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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엄연히 사상의 자유가 있는 나라입니다.
이석기의 불온한 사상때문에 체포동의안이 나온 것이라면 북한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석기 측이 행동을 '구체적'으로 모의 했다는 혐의가 있기 때문에 체포동의안이 나온겁니다.
만약 구체적 모의가 아니라 그냥 떠든 것이라면 이또한 법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을 허용합니다.
북한은 그렇지 못하죠.
이때 수거한 유류품을 수사한결과 민족민주혁명(민혁당)의 실체가 드러나 수뇌부대부분 검거되었습니다
이잠수정에는 민혁당관련인사들과 만난 간첩이 타고있었으며 그가 기록한문건들이 민혁당의 존재와 조직을파악하는데 중요한 역활을 했습니다
민혁당은 1992년에 만들어졌으며 서울대법대생 김영환씨가 초대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김씨는 이른바 강철수신을 통해 학생운동에 김일성주체사상을 퍼트린인물로 1991년 비밀리에 북한을방문해 김일성을 직접 만났지요
하지만 그가 목격한 북한의 실상을 들은거와 달랐습니다
방북기간동안 북한의 경직된 사회상을 몸소눈으로 보았으며 1990년대 중반 북한의 대규모 아사사태를 접한뒤 북한당국의 처사를 보고 생각이 바뀌게 됨니다
김영환씨는 결국 민혁당을 해체하고 대한민국으로의 전향을 선언했습니다
이에 반발한 세력들이 민혁당을 재건하고 현재 할동중에 있습니다
1999년이후 : 민혁당잔존세력 경기동부연합으로대거이동
2000년 : 민주노동당창당
2000-2003년 : 민혁당 잔존세력들이 민노당장악착수
2004년 : 민노당 총선에서 10석확보
2006년 : 민노당핵심당직자가 민노당당원명부300명의 신원 북한에 보고
2008년 :심상정.노희찬.등 민혁당세력을 종북세력이라고 비판후 탙당후 진보정당창당
통진당 비례대표2번 이석기씨는 2003년 민혁당사건에 열루되어 서울고등법원에서 징역2년6개월 판결을 받아 살다 징역5개월만에 노무현대통령의 특사로 풀려난 인물입니다
통진당의 이석기는 김일성생일축하 유인물을 배포하다 사건이 터진후 약3년간 도망다니다가 체포되어 재판받아 징역형에 처해졌는데 특사로 풀려났음에도 불구하고 전향하지 않고 지내다가 이번 통진당 비례대표선출과정을 이용해 갖가지 수법을 동원해 국회의원이 되고자 부정을 저질러 2위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김재연역시 주사파출신으로 2004년 간첩활동을 방지하는 국가보안법폐지를 주장하며 국회에서 시위를 주도한혐의로 징역2년 집행유에 2년을 선고받은 인물입니다
이역시 경기동부연합소속으로 한번챙긴 국회의원을 같은 비례대표들은 사퇴했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고수하다 국회의원배지를 달았습니다
이들이 국회에 입성하여 우리나라국군의 최첨단무기와 배치상황 .서해5도의 군배치상황.휴전선의 군배치상황.외교문제 . 정부각부처의 각종문서들을 보고 북한에 보고할 인물들 입니다
일심회사건이란
2006년 : 민노당핵심당직자가 민노당당원명부300명의 신원 북한에 보고해서 일어난 사건인데
<사건 개요-당시 기사(1999.9)>
1999년 9월, 80년대 대학가 주사파 핵심세력들을 포섭해 조선노동당에 가입시키고 남한내 혁명전위조직인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이라는 지하당을 조직, 친북활동을 벌인 간첩단이 적발됐다.
