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핵보유국 북한'의 등장으로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 이후 20년간 지속된 한반도 비핵화 노력은 파탄을 맞았다. 지금의 북핵 위기는 '북한 문제'의 심화 확대를 의미한다. 여기서 북한 문제란 북한의 존재가 우리에게 던지는 온갖 문제의 집합을 지칭한다. 따라서 북한 문제는 단연 한반도 현대사 최대의 도전이자 과제다. 북핵 위기는 핵 보유와 김씨 유일 체제의 보위(保衛)가 서로 분리 불가능하다는 북한 문제의 진실을 폭로한다. 햇볕정책의 외견적 합리성은 이 진실 앞에서 봄날의 눈처럼 허무하게 녹아내린다.
체제 재생산 능력을 탕진하면서 절대무기 핵을 쥔 김정은 정권의 불안정성이 높아질수록 한반도 위기 지수는 가파르게 상승한다. 2015년으로 예정된 한미연합사 해체는 그 추세를 가속화할 것이다. 북핵 위기를 둘러싼 동북아시아 전략 게임 뒤에 어른거리는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구도는 논리적으로 주한 미군의 철수를 함축한다. 따라서 평화협정은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기는커녕 북의 군사적 모험주의를 부추겨 전쟁 위기를 높일 터이다. 무력이 받쳐 주지 않는 문서 한 장으로 지켜진 평화란 역사상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순 없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단언(斷言)은 북한 문제의 핵심을 찌른다. 문제는 김정은 정권이 스스로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전무(全無)하다는 데 있다. 핵이 김씨 정권의 존재 근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권과 체제, 국가를 일체화한 김정은의 대남 핵 협박은 상시화(常時化)되어 갈수록 강도가 세질 것이다. 2013년 한국 사회는 '김씨 정권의 남한 인질 전략' 원년(元年)을 목도하는 중이다.
남북 체제 경쟁의 승리를 자부한 대한민국의 꿈은 미몽(迷夢)으로 판명됐다. 나라가 총체적 위기 앞에 선 순간 '국가 행동의 원리이자 운동 법칙'인 국가이성이 섬광처럼 드러난다. 선입견과는 달리 자유 시민이 주인이 되어 번영하는 공화국을 옹호한 마키아벨리는 '치욕스럽게든 영광스럽게든 조국은 방어되어야 한다. 방법이 어떠했든 방어에 성공했다면 그것은 적절하다'고 설파했는데, 이 명제야말로 국가이성의 원형이다.
[윤평중]
이런 사람이 진짜 진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