 발전계열도 그것이 공산주의에 이르는 과정은 미개 → 야만 → 문명, 인류전사(人類前史) → 본사(本史), 인격적 의존관계 → 물상적(物象的) 의존관계 → 자유로운 개개인의 공동사회, 노동과 소유의 본원적 동일성 → 분리 → 동일성의 고차부활(高次復活), 본원적 공동체 → 시민사회 → 공동체적 시민사회, 사회적·공동적 소유 → 계급적·사적 소유 → 공산주의라는 시각에 입각한 역사파악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고,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은 단선적(單線的)·계기적(繼起的) 발전설이기보다 복합적·중층적 발전설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계급투쟁론과 프롤레타리아트 발견〕
유물사관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에서 사회발전의 근거를 구하지만 그것은 역사 속에서 개개인의 능동적 실천이 이룩하는 역할을 부정하는 인과적 결정론이 아니라, 오히려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로 규정되는 개개인의 계급적 대립과 그 정치적 표현인 계급투쟁이라는 차원에서 개개인의 주체적 실천에 결정적 의의를 인정하고 있다.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는 사회적 생산 속에서의 개개인의 역할, 생산물의 분배관계, 개개인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위치와 역할의 자각 등에도 규정적으로 작용하며, 역사상의 구체적인 사회발전은 계급간 투쟁의 역사로 이해된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생산수단을 자본제적(資本制的)으로 소유하는 부르주아지와, 상품으로서의 노동력 판매만으로 생활을 유지해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이 기축이 된다. 1848년 혁명 직전에 쓴 《공산당선언》은 이 계급투쟁론에 의한 사회주의혁명을 지향한 역사적 스케치이며,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과 《프랑스의 내란(1871)》은 계급투쟁론에 의한 현실정치 분석의 전형이다. 마르크스는 계급투쟁론에 의해 자본주의사회 내부에서 사회주의·공산주의로 변혁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사명을 발견하고 노동자계급정당 결성의 의의를 파악했으나,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의 프롤레타리아트독재사상을 제기하였다.
〔잉여가치설과 시민사회의 해부〕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상품의 생산·유통이 전(全)사회에서 지배적인 것이 되며 노동력조차도 상품화되고 있다. 자유·평등·민주주의라는 관념은 상품교환관계의 보편화에 따라 시민사회의 표면에 나타나는데, 생산과정에서는 자본가가 구매한 노동력은 자본의 통제하에서 소비되며,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가치 이상의 가치를 생산물에 부가한다. 이것이 잉여가치이며, 그 실체는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을 초과하는 잉여노동시간으로 파악되는데, 이 잉여가치의 생산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규정적 동기가 된다. 잉여가치는 투하자본의 가치를 웃도는 자기증식(自己增殖)된 가치로써 이윤으로 전환되어 기업자이득·이자·지대(地代)의 원천이 된다. 노동자계급은 임금인상·노동시간단축 등으로 자본가계급에게 저항함과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잉여가치 착취에 반대하는 투쟁을 통해서 사회주의·공산주의를 향해 나아간다. 《자본론》은 잉여가치론의 바탕 위에서 자본주의사회를 해부한 마르크스의 주요저서이다.
〔사회주의·공산주의〕
잉여가치 착취에 반대하는 노동자의 계급투쟁은 생산수단의 공동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공산주의를 목표로 하지만, 사회주의혁명이 일어나는 즉시 공산주의가 실현되는 것이 아니고, 그 과도기에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가 필요하며, <자본주의사회에서 갓 태어난 공산주의>의 제 1 단계에서도 자본주의사회의 흔적이 남는다. 레닌은 이 제 1 단계를 사회주의단계라고 했는데, 러시아혁명 이후 생겨난 사회주의국가에 대해서는, 이것이 마르크스가 구상한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발전단계 중 어느 단계에 있는지를 둘러싸고 논쟁이 계속되었다.
〔마르크스 사후의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가 죽은 뒤 마르크스주의는 그 이론·학설의 해석과 이해의 정통성 및 그것을 적용한 정치적 전략·전술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조류가 생겼다. 제 2 인터내셔널의 E. 베른슈타인·K.J. 카우츠키, 이에 반대한 R. 룩셈부르크, 러시아혁명에 승리한 레닌, 이를 계승한 L. 트로츠키·N.I. 부하린과 이들을 실각시킨 I. 스탈린, 스탈린과 같은 시대의 G. 루카치·K. 코르슈·A. 그람시, 사회민주주의계의 R. 힐퍼딩·O. 바우어 등이 유명하다. 러시아혁명 뒤 세계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사람들이 사회주의국가에서 생활하였으며 이러한 나라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주의〔毛澤東主義〕 등의 마르크스주의가 절대적 권위를 가졌다. 1917년 이후부터 56년 후루시초프에 의하여 수정되기까지 소련의 지도이념이 되었다. 한편 서유럽사회에서는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의 다원적 존재형태를 적극적으로 평가하여 그 현대적 발전을 도모하려는 입장이 나타났다. 그러나 1989년 후반기 이후의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여러 나라의 자유민주화와 공산주의로부터의 이탈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