또 지난해 12월18일 전남 여수 해안에서 격침된 반잠수정은 민혁당지도원으로 남파됐던 간첩을 복귀시키기 위해 내려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정보원은 9일 격침된 반잠수정에서 회수한 전화번호 수첩 등을 단서로 민혁당의 실체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국정원은 이날 민혁당에 연루된 김영환(36.월간 "시대정신"편집위원),조유식 (35.전"말"지 기자), 하영옥(36.무직), 심재춘(29.대학강사)씨 등 4명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 송치하고 김경환(35."말"지 기자)씨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중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영환씨는 지난 89년 7월께 남파간첩 윤택림(56.북한 대외연락부 5과장)에게 포섭돼 노동당에 입당했다.
김씨는 대학후배 조유식씨와 함께 91년 5월16일 강화도 해안에서 북한 반잠수정을 타고 입북, 김일성을 두차례 면담하는 등 14일간 머물다가 제주도인근 해안으로 귀환했다.
국정원은 김씨가 북한으로부터 공작금 40만달러(당시 3억원상당)를 받아 지난 96년 총선출마자 등 6명에게 1인당 5백만~1천만원씩 선거자금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하영옥씨는 지난 97년7월께 김씨가 민혁당을 해체하려 하자 이를 인수,남파간첩 위장을 돕고 지난해 12월 북한 반잠수정이 여수해안에서 격침되자 인터넷 메일을 이용해 북한측과 대응책을 논의하는 등 "사이버 간첩" 활동을 벌여왔다고 국정원은 설명했다.
이 밖에 심재춘씨는 지난해 9월께 하씨에게 포섭돼 남파간첩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고 인터넷 통신등을 통해 북한과 접촉해 왔으며 김경환씨는 89년 9월께노동당에 입당하고 남파간첩이 하씨와 접선하도록 주선한 혐의다.
<재판 결과>
김영환씨는 징역 10년, 하영옥씨는 징역 8년, 심재춘씨 5년, 김경환씨 4년 6월, 을 선고받는 등 중형이 선고되었으나, 애당초 떠들썩했던 간첩 얘기는 쏙 들어가고 반국가단체 결성 혐의로 선고를 받았습니다. 또한 민혁당 산하의 영남위원회 총책임자라고 했던 박진수씨는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이 때문에 간첩 운운했던 것은 결국 조작이 아니었냐는 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가장 황당한 것은 그 주동자인 김영환씨와 후에 자수하여 민혁당에 대한 각종 증거를 제출한 박모 변호사는 검찰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추가 검거에 기여하고 실형을 살 수 있게 증인이 되주었다는 이유로 공소보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의혹 1 > 빈약하기 짝이 없는 증거들
이번사건의 경우 98년 12월 격침된 간첩선의 내부에서 발견된 주민등록증과 12개의 전화번호,휴대폰번호, 주소등이 첫 실마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 외는 소위 "민족민주혁명당"의 활동에 관한 증거는 어디에도 제시되고 있지 않다. 심지어 소위"민혁당의 하부조직이라는 울산의 영남위원회사건의 경우에도 수천개의 도청테이프, 디스켓, 사진등이 증거로 제시되었던 것에 비하면 빈약하기 짝이 없다. 영남위원회 사건의 경우도 그런 증거들의 다수가 수집과정의 불법성이나 출처의 불명확함 등으로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다. 물론 언제나 처럼 간첩단 사건이면 제시되곤하는 야산에 묻어놓은 드보크가 관악산에 있었다는 말뿐 수집과정이 법적으로 전혀 입증되지 않았으며,(드보크는 변호사 입회하에 발굴되어야 한다.)일방적으로 채택되어 법정공방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결국 본인들의 진술외에는 암호화되었다는 전화번호와 주소, 그리고 주민등록증 한 장만이 이 어마어마한 간첩단 사건의 증거로 앙상하게 제시되고 있다.
< 의혹 2 > 김영환씨와 북과의 연계를 입증할 자료 역시 충분하지 않다.
김영환씨가 입북할 당시 강화도를 통해 입북했다고 되어있는데 이루트는 비슷한 시기였던 92년 남한조선노동당 사건의 황인오씨가 입북했던 경로와 일치한다. 그런데 그당시 황인오씨의 입북루트였던 강화도의 경우 삼엄한 경비를 뚫고 간첩선이 수차례 왕래했음에도 경비책임자나 군당국에 대한 문책이 전혀 없어서 입북의 진위여부 자체가 의혹이었으며 법적공방의 주된 주제였다. 김영환씨의 입북도 마찬가지로 본인진술외에는 증거로 제시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김영환씨에게 북의 지령이 98년 6월까지 계속 전달된 것으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김영환씨의 경우 "민족민주혁명당의 총책을 이미 97년 7월에 내놓은 것으로 되어있는데-그것도 북한의 민주화에 대한 고민 때문에 ! -이러한 경우 기존선을 끊고 다른 연계를 모색하는 것이 역사상 보여졌던 지하조직의 상식에 가깝다.
김경환의 경우 90년 말레이시아인으로 위장한 남파간첩 진운방에게 포섭된 것으로 나와있는데 이사람이 간첩이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것은 98년 남파되어 하영옥씨와 접촉한 원진우와 동일인이라는 하영옥씨와 김경환씨의 진술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결국90년 김경환씨와 접촉한 말레이시아인 진운방이 간첩이기 위해서는 그리고 98년 하영옥씨와 접촉한 원진우가 간첩이기 위해서는 두사람이 동일인이라는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과 관련된 물증은 92년 출국한 진운방이 남긴 유류품에서 나온 사진과 98년 격침된 간첩선 안에 있던 주민등록증 사진밖에 없다. 하영옥씨의 경우 북과 연락하는 방법으로 인터넷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통신을 통한 연락의 경우 학생운동에서도 적어도 두세개 이상의 아이디를 번갈아 사용하고 한 번 사용한 아이디의 경우 되도록 다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10년 가까이 암약해온 "직업혁명가"하영옥씨가 단 하나의 아이디로 6개월이 넘게 북과 연락을 취해온 것 역시 이치에 닿지 않는다. 이번에 문제가 된 주민증록증 발급의 경우만 해도 심재춘씨가 직접 자신의 명의를 이용해 발급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만약 심재춘씨가 안기부의 발표대로 '민족민주혁명당' 서울대 사업담당이었다면 믿을 만한 후배들이 많이 있었을 텐데 왜 자신의 필적이 남을 주민등로 등,초본 발급에 직접 나섰는가 ? 또한 심재춘씨의 경우 간첩 '진운방'이 여수를 통해 귀환할 당시 자신의 핸드폰으로 자신의 집에 전화통화를 한 기록이 증거로 제시되었다. 학생운동의 경우도 수배자를 만나 모임을 할 경우 주변의 공중전화도 쓰지 않는 것이 관례다. 이역시 오랫동안 지하활동을 해온 조직의 성원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
< 의혹 4 > 영남위원회의 상급단체가 민족민주혁명당이다 ?
국정원의 발표에 의하면 민혁당이 부산지검에서 검거한 '영남위원회'의 상급단체라고 한다. 그리고 지역위원회와 부문사업국을 그 산하단체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지역위원회 중의 하나가 영남위원회라고 한다. 그러나 영남위원회에 대한 재판과정을 살펴보면 증거로 제시된 대부분이 도,감청자료,디스켓등이 증거로 인정되지 못하고, 반국가단체 규정에서 이적단체로 격하되었던 것은 이제 삼척동자도 다아는 사실이다. 이미 대법원 판결까지 난 영남위원회의 상급조직이 간첩단이었다면 1년 넘게 걸친 재판에서 나온 결과는 무엇이란 말인가 ?
< 의혹 5 > 하영옥씨 약물복용 시키고 수사 !
변호인 접견시 밝혀진 하영옥씨의 주장은 가히 충격적이다. 조사당시 수사관들이 제공한 드링크류를 먹고 조사에 임했는데 이후 정신이 혼미하고 몽롱한 상태에서 수사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철저한 인권유린이며, 사실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계자에 대한 사법 처벌이 있어야 할 것이다